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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남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냐
본문 /  롬 2: 1- 5

 

 

1. 인간
우리나라 속담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을 하면서 인간이 무언가를 좀 아는 속이 꽉 찬 사람일수록 자신의 의를 드러내기보다는 자신을 더욱 낮추어 항상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길 줄 아는 겸손함이 있어야 한다는 덕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또한 이러한 속담도 알고 그 뜻도 알고는 있지만 과연 겸손하여 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처럼 세상 지식이 많아지면 교만할 수도 있지만 성경의 지식이 많아지면 겸손하여지는 것입니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인간이 얼마나 죄인인가를 날마다 보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로마서를 보면서 인간의 죄가 무엇인지를 다시 보게 됩니다. 그런 인간들이기에 성경의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자기의 죄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남의 죄만 보이게 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결국 상대방을 판단하는 판단 외에는 나오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판단을 받고 심판을 받아야 하는 자가 아니라 자신이 심판자가 되어 남을 판단하고 심판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러므로”(롬2:1)라고 시작함으로 로마서 1장 1절부터 지금까지의 말씀을 연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1장에서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1장 1절부터 18절에서는 복음을 요약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복음 안에 하나님의 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산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장 19절부터 3장 20절까지는 왜 인간이 복음으로만 의롭게 되는지를 논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내용은 인간이 어느 정도의 죄인이기에 주님의 대신 죽으심 외에는 달리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2주간에 걸쳐서 인간의 불의가 무엇인가를 크게 두 가지로 보았습니다. 경건치 아니함과 불의였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만들어낸 하나님이란 우상이었으며 그 결과 인간은 모든 불의에 가득 찬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불의가 가득하기에 나오는 것은 오직 악뿐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의도로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기에 그것을 죄로 인식하지도 못하고 서로 옳다고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에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쏟아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우리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는 인정하십니까? 우리가 하는 모든 것들과 우리에게서 나오는 모든 사상들이 전부 하나님 앞에 죄뿐임을 인정하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지고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주님의 의에 결코 이를 수 없는 것임을 인정하시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이 순수하게 하는 것도 있는데 왜 그렇게 말하는가, 하며 인간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가 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그러한 사람들의 죄악을 또다시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2. 판단
성경을 해석하고 설교하는 사람들은 오늘 본문에 남을 판단하는 사람들을 크게 두 가지로 보고 있습니다. 첫째가 이방인들로 보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우상으로 바꾸고 온갖 악한 일을 행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결코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아주 고상한 윤리와 도덕을 가지고 있습니다. 살생을 피하기 위하여 몸에 이도 잡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고, 어느 시인의 말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라며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양심고운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지난주에 보았던 수많은 목록들과 상관없다고 보는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판단하고 있기에 이들이 악한 죄를 짓는 사람들을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유대인으로 보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선택받았고, 율법을 받았고, 할례를 행하였기에 구원받은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구원이 필요 없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는 사람들이기에 이정도의 불의의 목록이 나와도 나는 그러한 죄를 짓지 아니하였다고 할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죄들은 하나님도 모르고 율법도 모르는 이방인들이나 유대인 가운데서도 죄를 많이 지어서 저주를 받은 자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지 자기들은 그런 죄가 없기에 하나님의 진노가 아니라 축복만 받으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메시아를 기다리면서 메시아가 오기만 하면 온 세상을 심판하고 자기들만이 의롭고 축복받은 민족임을 드러내고 싶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싫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믿지 아니하는 그들을 향하여 너희의 아비는 마귀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들의 의를 가지고 하나님의 의가 되시는 예수님을 배척하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은 자신의 의가 강하였기에 하나님의 의를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싫어하였고 더 나아가 율법을 따라 흠이 없이 살려고 하였고 또 그렇게 살았던 사람들을 책망하는 소리가 싫어서 책망하는 하나님의 의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느 해석이 더 옳다고 보여 집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나누었던 로마서 1장은 모든 이방인의 범죄라면, 로마서 2장부터는 유대인의 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선택도 없고, 율법을 받지도 못하고, 할례도 없기에 그들은 로마서 1장에 나오는 죄를 짓지만 유대인인 자신들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 가운데 그런 죄인들이 있다는 것을 세리와 창기와 그리고 저주 받은 불치의 병자들을 그렇게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그 무리들을 보고서 율법도 모르는 자들은 저주 받은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에 비하여 자기들은 의롭다고 여기고, 율법을 모르고 지키지도 아니하는 그러한 자가 죄인이지 자기들은 죄인이 아니라고 여기는 그들에게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 판단한다는 이 말씀이 바로 우리 자신들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적용 되어야만 합니다. 이 말씀은 유대인들이나 흉악한 죄인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복음이라고 하면서 얼마나 많이 판단하여 왔습니까? 여러 교회와 여러 사람들을 판단하여 왔습니다. 물론 복음과 비 복음을 설명하기 위하여 판단한다고 하였습니다. 신념과 신앙을 구분하며, 종교성과 복음을 구별하기 위하여 판단하며,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 할지라도 바울이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면서 여러 가지 판단과 비판을 하였습니다. 그러한 판단을 하면서도 우리 모두는 동일한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을 보면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롬2:1-3)라고 합니다. 남을 판단하는 그 판단으로 내 자신이 정죄를 받는 것입니다. 이미 자신이 재판 자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기는 정의를 위한다고, 교회를 위한다고, 예수님을 위한다고 소리치며 판단하였지만 그러나 자신도 같은 일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가 얼마나 교활한지 그렇게 하고 있는 자신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는 옳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자신은 성경적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가 목사들에게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목사의 고집이 대단한 것입니다. 자기의 뜻만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목사들끼리 의견이 제대로 맞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드리면 여러분은 속이 시원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맞아, 목사들이 문제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순간 지금 여러분은 또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똑같이 판단을 하고 있고 재판을 하고 있으면서 남을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 방송을 보며 다른 교회의 설교를 들을 때 우리는 어떤 자세로 말씀을 듣습니까? 그래 한번 두고 보자, 무어라고 말하는지 하는 자세나 태도는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복음적인가 아닌가 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좀 이상하다 싶으면 저 목사가 복음도 모르면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상대방을 판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을 판단하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판단으로 인하여 자기가 정죄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은 모르는 것입니다. 자기는 정당하고 옳다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4장에 보면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전4:3-5)고 합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5장에도 보면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고전5:12-13)고 합니다. 여기 보면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도 있고 판단하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분명한 범죄에 대하여 교회에서 판단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씀을 들이대며 판단을 하지만 얼마든지 자기 합리화와 정당성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0장에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어느새 우리가 재판 자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야고보서 4장에도 보면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약4:11-12)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다 판단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자기는 성경대로 바르게 판단한다고 하지만 그러나 자기도 속고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진노가 모든 불의에 나타나는데 우리의 판단의 삶에도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야 마땅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판단하지 말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예배 후에 누가 어떤 말을 하다가 판단이 나오게 되면 ‘봐라, 목사님이 설교시간에 판단하지 말라고 했잖으냐, 그러니 판단하지 말아야지 왜 판단하느냐’고 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이미 판단하고 있는 재판 자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살라는 것입니까?

 

 

3. 회개와 심판
오늘 본문에 보면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롬2:4-5)고 합니다. 자기 죄를 알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판단을 피하지 못할 줄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판단대로 주님께서 판단해 버리셨다면 우리는 벌써 끝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아직 주님의 진노를 받지 않고 사는 것은 주님의 긍휼과 자비로 오래 참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얼마나 판단을 많이 하며 살고 있는지를 알게 되면 자기 눈에 들보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남의 눈에 티가 보이지 아니합니다. 우리 자신의 코가 석자인데 다른 사람에게 뭘 간섭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이것을 알게 되면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자신이 늘 판단하고 살면서 자기는 옳은 줄로 착각하고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오래 참으심을 멸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오래 참으심이 그 인자하심이 지금 회개하도록 인도하고 계시기에 우리의 판단대로 판단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자신에게 하나님의 진노와 판단이 임하지 아니한다고 자신이 행하는 판단들이 옳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자들에게 주님께서 오래 참으시면서 회개하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님의 긍휼과 자비를 멸시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그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그 날에 임할 진노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디에 속하여 있습니까? 자기가 옳다고 여기고 남을 판단하고 있는지 아니면 자기의 판단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지를 알고 회개하든지 둘 중에 하나 일 것입니다. 우리가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그 판단과 비판으로 우리가 판단을 받을 것임을 아는 사람은 늘 회개할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때로는 아주 교묘하게 판단하기에 자기도 속고 듣는 사람도 속지만 그러나 주님께서 자기 백성을 오늘도 오래 참으시면서 회개하도록 인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판단으로 인하여 죽임 당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날마다 회개하며 주님을 믿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주님의 우리를 향한 기대이며 권면인 것입니다. 이런 주의 마음을 바르게 알아 하나님 보시기에 언제나 나를 점검하여 세우는 일에 신앙을 다하는 아름다운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지식일 때와 생명일 때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2. 우리가 지난 시간동안 로마서를 통해 함께 나누었던 내용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본문에 남을 판단하는 자들을 이방인으로 보고 이해하는 해석은 무엇입니까?
4. 오늘 본문에 남을 판단하는 자들을 유대인으로 보고 이해하는 해석은 무엇입니까?
5. 오늘 본문의 말씀이 나의 이야기라고 하는 그 내용은 어떤 것입니까?
6.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판단하는 재판자로 살지 말고 어떻게 살라고 하십니까?
7. 하나님의 판단으로 하면 심판받아 마땅한 자가 아직도 그 심판이 임하지 아니 하였다는 것은 무엇    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8.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는 주님 앞에서 우리가 항상 기억하며 살아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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