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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죄와 사망의 세계와 의와 생명의 세계

본문 / 롬 5:12-17

 

 

1. 인간의 현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두 세계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아담을 머리로 하는 죄와 사망의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의와 생명의 세계입니다. 다른 말로 사망이 왕 노릇하는 세계와 의와 생명이 왕 노릇하는 세계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은 자신이 원하던 또는 원하지 않던 반드시 이 두 세계중 하나에는 속하여 있습니다. 이 두 세계 외에 중간 영역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어디에 속하고 싶어 하겠습니까? 당연히 의와 생명이 왕 노릇하는 세계에 속하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여 들어갈 입장이 못 됩니다. 성경은 이미 인간이 죄와 사망아래 갇혀있다고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죄와 사망아래 갇혀 있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것으로 증거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 아래 태어난 모든 인간은 죽음을 스스로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 스스로가 자기의 목숨을 살릴 수가 없는 것을 보며 이 세상에는 사람보다 더 큰 힘이 죽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런 인간은 사람이 무엇이며. 죽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을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본질을 모르고 어떻게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이 세상에서는 그것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적어도 교회에서는 알려주어야 하는데 교회에서 조차도 여러 가지 사업하느라 바빠서인지 몰라도 그런 것들에 대하여 이야기 해 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들 스스로가 인간과 죽음에 대하여 정의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인간들을 하나님이 창조 하셨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궁금해 하고 알고 싶어 하는 인간에 대하여 또 그 인간의 죽음에 대하여 바르게 알려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돌아가 살펴보아야만 할 것입니다. 먼저 성경에서 인간의 본질을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지를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만드실 때 무엇을 재료로 사용하여 만드신 것입니까? 창세기에 보면 흙으로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을 만드셨다고 합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사람의 재료는 하나는 흙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생기로서 두 가지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합니다. 이 아담에게서 여자를 만드시고 그들로 에덴동산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자유이나 단 한 가지 금하신 것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어리석고 무지한 인간은 뱀의 유혹에 넘어가 따 먹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 즉 언약을 깨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은 아담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사망이 오는 것입니다. 그 사망이 무엇인지 창세기 3장에 보면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3:19)고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사람이 범죄 함으로 말미암아 그 하나님의 형상이 깨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남은 것이 무엇입니까? 흙입니다. 아담이라는 뜻이 흙입니다. 그러니 흙에서 취하여 졌으니 흙에서 난 것을 먹고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망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버린 것입니다. 이때부터 태어나는 아담의 후손은 누구의 형상으로 태어나는 것입니까? 창세기 5장에 보면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창5:1-3)라고 하여 아담이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범죄 한 아담의 모든 후손은 아담의 형상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아담의 형상으로 태어난 자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4절부터 등장하는 아담의 후손의 특징이 결론적으로는 다 죽었더라는 것입니다. 무려 천년을 가까이 살았다 할지라도 역시 죽었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망의 권세아래 있다는 증거입니다. 비록 숨 쉬고 먹고 마시며 자녀를 낳고 사회를 이루고 문명을 만들며 산다고 하여도 그 결국이 죽음입니다. 아무리 스스로 살려고 노력해도 결국은 그 끝이 죽었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담의 후손의 현실이며 또 사망이 왕 노릇 하고 있는 증거인 것입니다.

 

 

2. 두 세계

오늘 본문 12절에 보면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고 합니다. 이런 내용의 말씀을 대하면 좀 억울한 생각이 듭니다. 왜 아담의 죄가 우리의 죄가 되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에 대하여 히브리서에 보면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율법을 따라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논란의 여지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히7:4-7)고 합니다. 레위지파가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을 때에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지금 나이를 거슬러 올라가면 어디에 있었습니까? 40세 되신 분이 40년 전에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부모의 허리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계속하여 올라가면 결국 모든 인류는 한 조상의 허리에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속하여 아담의 형상, 흙에 속한 형상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와 사망의 권세아래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담의 형상으로 태어난 사람은 천년을 살아도 사망이 왕 노릇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성공을 추구하며, 명예를 추구하며 산다고 하여도 역시 사망이 왕 노릇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의를 외치고, 사랑을 노래하고, 희생의 미덕을 기린다고 하여도 그것이 결코 죽은 자를 살려낼 수가 없고, 죽어가는 자를 죽지 않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담 아래, 죄와 사망아래 있는 인간의 현실입니다. 이것을 사망이 왕 노릇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망이 왕 노릇하는 것이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도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13절에 보면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롬5:13)고 합니다. 율법이 있기 전에도 죄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죄를 죄로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다고 해서 죄의 삯인 사망이 왕 노릇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왜 죽는지 이유를 알지 못하고 죽을 뿐이었지 역시 사망이 왕 노릇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죽었습니다. 아무런 죄를 지을 틈도 없었는데 죽는 것입니다. 그 어린 아이가 왜 죽었는지 알지 못하였으나 성경은 이미 사망이 왕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답이 14절에 보면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롬5:14)고 합니다.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즉 모세의 율법이 있기 전에 아담과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사망이 왕이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란 목록의 개념이 아니라 권세의 개념이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죄를 짓지 않고 착한 일을 많이 해서 나쁜 일을 상쇄시키는 방법으로는 사망의 권세를 이겨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담 아래 있는 인간의 현실입니다. 그러한 사망에서의 탈출은 불가능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살고 있으면서도 우리 스스로를 살려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에 보면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고전15:45-49)고 합니다. 여기서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첫 사람은 산 영이 되지만, 살려주는 영은 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흙에 속한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은 살려주는 영이십니다. 자신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려주시는 영이 되십니다. 하늘에 속한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1장에 보면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이시니”(골1:15)라고 하여 예수님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4절에도 보면 ‘아담이 오실자의 모형’이라고 합니다. 어떤 면에서 모형이 되는 것입니까?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으나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습니다. 아담 때문에 아담 아래 있는 모든 사람이 사망의 종노릇을 하게 된 것입니다. 자기가 원하든지 원하지 않든지 간에 사망의 세력에서 벗어 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망에서 벗어나고자 애쓰고 힘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생명이 왕 노릇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첫 사람 아담 안에서 자기가 원하지 않아도 사망의 종노릇 하듯이 생명도 자기가 생명을 얻고자 원하여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생명을 얻을 수가 있습니까? 로마서 9장에 보면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9:11-16)고 합니다. 에서와 야곱의 행위를 따라 하나님이 부르신 것이 아니라,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달음박질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오직 긍휼히 여김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왕 노릇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사람은 전부 긍휼히 여김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자랑거리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에 대하여 말한다면 오직 자기가 불쌍한 것밖에 말할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오직 자랑 거리는 자기를 불쌍히 여기시기 위하여 행하신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할 뿐입니다. 그것이 믿는 자들의 모습이어야만 하며 또 우리의 모습과 고백이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3. 하늘에 속한 자

그러면 죄와 사망의 왕 노릇 하에서 어떻게 의와 생명의 왕 노릇하게 들어오게 되었는지 하나님의 일하심을 함께 보고자 합니다. 창세기 5장에 보면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5:21-24)고 합니다. 창세기 5장의 족보는 아담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후손들의 죽음의 족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데려가 버린 것입니다. 죽음의 행렬에 돌연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까?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합니다. 아담의 형상으로 나온 사람은 땅에 속한 형상이기에 오직 땅만 생각하게 되는데 그런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니 하나님께서 에녹을 하늘로 데려가신 것입니다. 땅에 속한 그를 하늘에 속한 자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망의 족보에서 생명의 족보로 이동되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여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동일하게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노아는 땅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면 노아는 하늘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 언약 안에 있으면 사망이 왕 노릇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 언약의 실체가 구약에서 모형으로 제시되고, 신약에서 실체가 오셨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의 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생명의 왕 노릇 하시는 것은 십자가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무너뜨려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승리하심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주신 자들을 구속하여 내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장에 보면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마12:29)고 합니다. 아담 아래서 죄와 사망의 세력, 마귀의 세력에 꼼짝없이 붙들려서 일평생 죽음의 종노릇하면서 두려워하는 자들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강한 자 마귀를 결박한 것입니다. 마귀가 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리하심으로 전리품을 챙겨내시는 것입니다. 그 전리품이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맡기신 자들입니다. 이들이 바로 예수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하심은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시는 것이며,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드러내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맏아들 되게 하심을 이루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모든 영광이 아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돌려지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죄와 사망의 세계에서 의와 생명의 세계로 옮겨진 것입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이 아닌 오직 주님의 힘과 능력입니다. 사망에서 스스로 빠져 나갈 수 없듯이 이제 생명에서 스스로 빠져 나갈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며 우리가 누리는 복입니다. 그러면 지금 내가 하늘의 생명의 지배를 받고 있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아들의 형상을 입은 증거가 무엇입니까? 골로새서 3장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3:1-4)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확실한 증거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우리는 과연 어느 세계에 속한 자들입니까? 모두 자문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여전히 땅을 향한 우리의 시선과 마음을 돌이켜 하늘을 바라보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붙들어 포도나무 되신 주께 붙어 있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오직 하늘의 통치와 다스림이 충만하여 절로 열매를 맺어가는 복된 하늘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경이 말씀하는 두 개의 세계는 무엇이며, 인간은 어디에 속하였고 그 증거는 무엇입니까?

2.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리고 타락한 인간이 처한 사망은 어떤 것입니까?

3. 아담 이후의 후손은 누구의 형상으로 태어나며 그 후손들의 실상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4. 오늘날 아담의 후손인 우리에게 사망이 왕 노릇 한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5. 죄란 목록의 개념이 아니라 권세의 개념이라고 말씀하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6. 첫 사람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지 못하고, 마지막 아담이 살려 주는 영이 될 수 있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7. 아담이 오실 자의 모형이라고 하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8. 죄와 사망의 왕 노릇 하에서 어떻게 의와 생명이 왕 노릇하게 되었다고 합니까?

9. 우리의 믿음과 우리가 누리는 복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10.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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