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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본문 / 8:12-14

 

1. 권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죽어 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하루를 죽어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죽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 자기를 살려보려고 애를 쓰게 마련입니다. 죽고 싶다고 말하는 것도 사실은 지금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자기표현임과 동시에 자기 원하는 대로 멋있게 살고 싶다는 뜻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살고 싶어 한다고 해도 인간은 죽음을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기를 살릴 수가 없는 인간들의 이러한 한계를 로마서 6장에서는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6:6)라고 하여 죄의 몸으로 말하고 있으며, 로마서 7장에서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4)고 하여 사망의 몸이라고도 하고 있으며 또 지난주에 함께 나누었던 로마서 8장에서는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8:11)고 하여 죽을 몸으로 말씀합니다. 인간들의 이런 몸에서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선한 것이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 죄의 몸, 사망의 몸, 죽을 몸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어느 한구석도 곱게 봐줄 수 없는 악하고 더러운 상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을 개발하시고 변화시켜 가시지 않습니다. 악하고 더러운 존재가 변화되고 개발되어봐야 여전히 악하고 더러운 존재로 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재창조하시는 것입니다. 즉 재창조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지 고쳐서 재활용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화 되어 간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성화라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재활용하겠다는 것입니다. 버리는 것이 아니라 고쳐서 쓰는 것이 성화입니다. 신자가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에는 신자에게 함께 하신 성령을 통해서 점차 거룩하게 완성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화의 단계에 있는 신자는 갈수록 죄를 이겨가게 되고 점차 영광된 상태로 변해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영접한 신자가 해야 할 일은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 대해서 오해하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살리는 것은 영이요 육은 무익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아무리 몸의 행실을 죽인다고 해도 여전히 죄 아래 있는 몸입니다. 뭔가 변화된 흔적이 보인다고 해도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며 자신의 의지에 의한 절제의 모습이지 거룩과 영광의 흔적은 아닙니다. 즉 변화된 모습이 보인다고 해서 죽은 자에서 산 자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육신 된 인간은 믿음으로 인해서 점차 가치 있고 거룩한 존재로 발전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죽어야 하고 사라져야 할 흙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간이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이 있다면 그것은 성령의 사역으로 인해서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성화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리는 것입니까? 다시 지난주 말씀을 잠깐 보면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8:10-11)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죽어야 할 육신에 성령이 오심으로서 죽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즉 죽었던 육신이 그대로 살아나는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 아래 있는 몸은 사라지지만 성령이 죽을 몸에 오심으로서 미래에 나타날 하늘 모습을 미리 나타내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성화 되어야 하는 부분은 없습니다. 다만 성령이 우리의 몸을 하늘 모습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사용하시는 것만 있을 뿐입니다. 인간이 성화됨으로 거룩하게 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이루신 거룩이 우리를 거룩 되게 하기 때문에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것으로 이미 거룩된 신분인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의 일로 우리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영이 임하여 그 영으로 인하여 살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8:12)고 말씀합니다. 여기 그러므로는 바로 앞의 말씀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에게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를 형제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빚진 자라고 하지만 육체에 빚을 진 것은 아니기에 우리는 육체를 따라 살 의무는 없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빚진 자라고 하는 것은, 전에는 죄의 종이고 죄가 왕 노릇하는 자였으나 이제는 그 죄에 대하여 죽은 자이기에 더 이상 죄에게 빚진 자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본문을 새 번역 성경으로 보면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육신을 따라 살도록, 육신에 빚을 진 사람이 아닙니다.”(8:12 / 표준새번역)라고 번역합니다. 육신에 빚을 진 사람이 아니기에 더 이상 육신을 따라 살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의 빚을 다 해결하신 것입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해방한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정죄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위에서 말한 죄의 몸을, 사망의 몸을, 죽을 몸을 가지고 있기에 몸의 행실, 즉 육신의 행실이 나오는 것입니다.

 

 

2. 육체의 일, 성령의 일

그래서 오늘 본문 13절에 보면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8:13)라고 합니다. 몸의 행실을 따라 살지 말고 몸의 행실을 죽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육체를 따라 살면 죽을 것이지만, 성령의 힘으로 육체의 악한 행실을 죽이면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몸의 행실을 죽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합니다. 우리가 지난주에도 보았습니다만 육신의 생각과 육신의 일이란 것이 다만 악하고 더럽고 추한 일들만이 아닙니다. 인간들이 보기에 그렇게 악하고 더럽고 추한 것들을 금욕적으로 피하고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애를 써 왔는지 모릅니다. 흔히 성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일생을 보면 그야 말로 초인적인 금욕생활을 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땅과 떨어지기 위하여 높은 곳으로 찾아 가거나, 사막으로 들어가서 수도원 생활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기둥을 세워서 그 위에 올라가서 수도를 하는 주상성자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가고자 더 높이 세우는 것이 인간의 실상입니다. 누가 더 괜찮은 사람인가를 경쟁하듯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스스로 금욕적인 고행을 한다고 해서 육체 좇는 것을 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이 바로 육체의 일인 것입니다.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2장에 보면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2:20-23)고 말씀합니다. 금욕적인 모습이 지혜로워 보이지만 그러나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육체를 좇지 않고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일 수 있는 것입니까? 다시 골로새서 그 앞의 말씀을 보면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2:8-19)고 말씀합니다.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은 철학과 사람의 유전과 가르침이나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법조문으로 쓴 증서, 즉 율법으로도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십자가로 승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드는 것이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길입니다. 우리 몸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지 아니하면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체를 좇아 사는가 아니면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서 사는가가 어떻게 드러나는가 하면 육체를 따라 살면 틀림없이 자기의 자랑이 나오게 되며, 헛된 영광을 추구하게 됩니다. 사람들에게 겉으로는 겸손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자기 속으로는 얼마든지 멋있는 자기 모습에 희열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는 자는 자신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나오지 않고 그러한 육신의 일이 나올까 두렵고 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2장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1-5)고 말씀합니다. 바울사도가 두렵고 떤 이유는 자신의 전도가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않게 하려고 두렵고 떨었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만 알기로 하였다는 것은, 바울의 전도와 수고와 희생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으로 인도를 받는 자는 틀림없이 자기를 부인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의 인도를 받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인간이 스스로 몸의 행실을 죽일 수는 없습니다. 이것을 잘 아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행실을 죽이는 주도적인 역할은 인간에게 있고 성령은 단지 인간에게 사용되어지는 도구로 전락되어 버린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 편에서 성령을 받아 가지고 몸의 행실을 죽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는 말씀은 성령을 줄 테니까 그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라는 뜻이 아니라, 성령이 함께 한 자는 성령으로 인해서 몸의 행실을 죽이는 모습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을 통해서 그가 바로 산 자이며 하나님의 아들임이 증명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증상이 그렇게 드러난다는 것이며, 그런 자가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8:14)고 말씀합니다. 또 본문 앞에 있는 9절에서도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8:9)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영으로 인도함 받는 자이며, 그리스도의 사람은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자로서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성령이 있는 자는 성령의 능력으로 인해서 자연히 육이 아닌 영에 있는 모습을 나타내게 되어 있으며 이것을 가리켜서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인다고 말한 것입니다. 즉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은 성령의 능력이며, 성령의 일인 것이지 우리가 해야 할 일로 부여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아들

이렇게 말씀을 나누면, 그럼 우리는 몸의 행실을 죽이려고 할 필요도 없이 그냥 가만히 있으라는 말인가? 모든 것을 성령에게 맡기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겨야 할 문제이지만 성화는 전적으로 인간이 해야 할 부분이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은 성령의 일이지 우리의 일이 아니라는 것은, 성령의 일이니까 우리가 몸의 행실을 죽이지 못해도 우리 책임은 아니라고 하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는 그 능력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인간이 성령의 능력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 인간을 활용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성령이 임한 자에게서는 필히 몸의 행실, 즉 육신을 죽이는 모습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성령의 생각으로 살아갈 것이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성령의 생각에 지배당하고 살아간다면 그는 육신을 좇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영이 있는 신자는 얼마든지 몸의 행실을 죽인 모습을 나타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이 함께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으로 성령이 함께 하기에 자연스럽게 육신을 죽이는 쪽으로 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앞세우며 자기 스스로 몸의 행실을 죽이겠다고 나서는 자는 죽어야지하면서 행동에 대한 억제와 절제를 이끌어 내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이 하게 한 자는 죽어야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와 희생을 생각하게 됩니다. 즉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기에 은혜를 모독하고 무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게 되며 그것이 몸의 행실을 죽이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몸의 행실이라고 해서 나쁜 행동이나 비 신앙적인 행동을 말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몸의 행실은 하나님이 없는 모든 것을 가리켜서 하는 말입니다. 생각 하나까지도 하나님이 없이 육신을 의지하는 생각이라면 그것이 곧 몸의 행실입니다. 생각을 했다는 것은 이미 행동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세상에서 자신의 가치가 하락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실천을 억제할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음욕도 이미 간음한 것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이 없이 사는 자입니다. 육신을 의지하고 자신에게 유리하고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만 생각하고 움직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살아가게 됩니다. 모든 생각과 행동이 자기보다는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는 데 유익한 쪽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이미 몸의 행실이 영에 의해서 죽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 받고 사는 것이며, 그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성령은 우리를 죽이기 위해서 오십니다. 육신을 죽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게 하기 위해서 오십니다. 따라서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남을 무시하거나, 자신의 고집을 내세우거나, 자신을 자랑한다면 그것은 절대로 성령이 아닙니다. 성령은 오히려 그러한 것을 죽이기 위해서 오신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성령에 의해서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오직 예수님에게만 모든 가치와 의미를 두고 살게 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몸의 행실을 죽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는 언제나 자신이 사는 길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 하나님의 아들 됨을 주안에서 온전히 누림으로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돌려 드리는 예원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인간이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2. 리가 흔히 말하는 성화의 의미와 그것이 합당한 표현이 아니라고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3. 리가 육신을 따라 살 필요가 없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4. 육체의 일이 무엇이며, 그것이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되지 않는 까 닭은 무엇입니까?

5. 육체를 좇아 또는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며 사는가는 어떻게 분별이 된다고 합니까?

6.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 가운데 있을 때에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던 까닭은 무엇입니까?

7.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는 말에 대한 오해와 참 의미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8. 오늘 말씀의 결론에서 몸의 행실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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