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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자랑이 없는 교회, 자랑이 있는 교회

본문 / 3:27-30

 

 

1. 거짓 믿음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은 모두 다 자기 잘난 맛에 살고 있습니다. 자기 자랑거리를 말하고 또 자기 자랑을 만들어 내는 재미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랑거리가 없어지고 도리어 자신의 수치가 드러나면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게 됩니다. 부끄럽게 살기 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내가 죽으면 죽었지 수치를 당하기는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자살이라는 것도 자기 사랑의 일종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살하는 이유도 물론 나름대로 다 이유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개는 멋있고 자랑스럽게 살고 싶은데 상황이 그렇게 되지 않으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아니겠는가 싶습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이런 상황에 부딪힐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부끄러워 죽겠으니 차라리 죽자고 하시겠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지난주에 나눈 말씀처럼 인생은 풀과 같고 그 아름다움이 풀의 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풀과 같은 인생이 무엇이 잘난 것이 있고 자랑스러운 것이 있어서 스스로 죽기까지 하겠습니까? 자신이 죄인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죄인이라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줄 모르니 자기 잘난 맛에 살고, 자기 자랑하는 재미로 살고 있는 것이지 죄인인줄 안다면 수치를 당하고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여겨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인간이 얼마나 죄인인가를 드러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인이다. 모든 것이 다 죄다.’라고 하니 어떤 오해하는 분들은 그래, 그렇다면 이래도 죄고 저래도 죄이니 내 마음대로 살자하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나는 죄인이야하면서 주눅 들어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죄인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더 이상 기대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무언가 잘나고 멋있고 아름답고 고상한 것들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자기 포장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인임을 아는 자에게서 오는 자유입니다. 그동안 자기를 치장하고 포장하느라고 얼마나 힘이 드셨습니까? 그런 헛된 수고 하지 마시고 있는 모습 그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자랑할 데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 자랑이 없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예수를 바르게 믿는지, 아닌지 테스트를 해볼 수 있습니다. 내가 믿고, 믿음으로 무엇을 행하는 것에 대하여 자랑이 나오느냐 아니면 감사가 나오느냐로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교회로 모여서 예배도 드리고 여러 가지 봉사도 합니다. 이것이 자랑인가 감사인가를 보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오지 않아도 나는 온다는 것, 다른 사람들은 봉사하지 않아도 나는 한다는 것, 다른 사람들은 복음을 잘 모르는데 나는 잘 안다는 것, 다른 사람은 누리지 못하는 데 나는 누리며 산다는 것, 이런 것들이 자기의 자랑으로 나오는가 아니면 감사로 나오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랑으로 나온다면 아직도 자신의 죄인 됨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제가 지금 여러분에게 교회의 모든 일은 감사로 해야 합니다’, 라고 한다면 또 어떤 일이 생기겠습니까? 아마도 우리는 자기 마음을 자기 의지로 굳혀나가며 무슨 일을 하여도 자랑으로 하지 말고 감사로 해야지 하면서 스스로 자기 마음에 다짐에 다짐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감사 역시 인간의 행함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자기의 의지로 굳혀서 믿습니다.”를 반복하거나 사랑합니다.”를 반복하고 세뇌시켜서 믿음이나 사랑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오는 믿음과 사랑이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하게 나올 수는 있어도 그것은 육체의 열매이지 성령의 열매는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자원하는 영이 임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심령을 주심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는 것이라면, 교회는 어느 누구의 지시나 간섭이 없는 곳이어야만 합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라는 것이 없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억지로 마지못해 하는 것이나 또는 아무것도 안 한 것이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같은 것입니다. 교회도 나오기 싫은데 체면상, 눈치 때문에 나오는 것이라면 우리 자신을 돌이켜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 드리면 우리는 혹 강권하여 네 집을 채우라”(14:15)고 말씀 하시지 않았느냐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예루살렘 성전이 텅 비었기에 채우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미 성전은 제물과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채찍을 만들어 쫓아내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성전을 만드시는 것입니다. 새로운 성전은 성령이 임함으로 자원하는 심령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원하는 영이 임하여 감사함으로 되지 않으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전하면 아마도 교회는 문을 닫아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교회란 두세 사람이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면 교회입니다. 목사가 있어야 교회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원하는 영이 임한 두세 사람이 모여도 완전한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로 모였다면 그곳에서는 사람의 자랑은 없고 오직 그리스도만 자랑하는 곳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서 우리는 기존의 교회와 다르다. 우리는 정말 성경대로 모인 교회다. 우리는 사람을 자랑하지 않고 오직 예수만을 자랑한다. 그러므로 우리처럼 하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고 이야기한다면 그곳은 또다시 인간의 자랑이 나오는 곳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2. 자랑

이제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3:27)고 합니다. 여기 그런즉 이란 그 앞의 모든 내용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앞의 모든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인간이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죄의 권세아래 있는 인간이 어떤 형편인지를 이방인과 유대인 두 가지로 모두 보여 줍니다. 이방인이 하나님을 찾는다고 찾았는데 그것이 우상이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를 위한 신이었기에 자신이 신보다 높고, 신들은 자기들을 위하여 존재하는 그런 꼴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신을 믿는다고 하여도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것은 사람들의 당연한 생각으로는 사람이 받은 그 말씀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먼저 합니다. 하나님이 지키지도 못할 것을 주시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지키지도 못할 것을 주시고, 지키지 못하였다고 벌을 준다면 하나님이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인간의 공통된 생각입니다. 율법을 받기 전에도 이미 죄 아래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율법을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다는 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받아 죽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육체가 한 명도 없는 것입니다. 모두가 죄인으로 죄 짓는 일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죄를 지으며 죄인으로 살아가면서도 자신들의 실체를 모르고 살아가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자기들이 의롭다고 하면서 살아간 것입니다. 그렇게 의롭다고 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유대인에게 자신들의 조상인 아담을 타락시킨 뱀의 자손이라고 하고 있으니 화가 난 것입니다. 자기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다고 예수님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런 유대인들은 율법이 가입한 것은 그들을 죄 아래 가두심으로 모든 입을 막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세우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유대인들은 율법을 받은 것, 할례를 행한 것, 성전이 있는 것, 안식일을 지키는 등등의 일들을 자랑스럽게 여긴 것입니다. 얼마나 자기들을 자랑스럽게 여겼는지, 다른 이방인들을 개같이 여긴 것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자랑만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의 자랑거리는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주일 성수를 한다. 십일조를 한다. 우리 교회는 다른 교회와는 뭔가 다른 말씀을 듣는다 하는 것들로 자랑거리로 여기고 있지는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자랑으로 삼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또 다른 모습으로 자기 자랑거리를 다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복음 앞에서는 자랑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교회란 처음부터 끝까지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께서 관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흔히 교회라고 하는 곳에서 인간의 소리와 인간의 행정 그리고 인간의 계획들이 나올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의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교회입니다. 자기 피로 값을 주고 사신 자기의 몸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개혁될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께서 자기 피로 값을 주고 사는 자신의 몸이 교회이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그 피의 완전성이 부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속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고, 거룩함을 얻고, 영광스럽게까지 하신 주님의 구속의 능력에 흠이 있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주님께서 자기 백성을 지금도 놓지 아니하시고 철저하고 완벽하게 인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돈을 내어서 건물을 얻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곳을 교회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의 피로 값을 주고 산 백성들만 교회인 것입니다. 그들이 정확하게 누구인지는 모릅니다만 그런 사람은 일체의 인간적인 자기 자랑과 자기 잘남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로마서 1장에는 죄의 목록들이 나오는데 그 중에 30절에 보면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1:30)라고 합니다. 여기 자랑이 교만과 함께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의 자랑이란 인간의 교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고자 한 그 교만이 자기 자랑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해주신 모든 것들을 은혜로 받아 사는 것이 싫다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고자 하는 것이 교만이며 그 결과가 자랑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대단한 분이 아니라 나도 대단하다는 것이 인간의 바벨탑입니다. 인간은 바벨탑을 유형으로든 무형으로든 만들고 있으면서 스스로 자기들의 이름을 내고 있는 것이 이 세상의 실체인 것입니다.

 

 

3. 은혜로 인한 믿음으로

이런 세상에서 인간의 솜씨와 행함과는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홀로 행하신 일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오늘 본문 앞에 있는 21절부터 보면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는데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하나님의 의로서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인간의 믿음이 조건이 아닙니다. 그 믿음이란 하나님의 행하신 일이 담겨있는 것이 믿음이지 자기가 믿어주었다는 행위가 담겨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믿습니다라는 의지적 결단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의 피로 화목제물을 삼으시고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하나님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선입니다. 인간의 구원이 우선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의로움이 우선입니다. 그렇게 자기의 의로움을 드러내시고 믿는 자를 또한 의롭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7절을 보면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3:27)고 합니다. 왜 자랑할 수가 없습니까? 자기의 행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똑같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다윗도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 믿음의 실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실 분은 하나님 한분이십니다. 이러한 믿음은 인간이 의지적 결단이나, 마음을 굳게 하거나, 반복 학습하여 받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혹시 지식으로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지식들은 말씀으로 인한 환난이나 핍박이나 내일의 대한 염려나 재리의 유혹에 다 날아 가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자기 자랑이 없는 사람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고마워, 라는 찬송이 나올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멸하시는 악인이 어떤 사람인가를 다윗의 시편 28편을 보면 그들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파괴하고 건설하지 아니하시리로다”(28:5)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여호와께서 파괴하시고 건설하지 아니하시는 것은 여호와께서 친히 행하시고 자기 손으로 지으신 것이 아닌, 즉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낸 모든 것들을 다 파괴하고 건설하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무엇을 이루어 내어서 하나님께 보십시오. 우리가 이것을 해 내었나이다.’ 라고 말할 것이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시편 115편에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115:1)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의 의만 말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이시기에 고린도전서 1장에도 보면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고전1:26-31)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들은 세상에서 자랑할 것들이 별로 없는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혹 자랑할 것이 있는 사람이 오더라도 교회에서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서 왜 그리 자랑이 많은 것입니다. 세상에서 자랑하면 별로 알아주지도 않고 먹히지도 않으니 교회 안에 와서 자랑하고 싶은 것입니까? 그러나 에베소서 2장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2:8-9)고 합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자기의 행함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믿음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신 것입니까?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하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그러나 이것은 이제부터 자기 자랑하지 맙시다.’ 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자기 자랑이 나올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이런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셨구나하는 것을 아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도 없고 말할 것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세상의 자랑들은 다 배설물이요, 그리스도 안에서는 도리어 해가 됨을 알아 우리 세상의 자랑은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자랑하고 또 증거하며 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왜 죄가 되며 또 그렇게 하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2. 죄인은 어떤 것이며 또 자신이 죄인임을 무엇으로 확인하라고 합니까?

3. 인간의 육체와 열매와 성령의 열매는 어떤 부분이 같고 또 어떻게 다르다고 합니까?

4. 율법(말씀)을 받은 자들이 가지는 큰 착각은 무엇이며 그 결과 어떤 일을 만들게 됩니까?

5. 하나님의 교회가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6. 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로 말미암아 우리 신앙에 제일 우선 되어져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7. 하나님께서 파괴하시고 건설치 아니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8. 예수 믿는 우리에게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과 또 자랑할 것이 있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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