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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이 명하신 할례와 그 참된 의미

본문 / 4: 9-12

 

 

1. 복된 자

우리는 지난주에 우리가 어떤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는 것, 즉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김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 불법이 사하심을 받고 그 죄악의 가리어짐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할 사람을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복이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으로 얻는 복입니다. 이 복을 받은 사람은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다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복을 놓치고 다른 복을 이야기 한다는 것은 거대한 홍수에 떠내려가면서도 떠내려가는 줄도 모르고 주변에 함께 떠내려가는 여러 가지 물건들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죄로 인한 사망의 거대한 홍수에 떠내려가면서도 인간 스스로는 그곳에서 빠져 나올 방법이 없습니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선택과 긍휼을 입어서 건짐을 받았다면 이것이 참된 복인데도, 그런 우리들의 삶을 보면 물에 건진 사람 꺼내 놓았더니 보따리 내어놓으라는 식이 되어버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죄와 비참함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성령이 임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의가 없는 상태가 어떤 결과 인줄을 아는 사람이기에 의롭다고 하여주시는 복에 대하여 참으로 기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기쁘지도 않은데 기뻐해야 한다고 해서 기뻐지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하지도 않는데 행복하라고 말한다고 해서 행복해 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일은 힘으로도, 능으로도 안 되고 오직 주의 성령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이런 행복에 대하여 하박국 선지자는 미리 말하였습니다. 하박국 3장에 보면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3:16-19)라고 노래합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의문은 왜 불의한 자가 형통하고, 의로운 자가 고난을 받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이런 세상에 대하여 심판이 임하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내용인지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고, 뼈가 썩는 것 같고, 몸이 처소에서 떨린다고 합니다. 이런 무시무시한 심판 앞에서 과연 무엇이 복이겠습니까? 풍성한 곡식과 수많은 가축 떼이겠습니까? 아니면 통장 잔고의 많음과 내가 사 놓은 부동산과 주식의 가격 폭등이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런 것들이 많다고 해도 하나님의 심판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여호와의 구원으로 인하여 기뻐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말씀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 불법의 사함을 받고, 그 죄악의 가리어짐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에 아멘하고 행복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관심사가 다른 곳에 가 있는 사람입니다. 썩어질 것과 없어질 것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주님의 이런 말씀에 기쁨과 감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자신의 죄와 비참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말씀이 얼마나 귀하고 기쁘고 좋은 소식이 되는지 아는 자만 아는 것입니다.

 

 

2. 할례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 행복이 누구에게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9절에 보면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4:9)고 합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이 복이 할례가 없었을 때 받았는가 아니면 할례를 받고서 받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언제 받은 것입니까? 성경은 할례를 받기 전에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고 합니다. 창세기 15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부터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6절의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15:6)라고 하는 내용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할례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서 많은 시간이 지난 후인 창세기 17장에 보면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17:9-10)고 하며 하나님께서 할례를 명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할례를 받음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할례를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약속으로만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과 노력을 동원하여 일하시는 것이 아님을 밝히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는 일에 인간이 쓰이는 이유는 인간의 노력과 애씀이 어떤 불순종과 죄악 된 모습인지를 드러내시면서 이루어 내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나서 할례를 행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창세기 15장에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인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15:4-5)고 하신 말씀을 믿습니다(6). 아브라함은 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는 아브라함이 할례를 행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을 믿고서 기다린 것이 아니라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였습니다. 그 노력이 바로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은 것입니다. 창세기 16장에 보면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16:16)고 하여 86세에 이스마엘을 낳게 됩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을 낳은 후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17:1)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이스마엘을 낳을 후 그로부터 14년이나 지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 말씀 중에 바로 할례를 행하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자손을 이스마엘 식으로 만들어 내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례를 명하신 것입니다. 이미 아담아래 모든 사람이 죽은 것입니다. 죽은 사람으로 새 사람을 만들어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새롭게 창조하여 내시는 차원에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명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혈통과 육정과 사람의 뜻으로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을 보이신 사건이 바로 할례를 명한 것입니다. 할례는 남자의 생식기 끝의 양피를 베어내는 것으로서 이것은 상징 적인 모습이고 실제 적으로는 남자의 생식기 전제를 제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할례를 받은 후의 얻은 후손은 인간의 혈통이 아니라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사라도 처음부터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인데 이제는 폐경기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 99세 때입니다. 이 때 할례를 행하고 나서 이삭을 낳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삭이란 할례를 받고 나서 낳은 자식이기에 자기 생식의 능력으로 낳은 자기 자식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좀 더 쉽게 정리하여 보겠습니다. 구원이라고 하여도 되고, 하나님의 자녀 되는 것이라고 하여도 되고, 죄 사함을 받는 것이라고 하여도 됩니다. 이러한 성경의 약속들이 어떻게 성취되는가에 대하여 정리해 보겠습니다. 성경의 약속들의 성취에 대하여 우리의 생각은 어떤 것입니까? 첫째, 전적인 인간의 노력이다. 둘째, 인간의 노력 절반과 하나님의 열심 절반이다. 그리고 세 번째, 전적인 하나님의 노력이다. 우리는 과연 몇 번을 지지합니까? 아마도 세 번째라고 대답을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두 번 째에 대한 미련이 우리들에게는 과연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과 하나님의 열심, 즉 신인협력설에 대하여 미련이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연 일한 것이 없이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창세기 17장에 보면 아브라함 99세 때에 할례를 명하시는데 하나님은 그 할례를 행하고서 아브람은 아브라함이 되고, 사래는 사라가 되는 즉, 할례와 함께 이름까지 바꾸어 버리신 것입니다. 열국의 아비여주인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할례를 명하시면서 사라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주신다고 말씀하시자 아브라함이 웃고(17:17), 사라도 웃습니다(18:12). 이들이 웃은 이 웃음이 어떤 의미의 웃음입니까? 하나님은 농담도 잘하셔, 하는 그런 웃음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경수가 끊어진 사라에게서 나올 자식의 이름을 웃음이라는 뜻을 가진 이삭이라고 지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일 년 후에 이삭이 정말로 태어납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그 아들 이삭의 이름을 부를 때 마다 무엇이 생각나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나는 믿지 못하고 웃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참된 웃음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일에는 인간이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불순종의 터 위에서 이루어지는가를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례를 행함으로 인간의 생식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능력으로 태어나는 자식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바꾸시고 아브라함에게 생식의 능력이 있으니 할례를 명하시고, 사라는 경수가 끊어진 때에 태어난 자식이 이삭인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4장에 보면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기록된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노릇 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기록된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4:21-31)고 합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할례를 행하기 전에 낳은 이스마엘과 할례를 행하고 나서 낳은 이삭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이스마엘은 계집종 하갈에게서 육체를 따라 낳았는데 이것은 비유로서 율법을 상징하는 시내산과 지상의 예루살렘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며, 이삭은 자유 하는 여자 사라에게서 약속을 따라 낳았는데 이것은 비유로서 위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 육체로 이루어지는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으로 이루어지는 관계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약속에 아브라함의 생식의 능력이 포함이 된 것입니다. 이것을 잘라내라는 것이 바로 할례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아브라함의 생식의 능력이 포함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으로 나오는 자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할례란 왜 인간의 행함이 아니고 하나님의 언약의 능력으로만 하나님의 백성이 만들어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확인하는 표가 할례의 뜻입니다. 인간의 행함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표가 할례인데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할례를 오히려 자랑하였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할례는 행하여야 된다고 한 것입니다.

 

 

3. 참 할례

갈라디아서 6장에 보면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6:11-16)라고 합니다.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오직 새로 지으심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오늘도 이삭이 나오는 방식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없는데서 있게 하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는 방법으로 하시는 것입니다. 창조를 하나님 홀로 행하셨듯이, 재창조도 하나님 홀로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재창조는 인간의 죄악을 드러내시면서 하나님의 홀로 일하심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인간의 모든 죄가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 어떤 인간의 행함도 모두 부인되어지는 현장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당시와 지금도 마찬가지로 육체로 난 자가 성령으로 난자를 핍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체를 따란 난 자는 함께 유업을 받을 수 없기에 내어 좇으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 안에 있는 할례는 무엇입니까? 남보다 나은 무엇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내세울만한 것이 있습니까? 그러나 성령을 따라 난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빌립보서 3장에 보면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3:1-3)고 합니다. 육체의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을 개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참된 할례란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참된 할례당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도 로마서 2장에 보면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2:28-29)라고 합니다. 할례도 율법 조문을 따라서가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받는 할례가 참 할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이란 사람의 행위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약속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우리는 과연 할례를 받은 자입니까? 유대인들과 같은 육적인 할례가 아닌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은 우리 심령의 할례 말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성령으로 말미암은 할례를 받은 자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우리의 육체와 행위를 자랑하지 아니하고 오직 그리스도만 자랑하는 자로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할례를 받은 자로서 오직 그리스도만을 자랑하고 선포하며 살아가는 아름답고 복된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성경에서 말씀하는 인간의 실체와 그 어리석음은 무엇입니까?

2. 나님의 구원만으로도 기뻐하는 자는 누구이고 또 그렇지 못한 자는 어떤 자들이라고 합니까?

3.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서 행하라고 하신 할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4. 아브라함이 할례를 행하기 전에 이스마엘을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입니까?

5. 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자녀의 이름을 이삭이라 하게 하신 의미는 무엇입니까?

6. 이삭과 이스마엘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이며 결국 할례는 무엇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7. 예수님의 십자가는 무엇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합니까?

8. 하나님 보시기에 참된 할례란 무엇이라고 합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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