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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성경이 말씀하는 성도의 즐거움

본문 / 5: 5-11

 

 

1. 세상의 즐거움

우리는 지난주에도 이 본문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의 확증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사랑을 성찬과 연결하여서 그 사랑의 확증의 결과로 인한 성도의 즐거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였음을 함께 보았습니다. 오늘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면서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함이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자기가 행복하고 즐겁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행복의 비결을 말해줍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변의 작은 것들에 대하여 감사하면 행복해진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욕심을 버리고 지금 가진 것으로 만족하게 여기면서 살면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믿는 우리에게 오늘 본문 앞에 있는 3절에 보면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5:3)라고 하는데 우리는 진정으로 환난 중에 즐거워 할 수 있기에 이 말씀에 아멘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들이 과연 우리를 행복하고 즐겁게 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도 보면 이런 내용의 말씀이 있는데 하박국서 3장에 보면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3:17-18)고 합니다. 우리가 과연 이런 상황이 되어도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한다고 하는 하박국 선지자의 이런 감사와 즐거움이 우리의 일상적인 삶 가운데서 나오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이러한 찬양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이런 찬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소식을 듣고서 얼마나 두려웠는지 그 앞에 16절의 말씀을 보면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3:16)고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소식 앞에서 하박국 선지자가 궁금해 하였던 악인의 형통함과 의인의 고난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즐거움과 기쁨은 여호와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하나님의 심판을 모르면 이런 감사와 기쁨이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 죄의 심각성을 모르는 사람은 성경에 약속된 즐거움과 기쁨을 다 놓쳐버리고, 썩어버리고 없어질 순간적인 즐거움에 눈이 멀어버리는 것입니다. 평소에 생각하는 자신의 즐거움과 기쁨을 이야기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즐거움과 기쁨을 도외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즐거움과 기쁨으로 여기며 살아가는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우리 자신을 점검하고 돌아보아야만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즐거움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인 바울사도가 말하고 있는 즐거움은 무엇인지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내용은 로마서 1장에서 지금까지 계속된 내용입니다. 어찌할 수 없는 죄인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에 대한 내용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은 인간의 어떤 행위로도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가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나오는 것입니다. 왜 인간이 스스로 의로울 수 없는지는 구약에서 수 천 년 동안 유대인을 통하여 확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가 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쁨과 소망이 어떻게 나타난 것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으로 인하여 우리 마음에 부어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랑이란 우리가 연약하였을 때, 죄인 되었을 때,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인하여 우리를 용서하시고 의롭다 하여 주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마치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의 심판의 소식을 듣고서 여호와의 구원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듯이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소식을 듣고 믿는다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을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1절을 보면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5:11)고 합니다. 여기서 즐거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예수님을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말씀을 표준 새 번역 성경에 보면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자랑합니다. 지금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졌습니다.”(5:11 / 표준 새 번역)라고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과 예수님을 자랑한다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번에 보면, 사람의 제일 된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과연 이 사람의 제일 된 목적에 부합 된 자로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우리나라 장로교회는 설교 시간에 항상 예수님만을 이야기하니까 부흥이 잘 안되고, 순복음교회에서 성령님을 강조해서 부흥이 잘 된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의 말인 즉은 지금은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시고 성령님을 보내셨는데 성령님을 기쁘시게 해야지, 예수 예수만 하니까 성령님께서 섭섭하게 생각하신다는 표현이었습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서도 이런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고 신앙생활 할 때가 많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신데 누구를 영화롭게 하여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 아닌 고민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혹 예수님 이야기를 하면 하나님이나, 성령님이 삐치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인간적인 생각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어라고 합니까? 마태복음 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물로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령이 임하시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17절에 보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3:17)고 하십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7장에 변화 산에서도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17:5)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누구의 말을 듣고 누구를 믿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아들이 영광 받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에 우리가 직접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골로새서 1장에 보면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1:15-20)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 가운데 아들로 창조하시고, 아들로 영화롭게 하시기 위하여 천지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빌립보서 2장에도 보면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2:10-11)고 합니다. 하늘의 천사들도 또 땅에 사는 모든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이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은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분이십니다. 이 예수님에게 하나님께서 가장 뛰어난 이름을 주심으로 모든 피조물이 다 예수님의 이름에 무릎을 꿇는 것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예수 믿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기쁜 것입니까? 장차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그를 믿지 아니하는 자들도 모두 다 이 말씀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천국에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공로를 찬양하면서 그의 긍휼과 자비와 능력을 찬양할 것이며, 지옥에서는 예수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도 지옥도 그 아들의 영광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미리 계시로 알게 하신 것을 믿고 있기에 미리 천국을 맛보는 곳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어떤 인간의 공로나 행위가 자랑되는 곳이 아닙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만 높이고 자랑하고 증거 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달리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였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한 지식이기에 다른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며, 하나님의 일하심의 최종 목표인 아들의 영광을 인하여 우리가 미리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내가 평소에 생각한 교회, 내가 평소에 생각한 즐거움과 위안과 기쁨을 찾으려면 행복한 가정생활 세미나에 참석하시면 더 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이 그런 일들을 위해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도 기억하셔야 합니다. 항상 말씀드리지만 주안에서 목적은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그 목적을 정하시고 창조하신 것이며 또 그 목적을 이루고 성취하시기 위해 오늘도 하나님의 열심히 일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의롭다 함을 얻은 자는 이제부터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기에 무엇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합니까? 방금 빌립보서의 말씀을 인용하였습니다만 빌립보서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있으면서도 기뻐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온 세상을 하나님의 아들로 재편하실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습니다. 자신의 언약을 전능하신 능력으로 이루어 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이 이미 기뻐할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아들이 주시는 그 무엇으로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로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3. 우리의 즐거움

그런데 오늘날 교회로 모인 성도들이 왜 이런 하나님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오늘날의 교회는 많은 부분에 있어서 아들을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은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요한일서에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5-17)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도 야고보서 4장에 보면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4:4)고 합니다. 그런 것들은 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기에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도 자랑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자랑거리로 보자면 멸시받고 조롱받은 것이 바로 주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자랑하고 즐거워하는지가 극명하게 대조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들로 기뻐하지 못하고, 그 아들로 자랑하지 못하는 이유를 복음주의 설교자인 마틴 로이든 존스 목사는 세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인간의 행위나 노력, 선행을 의지하고 있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기도하던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서 드러나듯이 한 사람은 자기의 의를 내세웠고 한 사람은 자기의 죄인 됨을 고백한 것입니다. 누가 의롭다 함을 받고 내려갔습니까? 세리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서로 자기들의 영광을 취하고 있기에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유일한 영광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첫째와는 다르게 어느 정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고, 어느 정도는 자기들의 공로를 보태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으로 인하여 갈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행위를 의지하는 것을 배척하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고 하는 것이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조금이라도 의지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진정으로 자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자기 자신의 검은 마음과 악한 성질을 너무 지나치게 생각한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연약과 죄인 됨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늘 자신만 탓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이긴 하지만 그러나 이런 자가 오히려 죄의 깊음을 알지 못하고 쾌활하고 피상적인 그리스도인보다는 나은 것입니다. 죄의 깊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기쁨은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처지가 어떤지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기쁨은 거짓된 것입니다. 자기 죄의 깊이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즐거움이란 내가 만들어낸 기준에 의하여 기쁘고 즐거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들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란 결국 모든 것을 다 놓아두고 갑니다. 건강, 재산, 명예, 세상의 자랑, 욕심, 모든 것이 다 사라져 갑니다. 하나님의 약속인 그 아들의 나라만 영원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보좌에 계신 이와 어린양을 찬양하고 자랑하는 무리 속에 들어가는 것이 성도의 최종 영광이요 즐거움인 것입니다. 이것을 미리 맛보고 자랑하는 자들이 성도이며, 또한 성도의 즐거움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오늘 말씀 앞에서 우리의 기쁨과 즐거움과 자랑이 무엇인가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닌 우리의 고백처럼 주님만이 우리의 기쁨이요, 즐거움이며, 자랑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이 또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또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임을 알아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을 바라며 살아가는 예원가족들 외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리가 하나님의 말씀(언약)으로 말미암아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가능하다 합니까?

2. 오늘 말씀에 하나님의 사랑을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3. 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예수님을 자랑할 수 있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4. 하나님을 기쁘시게 또 영화롭게 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 까닭은 무엇입니까?

5.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무엇으로 기뻐하며 사는 것입니까?

6. 오늘날 성도들이 하나님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7. 예수님을 기뻐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자랑하는 못하는 이유 세 가지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8. 오늘날 성도들이 기대하는 즐거움과 성경이 말씀하는 즐거움은 어떻게 다릅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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