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방문자 수

방문자수

전체 : 4,216,181
오늘 : 202
어제 : 387

페이지뷰

전체 : 78,762,768
오늘 : 750
어제 : 99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제목 / 율법에 대하여 죽고 새 남편에게 속한 자

본문 / 7: 1- 4

 

 

 

1. 그리스도를 통하여

로마서 6장의 결론이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라고 하였습니다. 죄의 삯, 죄의 대가, 죄의 결론이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의롭게 산 결과, 거룩하게 산 결과로는 영생이라고 해야 자연스러운 문장이 됩니다. 그러나 만약 영생이 그러한 조건으로 주어지는 것이라면 영생을 얻을 자는 단 한명도 없습니다. 이미 성경에서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선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생은 은사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하나님의 은사는 영생이라고 하시지 않고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 안에 있는 영생을 은사로 주신 것입니다. 이런 복음을 바울사도가 전하고 있으니 유대인들에게나 이방인들에게 다 공격을 받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모독하는 처사라고 공격하고, 이방인들은 우리들이 도덕적 책임을 지지도 않아도 되기에 마음대로 살아도 되겠구나, 하는 공격에 대하여 로마서 6장과 7장에서 계속하여 그럴 수 없음을 증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다는 말씀과 법아래 있지 않고 은혜아래 있다는 말씀에 대하여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길게 논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의 종이란 죄가 권세를 가지고 왕 노릇하기에 죄가 끄는 대로 갈 수밖에 없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죄에 순종하고 죄에 복종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의 종이란 의가 왕 노릇을 하는 것이며, 은혜가 왕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은혜란 인간 위에 있는 하나님의 권력입니다. 은혜는 잠잠히 있을 수 없고, 정지 상태에 있을 수 없고, 침묵할 수도 없고, 포기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죄가 사망에 복종시키듯이 은혜가 생명에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이기에 이 세상은 이 둘 중의 하나이지 중간상태는 없는 것입니다. 생명이냐 아니면 사망이냐 이지 생명도 아니고 사망도 아닌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몸을 가지고 있는 한 늘 혼동 가운데 헤매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는데 마귀의 유혹이 들어오자 죽을까 하노라고 애매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죽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이 상태에 빠지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에 보면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6:14-18)고 합니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고 합니다. 의와 불법, 빛과 어둠, 그리스도와 벨리알,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 이렇게 둘 중의 하나인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너무 극단적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23:6)는 말씀도 있는데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말은 너무 극단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들 것입니다. 그러나 좌우로 치우치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에 있어서 치우침 없이 똑바로 순종하라는 말씀이지 중간에 서 있으라는 말씀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의 신앙은 지금 어떤 상태입니까? 로마서 7장에서 나오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라는 이 탄식이 바울의 현재 경험인가? 아니면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말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탄식에 대하여 바울이 믿음이 연약한 상태인가? 아니면 장성한 상태인가? 에 대한 논란이 많습니다만 그러나 로마서 7장의 전체 중심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는 말씀에 대한 오해와 공격에 대하여 그럴 수 없다는 반증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바울의 이 말은 율법의 기능과 그 한계를 증거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저 개인으로는 이 바울의 고백을 이미 거듭난 사람의 탄식으로 보고 있습니다. 몸의 구속을 기다리며 탄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로 부름 받은 자는 무엇 때문에 혼동에 매여 있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까? 고린도후서 1장에 보면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1:18-20)고 합니다. 바울 사도가 마게도니야 지역으로 갔다가 고린도를 경유하여 유대로 가려고 하였는데 차질이 생긴 것입니다. 그렇게 한 것은 고린도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그렇게 하였다고 하면서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되심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든지 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아멘으로 응답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은사를 입고서 죄의 권세에서 의의 권세로 들어오게 된 것은 전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그리스도를 통하여)로 된 것입니다. 그 순종하심으로 이루어진 일이 무엇인지를 율법에 대하여 죽임 당한 것으로 로마서 7장에서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옛 남편

오늘 본문인 로마서 71절에서 4절은 율법에 대하여 죽임 당한 자가 어떤 관계인지를 남편과 아내의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법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에만 주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자에게 법이 더 이상 책임을 물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흉악한 범죄를 저질러서 법에 의하면 사형에 해당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을 하면, 그 삶이 살아 있을 때는 그 법이 유효한 것이지만 만약에 그러한 자가 죽어 버렸다면 그 법대로의 사형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남편이 살아있는데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로 가면 음녀가 되지만, 남편이 죽으면 다른 남자에게 가더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남편에게서 자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율법을 남편이라 보고 율법을 받은 자가 아내라고 본다면 누가 죽은 것입니까? 율법이 죽은 것입니까? 아니면 율법을 받은 자가 죽은 것입니까? 율법은 결코 죽을 리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 보면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5:17-18)고 합니다. 여기 보면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하십니다. 그렇기에 율법은 죽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율법이 결코 죽지 아니하니까 율법을 받은 내가 율법에 대하여 죽어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절을 보면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7:4)고 합니다. 여기 그러므로라는 것은, 즉 남편이 죽어버리면 자유하게 되는데 그 남편이 죽을 수 없으면 아내가 죽음으로 그 남편에게서 자유 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율법이 남편이라고 비유를 하였는데 율법은 도대체 어떤 남편이겠습니까? 율법을 다 지키면 의에 이릅니다. 그러나 단 하나라고 어기면 죄가 됩니다. 그리고 그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더 쉽게 예를 들자면 남편이 집에 들어와서 조사를 한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청소상태, 밥과 반찬의 상태 등을 조사하는데 세부적인 규칙들을 수백 가지를 만들어 두었다고 합시다. 그 중에 하나라도 지키지 못하면 죄라고 한다면 과연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이런 남편과 계속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남편이 죽든지 아니면 자신이 죽든지 양단간에 결정이 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사느니 차라리 이혼하겠다고 하든지 아니면 죽는 일까지 벌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 믿는 자들이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한 자가 되는 것입니까? 다시 한 번 4절을 보면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7:4)고 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 사도가 형제라고 부르는 자들은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는가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인하여 죽임을 당하였다고 증거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율법에 대하여 죽은 적이 없는데 그래서 우리는 늘 율법의 요구들이 일어나는 자들인데 언제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는 말하는 것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입니다. 그의 죽으심은 죄가 없으신 분이신데 자기의 백성들을 살리기 위하여 대신 희생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율법의 요구인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그 요구를 다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율법의 요구가 해당이 안 되는 것입니다. 죽은 자에게는 법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율법이 더 이상 처벌을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엄청난 선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으실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셨기에 자기 백성들을 친히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주로서, 맏아들로서, 남편으로서 주인이 되신 것입니다.

 

 

 

3. 새 남편

우리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되면 한 몸이라고 합니다. 분명히 두 사람인데 어떻게 한 몸이 되는 것입니까? 그것을 관계라고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에 보면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2:24)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자에게 여자가 속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옛 말에 여자 팔자는 뒤웅박팔자라고 하는 말이 있을 지경입니다. 여자를 비하하는 말이라고 비판을 하시겠지만 율법적인 남편을 만나면 그 여자는 죽을 맛으로 살다가 결국은 죽는 신세인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로운 남편을 만나면 그 여자는 사는 것입니다. 에베소서에 보면 부부가 한 몸이 되는 것을 교회와 그리스도에 대한 비유적 이야기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에 보면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5:31-32)고 합니다. 그리스도는 남편이고 교회는 그의 아내입니다. 그러면 전에 남편은 어떤 남편입니까? 율법적인 남편이었습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다 법아래 태어나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난 아담과 하와 이후의 모든 인간은 죄의 법아래 태어난 것입니다. 이것을 다만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율법이 가입하게 됨으로 죄가 무엇인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이미 죽은 자인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살아나심으로 그 안에 자기 백성들과 함께 죽으시고 함께 살아나신 것입니다. 이것을 연합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됨이요, 세례를 받는다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됨이라는 것을 로마서 6장에서 이미 보았습니다. 이렇게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한 자는 이제 다른 이에게 시집을 간 것입니다. 전 남편에게서 죽고 이제 새 남편을 맞이한 것입니다. 전 남편의 요구가 이제는 더 이상 미치지 못하는 영역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 세계가 바로 오늘 본문 4절에 있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제는 율법의 남편이 아니라 은혜의 남편입니다. 무슨 열매가 맺어지겠습니까? 은혜의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전에는 율법에 의하여 지배를 받아서 하지 않으면 저주와 심판이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는 않더라도 마땅히 해야 할 의무감으로 하였습니다. 때로는 감사함으로 무슨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율법의 조문을 가지고 하라 하지말라가 아니라 새로운 남편의 지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의 헛되지 아니함입니다. 많이 사함 받는 자가 많이 사랑하는 방식입니다. 사함을 적게 받은 자는 그만큼 자기의 죄를 모르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죄가 얼마나 엄청난지 알면 알수록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는 새로운 남편을 인하여 감사하며 기뻐하며 그를 믿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의 신분이며 위치입니다. 주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 일어난 일들입니다. 옛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 새 남편인 은혜의 세계에 들어 와 살아가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여기에는 두렵고 무서워서 무엇을 하거나 또 하지 못한 것 때문에 벌을 받고 저주를 받는 그런 세계가 아닙니다. 그 세계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이제는 무엇을 해도 그 은혜를 알기에 감사하고 고맙고 사랑하기 때문에 움직여지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런 자들은 누가 뭘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에 관심이 있는 자들이 아니라 나를 그렇게 사랑하신 것에 대한 감사가 넘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그 은혜가 또 그 감사가 우리로 하여금 은혜의 남편을 위하여 살도록 우리를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옛 남편인 율법에 대하여 죽은 자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산자로서 이런 주님의 사랑을 알면 알수록 예수님만 사랑하고 예수님만 목숨처럼 믿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고, 주님만을 바라고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예원가족들의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죄의 종과 의의 종은 어떠한 상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2.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상태는 어떤 상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3.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가 된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4. 우리의 남편(율법)은 어떤 자라고 말씀합니까?

5. 우리가 어떻게 율법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었다고 말씀합니까?

6. 우리의 옛 남편과 지금의 남편은 누구라고 말씀합니까?

7. 우리는 어떻게 은혜(성령)의 열매를 맺는 자가 되었다고 말씀합니까?

8. 새 남편에게 속한 자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은 어떤 것들입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19 6월 15일 / 사도행전23. (행5:17-32)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관리자 2014.06.14 1006
518 6월 14일 / 사도행전72. (행22:24-29) 로마 시민권을 내 보이는 바울의 신앙 관리자 2015.06.13 666
517 6월 14일 / 갈라디아서 8.(갈 3: 1-9) 누가 너희를 꾀더냐 관리자 2020.06.14 130
516 6월 13일 1부 / 목표를 위해 일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 관리자 2010.06.12 1484
515 6월 13일 / 히브리서 32. (히 9:1-10) 신앙의 개혁 관리자 2021.06.13 94
514 6월 12일/ 로마서 40.(롬8:1-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다 관리자 2016.06.11 877
513 2022 6월 12일 / 히브리서 78. (히 13:9-15) 신자의 입술의 열매 관리자 2022.06.12 209
512 6월 12일 / 결혼과 이혼 그리고 하나님의 뜻 443 관리자 2011.06.12 4725
511 2023 6월 11일 / 요한복음 6. (요1:29-34) 하나님의 어린양 관리자 2023.06.11 9
510 6월 11일 / 로마서 87.(롬16:17-20) 바울의 권면, 그들에게서 떠나라 관리자 2017.06.10 149
509 6월 10일 1부 / 복음에 대하여 너희의 마음을 넓히라 12 관리자 2012.06.13 1604
508 6월 10일 / 마가복음 6. 관리자 2018.06.30 62
507 5월 9일 2부 / 이 세상에서 신앙의 삶을 산다는 것 관리자 2010.05.16 1775
506 5월 9일 / 히브리서 27. (히 5:11-15) 별다른 한 제사장 관리자 2021.05.09 85
505 5월 8일 2부 / 묵은 누룩을 버리고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11 관리자 2011.05.07 1826
» 5월 8일 / 로마서 35. (롬7:1-4) 율법에 대하여 죽고 새 남편에게 속한 자 관리자 2016.05.07 646
503 2022 5월 8일 / 히브리서 74. (히12:25-29)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관리자 2022.05.08 307
502 2023 5월 7일 / 요한복음 3. (요 1: 9-13) 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 관리자 2023.05.07 11
501 2023 5월 7일 / 요한계시록 10. (계 3:1-6) 사데 교회 관리자 2023.05.07 8
500 5월 6일 2부 /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관리자 2012.05.19 1685
Board Pagination Prev 1 ... 7 8 9 10 11 12 13 14 15 16 ... 37 Next
/ 37

총괄 관리자 : 예원교회 방송실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