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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다

본문 / 8: 1- 4

 

1. 인간의 실상과 복음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가장 복되고 기쁜 소식이 바로 오늘 본문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 8:1) 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 천하를 주고도 살 수가 없는 기쁜 소식입니다 . 그런데 문제는 이 말씀이 우리들에게 기쁘고 감사한 소식이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 만약에 되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아직 인간의 죄가 무엇인지 처절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 아직도 자기는 다른 사람들보다 무언가 나은 것이 있다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한다든가 , 나는 너보다 낫다는 그런 마음이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정죄함이 없다 는 이 말씀이 전적으로 기쁜 소식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 우리는 우리가 허물과 죄로 죽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 라는 것을 잘 압니다 . 그런데 허물과 죄로 죽어 있어서 본질상 진노를 받아야 마땅한 그 진노의 상태 , 즉 그 정죄의 상태가 어떤 것입니까 ?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흉악한 범죄를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 아닙니다 . 만약 그러한 흉악한 범죄만 허물과 죄로 죽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에 대한 정죄라면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그렇게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가 하면서 설교시간에 그러한 범죄를 지적하면서 큰 소리 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 그러나 허물과 죄로 죽어 있다는 것은 세상의 흉악한 범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 하나님이 보시기에 허물과 죄로 죽어있는 인간의 처참한 현실은 가장 고상하고 , 가장 거룩하고 , 가장 열심히 율법을 지키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사람들에 의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죽임 당하였다는 것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 종교 ( 宗敎 ) 를 한자적 의미로 보면 으뜸 종에 가르칠 교자를 사용하므로 가장 고상하고 높은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 세상에서 나올 수 있는 최고의 가르침이 종교인데 그중에서도 으뜸이 되는 것이 유대교입니다 . 그런데 살아계신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고 그 놀라운 체험을 한 유대인들의 최종적인 모습이 무엇이었습니까 ? 바로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 그것도 가장 거룩하다는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주도하에 일어난 일인 것입니다 . 예전에 멜 깁슨 이 만든 그리스도의 수난 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 12 시간의 수난 장면을 아주 사실적으로 담고 있는 영화였는데 그 당시에 유대인들이 이 영화 상영에 반대한다고 하였는데 그 이유는 이 영화가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였다는 인식을 심어주어 종교간 갈등을 일으키고 반유대주의가 확산될 염려가 있다는 이유입니다 . 그런데 그런 유대인들에 대한 고발이 영화가 아닌 이미 성경에도 나와 있습니다 . 데살로니가전서 2 장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받게 함을 그들이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그들에게 임하였느니라 ”( 살전 2:14-16) 고 말씀합니다 .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하면서 유대인들의 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주 예수와 선지자를 죽이고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고 모든 사람의 대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 그 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 복음 전하는 것까지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저희에게 임한다고 합니다 . 이렇게 바울사도가 고발하고 있는 이 유대인들 가운데 누가 들어 있는 것입니까 ?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에 바울 자신이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 이것이 죄와 허물로 죽었던 인간의 처절한 현실인 것입니다 .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바로 유대인의 나라에서 그것도 성전이 있던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 이 사실을 알고 난 바울의 절망감과 탄식이 어떻게 표현 되었습니까 ? 그렇게 자신에 대하여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자부하던 그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를 알고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 7:24) 고 하는 깊은 탄식이 있는 것입니다 . 과연 이런 자에게 가장 기쁜 소식이 무엇이겠습니까 ? 바로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 8:1) 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심히 두렵고 떨린다고 하였습니다 . 하나님의 율법을 받을 때에 백성들도 두려워서 감히 나아가지도 못하였습니다 . 그러함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모습은 항상 자신들이 그렇게 두려워하는 하나님을 거역하였다는 것이 구약의 증거입니다 . 또한 이스라엘의 선지자였던 이사야는 어떠하였습니까 ? 이스라엘의 선지자인 그가 성전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서 어떤 탄식이 흘러 나왔습니까 ? 이사야서 6 장에 보면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 6:5) 고 탄식합니다 . 다윗은 어떠하였습니까 ? 시편 51 편에 보면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 51:5) 라고 고백합니다 . 자신은 죄악 중에 잉태하여 죄를 먹고 마시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 신약에도 보면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 앞에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 5:8) 라는 고백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또한 사도요한은 계시를 받으면서도 그 영광의 주님을 보고서 엎드려져 죽은 자와 같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 지금까지 성경의 몇 사람의 예를 들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자기들의 연약과 부족과 죄인 됨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 이러한 순간에는 다른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 다른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자신이 좀 더 낫다는 생각이 들 틈이 없는 것입니다 . ‘ 큰일 났다 . 이제는 죽었다 . 차라리 나에게서 떠나주소서 .’ 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공통적인 고백입니다 . 그리고 이것이 제대로 된 인간의 실상을 발견한 것입니다 .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실상이 어느 정도로 하나님 앞에서 처참한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 이런 자들에게 최고의 위로와 기쁨과 감사가 바로 내가 너의 죄를 사하겠노라 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이사야 선지자의 입술에 제단 숯불을 대시면서 내 죄가 사하여 졌다는 선포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인하여 정죄함이 없다는 소식보다 더한 소식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인간의 실상이 들추어내지는 것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 인간의 가능성을 왜 무시하느냐는 것입니다 . 그래도 인간의 순수성이 있지 않는가 하면서 반발을 하는 것입니다 . 완벽하지는 않아도 최선을 다하는 것은 봐주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 어떻게 90 점과 10 점을 같이 볼 수가 있겠느냐고 항변을 하는 것입니다 . 그러나 방금 함께 살펴 본 성경의 인물들은 순수하지 않았겠습니까 ? 최선을 다하지 않았겠습니까 ? 누구보다 순수하고 누구보다 열심을 내고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 그러나 정작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의 그들의 탄식과 고백은 화로다 나여 망하였도다 .” 라는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

 

2. 형벌과 행복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로마서 말씀을 보면서 과연 이러한 탄식이 나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이 말씀하시려고 하는 인간의 죄가 어떠한지를 보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다고 하니 그러면 죄를 마음껏 지어도 되겠네 , 하는 반발까지 나오는 모습을 보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 혹이라도 만약에 지금까지 로마서 말씀 가운데서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다면 그런 분들은 로마서를 처음부터 다시 보아야 할 것입니다 . 인간의 실상에 대해 율법이 가입함으로 죄가 무엇인지를 드러내고 죄 아래 가두어 버린 것입니다 .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탈출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 어느 누구도 스스로 선하거나 최선을 다하거나 해서 의롭다 함을 받을 인간이 없는 것입니다 . 그래서 로마서 3 장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 3:19) 고 말씀합니다 . 모든 입을 막아 버리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게 하신 것입니다 . 이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아래 , 하나님의 진노와 정죄아래 있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세상에서 건짐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 그런데도 우리들은 세상에서 건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과 함께 영원하기를 꿈꾸며 사는 것입니다 . 이런 세상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과 정죄가 무엇입니까 ? 영원히 꺼지지 아니하는 지옥 불을 준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 그리고 예수님께서 지옥에 대하여 마가복음 9 장에 보면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 9:48-49) 고 말씀합니다 . 또 누가복음 16 장에 등장하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도 지옥의 고통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 단지 이 땅에서 살 때만 벌 받지 않고 살다가 죽으면 그만 이라는 식이 아닌 것입니다 . 하나님의 정죄는 사람의 죽음으로도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 죽으면 다시 살려내셔서 심판을 하시는 것입니다 . 이것이 정죄입니다 . 죄가 크고 작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 어떤 죄라도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 그 사망이란 단지 죽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지옥의 형벌인 둘째 사망으로 가는 것입니다 . 로마서 3 장을 다시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 3:19-27) 고 말씀합니다 . 그러므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인 것입니다 . 그리고 이것을 받은 자의 행복에 대하여 로마서 4 장에 보면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 4:1-8) 고 말씀합니다 .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입니다 . 이것이 복입니다 . 만약에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하면 그 사람이 세상의 어떤 영광을 다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그것은 정죄아래 심판아래 있기에 영원한 지옥형벌이 최종 정죄로 나타날 것입니다 . 그러므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우리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일한 것이 없이 그저 받아야만 할 정도로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 그렇기에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은 은혜가 엄청난 것이며 대단한 것임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

 

3. 그리스도 예수 안

이제 오늘 본문인 로마서 8 장 보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 8:1) 라고 말씀합니다 . 이제 이 소식이 정말 기쁜 소식으로 들리십니까 ? 그렇다면 이제 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정죄함이 없는가를 보아야 할 것입니다 . 이제는 정죄가 없다는 기쁜 소식이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지게 되었는가를 알라는 것입니다 . 그래야 자기 자랑이나 자기 구원으로 마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아들의 희생의 공로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기 때문입니다 . 2 절에 보면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 8:2) 고 합니다 . 여기 이는 이라는 말은 앞에 1 절에서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결코 정죄함이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 이것은 로마서를 지금까지 보면서 계속 다루어 왔습니다 . 인간은 결코 독립적이지 못하다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 죄와 사망이 왕 노릇을 하든지 아니면 은혜와 생명이 왕 노릇하든지 둘 중에 하나라고 하였습니다 .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는 모든 인간은 죄와 사망이 왕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 스스로 빠져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 이 죄와 사망을 이기신 분이 와야 해방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 그런데 예수님께서 죄와 사망을 자신의 십자가와 부활로 승리하셔서 해방시키신 것입니다 .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는 것입니다 . 소속이 달라진 것입니다 . 죄와 사망의 소속에서 의와 생명의 소속으로 바뀐 것입니다 . 우리의 힘과 공로로가 아닌 오직 주로만 되어진 것입니다 . 그래서 3 절에 보면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 8:3) 라고 합니다 . 율법을 다 지키면 생명을 얻는 길인데 우리의 육신이 연약하여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 그러니 살리게 될 율법이 오히려 사망의 법이 되고 말았습니다 . 우리의 연약함과 죄가 율법이 투입되고 나니 여실히 드러난 것입니다 . 그러므로 어느 인간도 율법을 지켜 , 즉 자기 선행이나 자기 의로운 행위로 인하여 구원 얻을 자가 없고 오직 정죄만이 기다리고 있는 현실에서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 그러면 사람은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그 하나님의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 바로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그 육신에 죄를 정하사 십자가를 지게 하신 것입니다 . 그리고 육신 ( 육신의 원리 ) 을 좇지 않고 그 영 ( 복음과 은혜 ) 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 율법의 요구는 다 지키면 생명이지만 다 지키지 못하면 정죄입니다 . 그런데 그 율법의 요구 두 가지 다를 예수님의 십자가로 이루신 것입니다 . 죄 없으신 분이 정죄를 받으신 것입니다 . 그리고 율법을 다 이루셨고 우리의 의가 되신 것입니다 . 오직 이 길만이 하나님이 하신 정죄함이 없는 길인 것입니다 . 우리의 율법의 행위로가 아닌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로 이루신 것입니다 . 우리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베푸시는 은혜로 정죄함이 없는 구원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 우리는 그 은혜 안에 거하며 , 그 은혜를 좇아 행합니다 . 그렇게 주의 은혜 안에 거하며 , 그 은혜를 좇아 행하는 예수 믿는 자를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시며 또 그러한 삶의 모습의 모든 영광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돌려지는 것입니다 . 이 일에 우리가 긍휼의 그릇으로 택함을 입은 것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 과거도 현재도 장래도 정죄가 없습니다 . 환난이라 핍박이나 곤고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나 죽음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정죄가 아닙니다 . 그 사랑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 그러니 이 정죄함 없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 또 그 소망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 그리하면 영광의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기뻐하사 아름다운 응답으로 우리 모두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결코 정죄함이 없는 삶을 온전히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 이 은혜가 예원가족들 가운데 매일 매순간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 말씀 복습하기 )

1 . 허물과 죄로 죽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 되어 있는 자의 모습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성경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

2 . 바울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말씀이 기쁨이 되는 까 닭은 무엇입니까 ?

3. 하나님을 만난 인간의 모습은 어떠하며 , 그런 내용에 대해 인간의 반발 이유는 무엇입니까 ?

4. 율법으로 말미암아 드러난 세상과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어떻게 다릅니까 ?

5.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금까지 들은 로마서를 통하여 무엇을 깨닫고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까 ?

6.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

7. 살리게 될 율법이 오히려 사망의 법이 되고 말았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

8. 하나님이 우리 위해 하신 일이 무엇이며 또 그 일이 우리 가운데 어떻게 적용이 되는 것입니까 ?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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