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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믿음으로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본문 /  롬 3:30-31

 

 

1. 율법의 기능
봄이 되면 농부들이 밭에 나가 씨를 뿌리고 가을이 되면 그 뿌린 것에 대한 열매를 거두기 위하여 들판에서 추수를 합니다. 탈곡을 하면서 알곡과 쭉정이를 분리합니다. 알곡은 모아서 창고에 들이고 쭉정이는 불에 태웁니다. 마태복음 3장에도 보면 성경에도 보면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3:11-12)고 하면서 알곡과 쭉정이를 골라내시는 작업을 하시는 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13장의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실 때에 알곡과 가라지를 분리시키는 말씀을 하시면서 알곡은 천국창고에 들이고 가라지는 영원히 꺼지지 아니하는 불에 던지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모든 인간은 이 둘 중의 하나입니다. 이런 말씀을 들으면 인간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됩니까? 어떻게 하면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있는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그 방법을 가르쳐 주면 그대로 지켜 순종하여 천국에 들어가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미 죄 아래 갇혀 있습니다. 그 어떤 인간도 스스로의 행함으로 의에 이를 수가 없는 형편에 처하여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동일하게 인간의 행함으로는 하나님 앞에 살아갈 자격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로마서 1장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계속하여 보아 왔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하여 반발이 나오지 않습니까? 아니 인간을 어떻게 보고 그렇게 무시하는가 하는 반발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반발을 가장 강력하게 하는 자들이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율법을 받고 율법을 지킨다는 유대인들인 것입니다. 이들은 자기들은 의롭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율법을 다 지킨다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하여 예수님은 너희 아비는 마귀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면 그들이 뭐라고 하며 반발을 하겠습니까? 율법을 지킨다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셨는가 하면서 율법을 지키는 자신들을 잘못되었다18고 말하는 너는 율법을 모독하는 자라고 몰아 부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말을 하자 유대인들이 그런 바울도 죽이려고 드는 것입니다.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유대인들의 의를 인정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킨 그 의로움과 특권이란 다 날아가 버리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율법이 폐하여 졌는가’ 하는 말을 바울사도가 미리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폐하여 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믿음으로 율법이 세워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율법의 요구가 무엇입니까? 신명기 30장에 보면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신30:19)라고 합니다. 바로 앞에 있는 신명기 28장에서 복이란 여호와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단 하나라도 지키지 못하면 저주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명령과 규례를 다 지켜 행하면 생명과 복이 되지만, 하나라도 어기면 사망과 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망과 저주를 받지 아니하고 생명과 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모든 율법의 요구를 다 지켜 행하여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너는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하였습니까? 생명을 택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인간은 생명과 사망을 두고서 선택하라고 하여도 생명을 택할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이미 사망이 왕 노릇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2장에 보면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약2:10-11)고 합니다. 모든 율법을 지키다가 하나만 어겨도 모든 율법을 다 범한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신명기 28장으로 보면 복 받을 자들이 아닌 저주 받을 자들인 것입니다. 신명기 28장은 우리가 그런 존재임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3장에도 보면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3:10)고 합니다.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이 왜 저주아래 있게 되는 것입니까?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기능이란 모든 사람을 죄 아래 가두고 하나님의 심판아래 가두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불 순종아래 가두는 것입니다. 스스로 순종하여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율법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율법의 성취란 모든 인간이 죄 아래 갇혀 있다는 것을 다 드러냄과 동시에 율법을 어겼기에 저주가 임하는 것까지 이루어져야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2. 인간의 실상
그래서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도 율법과 선지자를 폐하려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 보면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5:17-20)고 합니다. 여기 보면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하시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기존의 율법을 지킨다는 유대인들, 즉 눈에 보이는 행위(표면적)로만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차원에서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 즉 보이지 아니하는(이면적) 차원에서의 율법의 요구를 다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율법을 지키지 못함에서 오는 저주까지 해결이 되어야 율법의 완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기존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의보다 더 나은 의가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율법을 사랑하고 지키는 수준이란 자신들의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율법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목숨처럼 지키는 율법의 의라는 것도 율법의 완성을 이루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 20절 이하에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정도가 아니라 형제에 대하여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고, 형제에 대하여 욕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거든 예물을 드리기 전에 먼저 화해하고 와서 드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간음도 마음에 음욕을 품으면 간음한 것입니다. 도적질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마음에 탐심은 어떻게 합니까? 구제를 하기는 하는데 어떻게 왼손이 모르게 할 수가 있습니까? 결국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의로서는 도저히 이루어 낼 수가 없는 의의 기준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의보다 나은 의가 나와야 하는데 율법을 목숨처럼 지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실격하였는데 어느 누가 자기의 의로운 행위로 주님 앞에 나설 수가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는 의롭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말씀이 통하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되어 버렸는가 하면 죄 아래 있는 인간은 무슨 재미로 산다고 지난주에 보았습니까? 자기 자랑하는 재미로 살기 때문입니다. 자기 의의 축적에 대한 재미가 얼마나 좋은지 아십니까? 로마서 10장에 보면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10:3)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에 대한 열심은 있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들의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피조물로서 창조주로부터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면 그대로 순종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죽도록 충성하고서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무익한 종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죄 아래 있는 인간은 무엇을 행하면 행하는 것만큼 그것을 자기 의와 자기의 자랑으로 축적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대표적인 모습이 누가복음 18장에 있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눅18:9-14)고 합니다. 기도란 자기의 부족함을 아뢰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겸손함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기도마저 자기 과시가 나오는 것입니다. 기도를 어렵게 생각하는 것도 사람들이 내 기도를 어떻게 들을까를 생각하니 어려운 것입니다. 아마도 대표기도를 해 보신 분들이 많이 공감하실 수 있는 내용일 것입니다. 대표기도를 하다 보면 하나님께 대한 간구보다는 사람들을 의식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입니다. 설교인들 그렇지 않겠습니까? 찬양인들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런 우리들이 도대체 무엇으로 의롭다 함을 받을 수가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문자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그 깊이와 뜻에 이르기까지의 순종이란 인간으로는 참으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인간이 지킬 수가 없는 내용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완벽하게 지킨다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 앞에서 무엇이 드러나는 것입니까? 죄인임이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문자적으로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3. 완성
그래서 신명기 6장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까? 5절에 보면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5)고 하였습니다. 제일 우선이 마음을 다하는 것입니다.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하여 기도도 하고 전도도 하고 봉사도 하는데 무엇이 따라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까? 바로 마음이 따라가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율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2장에도 보면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1-3)고 합니다. 우상에 대하여 말씀하는 여기도 보면 이방인 때에는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대로 끌려갔다고 합니다. 우상이 끄는 대로 끌리는 것입니다. 우상이란 헛것입니다. 영원하지 못합니다.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끌리는데 어떻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거부하지 못하고 끌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귀에게 속한 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한 자는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을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주 예수라고 하면서 끌리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 끌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마음이 예수님께로 끌리는 것입니다. 누가 시켜서 될 일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150장 갈보리 산 위에라는 찬양 2절 가사에 보면 “멸시 천대 받은 주의 십자가에 나의 마음이 끌리도다.”라고 찬송합니다. 멸시함을 받고 천대를 받은 십자가에 무엇이 있다고 우리 마음이 끌리겠습니까? 이것이 율법의 완성으로 이루어진 기적입니다. 율법의 요구가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완벽하게 다 지키면 생명과 복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라도 어기면 사망과 저주라고 하였습니다. 이 두 가지가 다 성취되어야 율법의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 완성을 누가 이루어 내신 것입니까? 바로 율법의 저주를 대신 받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3장에 보면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3:10-14)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율법을 다 완성하심으로 의를 이루셨고 또한 율법의 저주를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그 주님의 일하심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의롭다 하시고, 대신 저주를 받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완성으로 인하여 주어지는 믿는 자의 복인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인 우리에게도 나타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이것이 율법의 완성입니다. 이로 인하여 이제 믿는 자에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마음이 끌리는 것입니다. 도망을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망과 저주를 해결한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이를 인하여 주님의 의로우심이 드러나고 또한 믿는 자를 의롭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범사가 이 은혜로 이끌림 받으며 살아가는 아름답고 존귀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하나님의 복음 앞에서 유대인들이 가장 강력하게 반발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2.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어떤 존재라고 하며, 그 율법의 기능은 무엇입니까?
3.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율법의 행위는 무엇입니까?
4.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율법 지킴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5.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행위가 하나님의 율법 앞에서는 어떻게 드러난다고 합니까?
6. 성령으로 말미암은 자와 그렇지 않는 자는 어떻게 구분이 된다고 합니까?
7.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율법의 완성은 어떤 것입니까?
8. 예수님이 이루신 율법의 완성으로 우리가 얻은 복은 무엇입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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