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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과 화평을 이룬 그 결과

본문 / 5: 1- 4

 

 

 

우리가 지금까지 함께 나눈 로마서 1장부터 4장까지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은 인간의 행함과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왜 인간의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하는가를 아주 구체적으로 다루었습니다. 이방인이 선한 행실로 의에 이를 수가 없고, 유대인이 율법 지킴으로 의에 이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오히려 모든 사람을 죄 아래 가두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란 목록의 개념이 아니라 권세의 개념입니다. 죄의 권세아래 있기에 죄의 권세 아래 있는 자에게서 나오는 것이 죄 밖에 나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인간이 의롭다 함을 받는 길로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는데 그것은 율법과 선지자들에 의하여 증거를 받은 것입니다. 그 의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이 의롭다고 인정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이 되셔서 죄에 나타날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담당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심은 하나님 자신의 의로움을 나타내시고 또한 믿는 자를 의롭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그 결과로 주어지는 복이 무엇인지를 함께 보고자 합니다.

 

 

구원 이후 1

첫째로, 오늘 본문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5:1)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시작이 그러므로라는 말로 연결되어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모든 말씀, 다시 말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이제 얻었으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기에 이러한 놀라운 세계가 열리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관계,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하였으면 결코 이를 수 없는 놀라운 세계에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이 누려지는 것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의롭다 함을 얻었으니 이제부터 예수님은 제쳐두고 직접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화평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만 가능하고 또 예수님이 이미도 허락하신 것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만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기 전에는 하나님과 우리는 원수 관계였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반드시 진멸되어야 할 원수였던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 같은 사실을 몰랐습니다. 죄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 막고 있어서 몰랐습니다. 어둠은 빛이 있어야만 깨달을 수 있는데, 이 땅의 모든 자는 하나님 앞에 죄인이기에 죄인인 우리가 비교하여 죄인 된 우리의 실체를 밝혀 줄 수 있는 그 무엇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모른다고 해도 모든 사람이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원수관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였고, 진노아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고자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틀림없이 자기가 믿어주는 행위를 빌미로 무언가 다른 것을 받아 내고자 하는 욕심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성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종교성이 복음 앞에서 고발을 받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증거 하여야 할 교회마저 인간의 욕심을 채워줄 하나님을 소개하고 있다면 그런 곳을 어떻게 교회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교회의 모습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더욱더 진노를 쌓고 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서 나오는 그 결과가 과연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화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럼 이 화평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로마서 3장에 보면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3:25)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화목제물을 삼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하여 화목제물을 마련하여야 하는데 오히려 피해자인 하나님께서 화목제물을 마련하여 오셨는데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결국 죄인 된 인간은 자신이 그런 죄인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또 설사 안다고 하여도 하나님 앞에 스스로 화목제물을 마련하여 화해를 요청할 수도 없는 지경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것을 알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거저 감사하고 기뻐하고 찬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화목이 일어난 사람들이 일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1장에 보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1:3-6)고 합니다. 의롭다 함을 받은 자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 복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거저 주시는 은혜이기에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2. 구원 이후 2

둘째는, 오늘 본문 2절에 보면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5:2 )라고 합니다. 이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기에 이제 그 은혜의 보좌 앞에 당당히 나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에도 보면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3:12)고 합니다. 은혜를 받았기에 이제부터 우리의 행함만이 남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를 받았기에 이제 더욱 더 넓고 깊은 은혜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모두가 은혜를 말해도 그 은혜의 깊이가 다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냥 은혜가 아닌 더욱 더 깊고 오묘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통하여 측량할 수 없는 그 은혜의 세계에 우리가 동참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피조물이 그것도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나아갈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된 것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였듯이 또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범죄 함으로 생명나무에서 쫓겨난 자가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제 그 안에서 모든 신령한 복을 충만하게 받으면서 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입니다. 셋째로, 2절 하반절에 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5:2 )고 합니다. 피조물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것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성경에서 몇몇 사람들이 미리 맛을 보았습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가 변화 산에서 예수님의 영광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스데반이 순교 중에 하나님의 영광과 그 보좌 우편에 서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바울사도도 삼층 천에 올라갔다 왔습니다. 그 영광이 얼마나 엄청난지 사람의 말로 할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피조물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지 사람의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것도 의롭다 함을 받은 자의 복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육체란 풀과 같습니다. 그 인생의 영광이란 풀의 꽃과 같이 허무하게 지는 것입니다.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것이 인생입니다. 이런 인생들이 말하는 인간의 영광이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라고 합니다. 권세는 십년을 넘지 못하고, 십일 동안 붉은 꽃은 없다라는 뜻입니다. 즉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영원한 영광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 잘 아는 것처럼 이 세상 사람들이 필요 없다고 제거해 버린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그런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하면서 세상에서 자리 잡을 것들만을 구한다면 그 출발부터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입은 사람이라면 참된 영광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에도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8:28-30)고 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은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는 식의 합력하여 선을 이룸이 아닙니다.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의 기도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창세전의 계획인 하나님의 뜻, 즉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 결국은 영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부르신 자들을 의롭다 하시고 그들을 영화롭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완전한 영광에 들어가지 못하였지만 그 언약의 확실성으로 인하여 확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3. 환난과 그 유익

오늘 본문의 마지막으로 3절부터 보면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5:3-4)라고 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즉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복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은혜의 보좌 앞에 당당히 나아감을 얻고, 그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것만이 아니라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입니다. 도대체 의롭다 함이 얼마나 엄청난 선물이면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받기를 원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하는 여러 가지 어울림은 결국 자기를 위한 어울림입니다. 가정을 이루고, 직장을 가지고, 취미를 가지고, 종교를 가지는 것은 자기 행복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화를 멀리하고 복을 받자고 여러 가지 행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환난이 닥치는 것을 즐거워하다니 도대체 말이나 되는 이야기 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의롭다 하는 복이 얼마나 대단하고 엄청난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여도 그 환난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인하여 받은 복을 빼앗아 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그 복을 더욱 분명하고 확실하게 굳히는 것이 환난이지 그 복을 빼앗아 갈 수가 없기에 환난 중에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물론 환난 자체가 기쁘고 즐거울 수는 없습니다. 괴로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의롭다 함을 받은 자들에게 환난이 주는 유익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안다면 환난도 즐거워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환난을 즐거워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환난을 인내를 인내는 소망을 이루는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인내하지 못합니다. 더더구나 한국 사람은 세상에서 제일 인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소문이 나 있습니다. 외국 사람들이 가장먼저 배우는 한국말이 빨리 빨리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인내를 달라고 기도하면서도 빨리 인내를 주옵소서!’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조급하여졌습니까? 그것은 산업화가 되면서 행한 일에 나타나는 결과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우리의 삶의 현장도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그러하다면 교회는 브레이크를 걸어야 하는데 교회에서는 조차 오히려 그런 세상에다가 추진력을 더하였습니다. 그래서 함께 망하여 가는 것이며 그 결과를 오늘 우리가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인내라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 추방되어야 할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고 하여도 인내를 스스로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환난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환난을 당할 때는 기쁘지 않지만, 징계가 받을 때는 괴롭지만 그러나 그것이 결국 인내하게 됩니다. 인내를 통하여 무엇을 바라보게 만드는 것입니까? 소망을 바라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환난이라고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것들이 날아가는 것을 환난이라고 봅니다. 병드는 것, 재산이 날아가는 것, 회사가 부도나는 것, 시험에 떨어지는 것 등을 환난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성도의 환난은 단지 그런 환난만이 아니라 애매히 환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잘못 한 것이 없는데도 환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또 예수님을 미워한 세상이기에 예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라면 반드시 세상으로 미움을 받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환난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에게는 결국 헛된 소망, 눈에 보이는 소망을 버리고 주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소망을 바라보게 만들고 더욱 굳게 붙들도록 만들기에 환난을 즐거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에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1:2-4)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합니다. 믿음의 시련을 통하여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을 너희가 앎이라고 합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그 결과가 얼마나 엄청난 내용인가를 다시 한 번 점검하고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은혜에 들어감을 얻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며 즐거워하고, 심지어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능력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입니다. 이렇게 하심은 결국 우리의 소망이 썩어질 것을 피하여 영원한 소망을 이루시는 것이기에 성도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복이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누려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누림을 통해 나만의 만족을 구하는 자가 아닌 그런 나 때문에 내 주변의 모든 이들이 혜택과 유익을 맛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복되고 아름다운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오늘 말씀에 죄와 복음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습니까?

2. 하나님과 원수였던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합니까?

3.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성은 어떻게 나타난다고 합니까?

4. 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화평이 이루어진 자는 어떤 사람이라고 말씀합니까?

5. 구원 이후에 해야 할 우리가 생각하는 그 다음의 일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의 차이는 무엇 입니까?

6. 셋째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자들은 어떤 자들이라고 합니까?

7.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자들이 환난 중에도 기뻐한다고 하는 말씀의 뜻은 무엇입니까?

8. 하나님과 화평을 이룬 자에게 환난이 주는 유익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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