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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

본문 / 8: 5- 8

 

 

1. 어리석은 구분

오늘 본문 6절에 보면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8:6)고 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결국 육신의 일로 연결이 됩니다. 그리고 육신의 생각으로 행한 모든 육신의 일들이 결국은 사망으로 결론이 납니다. 그러나 영의 생각은 영의 일로 연결이 되고 그 결국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망으로 결론이 나는 육신의 생각과 생명으로 결론이 나는 영의 생각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할 때 하나님 세상의 일만 하다가 오늘 교회에 왔습니다.’라고 기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시 말해 세상의 일을 육신의 일로 보고, 교회의 일을 영의 일로 보기에 그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먹고 살기 바쁘게 산 것이 육신의 일이고, 교회 와서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은 영의 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와서 행하는 일도 얼마든지 육신의 일과 육신의 생각이 될 수가 있음을 기억하셔야만 합니다. 성경 두 곳만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골로새서 3장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3:1-6)고 말씀합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지 말라고 합니다. 교회 와서도 탐심을 가지고 땅의 것을 찾으면 그것이 우상 숭배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왔다고 해서 안심할 일이 아니라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육신의 생각은 사망입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것입니다. 위엣 것을 찾는 다는 것은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들은 위엣 것을 찾으라는 권면이 은혜로 들리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에도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5-17)고 말씀합니다. 여기 말씀에 보면 육신의 정욕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이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로 모여서 탐심을 따라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고 구하고 있다면 그것은 교회 안에서 육신의 생각과 육신의 일인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의 일은 육신의 일이고, 교회서 하는 일은 영적인 일이라고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육신이 되었다 또는 육체가 되었다는 말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까? 오늘 말씀에서는 육신의 생각과 일이란 사망에 이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기에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 육신에 속한 자로서는 그 어떤 생각과 행위로도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사망에 이르는 길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2. 육신의 생각과 일

이렇게 인간이 하나님이 원수가 된 육신에 속한 자가 되어 살아가게 된 것은 아담의 범죄이후 부터입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생령이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호흡, 하나님의 숨결이 들어 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인간이 범죄 함으로 인하여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죽게 된 것입니다. 그 죽음이 바로 육신이 된 것입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처럼 빠르든 늦든 간에 다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육신이라는 말의 의미는 타락한 후의 모든 인간이 땅의 형상인 아담의 형상으로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것을 말씀합니다. 땅에 속한 것이 전부인양 오직 그것만 구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육신에 속한 인생의 실상인 것입니다. 이 육신에 속하였다는 것은 아담아래 속한 것이며, 죄와 사망의 권세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하나님을 거역하여 불순종하며 하나님을 원수처럼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와 사망의 왕 노릇하는 세상에서는 자신들이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 있고 자신의 생각과 행위가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에 보면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4:3-4)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가려서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범죄 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 죽음을 벗어나지 못하는 아담의 형상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입는 것은 참된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데, 마귀가 하는 일이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이러한 자신들의 실상을 모르고 마귀에게 속고 있기에 그런 인간들 스스로가 자기들의 생각과 행위를 가지고 무엇이나 가능하다고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육을 시키고, 과학을 발전시키고, 최종적으로 사망조차 정복하고자 하는 야심에 찬 생각을 행위에 옮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나 인간의 욕망이 사람이 사는 모든 영역을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생각과 일이란 것이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육신에 속한 일이라고 해서 돈만 사랑하고, 세상만 사랑하고, 악하고 방탕한 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상하고 우아한 일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문학과 예술을 접하면서 감동도 받고 눈물도 흘립니다.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인간의 최고의 가르침이 종교입니다. 그러한 종교에서의 최고의 가르침인 절제와 금욕과 율법의 행함과 지킴조차 육신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니 보통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 같이 보인 것입니다. 그렇게 찾아 온 니고데모를 성경은 율법의 선생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얼마나 잘 알면 율법의 선생이었겠습니까? 유대인들을 태어나면서부터 가정과 회당에서 철저한 율법의 교육을 받습니다. 그러한 유대인들이기에 기본적으로 가진 율법의 실력은 엄청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유대인들의 선생이라면 더 얼마나 특별한 율법의 선생이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니고데모를 향하여 예수님은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3:6)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3:10)는 말씀까지 하십니다. 한마디로 아무리 이스라엘의 율법 선생이라 할지라도 육으로 난 자는 하늘 이야기를 듣고자 해도 들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육신과 영의 차이입니다. 인간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건널 수 없는 육신 생각과 영의 생각 사이에 있는 구렁텅이인 것입니다. 이것이 선악과를 따 먹고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자 한 인간의 한계요 육신인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일이요, 육신에 속한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일이란 하나님 없이 하나님처럼 살고자하는 모든 인간의 시도들이 다 육신의 일인 것입니다. 이러한 육신의 일이란 곧 사람의 일이며 사람의 일이란 곧 마귀의 일입니다. 사람이 선하고 아름답다고 하는 일조차 예수님의 십자가를 알고 믿지 못하면 마귀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6:21-24)고 말씀합니다. 제자가 스승이 죽는다는 자리에 함께 죽겠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의리 있고 멋있는 일입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이해 못하는 베드로에게 사단이라고 한 것입니다. 바로 앞에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는 고백을 인하여 복이 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고백조차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베드로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베드로가 스승을 대신하여 자기가 죽겠다고 하는 그런 의리와 엄청난 각오까지도 사람의 일이며, 사단이 일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십자가를 사람들은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 또는 속 썩이는 자식을 십자가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그러한 것을 십자가라고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베드로를 향하여 예수님께서 자기를 부인하고 따르라는 말씀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위하여 죽기까지 배신하지 않겠다는 그 결단과 결심을 부인하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위하여 죽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셔야 베드로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길을 막고 있으니 사단아 물러가라는 것입니다. 결국 베드로가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을 맹세하고 저주하면서 부인합니다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인하지 않으셨기에 다시 찾아오시고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이것이 영의 생각이며 영의 일인 것입니다.

 

3. 영의 생각과 일

다시 오늘 로마서 본문의 말씀을 보시면 육신의 생각과 일은 사망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러나 영의 생각과 일은 생명과 평안에 이르게 합니다. 육신의 일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11:6)라고 합니다. 또한 로마서 14장에도 보면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14:23)고 합니다. 그렇기에 결국 육신의 생각과 일은 바로 예수님의 하신 일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만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능성과 능력만을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이것이 아주 당연한 육신의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나서도 계속하여 이러한 유혹과 시험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서 8장에 보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8:1)라고 말씀합니다. 정죄가 없습니다.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의 일이란 자기를 믿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영의 일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부족과 무능을 아는 것이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오직 주의 성령이 임하여야만 되는 일입니다. 그렇게 성령이 임하여 일어나는 영의 일이란 바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육신의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생각이 늘 나지만 그것이 육신의 생각인줄 알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란 생명이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참된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생각을 하지 않고 영의 생각을 한다는 것은 사람으로 불가능한 일인데 우리가 영의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참으로 주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영의 생각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6:29)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어떠한 질문에 대하여 이런 말씀을 주신 것입니까? 오병이어 기적이후에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썩지 아니하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양식은 예수님께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6:28)라고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우리 주님의 대답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6:29)고 하신 것입니다. 이 일이 영의 생각이며 영의 일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처럼 육신의 생각이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자기의 능력을 믿고 사는 것이 육신의 생각이며 그리고 그 결국이 사망입니다. 그러므로 영의 일이란 예수님을 믿는 것이며 그리고 그 결국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그러나 이것조차 우리의 노력과 열심히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이 믿음조차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기에 그 은혜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의 생명과 평안도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맛보며 매일 매일을 살아가는 예원가족들 되시어서 모든 범사가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영의 생각과 영의 일로만 나타나고 선포되어 지는 복된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우리가 생각하는 육신의 일과 영의 일은 무엇입니까?

2. 우리가 교회 안에서도 육신의 생각과 육신의 일을 행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3. 아담의 범죄 이후에 하나님의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4. 마귀가 하는 일이 무엇이며 또 그에게 속고 사는 인간이 하는 일들은 무엇입니까?

5. 율법 선생인 니고데모를 통하여 알 수 있는 육신에 속한 인간의 한계는 무엇입니까?

6. 베드로를 통하여 보는 육의 일과 영의 일은 무엇입니까?

7. 성경이 말씀하는 육신의 일과 영의 일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8. 참 회개는 무엇이며 또 하나님의 일이란 결국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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