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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인간의 실상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

본문 / 3: 9-18

 

 

1. 의사를 찾는 자

마태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9:12-13)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믿는 자든 또는 믿지 않는 자들 누구나 다 공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이야기를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 즉 계시를 말씀하시는데 그 계시의 말씀은 다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이야기를 통하여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신 것입니까? 한마디로 예수님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는 건강한 자는 의인으로 비유하고, 병든 자는 죄인으로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가 죄인임을 아는 자들만이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것이지 자신이 의롭다고 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원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자신이 근원적인 고침을 받아야 하는 병자, 즉 죄인임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듣는 다는 것은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지를 먼저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제사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긍휼을 원한다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지금까지의 논증을 통하여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모두 다 죄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만 그 하나님을 우상으로 만들어 버린 것과 유대인들이 율법을 받은 유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믿지 아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받은 것은 인간이 율법을 받았을 때 어떤 반응과 태도가 나오는지를 이스라엘이라는 도구를 통하여 보이심으로 인간은 다 거짓되되 하나님만이 참되시다는 것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여기에 유대인들이 반발하여 그러면 자신들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낸 것이라면 자신들이 진노를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자는 식으로 바울이 그렇게 말한다고 바울을 향하여 모함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자기들이 죄를 짓고, 안 짓고 또 의를 행하고 행하지 않고 하는 것을 자기 의지와 능력으로 가능하다고 보고 있기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들도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복음을 듣는다는 사람들이 이런 식의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교회에서는 어차피 죄인이라 행함으로 구원받지 못하는데 마음대로 살자고 하거나, 교회 밖에서는 저 사람들은 죄를 마음대로 지어도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둘 다 죄 아래 있는 인간을 모르기에 나오는 말입니다. 스스로 죄를 짓고 안 짓고 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게 죄 아래 있다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오늘 말씀이 증거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인간의 모습을 최종적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 근거는 구약의 성경을 인용하여 결론을 내리는데 오늘 본문 10절에 기록된 바라고 하며 서술한 모든 내용이 구약 성경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약 성경의 위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 맨 밑에 보면 나와 있습니다. 시편 141절 이하, 시편 531절 이하, 시편 59, 시편 1403, 시편 107, 이사야 597절 이하, 시편361절에서 인용하고 있습니다. 짧은 본문 속에서 인간의 실상을 말하기 위하여 구약을 인용하는 것은 유대인들의 입을 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받은 성경을 가지고 인간이 죄 아래 있다는 것을 논증함으로 인간의 실상에 대한 최종결론을 내리는 것입니다.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헌법에 문제가 있으면 헌법 재판소에서 최종 결론을 내리듯이 오늘 말씀은 인간의 실상에 대하여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2. 인간의 실상

오늘 본문에 보면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3:9)라고 합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 똑 같음이란 모두가 죄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받았다고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다 지켜야 의인이 되는데 어느 누구도 율법을 완벽하게 다 지켜서 의인이 될 수 없기에 율법을 받은 유대인이나 또 율법을 처음부터 받지 않았던 이방인이나 똑 같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이야기입니다. 부산의 어느 중학교에서 전교 1등하는 아이를 서울로 보냈습니다. 서울에 있는 특목고에 입학시켜 보려고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그 특목고에 들어가려면 시험을 봐야 하는데 서울에는 그 특목고를 목표로 공부시키는 학원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학원도 시험을 봐서 성적이 되어야만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산의 중학교에서 전교 1등 하던 아이가 이 학원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에서도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서울 다음이 부산인데 그 부산도 안 된다면 다른 지방의 아이들은 그런 곳에 꿈도 꾸지 말라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선택받았다고,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할례를 받았다고 말하는 그들이 불합격 하였다면 나머지는 볼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불합격 한 정도가 아니라 시험출제자를 불의하다고 죽여 버렸다는 것이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인간의 실상인 것입니다. 그래서 10절부터 보면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3:10-12)고 합니다. 여기 기록된 바는 시편 14편과 53편의 내용을 인용한 것인데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의인이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의인이 있는가 하고 이 땅을 살펴보시는데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이기에 의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자도 없는 것입니다. 깨닫기라도 하면 의를 달라고 구하기라도 할 텐데 율법이 없는 자는 아무것도 몰라서 의를 구하지도 않고, 율법을 받은 자들은 표면적 유대인인 것을 가지고 의롭다고 착각하고 있으니 깨닫지를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하나님을 찾았다는 것은 결국 자기들의 소원이나 들어주는 우상 하나님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 치우쳐 전부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바울자신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유익하다고 여긴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유대인중의 유대인이요, 난지 팔 일만에 할례를 받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하였으며, 누구 못지않은 율법에 대한 열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에 그것이 전부 무익한 것임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그것을 모두 배설물로 여기는 것입니다. 자기가 지금까지 유익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오히려 해가 되고 예수님을 가리고 있었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무익한 자 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죽도록 충성하고서도 자신이 무익한 줄을 아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나서는 그래도 자신이 무언가 유익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유대인들이 이미 착각한 그 내용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착각을 하게 되면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자기 마음대로 살았지만 이제 예수님을 믿은 후에는 우리의 착한 행실로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란 자기의 모든 것이 자기 행함의 결과가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임을 아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가 제대로 나타났다면 그것이 결코 자신의 경건과 권능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된 것임을 증거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끼리 서로 서로 경쟁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 성령의 열매가 많은가 아니면 너희가 더 많은가 하면서 여러 가지 주장들이 나오게 됩니다. 예수님을 자랑하고 예수님을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자기들이 얼마나 괜찮은 인간이 되었는가를 말하기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가 교회완전주의를 말하는 지방교회입니다. 자기들 외에는 교회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방교회 외에는 다 가짜라고 하는 것입니다. 죄 아래 있다는 인간의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또 다른 자기 의를 만들어 내는 사람과 단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이러한 올무에 빠져들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말 자신이 무익한 줄을 아는 것이 은혜가 임한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죄 아래 있다는 것은 아담이 범죄하고서 그 후손이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아래 후손은 모두 죽을 운명으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 말씀과도 통합니다. 우리는 다 해아래 살고 있습니다. 그런 인간에게서 어떤 새로운 것이나 선한 것이 나오겠습니까? 그저 세상에서 살다가 악취만 풍기다가 영원한 멸망으로 가고 있는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겉으로 아무리 치장을 하고, 인류의 평화를 위하고, 종교적 행위를 하여도 죄 아래 있는 자는 하나님보시기에 죄 뿐인 것입니다. 그 실상을 오늘 말씀이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을 보면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3:13-14)라고 합니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라고 합니다. 유대인의 무덤은 땅을 파고 매장하는 것이 아니라 바위굴 같은 곳에 시체를 둡니다. 그래서 살이 다 썩어 내리면 뼈를 추려서 조상들의 뼈를 모아두는 곳에 넣는 것입니다. 그런 무덤이 열려지면 시체 썩는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실상이 우리의 목구멍이라는 것입니다. 목구멍에는 혀가 있습니다. 이 혀로 속임을 일삼으며,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다고 합니다. 우리는 과연 이 말씀을 인정하십니까?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 이러한 자임을 인정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혹 이런 생각은 들지 않습니까? 이런 모습은 예수 믿기 이전의 모습이고, 지금 예수 믿는 자로서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고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고보서 3장에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3:1-10)고 합니다. 야고보서는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이며 또 예수님의 형제인 야고보가 참된 믿음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믿는 자들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보여지는 이런 모습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가 이러고 있다는 것입니다. 혀로 속임을 베풀고 그 입에 악독이 가득하다고 합니다. 그 입에 독이 가득한 짐승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였던 뱀입니다. 그러면 죄 아래 있다는 것은 이 뱀의 권세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는 그 특성이 그대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곧 그 속에서 나오는 것인데 마태복음 15장에도 보면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15:18-20)고 예수님께서 말씀 하십니다.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거짓 증거, 비방 같은 것들이 입을 통하여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율법을 지켜 의인이라고 하는 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도 마태복음 23장에 보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23:27)고 하였으며 또 33절에도 보면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23:33)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받았고 그 율법을 지킨다는 그래서 가장 의롭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인간의 실상에 대하여 예수님의 평가는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3. 인간의 마음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3:15)고 합니다. 입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입에는 나오는 것은 모두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며, 사람의 마음은 죄가 권세로서 사로잡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가 장악하고 있는 것이 인간의 실상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그 악을 실행하는 것은 발인데, 이 발이 악을 행하는 일에 얼마나 빠른지 모릅니다. 결국 마음과 행동이 다 악할 뿐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16절부터 보면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3:16-18)고 합니다. 죄 아래 있는 이러한 인간은 파멸과 고생이 그에게 남아 있는 것입니다.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 아래 있는 인간의 실상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과 전혀 상관없이 자기는 마음으로도 행위로도 범죄 하지 아니하였다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인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그 죄가 없다면 죽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 태어나서 죽지 않은 자가 누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한명도 없다고 합니다. 모두다 죄 아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는 영원한 멸망만 남아있는 것입니다. 이제 인간 스스로는 죄의 권세를 이겨낼 방법이 없습니다. 양심으로 안 됩니다. 율법도 안 됩니다. 그 어떤 인간의 행위로도 죄를 이길 방법이 없습니다. 죄 아래 있기에 하나님의 진노만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로마서 5장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5:8-11)고 합니다. 죄 아래 있을 때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대신 죽으심으로 그 피로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고 장차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우리를 살리셨고 또 지금도 이 사랑으로 삽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사랑 때문에 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이 사랑을 입은 자는 그 어느 것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부패했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실패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완벽하게 일하시는 주님으로 인하여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기뻐하는 자로 그래서 진정한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 매일 이런 믿음의 고백과 찬양의 삶을 살아가는 예원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복음을 듣는 우리가 제일 먼저 알아야 하는 것과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사람들이 복음을 잘못 이해하여 말하는 내용은 무엇이며 그 내용의 오류는 무엇입니까?

3. 하나님 보시기에 인간의 실상은 어떠하다고 말씀합니까?

4. 예수님을 믿고 난 후의 우리의 착각은 무엇이며, 그 착각은 어떤 오류를 만들어 냅니까?

5. 오늘 말씀에 죄 아래 있다는 것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6. 죄 아래 있는 인간의 실상은 무엇이며 또 그 증거는 무엇입니까?

7. 죄로 인하여 심판만 기다리는 우리에게 나타난 것은 무엇입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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