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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표면적 할례와 이면적 할례

본문 / 2:17-29

 

 

1. 인간의 실상

우리나라에는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만큼 사람의 속은 알 수가 없고, 그 겉과 속이 다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사람을 판단할 때 겉과 속이 같은지 다른 지를 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표리부동(마음이 음흉하여 겉과 속이 다름)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은 늘 외모 중심으로 보기에 그 사람의 속을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함께 지내보면 그 사람을 어느 정도는 알 수가 있습니다만 그러나 여전히 모를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왜 스스로의 의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는 가를 최종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내용은 유대인과 율법을 주제로 말씀하고 있지만 이미 이방인의 한계를 말씀하였습니다. 이방인 가운데도 양심을 바르게 하여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고 사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남편이나 아내에 대하여 정절을 지키고, 나라의 임금을 섬기면 죽어도 한 임금을 섬기는 충성을 보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이방인의 모습보다 더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고 늘 다짐하고 새롭게 하는 유대인들은 어떠하였는가를 오늘 말씀이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주제로 유대인과 율법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2:17-20)라고 하여 유대인들의 특권과 자랑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 있어서 율법이란 그들의 최고의 자랑거리입니다. 그래서 유대인 하면 율법과 끊어질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만큼 자신들이 유대인이라는 자부심은 자신들이 율법을 받았다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대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운 것이며 또 그 율법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받았기에 율법을 의지하며 그것을 보전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애를 써왔습니다. 율법을 필사하는 서기관들의 정성을 보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세밀하고 철저하였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율법이 없는데 자신들은 그 율법이 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율법을 하나님 앞에 인도 받을 수 있는 지도로 주었는데 유대인들은 눈 먼 소경이라서 그 지도의 내용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그 지도를 둘둘 말아서 자신들이 의지하는 지팡이로만 사용한 것입니다. 또 율법을 모르는 자와 지키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는 정죄하고 판단하여 그들을 때리는 몽둥이로 사용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도 자신들은 율법을 의지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이기에 이러한 율법을 주신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이 그들입니다. 신이 없다는 세상 속에서 또는 우상을 섬기는 세상 속에서 그들은 그들에게 계시한 하나님을 목격하고 그들에게 말씀주신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의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고, 어리석은 자의 교사로,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자부심을 가질만한 내용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할례에 대하여서도 이들은 포기하지 못하였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그들은 예수를 믿어도 할례는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율법과 할례에 대한 그들의 자부심은 대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다 그들의 겉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겉과 속이 다름을 자신들이 모른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이들의 겉모습을 예수님께서 얼마나 신랄하게 공격하셨는지 모릅니다.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라고 저주를 퍼부으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율법을 자랑하고 지킨다고 믿고 있는 그들이 또 다른 세력에 붙잡혀 속고 있었음을 그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그들이 율법을 자랑하고 율법을 믿고 가르친다고 하였지만 그러나 율법의 제정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는 사실에서 율법을 받았다는 인간조차 어떠한 형편에 있는지를 밝히 보이시는 것입니다. 율법을 자랑하고 믿는다는 그들이, 율법을 가르친다는 그들이 하지 말라고 하는 죄를 동일하게 짓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율법을 받았든 또는 받지 않았든지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자들의 실상인 것입니다.

 

 

2. 표면적 할례의 한계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2:21-23)고 합니다. 도둑질하지 말라고 하면서 자신도 도둑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도둑질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는 정당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도둑질이 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구약에 의하면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제대로 드리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간음하지 말라고 하면서 자기들도 간음하는 것입니다. 비록 행위로 나오지 않았더라도 이웃의 것을 탐내었으면 이미 도둑질한 것이요. 마음에 음욕을 품었으면 간음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겉모습으로 도둑질이나 간음을 하지 않았다고 안심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신 것이 마음의 할례였습니다. 신명기 10장에 보면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여호와께서 오직 네 조상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들의 후손인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10:12-19)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할 것을 말씀하시면서 마음의 할례를 말씀하시고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아니하신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나 두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가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29:13)고 탄식을 한 것입니다. 또한 시편 62편에도 보면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 (셀라)”(62:1-4)라고 합니다. 주만 의지하는 다윗을 공격하는 방법이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인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니라 장차 나타날 메시아의 고난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입맞춤으로 예수님을 팔아넘깁니다.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입니다. 겉 다르고 속 다른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고 또 알려주어도 인정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은 율법을 지키고 또 믿고 있으니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할례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의 할례를 얼마나 중요시 하였는지 난지 8일이 되면 할례를 하라는 할례의 언약을 지키기 위하여 안식일을 범하면서까지 할례를 행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행하는 할례는 이미 아브라함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러한 할례에 대하여서도 바울사도는 율법과 마찬가지로 표면적인 유대인으로 보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행한다고 하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표면적인 유대인인가 하는 것은 결국 십자가에서 밝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방인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의 율법을 받았다는 이스라엘 백성조차 그 모습이 표면적인 것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율법이 또 할례가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다 죄 아래 갇혀 있다’(11:32)는 것을 율법이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자들이 바로 유대인들입니다. 율법을 받았고 또 할례를 행한다는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한 것입니까? 이것이 바로 육체의 한계인 것입니다. 표면적 유대인의 한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할례를 육체에 한다고 새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할례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3. 이면적 할례

그런데 육체의 할례는 사람이 할 수 있지만 마음의 할례는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예레미야 4장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 네가 만일 나의 목전에서 가증한 것을 버리고 네가 흔들리지 아니하며 진실과 정의와 공의로 여호와의 삶을 두고 맹세하면 나라들이 나로 말미암아 스스로 복을 빌며 나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와 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에 파종하지 말라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4:1-4)고 합니다. 여호와께 돌아오라는 말씀을 이스라엘에게 합니다. 그리고 이미 할례를 받은 자들에게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여호와께 속하라고 하십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할례를 받은 자들이 또 무슨 할례를 받아야 하는 것이겠습니까? 예레미야 31장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31-34)고 합니다. 돌 판에 새기는 것이 아니라 아예 사람의 마음에 새긴다는 것이 것입니다. 이것이 새 언약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완성한 의를 성령이 임하여 증거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빌립보서 3장에 보면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3:3)고 합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자랑이 빠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그 어떤 육체적인 행위도 신뢰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주님 홀로 행하신 일에만 기대를 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이 겉모양이 아니라 속이 바뀐 자들입니다. 유대인들처럼 율법을 가지고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몽둥이로 만들어 때리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용도를 알기에 오직 돌이켜 주께 회개하는 자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 모든 말씀은 오늘 예수 믿는다는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무엇으로 말할 수가 있습니까? 일요일에 예배당에 오는 것, 교회에서 봉사 하는 것, 직분 받은 것, 대문에 교패 다는 것, 차 뒤에 물고기 모양 붙이는 것입니까? 그러나 이것은 모두가 표면적인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면적인 그리스도인, 즉 속조차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2:29)고 합니다. 할례는 율법 조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의 문자대로 몸에 할례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된 것입니다. 성령으로 된 것은 사람의 일로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갈라디아서 5장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5:11)라고 합니다. 자신이 육체의 할례를 전하였다면 박해를 받을 일도 없었을 것이고 또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 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그리스도인이란 모든 봉사를 성령으로 봉사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하고, 자기의 육체의 행위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사람입니다. 더 이상 자기 자신에게 기대를 걸지 아니합니다. 동시에 남에게도 그러한 기대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그러니 오늘도 말씀 앞에 바르게 서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만 바라보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 길이 누가 알아주거나 또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일이 아닐지라도 우리의 아버지 되시고, 왕 되신 하나님은 다 아실 것입니다. 그 마음 그대로 주 앞에서 살아가시면 오직 한 분 하나님께만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돌려드리는 예원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용도와 이스라엘의 사용 용도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2. 하나님의 율법을 받은 유대인들의 겉모습과 또 그들의 실상은 어떻게 다르다고 합니까?

3.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의 모습을 어떻게 말씀하며 또 그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요구는 무엇입니까?

4. 하나님께서 율법과 할례를 통하여 인간들에게 가르치려는 것은 무엇입니까?

5. 예레미야를 통해 이미 할례를 받은 이스라엘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요구는 무엇입니까?

6. 이미 할례를 받은 유대인들이 받아야할 할례는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다른 것입니까?

7. 할례를 그 마음과 영에 한다는 것은 무엇이며 또 그런 자들의 증상은 어떻게 드러납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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