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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수님과 연합된 우리의 삶

본문 / 6: 1- 5

 

 

1. 선악체계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누가 그 하는 일이 잘 되는 것을 보면 복을 받았다고 하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그 사람이 잘한 내용들을 뽑아 보고 자신도 그 복을 받기 위해 그 사람이 잘한 내용처럼 잘하려고 애를 쓰기도 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특히 연말이 되면 더욱 그러합니다. 송구영신 예배에 등장하는 기도나 설교의 내용 중에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누가복음 13장에 있는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입니다. 심은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고 땅만 버리게 되자 주인이 그 나무를 찍어버리려고 합니다. 그러자 포도원지기가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13:8-9)라는 말씀을 가지고 우리는 기도와 설교를 많이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연말에 자기 행함의 대차대조표를 만들어 보고 한 해를 허락하신 주인 보시기에 뭔가 부족하다 싶으면 새해에는 더욱 더 잘해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교회에 충성 헌신 봉사하지 못한 것들을 죄라고 이야기하면서 새해부터는 더욱 더 충성 헌신 봉사하게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런 것들이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모습일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익히 알고 있는 누가복음 13장의 열래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의 말씀은 그 앞에서부터 살펴야만 합니다. 그 앞의 말씀은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제물에 섞은 일과 예루살렘 망대가 무너져 18명이 죽은 사건을 가지고 그들의 죄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있어서 죽은 것이 아니라고 하는 내용 중에 등장하는 말씀입니다.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13:5)고 하시면서 비유로 말씀하신 내용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의 비유인 것입니다. 결국 이 비유의 말씀은 회개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회개는 우리가 생각하는 죄의 개념과 전혀 다릅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유대인들의 헌신 충성 봉사는 보통사람들이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완벽합니다. 그런 그들에게 그런 차원의 일들을 죄라고 한다면 도대체 무슨 죄를 회개하라는 것이겠습니까? 그렇기에 예수님이 말씀하는 회개의 내용은 그런 차원의 내용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선악체계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선악체계라는 것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인간들의 선악체계라는 것은 어떤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고 그른가를 생각하기 보다는 그저 자신에게 유익한가를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나누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자신에게 유익하면 선이고, 자신에게 불리하면 악인 것입니다. 그러한 체계 속에서는 결코 예수님을 받아 들일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선악체계 가운데 살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과 같은 삶을 살지 않는 자들을 향하여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체계 가운데서 돌이키라고, 회개하라고 하시는 것이 주님이 말씀하시는 회개인 것입니다.

 

 

2. 그리스도와의 연합

우리는 지난 시간에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은 죄의 권세가 더 이상 우리를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제는 죄가 왕 노릇하는 곳에서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신분이 되어 버린 것을 죄에 대하여 죽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민수기 21장에 보면 이런 내용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의 말씀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노예로 살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그 노예생활에서 해방되어 가나안땅으로 가던 중 광야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광야생활이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나날이었습니다. 그런 힘든 여정을 참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향해 원망을 하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백성들에게 불뱀들을 보내어 물려죽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모세에게 매달렸습니다. 우리가 잘못했으니 하나님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떠나게 해달라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니 하나님께서는 놋으로 불뱀과 같은 모양을 만들어서 장대위에 달라고 하시며 불뱀에게 물린 자마다 그 놋뱀을 바라보면 살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불뱀에 물린 자는 누구든 그 놋뱀을 보는 순간 살아났습니다. 이 말씀도 역시 예수님의 그림자로서 죄인이 구원받는 예표라는 것쯤은 모두 다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여기 등장하는 하나님의 구원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하는 대로 불뱀을 떠나가게 해주시지 않고, 즉 불뱀은 그대로 두고 이스라엘을 구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가장 큰 이유는 그 첫째가 바른 믿음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었고, 두 번째는 죄사함 받은 후의 모습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 불뱀에게 물려 고통이 있어야 하고, 그 아픔과 죽음이 두려워 모세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고, 그 말을 믿고 쳐다보는 행동이 나와져야 나음을 입을 수 있고, 불뱀은 여전히 있지만 그 뱀과는 상관없이 살아가는 놀라운 구원의 숨은 뜻이 있음을 보이시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사람을 물어 고통을 주고 죽음을 주는 불뱀을 없애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놋뱀을 본 자는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육신에서 나오는 더러운 것들은 여전히 있는데 우리의 심령은 항상 거룩하신 주의 보혈로 깨끗한 자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 죄가 우리의 발은 더럽힐 수는 있지만 말씀이 새겨진 우리의 마음은 죄로 물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에 대하여 죽은 것입니다. 죄가 왕 노릇하는 곳에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죄가 끄는 대로 끌려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죄에 대하여 죽은 자는 의가 끄는 대로, 하나님의 창세전의 계획과 그 약속대로 이끌려 갈 수밖에 없는 신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왕 노릇하는 세계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나의 의지나 결단과 상관없이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모두 아담아래 태어나서 이미 사망이 왕 노릇하는 세계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 안에서는 자기의 죄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거듭나고 보니 의와 생명이 왕 노릇하는 곳에 태어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와 생명이 왕 노릇 하는 곳에서는 이제 죄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는 것이 죄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전에는 아담과 연합이 되어 있었지만 그러나 이제는 마지막 아담과 연합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에 보면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6:3)고 하여 세례라고 말씀합니다. 사망이 왕 노릇하는 옛 아담에게서 끊어지고, 생명이 왕 노릇하는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연합되어 위치이동과 신분의 변화가 생긴 것은 오직 주님의 언약을 따라 그의 아들의 피로 구속하시고 성령을 보내심으로 되어진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일을 골로새서 1장에 보면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1:13-14)고 말씀합니다. 전에는 흑암의 권세아래,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 아들의 권세, 그 은혜의 권세아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기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에서는 세례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례란 함께 묶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 합니다. 이미 아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자들은 오늘 본문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6:4)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에도 참여할 것을 확신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것은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은혜의 왕 노릇하는 세계에서 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미 은혜의 왕 노릇하는 세계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인식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왜 이런 권면이 필요한 것입니까? 이것을 알려면 먼저 죄가 왕 노릇하는 세계에서 어떻게 살았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은혜의 왕 노릇하는 세계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여전히 죄와 사망이 왕 노릇하던 세계의 버릇이 그대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 버릇이 무엇인가 하면 앞에서 말한 선악체계인 것입니다. 이 선악체계가 최초의 죄이며 죄의 뿌리입니다. 피조물이 사단의 유혹을 받아 스스로 신의 위치에 오르고자 선악과를 따 먹은 것입니다.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과 같이 된 것입니다. 이제는 스스로 선악을 결정하면서 살면 되지 더 이상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체계가 형성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 세계 아래서 사는 것을 죄와 사망이 왕 노릇하는 세계에서 산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인간이 스스로 신이 되어 있는 세계이기에 누구를 의지한다는 것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혹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인간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조금만 도와주면 자신이 스스로 선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사고방식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전적인 죄인이기에 전적인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믿지 않는 세계인 것입니다. 스스로 선과 악을 결정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선으로서 악을 제어하면서 살 수 있다고 믿고 사는 사람들에게 인간은 선을 행할 능력이 전혀 없고 오직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복음의 선포는 그야 말로 경악스러운 내용인 것입니다. 도대체 인간을 무엇으로 보고 그 따위 소리를 하느냐고 대들뿐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반응은 결국 그러면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를 더 많이 지어도 되겠구나 하는 식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말을 한다는 것은 이미 자신이 죄를 짓지 않고 선을 행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고방식이 바로 선악체계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이런 체계 속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전적으로 예수를 의지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선악체계가 그대로 무너지는 것이기에 지금도 사단은 사람들로 하여금 계속하여 선악체계 속에 묶어두려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들의 선악체계는 자기의 행함대로 받는다는 세계입니다. 착한 일을 하면 복 받고, 나쁜 일을 하면 벌 받는다는 것입니다. 권선징악의 세계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우리가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내재화되어 있는 체계이고 또 학습을 통하여 더욱 더 공고화 되어진 체계입니다. 그런 학습의 내용에는 세상에는 공짜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자기 행함에만 기대를 걸게 만듦으로 일한 것이 없이 거저 주시는 은혜를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보면 줏대도 없고 자신감도 없으니 남을 의지하고 신을 의지한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런 세계에서 은혜의 세계로 스스로 들어갈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의 왕 노릇이 더욱 힘이 있어 사망의 왕 노릇하는 곳에서 자기 백성을 빼내어 오시는 것입니다. 그 능력이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피로 구속하여 내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은혜의 왕 노릇하는 세계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선악체계에 살던 자들이기에 여전히 그 버릇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또다시 나오는 모습이 육체의 소욕뿐인 것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계속하여 선악체계를 고수하려고만 합니다. 이것이 죄라는 것을 사망의 왕 노릇하는 세계에서는 몰랐지만 이제 은혜의 왕 노릇하는 곳에 들어오게 되니 이것이 죄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옛 습관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조차 자기들의 의를 축적하여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모습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마치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의를 축적하는 것처럼 은혜의 왕 노릇하는 곳에서 또다시 자기들의 의를 축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평소에 기도를 많이 해두면 내게 어려움이 닥칠 때 넉넉히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은혜가 왕 노릇하는 세계에서 주님의 기도를 믿고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또다시 자기 기도를 믿고 의지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면 당장 나오는 반발이 그러면 기도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하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자기의 기도가 부인되어 질 것입니다. 얼마나 자기의 뜻과 욕심대로 기도하고 있는지를 알게 됨으로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의 기도와 성도 안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고 계시는 성령님의 기도를 의지 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왕 노릇하는 세계에서 사는 모습이며,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전에는 기도 많이 하면 그것이 자기를 지키고, 자기 의로 자기 이름을 높이는 일에 사용되었습니다. 성전에서 기도하던 바리새인의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는 죄인이 아닌 것을 인하여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리는 자기가 죄인임을 아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새 생명 가운데 행한다는 것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연합되어 죽은 자임을 늘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도뿐만이 아니라 전도도 헌금도 봉사도 얼마든지 선악체계 속에서 행하던 모습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누가 잘하는가 하면서 서로 비교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잘하는데 너는 왜 그 모양이냐고 하는 것 자체가 자기의 의를 가지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상처를 받는 것은 자신이 부족하고 연약하다고 여기는 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는 늘 완벽하고 잘한다는 사람들에게서 상처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하여 죽고 새 생명 가운데 사는 것은 자기의 부족과 연약을 날마다 절감하면서 오직 주의 은혜를 사모하고 기대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3. 내 안에 사는 이

이런 사람들은 더 이상 자기의 행함에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옛 사람, 옛 체제인 선악체계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왕 노릇하는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여전히 우리 안에서 우리가 살던 선악체계의 자기의 의로 말미암은 정당성은 매일 매일 불쑥 불쑥 솟아오를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의 몸이 완전히 멸하여질 때까지 계속하여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 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자요 의에 대하여 산자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전에는 그 자기 의로 말미암아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자기 잘난 맛에 살면서도 죄인 줄 몰랐다면 이제는 은혜가 왕 노릇하는 세계 가운데 사는 자로서 그것이 죄임을 알아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주 앞에 엎드려 주님의 긍휼과 자비와 용서 그리고 통치와 다스림을 구하며 살아가는 자로 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와 함께 장사되고 그와 함께 살아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갈라디아서 2장에 보면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19-20)고 합니다. 여기서는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죽은 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것입니다. 새 생명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그 삶은 그리스도와 합하여 죽었고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안에 그렇게 사시는 그 분의 지시와 인도와 능력과 권세아래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죽은 자에게 무엇을 기대하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 새 생명 가운데 사는 것임을 알아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은 나에게 오직 주님만이 나의 생명임을 깨닫고 주 만 바라며 사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우리들이 생각하는 회개와 주께서 회개하라고 하시는 회개의 내용은 어떻게 다릅니까?

2. 나님에 대해 원망하다 불뱀에 물린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3. 불뱀에 물린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방법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어떻게 나타납니까?

4. 죄가 왕 노릇하는 세계와 의와 생명이 왕 노릇하는 세계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5. 죄와 사망의 왕 노릇하는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어떠하다고 합니까?

6. 사망이 왕 노릇하는 곳에서의 습관이 오늘날 교회 가운데서 어떻게 나타난다고 합니까?

7. 기도의 예를 통해 볼 수 있는 옛 습관과 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모습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8. 우리가 주 앞에 설 때까지 기억해야 할 것과 분별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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