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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의 은사를 받은 자와 그들의 삶

본문 / 6:19-23

 

 

1. 거룩함

오늘 본문 19절에 보면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6:19)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거룩함이 무엇인지 알아야 거룩함에 이르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거룩함이 무엇입니까? 레위기 11장에 보면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11:45)라고 하여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에 우리에게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거룩함이란 무언가 엄숙하고, 가볍지 아니하고, 남자는 무언가 근엄하고, 여자는 웃어도 큰소리로 웃지 않고 조용한 미소를 띠고, 말투도 함부로 하지 않고 은혜로운 말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어릴 적 친구를 만나면 어떻게 대합니까? 옛날 말 그대로 인사하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목사님, 장로님, 집사님 하면서 은혜가 어떻고, 사랑이 어떻고 하면서 뭔가 무게 잡고, 목소리도 중저음으로 하다가 갑자기 본색이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교회의 직분을 가진 자로서 자기 스스로가 만들어 낸 거룩함으로 얼마를 버티어 낼 것 같습니까? 30, 50년을 버틴다고 그것이 거룩함에 이르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런 것을 거룩함이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거룩함에 이른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거룩함이란 한마디로 말하자면 분리됨입니다. 어떤 분리가 일어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로마서 6장에서 계속하여 살펴보고 있습니다만 바로 죄의 종에서 분리가 되어 의의 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룩함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에 보면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10:9-14)고 합니다. 10절 끝에 보면 거룩함을 얻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14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제물 되심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예수 믿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거룩함을 얻었고 또한 온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오늘 본문에 보면 또다시 거룩함에 이르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이상한 문법 같지만 거룩함을 얻었기에 거룩함에 이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았기에 구원을 이루라고 하는 것이고, 의롭다 함을 받았기에 의에 종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차츰 거룩하여져서 거룩함을 얻는 것이 아니고, 차츰 구원을 이루어가서 완전한 구원을 이루는 것도 아니고, 차츰 의로운 행실로 완전히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완전한 거룩함과 구원과 의롭다 함을 얻었기에 거룩함에 이르고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고 의에게 종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미도 얻은 것을 누리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2. 거룩한 자된 우리

다시 오늘 본문 19절부터 보면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6:19-21)고 합니다.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사람의 방식으로 말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서 설명하는데 전에는 너희 지체를 더러움과 불법의 종으로 내맡겨서 불법에 빠져 있었지만,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의 종으로 바쳐서 거룩함에 이르도록 하라고 합니다. 전에는 죄의 종이었고, 이제는 의의 종이라는 말씀입니다. 전에 죄의 종이었을 때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다고 합니다. 즉 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부끄러운 일이고 그 결국은 사망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어서 22절에 보면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6:22)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거룩한 사람이 되었고 마침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에서 해방이 되어 자유를 얻었다는 것은 이제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과 의와 영생에 이르는 길로 접어든 것입니다. 이제 다시 죄가 왕 노릇하는 곳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죄가 죽을 몸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죄가 왕 노릇하기 못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이제 너희의 신분이 의의 종이요 거룩함의 열매를 얻었기에 거룩함에 이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종에 대한 말씀이 출애굽기 21장에 보면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 만일 그가 단신으로 왔으면 단신으로 나갈 것이요 장가들었으면 그의 아내도 그와 함께 나가려니와 만일 상전이 그에게 아내를 주어 그의 아내가 아들이나 딸을 낳았으면 그의 아내와 그의 자식들은 상전에게 속할 것이요 그는 단신으로 나갈 것이로되 만일 종이 분명히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면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을 것이라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21:2-6)고 합니다. 히브리인으로서 사람들의 종이 되는 경우는 빚으로 말미암아 될 수가 있습니다. 히브리인 종들은 6년 동안 종으로 섬기다가 7년 째 자유를 주는데 그 자유를 포기하고 주인에게 영원한 종이 되겠다고 귀를 뚫는 것입니다. 자유를 얻어 나가는 것보다 주인을 사랑하고 또 주인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이 훨씬 더 나은 경우에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살아갈 능력이 충분하다면 다시 종이 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불쌍하고 무능한지 거저 상전이 주는 것으로만 감사하는 자라면 영영히 주인의 종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예수님을 주인으로 신앙하는 믿는 우리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들이 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시편 123편에 보면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영혼에 넘치나이다”(123:1-4)라고 합니다. 시편 123편은 표제어에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면서 부르는 노래인데, 나는 이만큼 잘났으니 성전에 나간다는 마음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종의 눈이 그 상전의 손을 보듯이 여종의 눈이 그 주모의 손을 바람같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며 긍휼히 여기시기를 바라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교회로 모일 때에 어떤 마음으로 모이고 있습니까? 우리는 히브리인이 아닌 이방인이기에 하나님의 약속과는 상관이 없는 죄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러한 죄의 종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신 것입니다. 그런 우리를 해방 시킨 것이 과연 무엇을 위한 해방입니까? 내 마음대로 살라고 해방시킨 것이 아닌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에 보면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고 합니다. 이제 우리의 몸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죄에서 해방시키신 것입니다. 값을 지불하고 주님의 소유로 삼으신 것이기에 이제 우리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으로 구별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의 것으로 구별하셨기에 거룩한 것입니다. 그런 우리를 누가 거룩하지 않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누가 감히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거룩한 무리입니다. 주님께서 자기 피로 값을 주고 거룩하게 하신 백성들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죄가 왕으로 주권 행사를 못하는 신분이 된 것입니다. 왜 자꾸만 이러한 말씀을 반복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로마서 520절에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다는 말씀과 로마서 614절에서 법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는 말씀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죄에도 불구하고 의롭다 하심과, 거룩하게 하심과, 구원에 이르게 하신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고 증거하자 어떤 반발이 나오는 것입니까? 그러면 죄를 더 많이 지어서 은혜가 더욱 풍성하게 하고, 법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마음대로 지어도 되겠구나, 하는 자들이 나오게 되는데 바울은 그런 자들의 입을 막아버리는 것입니다. 지금도 도덕론 자들은 이러한 복음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의롭다 함과 거룩함과 구원을 사람이 한 것이 없이 얻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게 됨으로 사람들이 자기들이 져야할 도덕적 책임을 회피하게 되고, 방종하게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도 죄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그들이 내세우는 도덕과 바른 삶이라는 것이 겉으로만 포장이 되어 있을 뿐이지 영생을 얻는 일에는 전혀 무가치한 것입니다. 그 결국은 사망에 이르는 것입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이미 선언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이 선언은 인간에게는 그 어떤 가능성도 없다고 하는 선포인 것입니다.

 

 

3. 두 증인의 삶

다시 말하지만 그러면 거룩함이 무엇입니까? 성령의 열매와 육체의 일이 나타납니다만 오늘은 두 사람의 예를 들고자 합니다. 먼저 베드로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 다니면서 바란 것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면 자신도 한 자리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적도 보고, 자신도 기적도 행하면서 무언가 기대를 가지고 따라 나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라면 다 가지고 있던 민족적 메시아를 기다리다가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따라 다니면서 그 능력을 목도하며 더욱 더 확신에 확신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 사이에는 항상 누가 더 크냐의 다툼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충성을 다짐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주를 버릴 지라도 자신은 버리지 않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하였지만 십자가 앞에서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하고 맹세하면서 돌아서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이 다시 찾아오시고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시자 그렇게 자기 이름을 위하여 살던 베드로가 사도행전 3장에서 성전에서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키고는 무어라고 말을 합니까? 이 사람이 일어나게 된 것이 왜 나의 경건과 기도의 능력으로 일어난 것처럼 나를 주목하느냐면서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그 이름이 이 사람을 낫게 하였다고 증거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거룩함입니다. 이것이 성령이 임하여 구별된 자의 모습입니다. 과연 우리에게 이러한 모습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만들려고 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속에 이런 믿음과 마음이 지배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바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바울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전통 유대인 출신으로서 난지 팔 일만에 할례를 받았고, 유대인의 엄격한 바리새파인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자랐기에 얼마나 율법에 열심이었는지 자랑할 것들이 너무나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바울이 그렇게 자랑스럽게 여기던 것들을 모두 배설물로 여긴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의 의롭게 됨이 사람의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3장에 보면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3:1-15)고 합니다. 왜 자기의 자랑을 배설물로 여기는 것입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한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는 잡힌바 된 것을 잡으려고 간다고 합니다. 의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거룩함에 잡힌 것입니다. 구원에 잡힌 것입니다. 그 잡힌 것이 너무나 크고 엄청나서 달려가기도 바쁜 것입니다. 이것이 구별된 자의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다면 땅의 것이 아닌 하늘의 것을 찾는 자로 살아갈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인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우리에게 나타나는 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로마서 6장의 결론을 맺습니다. 23절에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6:23)고 합니다. 죄의 대가는 사망입니다. 그러면 의를 행하고 거룩하고 순종의 대가로 영생이 주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영생은 어떤 인간의 공로나 선행의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사이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은사란 말 그대로 은혜로운 선물입니다. 이 은사를 받은 사람은 이 영생의 은사가 너무 좋아서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포기하고 스스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의 종으로 살겠다고 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이 세상의 결론은 딱 두 가지입니다. 그 하나는 죄의 삯으로 사망에 이르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인 하나님의 은사는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입니다. 바로 이 은사를 받은 사람이 성도인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자입니까? 주 예수의 날까지 거룩함을 입은 자로서 거룩함에 이르도록 하며, 구원함을 얻은 자로서 구원에 이르러 가는 예원 가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은혜와 사랑이 가득한 날들로 오직 한 분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우리가 생각하는 거룩함과 성경이 말씀하는 거룩함은 어떻게 다른 것입니까?

2. 우리가 이미도 거룩함과 구원함과 의롭다 함을 받았음에도 왜 우리에게 구원함을 이루고 의의 종으로 드리라고 요구하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3. 늘 본문은 예전에 우리는 어떤 자였고, 지금의 우리는 어떤 자가 되었다고 말씀합니까?

4. 출애굽기 21장의 귀 뚫린 종의 말씀은 오늘날 우리와 무슨 연관성이 잇는 것입니까?

5. 오늘날 예수님을 주인으로 신앙하는 자들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어야 한다고 합니까?

6. 로마서의 저자인 바울이 이런 내용을 거듭해서 말씀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7. 베드로와 바울에게 나타난 거룩한 자의 삶의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8. 하나님의 은혜로 영생을 얻은 자들은 어떤 마음으로 사는 자들이라고 말씀합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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