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방문자 수

방문자수

전체 : 4,220,213
오늘 : 522
어제 : 525

페이지뷰

전체 : 78,779,794
오늘 : 2,060
어제 : 2,22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제목 /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삶

본문 / 7: 5- 6

 

 

1. 예수 믿는 것

우리는 지난주에 율법이라는 옛 남편에게서 죽고 새로운 남편을 맞이한 사람이 성도라고 했습니다. 옛 남편에게서 자유하려면 옛 남편인 율법이 죽어야 하는데 문제는 그 옛 남편인 율법이 죽지를 않으니 내가 옛 남편인 율법에 대하여 죽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나 대신에 죽음을 당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74절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7:4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심은 우리로 하여금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속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7:4 )고 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율법이 남편이 되어 있을 때에는 하나님을 위한 어떠한 열매도 맺을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아래 있었다는 것을 육신에 있었다는 말과 같이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신에 있었다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다 포함되는 말입니다. 율법을 받았거나 또는 받지 않았거나 간에 모든 사람은 죄의 정욕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우리는 여기서 죄의 정욕이 무엇인지를 보고자 합니다. 사람에게는 자연적인 욕구가 있습니다. 식욕이 있고, 수면욕이 있고, 성욕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살아가도록 사람이나 짐승에게 필요한 욕구들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스러운 욕구들이 죄로 인하여 잘못되어진 것입니다.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인간들만 타락한 것이 아니라 다른 피조물들도 함께 탄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17장에 보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17:9)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하는데 그 죄가 무엇인지를 예레미야 175절에 보면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17:5)고 합니다.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인간의 능력과 가능성을 믿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육신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혈과 육에서 나오는 것이 양심이든, 도덕이든, 선행이든, 종교이든 그 어떠한 것이라 할지라도 결국 사망으로 향한 열매밖에 맺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7절에 보면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17:7)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부터 이방인의 죄와 유대인의 죄를 함께 말하여 왔던 것입니다. 인간이 스스로의 열정을 가지고 추구하는 그 근본바탕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간 같지 않은 흉악범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신실한 자도 있고, 경건한 자도 있고, 종교적 영역에서 큰 감명을 받기도 하고, 스스로 자기의 마음을 비우며 다스리기도 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남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희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는 일에 브레이크를 걸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한계가 바로 육신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 실존이 아담아래 있는 것이고, 율법아래 있는 것이고, 해 아래 새것이 없는 인간의 상황입니다. 그래서 그런 인간이 그 무슨 열정을 품고 새로운 인간이 되고자 한다고 하여도 그것이 다 헛수고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무엇을 하여도 죄와 사망을 이길 수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망에서 생명으로, 율법에서 예수그리스도로, 육신에서 영으로 옮겨지는 것입니까? 그것은 사선을 넘어서야 하는 것입니다.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인이 죽는다는 것은 죄의 삯으로 인하여 죽는 것이기에 당연한 심판이고 또 그 심판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끝나면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수는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우리 대신 죽으신 그리스도의 몸으로 인하여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이 내용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2. 이제는

이제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7:5)라고 합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 왜 사망의 열매를 맺게 된다고 하였습니까?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안에서 역사하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죄의 정욕이라는 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정상적인 욕구가 아니라 죄의 정욕이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도 죄의 정욕이 역사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욕구를 언제나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움과 다툼과 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의 말씀처럼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1:15)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 율법이 투입되고 보니 그들도 동일하게 죄의 정욕이 역사하여 사망으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성경이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7장에 보면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7:7-8)고 합니다. 율법이 가입한 것은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탐내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면 탐심이 무엇인지 몰랐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탐심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법이 없으면 죄가 죄로 인정이 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이 가입되어 탐내지 말라는 말씀을 듣는 순간에 그 율법에 죄의 정욕이 틈을 타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달리 표현하자면, 탐심이 속에서 잠재해 있다가 계명으로 인해서 드러난다.’는 의미입니다. 이 표현은 이미 7절 하반 절에서 언급된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라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마음이 백지와 같음을 전제하고 죄가 계명을 통해 탐심을 유발시킨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미 인간 내부에 있는 탐심이 죄의 요구를 따라 계명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온갖 탐심을 이룬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끝없이 나오는 죄의 정욕으로 인하여 인간은 도무지 살길을 찾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인간의 죄의 정욕은 하나님이 주신 계명까지도 자신을 증명하고,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받은 자신과 받지 못한 자들과의 차별성 그리고 그 율법대로 사는 자신과 그렇게 살지 못하는 자들을 비교하여 정죄하며 자신의 자랑거리를 만들어 가는 죄의 정욕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어떤 도덕과 교육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으로도 사람을 살려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의 한계인 것입니다. 정죄하고 심판은 하지만 죄인을 살려내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여야 예수 그리스도에게 가서 연합이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주님께서 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보면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6:6)고 말씀합니다. 여기 있는 이제는 이란 단어는 아주 중요한 단어입니다. 완전히 반전이 되는 내용입니다. 성경을 볼 때에는 그러나’ ‘이제는 이런 단어를 중심으로 앞과 뒤를 잘 살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혀 다른 세계가 증거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는 앞에 있는 전에는언제를 말하는 것입니까? 육신에 있을 때입니다. 율법아래 있을 때입니다. 죄와 사망이 왕 노릇하던 때입니다. 그런 때는 아무리 율법을 지킨다고 하여도 오히려 죄의 정욕이 율법을 인하여 틈을 타서 사망의 열매만 맺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율법에 대하여 죽었고 벗어난 것입니다. 누구 때문입니까? 전적으로 주님의 임하심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제 육신에서 벗어나서 영의 세계로 들어왔기에 이제부터 어떻게 섬기는 것입니까? 전에는 문자로 섬겼지만 이제는 영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여기서 육신으로 라는 말과 영으로라는 말이 나옵니다. 육신과 영이라는 것은 사람을 영육이원론으로 구분하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인간을 말할 때 여러 가지로 묘사합니다. 육체, , , 바람, 호흡, , , 영혼 등으로 부릅니다. 그런데 여기서 육신과 영이라는 말은 영역개념입니다. 율법아래 있는 자는 육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은혜 아래 있는 자를 영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육신에 속한 자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섬기는 것이고, 육신에 대하여 죽은 자는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긴다는 것입니다.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긴다는 것은 전에 육신으로 섬기는 결과는 결국 죄의 정욕이 역사하여 사망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지만 이제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게 되니 영의 역사로 인하여 생명의 열매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것이 어떤 섬김입니까? 바로 성령이 임하게 됨으로 새로운 섬김이 되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섬길 때는 죄의 정욕으로 인하여 그것이 자기를 위한 섬김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사도 바울 같은 경우에 자기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육체를 자랑하려면 누구 못지않다고 빌립보서 3장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베냐민 지파이고,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며, 율법으로 바리새파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율법으로 열심을 내면 낼수록 어떤 결과가 주어진 것입니까? 로마서 10장에 보면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10:2-3)고 말씀합니다. 율법을 가지고 하나님께 열심을 내었는데 그것이 도리어 자기 의를 쌓고 하나님의 의는 복종치 아니하더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람들 보기에 선하고 좋은 일을 하여도 그 결국은 자기 자랑으로 말미암은 자기 의만 만들어 내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율법으로 섬기는 자기 섬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기 의가 오히려 예수님을 죽인 결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정욕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4절을 보면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10:4)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 율법이 완성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그 어떤 율법 행위로도 되지 아니하는 일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은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만이 정죄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율법에 대하여 죽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런 자들은 어떻게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까? 전에는 자기에게 관심이 있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의로워지는가? 내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내가 어떻게 남보다 뛰어난가? 주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이런 관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것은 자기에게 관심이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관심이 가는 것입니다. 도대체 예수님께서 누구시기에 이런 엄청난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가 하고서 그를 섬기고 믿고 따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3. 영으로 섬기기

고린도후서 3장에 보면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 같은 확신이 있으니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고후3:4-6)고 말씀합니다.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고 영은 살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영의 직분, 즉 은혜 안에서 우리가 받은 직분은 무엇입니까? 바로 새 언약의 일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의 일꾼이란 우리에게서 난 것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로부터 온 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것으로 섬긴다는 것은 예수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시기에 죄와 사망으로 죽은 자를 자기 몸으로 살려내시고, 자기의 신부로 만들어 주셨는가 하는 것에 대하여 놀라며 감격하는 것입니다. 어찌 이런 일이 다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섬김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면 어떤 신분과 지위가 주어지는 것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누리시는 모든 지위와 신분을 그냥 받는 것입니다. 서양에서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결혼을 하면 신부의 성이 바뀌어 집니다. 남자에게 소속이 되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자를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리스도에게 소속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에베소서 1장에 보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1:3)라고 하여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다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리심을 입고,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혀져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빌립보서 3장을 보면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3:1-3)고 말씀합니다. 예수 믿는 자들은 의문(율법)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영(은혜)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것에 대하여 성령으로 봉사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봉사하기에 자기의 봉사가 자기의 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봉사를 마음으로 계산하여 쌓아두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강권하시는 사랑으로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나오는 봉사이기에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힘과 가능성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관심이 온통 나에게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만 쏠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주로 말미암아 섬기는 자 된 모습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은혜를 입었기에 나오는 영의 새로운 섬김과 육신으로 섬기는 것의 차이는 사망과 생명의 차이입니다. 이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사망에 이르게 역사하는 육신의 섬김이 아니라 생명에 이르게 하는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한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 안에 더욱 풍성하여 져서 영의 새로운 것으로 주님을 섬기시는 예원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육신 아래 있는 인간의 상황은 어떤 상태라고 말씀합니까?

2.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이 어떤 내용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3.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 사망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는 까닭과 그 내용은 무엇입니까?

4. 하나님의 율법을 가지고도 어떻게 죄의 정욕이 유감없이 발휘된다고 합니까?

5. 율법의 한계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6. 육신으로 섬긴다는 것과 영으로 섬긴다는 것은 어떻게 다릅니까?

7. 새 언약의 일꾼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며 또 그들이 전하는 내용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8. 영의 새로운 것(성령)으로 섬기는 자들의 삶은 어떠하다고 말씀합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00 7월 10일 / 로마서 44. (롬8:15-17) 하나님의 자녀 됨을 증언하는 양자의 영 관리자 2016.07.16 311
299 7월 3일 / 로마서 43. (롬8:12-14)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관리자 2016.07.02 965
298 6월 26일 / 로마서 42.(롬8:9-11)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그리스도의 사람 관리자 2016.06.25 619
297 6월 19일 / 로마서 41. (롬8:5-8)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 관리자 2016.06.18 897
296 6월 12일/ 로마서 40.(롬8:1-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다 관리자 2016.06.11 877
295 6월 5일 / 로마서 39.(롬7:21-25) 탄식과 그 가운데 나오는 감사 관리자 2016.06.04 519
294 5원 29일 / 로마서 38. (롬7:14-21) 원함은 있으나 행하는 능력은 없노라 관리자 2016.05.28 570
293 5월 22일 / 로마서 37. (롬7:7-13) 율법의 기능과 역할 관리자 2016.05.21 618
» 5월 15일 / 로마서 36. (롬7:5-6)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삶 관리자 2016.05.14 500
291 5월 8일 / 로마서 35. (롬7:1-4) 율법에 대하여 죽고 새 남편에게 속한 자 관리자 2016.05.07 646
290 5월 1일 / 로마서 34. (롬6:19-23) 하나님의 은사를 받은 자와 그들의 삶 관리자 2016.04.30 500
289 4월 24일 / 로마서 33. (롬6:15-18) 죄의 종과 의의 종 관리자 2016.04.22 722
288 4월 17일 / 로마서 32. (롬6:12-15) 죽을 몸을 가지고 소망 가운데 사는 자 관리자 2016.04.16 645
287 4월 10일 / 로마서 31 (롬6:6-11) 죄에 대해 단번에 죽으시고 다시 사신 은혜 관리자 2016.04.09 621
286 4월 3일 / 로마서 30. (롬6:1-5) 예수님과 연합된 우리의 삶 관리자 2016.04.02 596
285 3월 27일 / 부활주일 / (요20:11-16) 울고 있는 마리아를 찾아오신 부활의 주님 관리자 2016.03.26 455
284 3월 20일 / 로마서 29. (롬6:1-2) 죄에 대하여 죽은 자의 삶 관리자 2016.03.19 620
283 3월 13일 / 로마서 28. (롬5:19-21) 은혜의 왕 노릇하는 나라에 속한 자들 관리자 2016.03.12 572
282 3월 6일 / 로마서 27. (롬5:18-21)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관리자 2016.03.05 1007
281 2월 28일 / 로마서 26. (롬5:12-17) 죄와 사망의 세계와 의와 생명의 세계 관리자 2016.02.27 714
Board Pagination Prev 1 ...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 37 Next
/ 37

총괄 관리자 : 예원교회 방송실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