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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수님의 시험을 통해 보는 우리의 현실

본문 / 4: 1-11

 

 

1. 예수님을 시험 받게 하신 이유

하나님은 홍수를 동원하여 세상을 심판해 버리실 정도로 인간에 대해서는 진노의 마음을 갖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너무 악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하나님의 그러한 생각에 반발을 합니다. 악한 사람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착한 사람도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한 사람을 심판하시는 것은 찬성하지만 왜 착한 사람도 심판하며 불행한 일을 겪게 하느냐고 항변을 합니다. 더 나아가서 악한 사람이 심판을 받지 않고 오히려 더 잘되는 현실을 두고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부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도덕적으로 착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겠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진심으로 그 본질이 착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3:9-12)고 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런 인간들에 대해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1:28-32)고 합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우리 인간의 실상인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인간 속에 미움이 있고 탐욕이 있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 자체가 하나님의 생각과는 아예 다르다고 합니다. 절대 선이신 하나님과 아예 생각 자체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서에 보면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55:8)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쩌면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과 아예 다르다는 것을 별로 실감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각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는 우리가 선한 것으로 여기는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과 일치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인간들의 생각들이 모두 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위 선하다고 여기는 착한 생각이 모두 깨어짐으로써 그 속에 감춰져 있던 악한 본질이 드러나게 되고 그로 인해 하나님이 왜 인간을 악하다고 하시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이 곧 생명을 향한 희망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악함을 깨달음으로써 자기의 선과 의를 바라보지 않고 외부에서 다가온 한 의를 바라볼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으로 하여금 마귀에게 시험을 받게 하시는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4:1)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셨다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의 시험은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임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마귀에게 시험을 받도록 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마귀의 시험을 통해서 세상의 현실이 마귀에게 장악된 상태임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 그리고 꿈꾸는 것과 같은 모든 것들이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한 것과 동일한 것임을 보여주심으로써 세상의 현실은 마귀에게 장악된 상태이며 그러한 세상에서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의 하실 일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함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추구하고 생각하는 것에서 마귀와 동일한 생각을 발견하십니까? 그렇다면 과연 그 생각은 무엇입니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착한 생각은 마귀의 생각이 아니라고 판단합니다. 가령 이웃을 돕고 싶어 하는 생각을 세상은 결코 악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생각을 악하다고 한다면 그는 세상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웃을 돕고 싶어 하는 생각이 마귀의 생각과 일치됨을 드러내는 것이 마귀의 시험인 것입니다. 우리가 본문의 말씀에서 주의 깊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마귀의 시험을 통해 세상의 현실과 우리의 실상을 보는 것입니다. 마귀의 생각과 동일한 생각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보게 됨으로써 그동안 자신에 대해 가졌던 환상에서 깨어나야 하고, 예수님이 오셔서 자기 백성을 어떤 생각을 가진 신자로 만들고자 하시는가에 대해 알아야만 합니다. 그리할 때 평소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예수님의 십자가와 동떨어져 있는가를 바르게 알게 될 것입니다.

 

 

2. 마귀의 첫 번째 시험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한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오늘 본문 3절에 사십일을 금식하시고 주리신 예수님께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6절에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뛰어내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 시험은 9절에 예수님을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천하만국과 영광을 보여주며 내게 경배하면 그 모든 것을 주겠다고 합니다. 예수님께 돌을 떡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을 거절하십니다. 왜냐하면 돌을 떡으로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추구하는 메시야는 돌을 떡으로 만들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즉 자신들의 배를 부르게 하고 먹고 사는 문제를 아무 걱정 없이 해줄 메시야를 기다린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그런 생각이야 말로 마귀의 생각임을 이 시험으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합니다. 즉 돌을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함으로써 주린 배를 채워줄 수 있어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세상은 신에 대하여 바로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구상에 먹을 것이 없어서 하루에 수만 명이 죽는다는 소식을 들으면 대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생각하는 신은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각이 곧 마귀의 생각과 같다는 것이 돌을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시험을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의 주린 배를 채워 주기위해 오시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비참한 현실은 굶어죽는 사람이 하루에 수만 명이라는 현실이 아니라, 말씀을 알지 못해 또 생명을 알지 못해 영원한 멸망에 빠져 있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진정으로 비참한 현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생각이었기 때문에 아들을 돌을 떡이 되게 하는 능력자로 보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만 사는 아들로 보내신 것입니다. 즉 떡이 아니라 말씀을 주시는 분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말씀의 능력은 돌이 떡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멸망에 처한 자를 생명에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돌을 떡이 되게 하는 능력을 원합니다. 믿음에서 기대하는 것도 돌이 떡이 되어 자신을 풍족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마귀의 생각인 것입니다. 돌을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시험에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4:4)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사람에게는 떡과 함께 말씀도 필요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십일을 금식하시고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사십일을 금식하셨으니 극도로 주린 상태였을 것입니다. 그러한 상태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분명 떡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인간의 본질을 다르게 보십니다. 사십일을 금식하고 주린 상태든 아니면 배가 부른 상태든 인간은 죄로 인해 비참한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먹지 못해 주린 상태에서의 세상은 떡이 곧 진리가 되지만 죄로 인해 비참한 상태에서의 인간에게는 오직 말씀이 진리가 될 뿐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먹지 못해 주린 인간을 보지 말고 죄로 인해 사망에 처한 비참한 인간의 본질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무엇이 진리인가를 확실히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3. 마귀의 두 번째 시험

두 번째 시험인 성전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고 시험하는 것도 같습니다. 오늘 본문 6절에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4:6)고 말하는 것은 마귀가 시편 9111절과 12절의 내용을 인용한 것입니다. 마귀가 시편의 구절을 인용하여 성전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 시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말씀대로 실천해서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여 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편 91편의 내용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지키고 보호하심으로써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세상에 증거 하시겠다는 뜻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백성을 지키고 보호하심으로써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드러내시겠다는 이 말씀을 가지고 마귀는 그것을 구원 받는 자기 자신을 증거 하는 용도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도 죽지 않는 것을 통해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관심이 자신에게 있고, 자기를 증거하며 증명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마귀의 생각이라는 것이 이 시험을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신자를 세상에 세우신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증거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을 세우시고 살게 하신 하나님의 생각이 무엇인가에는 관심이 없고, 다만 자신을 증거하고 보여주기 위해 삽니다. 말씀을 실천하려고 하면서도 그 생각은 자기 믿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에 있고, 십자가를 말하면서도 자신이 죄인으로 드러나는 것을 거부하면서 만인 앞에 의로운 자로 서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귀의 생각이며, 하나님을 보지 않고 자신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두 번째 시험에서의 예수님의 답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4:7)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다는 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은 이미 확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무엇을 통해서 하나님을 확인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자신을 증거 하고자 한다면 독생자를 보내셨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독생자를 보냈다는 것은 모든 자에게 주어진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증거 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위한 은혜가 아닌 오직 자신에게만 주어진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바라본다면 독생자를 보내신 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은 완벽하게 확증되었음을 알기 때문에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으로도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4. 마귀의 세 번째 시험

마귀의 세 번째 시험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주겠다고 시험하는 것은 마귀에게 머리를 숙이고서라도 세상의 힘과 영광을 얻는 것이 더 낫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즉 삶의 목적과 이유를 세상의 힘을 얻는 것에 두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귀의 생각 역시 세상의 생각과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이 바로 그러한 생각으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힘을 얻고 세상에서 영광된 존재로 군림하는 것,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갖고 있는 욕망이고 꿈인 것입니다. 이러한 꿈을 도와주는 존재로 마귀는 인간에게 다가오고 인간을 다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험에 대한 주님의 답변은 10절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4:10)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 역시 그 중심은 하나님입니다. 피조물의 본분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만 섬기는 것이지 자신이 경배를 받는 것에 있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피조물임을 잊고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경배의 대상이 되고 싶어 합니다. 마귀에게 고개를 숙여서라도 힘을 얻어서 자신이 세상을 다스리는 위치에 있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과연 내가 마귀의 생각과는 다르게 산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마귀의 세 가지 시험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과 목표와 추구하는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말하면서도 실상은 마귀의 생각을 따라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중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마귀의 시험을 통해 우리의 생각에 숨어 있는 마귀의 생각의 실체를 볼 수 있어야만 합니다. 서두에 말씀 드린 것처럼 이웃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마귀의 생각이 될 수 있는 것도 이웃을 돕는 것을 먹을 것을 주는 것으로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에 빠진 인간의 실상을 보지 않을 때 눈에 보이는 것은 다만 먹지 못해 주린 모습뿐일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에 동정심을 가지고 도와준 것으로 인해 그것을 착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곧 마귀의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마귀의 시험에 대한 예수님의 답의 중심에는 오직 하나님 한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의 시험을 통해 드러난 마귀의 생각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다만 내 자신만이 있을 뿐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너 자신을 위해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와를 유혹한 마귀의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 같이 된다.’는 마귀의 말 역시 너 자신을 위해 살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만으로 살 것을 말씀합니다. 이것이 마귀의 생각과 다른 예수님의 생각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이 예수님의 생각이 우리에게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마귀의 생각을 따라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고, 우리를 책망하시면서 진리의 길을 가게 하십니다. 마귀는 계속 우리로 하여금 자기의 생각을 따라 살도록 시험하지만 독생자 아들을 십자가에 죽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오늘도 이러한 하나님의 열심히 우리로 살게 함을 알아 범사에 그 은혜에 대한 감사와 그 사랑에 대한 찬양으로 오직 한 분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인간 가운데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자가 없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2. 인간이 갖고 있는 착각과 그 착각이 깨어져야만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3. 예수님의 시험 받으심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자 하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4. 첫 번째 시험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의 기대와 하나님이 주시려는 것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5. 두 번째 시험에 마귀가 인용한 말씀의 참 의미는 무엇이며 또 마귀가 그 말씀을 어떻게 왜곡되게 시험하는 내용으로 사용하고 있습니까?

6. 세 번째 시험을 통해 볼 수 있는 마귀의 시험 내용과 예수님의 답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7. 우리가 하나님과 같은 세상의 실상을 보지 못할 때 나타날 수 있는 착각은 무엇입니까?

8. 마귀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어떻게 다릅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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