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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그리스도의 사람

본문 / 8: 9-11

 

1. 하나님의 영 , 그리스도의 영

우리는 지난주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는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 육신의 생각으로는 육신의 일이 나오고 , 영의 생각으로는 영의 일이 나오는 것입니다 . 그런데 우리는 육신의 생각과 육신의 일이 세상을 사랑하고 음란하고 방탕하여 누가 보아도 죄라고 하는 그런 것들만이 육신의 생각과 일이 아니라 , 가장 윤리적이고 도덕적이며 숭고한 종교적인 모습에서도 얼마든지 육신의 생각과 일이 있다는 것을 니고데모와 베드로를 통하여 보았습니다 .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예수를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무엇으로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 일요일 날 교회를 간다는 것 아니 좀 더 열심인 사람은 수요일과 금요일 기도회도 빠지지 않고 간다는 것으로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 아니면 좀 더 나아가 헌금도 하고 , 교회에서 많은 봉사를 한다고 해서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모습을 보고서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 오늘 본문 9 절을 보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 8:9) 고 말씀합니다 . 우리가 육신에 있는지 아니면 영에 있는지의 기준이 무엇에 달린 것이라고 합니까 ? 인간의 생각과 인간의 행위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이 그 사람에게 있으면 영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 이 말씀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보고자 합니다 . 그것은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에 대한 것과 또 하나는 과연 이 영이 사람의 행위로 선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 먼저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을 왜 함께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 하나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이 같은 영입니까 ? 아니면 다른 영입니까 ? 사도행전 2 장에 보면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 2:33) 고 말씀합니다 . 이 말씀은 오순절 날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자 사람들이 술에 취하였다고 하는 말에 대하여 베드로 사도가 한 변론입니다 . 하나님께서 말세에 부어주시기로 약속하신 영을 보내주신 것이라고 합니다 . 요엘 선지자와 다윗의 시편을 인용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여서 이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입니다 . 그 높아지신 자리에서 성령을 보내시는 것이 아버지로부터 받아서 예수님께서 부어주시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영 또는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하는 것은 같은 영인 것입니다 . 그러면 이 영 , 즉 그리스도의 영을 받는 것이 과연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 다시 말해 육신으로 되는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 우리가 그동안 요한복음과 사도행전 또 로마서를 통하여 보아 온 내용은 결코 인간의 육신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 물론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만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 인간의 혈통이나 육신이나 사람의 뜻으로 되지 아니하는 것임을 보았습니다 . 육은 육이요 영은 영인 것입니다 . 그러므로 육신의 생각과 일이란 결국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 그러면 우리가 육신에 속하여 사망을 선택하였기에 그 결과로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까 ? 아닙니다 .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죄와 사망의 권세아래 태어난 것이기에 내가 선택하지 아니하였음에도 태어나는 순간부터 육신에 속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 그 육신에서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육이 영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성경에서 증거 하는 인간의 실상인 것입니다 . 그러나 마귀는 여전히 인간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 최선을 다하라고 부추깁니다 . 조금만 더 노력하면 너도 스스로 신이 될 수가 있다고 합니다 . 신의 능력이 인간 속에 잠재되어 있는데 그 능력을 개발만하면 얼마든지 위대한 신이 될 수 있다고 하는 에덴에서의 그 최초의 유혹을 지금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 . 광명의 천사로 위장하여서 가장 그럴듯한 말과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을 가지고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뜻 인양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이러한 현실에서 인간이 스스로 예수님을 모셔서 그 영을 소유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

 

2. 영에 속한 자

그러면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육신에 속한 인간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시는 것이겠습니까 ?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인 것입니다 . 허물과 죄로 죽어 있기에 자신이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단절되어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것이 인간의 실상입니다 .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이 하나님의 영이 필요한 존재라는 그 인식조차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 그러므로 육과 영 사이에서 하나는 버리고 또 하나는 택한다고 하는 그런 선택하는 가능성이 우리에게는 없다는 것입니다 . 어떤 사람을 영에 속한 사람이라고 정하여 놓고서 그 사람을 본받으라고 해서 영의 사람이 되는 것도 결코 아니며 또한 가르친다고 해서 영의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 그리고 종교적인 행위인 기도하고 금식한다고 해서 영의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 오직 창세전에 예정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때가 되어 주의 영이 부어짐으로 인하여 영에 속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 그러면 내 안에 영이 거하는지 아니하는지 정말 알지를 못하는 것입니까 ?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 오늘 본문 뒤에 있는 15 절에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 8:15) 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양자의 영 , 즉 영이 임하시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 . 여기서 부른다는 것은 그냥 하나님 아버지하고서 부른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아들이 영이 임하여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신 것처럼 그 아버지를 부른다는 것입니다 . 예수님이 부르신 아버지는 어떤 아버지이십니까 ?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매다시는 아버지입니다 . 우리가 아버지를 부를 때처럼 그저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주시는 아버지가 아니라 거룩한 아버지시며 또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아버지인 것입니다 . 또한 고린도전서 12 장에도 보면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 고전 12:3) 고 말씀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시인하는 자는 성령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 예수를 주라고 시인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 그리고 그렇게 부른다는 것은 내가 주인이 아니고 나는 종이라는 뜻이며 , 내가 종이라는 것은 나의 주권은 없다는 것입니다 . 살고 죽는 것이 나의 손에 있지 아니함이며 , 일어서고 넘어짐이 나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며 , 높아지고 낮아지는 것도 나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 주인이 주면 먹고 주지 않으면 굶고 죽도록 충성하고서도 무익한 종이라고 하는 자가 예수님을 주로 믿는 자인 것입니다 . 이렇게 말씀 드리면 우리 안에 또다시 어떤 마음이 듭니까 ? 그래 이제 알았으니 이제부터 내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야지 죽도록 충성하고서도 무익한 종이라고 해야지 , 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영의 사람입니까 ? 아닙니다 . 그렇게 자기가 주체적으로 무엇을 행함으로 영의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바로 육신에 속한 생각이며 사망으로 가는 길이며 내가 살아 있는 것입니다 . 그러면 도대체 영에 속한 사람이란 무엇입니까 ? 오늘 본문 10 절을 보면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 8:10) 고 말씀합니다 . 몸은 장차 죽을 몸입니다 . 그런데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시면 지금 몸이 죄로 인하여 죽은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 . 자기의 육신에 선한 것이 없음을 아는 것입니다 . 자기의 행위가 죽은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 . 베드로를 향하여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이 너는 죽었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 예수님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겠다는 그 생각이 사람의 일이고 마귀의 일이었습니다 . 그런 생각이 또 그런 사람의 일이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면 더 이상 자신의 행위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 죽은 자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 죄로 인하여 죽은 것입니다 . 그러나 영을 인하여 산 것입니다 . 그렇게 영으로 산 자는 자신이 죽은 자임을 아는 사람인 것입니다 . 사도행전 3 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가다가 성전 미문 입구에서 날 때부터 지체 장애가 있어 구걸하는 사람을 일으키는 사건이 있습니다 . 이 사람은 자기가 일어나리라는 생각을 하지도 못하고 그저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돈이나 한 푼 얻으려고 하였을 뿐입니다 . 그런데 이 사람을 향하여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 3:6) 고 하니 그 사람이 벌떡 일어나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한 것입니다 . 이때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주목하여 봅니다 . 그때 베드로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 3:12) 고 하면서 이 일은 자신들의 경건이나 권능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이 이 사람을 일어나게 하였다고 말합니다 . 이것이 자신은 죽은 자요 영이 임하여 산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 바울의 경우는 자기가 살았다고 여길 때는 예수님을 배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고 나니 자신은 죽고 주님이 살아있는 것입니다 . 자기가 죽었다는 것은 자기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 자기를 믿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 그런 바울이기에 갈라디아서 2 장에 보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2:20) 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 이런 것들을 과연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공식으로 풀 수가 있는 것이겠습니까 ? 결코 그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 어떻게 한 사람 안에 죽음과 삶이 공존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 방금 죽었다고 하고서는 또 육체 안에서 산다고 합니다 .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 이것이 바로 성령이 임하고 난 이후의 인간의 모습입니다 . 성령이 임하기 전에는 자기가 살아 있습니다 . 믿는 것도 자기가 믿는다고 하고 , 선택도 자기가 한다고 생각하고 사는 것입니다 . 그러나 주의 영이 임하고 나면 자기가 하는 일이라는 것이 죽음의 일임을 아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자기는 죽은 자로 여기고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자기가 죽었다는 말입니다 . 자기를 믿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 그래서 고린도후서 3 장에 보면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 같은 확신이 있으니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것이니라 ”( 고후 3:4-6) 고 말씀합니다 . 여기 5 절에 보면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 고후 3:5) 라고 말씀합니다 . 사람은 어떤 좋은 일이 생기면 그 만족스러운 결과에 대하여 그 원인을 사람에게서 찾습니다 . 그렇게 자신의 정성과 헌신으로 무엇이 이루어진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사람인 것입니다 . 그러나 영이 임한 사람은 그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께로 온 것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 그러므로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 율법은 죽이는 것입니다 . 그러나 영은 살리는 것입니다 .

 

3. 살리심

그러면 어떻게 살리시는 것입니까 ? 오늘 본문 11 절을 보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 8:11) 고 말씀합니다 . 예수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그 살리신분이 그 영으로 인하여 죽을 몸도 살리실 것이라고 합니다 . 부활도 우리의 육신의 일이 아닙니다 . 우리의 육신의 노력으로 부활에 이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 죽은 것에서는 죽은 것만 나오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야 그 영으로 죽을 몸도 살리시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을 것이며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것입니다 . 그것이 육신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의 영이 임함으로 되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주의 영이 임하여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 사람은 더 이상 자기 자신에게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 이미 죽은 자에게서 무엇을 기대하겠습니까 ? 그렇게 기대하지도 않기에 실망도 하지 않습니다 . 죽은 자에게 무슨 실망할 것이 있겠습니까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죽은 자이기에 세상의 성공과 실패가 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 성공하였다고 폼 잡을 일도 아니고 실패 하였다고 주눅들 일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 그런 사람들에게 만족은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살든지 죽든지 우리가 주님의 소유가 된 것으로 감사할 뿐인 것입니다 .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

기독교 신앙은 내가 잘해서 복 받는 것이 아니고 내가 잘못해서 저주 받는 것이 아닙니다 . 예수님께서 잘해서 우리가 복을 받아 누리는 것이고 , 예수님께서 대신 저주를 받으심으로 우리가 저주를 받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것은 이제 자기를 믿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람인 것입니다 . 그리고 이런 사람이 곧 영에 속한 사람인 것입니다 . 우리 모두가 이미도 이런 자가 되게 하셨으니 이 믿음의 통치에서 벗어나지 아니하고 오직 감사와 찬양을 허락하신 한 분 하나님께 돌려 드리며 사는 예원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 말씀 복습하기 )

1 . 우리가 육신에 거하는지 영에 거하는지는 무엇에 달린 것이라고 합니까 ?

2 . 성경이 말씀하는 인간의 실상과 또 그런 인간 가운데 마귀의 속임수는 무엇이라 합니까 ?

3. 아담의 후손인 우리가 어떻게 영의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까 ?

4. 우리가 영에 속한 자라는 것이 어떻게 분별이 된다고 합니까 ?

5. 내가 살아 있다는 것과 죽었다는 것을 무엇으로 분별할 수 있는 것입니까 ?

6. 성령이 임하고 난 이후의 인간의 모습이 어떠하다고 합니까 ?

7.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가 기대도 실망도 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

8. 오늘 말씀의 결론에서 기독교 신앙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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