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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죄에 대해 단번에 죽으시고 다시 사신 은혜

본문 / 6: 6-11

 

 

1. 마귀의 속임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새로운 결심과 다짐을 합니다. 그러나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러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어버리는 것입니다. 신자나 불신자나 간에 스스로의 결단과 결심에 의하여 무언가 이루고자 하는 것들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주님의 말씀 앞에서 모두가 산산조각이 나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현 상태를 완전하고 완벽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누가 말하기를 미완성이라고 합니다. 인생은 그런 미완성인 자아를 완성적 존재로 만들어 보고자 온갖 심혈을 다 기울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아의 실현을 삶의 목표와 방향으로 잡고 있기에 계속하여 자기 자신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한해가 주어지면 좀 더 나은 자아의 실현을 해보자고 해맞이도 하고 송구영신도 하고 여러 가지 처방을 내려 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도 우리가 아는 것처럼 거의 대부분은 작심삼일일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몸부림이 신자나 불신자나 간에 모두 다 있다는 것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럼 믿는 자들에게는 어떠한 모습으로 나오겠습니까? 믿는다고 하는 우리는 새해가 오면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며 결단을 합니다. 새해에는 기필코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제대로 한 번 해 보자고 다짐도 합니다. 교회학교 교사로서 지각이나 결석을 하지 말자든가 또는 집사라면 교회에서 봉사라도 제대로 해 보자고 결심도 해 봅니다. 그리고 이런 수준은 이미 지났다고 하는 신자들은 좀 더 거룩하고, 좀 더 영적으로 살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어떤 인간도 이룰 수 없는 일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단번에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시는데 있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신 분은 예수님뿐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이러한 뜻을 온전히 성취하시되 그것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다 이루심을 가지고 인간에게 들이미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내가 다 이룬 것을 믿겠느냐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갈림이 두 길이 생기는 것입니다. 믿는다고 하면 자기가 이루었다고 하는 모든 것들은 다 부인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런 주님의 다 이루심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기가 할 일의 여지를 어느 정도 남겨 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긴 받았지만 점점 거룩하여 지는 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것을 신학적으로는 성화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단번에 의롭다 함과 거룩함과 영화로움까지 얻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9절부터 보면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6:9-10)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셨습니다. 그래서 사망이 예수님을 주장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셨고, 하나님께 대하여 사셨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느냐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믿는다면 예수 믿는 우리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고 그래서 사망이 주장하지 못하고 죄에 대하여서도 단번에 죽었고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것도 믿느냐는 것입니다. 쉽게 아멘이라는 대답이 잘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나의 삶을 보고, 나의 체험을 통하여 볼 때 여전히 연약하고 여전히 죄가 나오는 것을 보게 되기에 선뜻 그렇게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어라고 하는 것입니까? 내가 믿기는 믿지만 아직도 부족해서 좀 더 거룩하고, 좀 더 예수님을 닮아 가서 나중에 내가 예수님 정도가 되어지면 그때는 죄와 사망이 주장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라고 답을 합니다. 이것은 아주 겸손한 대답 같지만 예수님의 단번에 이루신 일을 믿지 못하게 하는 마귀의 유혹인 것입니다.

 

 

2. 다 이루심

지금 본문은 우리가 어떻게 죄에 대하여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인가를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말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세례란 함께 죽고 함께 산 것을 말합니다. 나는 여전히 내 몸을 가지고 살고 있는데 어떻게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죽었다는 것입니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아담아래 모두 죽은 자가 되어 있듯이 이제 예수님 안에서 모두 산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행위와 상관없이 일어난 일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믿게 되는 것입니까? 로마서 8장을 보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8:9)고 합니다.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어 있는지 아닌지는 무엇으로 알게 되는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영으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호칭이 여러 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의 영, 회개의 영, 지혜와 계시의 영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면 그런 하나님의 영의 사역 중에 대표적인 사역 하나는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4장에 보면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4:3)고 합니다. 성령의 대표적이 사역 중의 하나가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께서는 주님과 그리고 이 땅의 주를 믿는 성도들과 하나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면 그리스도와 연합이 된 것이며 그것을 또한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아니고서는 믿지 못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신실하며 이루지 못하심이 없으신 줄 믿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 속에 우리를 함께 연합시켜 죽이시고 살리셨다는 것을 믿지 못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죄인이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그저 주시는 은혜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믿기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의롭다고 하여 주시는데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살았다는 것도 아멘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었다는 것은 이제 죄와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의와 생명이 왕 노릇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이제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었지만 차츰 거룩하여져야 하지 않는가?’ 하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지만 그러나 거룩함이 점점 더 채워져야 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절반쯤 거룩하고, 어떤 사람은 거의 다 거룩하여진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이루신 거룩함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무런 능력이 없는 거룩함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에 보면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고전1:30)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분으로 있다가 유출되어 나온 것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앞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는 없는데서 있게 되고, 사망 가운데서 살아나는 방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 방식이 하나님과 상관없이 존재하던 우리를 창세전의 계획과 약속을 따라 우리를 십자가로 낳으셔서 예수 안에 있고 하실 뿐만 아니라 그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모든 자들은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는 자와 약속 밖에 있는 자로 구분하는 것입니다. 약속 안에 있는 자에게 예수님은 그들에게 지혜가 되고, 의로움이 되고, 거룩함과 구속함이 이미 되신 것입니다. 지혜가 주어졌기에 그 지혜를 이용하여 의로워지고 점점 더 거룩하여 지고 그래서 구속함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에 보면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8:30)고 하는 것입니다. 거룩 정도가 아니라 이미 영화롭게 하신 것입니다. 언제 이렇게 하셨다는 것입니까? 십자가에서 단번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다 이루었다는 것 안에 부활과 승천과 성령 보내심까지 다 들어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없는 부활, 십자가 없는 승천, 십자가 없는 성령 임함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예수 믿고 십 분 만에 죽어도 거룩하고 영화로운 것에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이 그만큼 완벽하고 철저하고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꾸만 단번에 이루신 그 일을 믿지 못하는 것은 우리 안에 논리적인 시간순서의 개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바탕에서 정립된 신학에 바로 조직신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조직신학에서 구원의 서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논리적인 순서를 말하는 것일 뿐이지 시간상의 앞뒤가 아닌데도 사람들은 시간적인 순서로 생각을 합니다. 그 내용이 무엇인가 하면 소명, 중생, 회심, 신앙, 칭의, 수양, 성화, 견인, 영화라는 것인데 그것을 하나의 단계로 보는 것입니다. 단계별로 점진적으로 생각할 소지가 있습니다만 그러나 성경은 이미 영화롭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에 보면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9:11-12)고 합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다고 말씀합니다. 이 성소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며 창조에 속한 성소가 아니라 영원하고 온전한 하늘의 성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즉 그 피안에 있는 자는 영원한 속죄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 일을 주님께서 단번에 이루신 것입니다. 또한 26절부터 보면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9:26-28)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한번으로 족한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처럼 자주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단번에 자기를 제사로 드려서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두 번째 나타나심이 종말이며 또한 하나님의 계획의 완전한 성취입니다. 그리고 두 세계가 완전히 구별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세계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세계로 나누어져 버린 것입니다. 한번 죽은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며 그 이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다 죽음의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 없이 죽음아래 오셔서 죽음의 심판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하여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리라고 하십니다. 그렇다고 여기 죄와 상관이 없다는 것은 성도가 죄를 짓지 않는다거나 죄가 완전히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죽을 몸이 다하는 그날까지 죄는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의 권세아래 오셨지만 그러나 사망으로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멸하신 것입니다. 마귀의 세력을 꺾어버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 안에 자기 성도를 연합시키신 것입니다. 그렇게 연합된 성도 또한 죄는 나오지만 그 죄가 우리에게 그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하여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원 얻은 그 자리와 신분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성령을 보내심으로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0장을 보면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10:10)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단번에 자기 몸을 드리심으로 성도는 단번에 의롭다 함을 받았고 단번에 거룩함을 얻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이 이 정도로 완벽한 것입니다.

 

 

3. 누림

그러면 다른 성경본문에서 자라라또는 거룩하라고 하시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단번에 이루신 그 능력 안에서 살라, 그 은혜를 맛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미도 이루신 것에 대하여 누리라는 것입니다. 이미도 주어진 약속의 땅을 믿음이 없음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떨쳐 버리고 그 은혜와 사랑을 온전히 누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살면서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자기의 욕심과 죄를 보면서 단번에 이루시지 아니하시면 결코 되지 않는 것을 알게 됨으로 더욱 주님을 의지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육체 안에서 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이루신 속죄와 거룩함과 영광스러움을 날마다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에 대하여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 산자로 여기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최면을 걸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사실을 사실대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으로 인하여 연합되어 있기에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성도란 죄에 대하여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 영원히 산자로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이루신 놀라운 일이며 우리의 평생에 그 사랑의 길이와 넓이와 높이와 깊이를 다 알아가기에 부족할 뿐입니다. 그러나 오늘도 그 은혜 가운데 살게 하시는 사랑으로 다 이루신 그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용서의 길이와 넓이와 높이와 깊이를 조금씩 더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목적으로 우리를 존재케 하시는 우리 하나님의 원하심을 알아 매일의 삶 가운데서 이미도 단번에 이루어 주신 그 은혜와 사랑을 감사하며 노래하며 사는 하나님 보시기에 존귀하고 아름다운 날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해만 되면 우리가 갖는 결심과 또 그 결심과는 달리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합니까?

2. 다 이루었다고 하시는 주님의 뜻과 그에 반한 우리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3. 우리가 믿는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마귀의 유혹 가운데 살고 있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4.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 산자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다고 합니까?

5. 우리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 산자 되었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6. 우리가 단번에 이루셨다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7. 히브리서 9장의 죄와 상관이 없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8. 성경에서 자라가고, 거룩하라고 말씀하시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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