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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죽을 몸을 가지고 소망 가운데 사는 자

본문 / 6:12-15

 

 

1. 새로운 피조물

솔로몬이 쓴 구약의 전도서에 보면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1:9)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아무리 새것이라고 하여도 이미 전에 있었던 것의 반복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흔히 우리가 새해라고 하는 것 또 새롭다고 하는 것도 사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해라고 하는 시간에 동해안에 일출을 보러가든 또는 교회에서 송구영신예배와 신년 예배를 하던 그것이 해 아래 있는 사람을 새롭게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자꾸만 새것을 찾아 나서는 것은 반복되는 일상의 권태로움을 이기지 못하여 계속하여 새것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새해, 즉 불확실한 미래에 대하여 혹시라도 자신에게 닥칠 두려움을 이러한 종교적인 행위들로 없애보고자 하는 인간들의 살고자 하는 본능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은 다 죽음의 공포로 인하여 발생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들이 우리가 미신이라고 하는 종교적인 모습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도 보면 얼마든지 이러한 육체의 일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2장에 보면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2:20-23)고 합니다. 여기서 육체를 따르는 것을 금하는 것은 지혜 있는 모양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조금도 유익이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지혜로운 모양 같은 것들이 어떤 것들인가 16절부터 보면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2:16-19)고 합니다. 이런 것들을 하라 또는 하지 말라는 규정들이 현명해 보일지는 몰라도 육체의 욕망을 제어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의 결국은 모든 것을 공급하는 머리를 붙들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일들이 다 육체의 일이며 아담의 후손이 하는 일입니다. 스스로 살릴 수도 없으면서도 스스로 자기를 살리자고, 열심히 죽지 않으려는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은 일생 동안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종노릇하는 자를 해방시키려고 오셨습니다. 다시 골로새서 2장을 보면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2:12-15)고 합니다. 그러므로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 것은 아담의 후손으로서 어떤 금욕적인 행위를 동원하여도 스스로 새것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십자가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새로운 피조물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이 되어 의와 생명이 왕 노릇하는 곳에 옮겨 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는 죄가 왕 노릇하지 못합니다.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아났고 하늘에 앉혀진 신분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신분이 바뀌었다고 하는 것이며 또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2. 의의 병기

그런데 오늘 본문 12절에서는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6:12)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었는데 어떻게 죄가 다시 지배할 수가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이 말씀은 로마서 520절에서부터 계속되는 말씀입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5:20)는 말씀에 대하여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그렇다면 죄를 더 지어서 은혜를 더욱 많게 하여야겠구나 하는 반응을 보이게 되고, 바울은 그 사람들의 반응에 대하여 답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6장에서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6:1)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그 신분이 하늘에 앉혀져 있다고 했습니다. 방금 골로새서 2장에서도 본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 함께 장사되고 함께 일으켜 졌다고 합니다. 에베소서 2장에서도 보면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2:5-6)라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자를 어떻게 감히 악한 자가 건드릴 수가 있으며, 어떻게 죄가 다시 왕 노릇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면 너희와 너희 몸을 구별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믿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약속 안에서 이미 의롭고 영화롭게 되었습니다. 이미 결정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몸의 구속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 몸을 죄의 몸이라고 하며 또 죄의 몸이기에 죽을 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죄가 어디에 아직 남아 있는가 하면 우리의 몸에 아직 남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을 때 까지 죄가 우리 몸에서 나오게 됩니다. 그렇다고 그 죄가 우리를 다시 죄와 사망이 왕 노릇하는 곳으로는 절대로 끌고 가지는 못합니다. 이것을 알기에 죄의 몸이 멸하기까지 죄가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있어 이것이 제일 어렵고 힘든 부분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평생 싸워야 하는 부분입니다. 우리가 가장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은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몸이라는 것입니다. 이 몸에서는 분명히 죄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죄에 대하여 죽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오늘 본문은 너희 몸에 죄가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몸이 죽을 날이 옵니다. 죄의 몸이 멸하여 지고, 썩어질 날이 옵니다. 그동안 죄가 몸에서 기승을 부릴 것이지만 그것 때문에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미 은혜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4절을 보면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6:14)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 보면 법아래 있는 것과 은혜 아래 있는 것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법아래 있다는 것은 결국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으면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자가 없습니다. 성경은 이미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혜 아래 있다는 것은 법아래 있을 때와 반대의 경우로 똑 같은 것입니다. 법아래 있을 때에는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하여도 스스로 그 법을 다 지켜서 의에 이를 수가 없었는데 이제 은혜 아래 있다는 것은 내 노력으로 들어 온 것이 아니기에 아무리 은혜를 거부하려고 해도 빠져나갈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3절에 보면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6:13)고 하는 것입니다. 너희 신분이 이제 죄에게 드려지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죄가 감히 어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죽을 몸에 죄가 왕 노릇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몸은 악하고 더러운 것이고, 정신은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그리스철학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은 그렇게 구별하지 않습니다. 몸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가 몸에 왕 노릇한다는 것은 몸의 욕구를 사욕(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이나 만족만을 탐하는 욕심)을 따라 사용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로마서 612절에서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6:12)고 합니다. 몸의 사욕(욕망, 정욕)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면 배가 고파서 밥을 먹어야겠다는 것이 죄입니까? 아닙니까? 아닙니다. 그러나 몸의 사욕이란 김밥 한 줄에 이천 원이면 충분한데 거기에 금분을 뿌려서 한 줄에 오만 원 짜리를 먹어야겠다는 것이 사욕인 것입니다. 오늘날은 죽을 몸, 썩을 몸을 위하여만 사는 시대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대부분의 광고들만 보아도 전부 썩을 몸, 죽을 몸을 치장하는 것에 대한 것뿐입니다. 이것은 교회에서 조차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어떻게 외모를 꾸미는가에만 관심이 많습니다. 오늘날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초대 교회 때도 이런 일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에 보면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3:3-4)고 합니다. 죽고 썩을 몸에 대한 관심은 사람들의 본능이기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외모에만 관심을 갖고 그 몸의 사욕을 좇아 사는 것이 바로 죄가 왕 노릇하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을 꾸미지 말고 보이지 아니하는 것을 꾸미라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다 쇠하여지고 낡아지고 더러워지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늙는 것을 아름다움이라고 합니다. 잠언에 보면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16:31)고 합니다. 그러나 늙지 않으려고 발악을 하고 있는 것이 세상입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세계를 믿지 아니하고, 보이는 세계만 믿는 사람들에게 지금도 죄가 얼마든지 왕 노릇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죄가 죽을 몸에 왕 노릇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은 어떻게 손대지 못하지만 죄로 인하여 죽을 몸에 왕 노릇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도 몸은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죽을 몸을 다르게 표현하여 썩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죽고 부패하고 썩어질 몸만을 생각하지 말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주님을 생각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3. 소망

고린도전서 15장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전15:50-54)고 합니다. 혈과 육이 썩어질 것입니다.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에도 면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후5:1) 또한 6절부터도 면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고후5:6-8)고 합니다. 지금 우리는 주님과 따로 거하고 있습니다. 주의 성령을 받았지만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며 보지 못합니다. 그것은 주의 재림과 함께 우리의 낮은 몸도 영광의 몸으로 변화되어야 이루어질 일입니다. 그러나 이미 은혜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기에 죽을 몸에 죄가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신분을 인식하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에 보면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8:22-25)고 합니다. 앞에 있는 로마서 7장에서는 오호라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하면서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하여 좌절하지 않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생명과 성령의 법이 해방하였습니다. 이제 은혜 아래 있기에 어느 누구도 빼앗아 갈 수가 없습니다. 현재 일이나 장래일이나 죽음조차 그 사랑과 그 은혜에서 빼앗아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몸을 가지고 있기에 탄식하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몸에서 일어나는 사욕에 마음 빼앗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화장품을 바르고 건강식품을 먹고 비싼 의료기를 사용하여도 죽습니다. 죄 아래 있는 자는 죽음이 심판의 부활로 나올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보이는 몸만 치장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 아래 있는 자는 죽음이 사망이 아니라 자는 것입니다. 더 이상 죽음이 없습니다. 이들은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생명의 부활로, 홀연히 영광의 몸으로 변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주를 믿는다는 우리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들과 같이 오직 이 땅에서 죽을 몸과 썩을 몸을 위해 잘 먹고 잘 사는 것뿐이라면 우리는 불쌍한 자들이 됩니다. 그러니 오늘 말씀 앞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소망을 다시 한 번 점검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오직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며 참음으로 견디는 것입니다. 우리 몸의 구속의 날을 소망하면서 범사에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사는 예원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는 의미와 그럼에도 사람이 새 것을 추구하는 까닭은 무엇이라 합니까?

2. 사람이 육체를 따르는 일에 대하여 오늘 말씀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3. 죄의 몸이 멸할 때까지 죄가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4. 우리에게서 여전히 죄가 나오고 있음에도 우리가 낙심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5. 법 아래 있다는 것과 은혜 아래 있다는 것이 어떻게 다르다고 말씀합니까?

6. 죄가 죽을 몸에 왕 노릇 한다고 하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7. 믿는 자나 불신자나 똑같은 죽을 몸이지만 믿는 자가 죄가 왕 노릇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8.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는 탄식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아니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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