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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우리의 연약함과 도우시는 성령님

본문 / 8:26-30

 

 

 

1. 연약함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이 강해지기를 원하고 반대로 자신의 연약함을 보이기를 싫어합니다. 약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은 감추고 강하고 볼만한 것들을 내세우기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교회를 개척하신 목사님이 교회 이름을 노회에 등록하려고 하다가 거절을 당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개척한 교회 이름을 연약교회라고 지어 등록하려고 하니까 그 이름으로는 받을 수 없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이름을 성장, 제일, 부흥, 늘 푸른 같은 이런 이름이라면 무리 없이 되었을 텐데 연약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지었으니 받아 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대기 하나를 빼고서 언약교회라고 이름을 지어 등록 신청을 하니 받아 주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우리들은 연약한 것을 거부하고 싫어합니다. 그러나 성도란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바울사도가 고린도후서 12장에 보면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고후12:5)고 말씀합니다. 자기를 위하여서는 자기의 약한 것들 외에는 자랑하지 아니하겠다고 합니다. 다른 자랑할 만한 것들은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닌 오직 주님의 은혜이기에 자기를 위하여서는 약한 것들만 자랑하겠다는 것입니다. 시편 39편에도 보면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39:4-7)라고 말씀합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또 자신의 허무함을 알고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모두가 허사임을 아는 사람이 소망을 주께 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는 무엇에 약한 것입니까? 소망에 대하여 약한 것입니다. 지난주 본문 말씀을 보면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8:24)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보이는 것이란 시간과 공간에 제한을 받는 것이기에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이 땅의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러한 소망이 이루어지기 까지 오래참고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5장에도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5:7-11)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말의 특징이 그러하듯이 우리는 보이지 아니하는 소망을 오래참고 기다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조급한 것입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봄이 되면 모내기 지원을 많이 나갔습니다. 연약하고 작은 모를 논에 심어 놓으면 시간이 지나야 뿌리를 좀 내리고 또 더 많은 시간이 지나야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날마다 가서 그 심은 모를 쳐다봐도 매일 그 상태인 것 같습니다. 농사를 짓는 농부가 아닌 사람들은 그 기간이 얼마를 기다려야 하는지를 모르기에 기다리다 지쳐 다시 들어가 모를 뽑아 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냥 좀 여유를 가지고 꾹 참고 기다리면 때가 되면 될 텐데 날마다 확인하는 바람에 뿌리가 내릴 시간도 주지 않고 뽑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이란 오래 참고 기다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무언가 조짐이 보이는 것이라면 기다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조금씩이라도 무슨 징조가 보이면 기다리겠는데 아무런 징조가 없는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예비하는 동안에 태풍이 몰려오고, 천둥 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지고, 홍수로 집과 사람들이 떠내려가고 하였다면 몇 사람은 노아의 방주에 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혀 그런 조짐이 없었습니다. 방주의 문이 닫히고 나서 7일후에 비가 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도 하늘에서 유황불이 조금씩 떨어져서 집 몇 채가 불에 탔다면 그 지경을 피할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롯의 가족이 다 나오고 나서야 불에 타버린 것입니다. 언제나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임하시는 것이기에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제대로 기다리고 대비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것까지만 하시고 그 다음에 믿고 난 후부터 주님의 재림까지는 너희 실력으로 오래 참고 기다리며 예수님을 맞이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말씀은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성취하시기까지 오직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다리라고 하시고서는 그 말씀대로 기다리기에는 우리가 너무 연약하기에 자기 백성을 도우시는 것입니다.

 

 

2, 도우심

그럼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연약한 우리를 어떻게 도우시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8:26)고 말씀 하십니다. 바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 속에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우리는 마땅히 빌어야 할 바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여야 할 것은 하지 아니하고, 하지 않아도 될 것들은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인 까닭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 기도 내용 중에 과연 눈에 보이는 것들을 빼내어 버리면 기도의 제목이 얼마나 남을 것 같습니까? 아마도 거의 기도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이 정도로 우리는 기도할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성령이 오셔서 성도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27절에 보면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8:27)고 말씀합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성령의 생각을 아십니다. 또한 성령은 하나님의 뜻을 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임하신 성령께서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내용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기에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보는 성경에는 수많은 하나님의 뜻이 나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알고 있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먼저 데살로니가전서 5장을 보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요한복음 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6:29)고 말씀 하십니다. 사실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고 있습니다만 오직 하나로 모은다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아들에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5:39)고 말씀 하셨습니다.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삽니다. 아들을 높이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성도가 어떻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겠습니까? 오늘 본문 29절에 보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8:29)고 말씀합니다.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 아들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보다는 아담의 형상을 따라 늘 썩어질 것들을 찾아 구하고자 하는 본성을 따라 살려고 하기에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 속에서 탄식하며 기도하시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기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8:34).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기도하시는 효력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성령은 우리 속에서 탄식하며 기도하시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기도하고 계시는 그 기도의 응답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기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은 우리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의 소원과 뜻이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소원이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반드시 일어나고야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연약하여 이룰 수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루어 져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무슨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결정은 무조건 선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예수님께서 육신에 되어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를 지시면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그 십자가로 다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부활승천 하신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성도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일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와 그 십자가의 완성을 죄인에게 적용시켜 완벽하게 처리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가 누리는 진정한 복인 것입니다.

 

 

3. 아름다운 성도

이 땅에서 예수님을 믿는 자로 부름 받은 우리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져서 우리가 죄인임을 알고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속죄함을 받고 보이지 아니하는 소망을 보듯이 믿고 기다리게 된 것이 성령이 임하심으로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이 장차 이루어질 일로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과거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선포가 곧 완성입니다. 없는데서 있게 하시는 말씀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9절부터 보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8:29-30)고 말씀하십니다.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시고, 미리 정하신 자를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영화롭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미 완료형인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사람의 행위가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왜 이렇게 하신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우리가 연약하였으면 모든 계획과 성취를 하나님 홀로 하셔야 하는지 납득이 되십니까? 이것을 아멘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자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성령으로 인침 받은 자인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이러한 내용들을 받을 수가 없기에 이것이 믿어진다면 그는 하나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자신의 연약과 부족을 아는 자들입니다.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는 말씀이 이제야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는 성도이기에 성도란 날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사는 것입니다. 나 혼자 서지 못함을 아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세월 지나 갈수록 주님을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음을 알고 그분을 붙들고 사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시편 73편에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73:28)고 말씀이 이해가 되어 믿어지십니까? 시편 기자의 그 앞의 고백처럼 눈에 보이는 것이 복인지 알고 또 그것이 소망인 줄 알고 하나님께 궁금한 것이 많았는데 나중에야 알게 되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긴 들었어도 여전히 긴가민가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도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73:17)고 고백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알게 될 것입니다. 주의 말씀처럼의 종말에서 지금을 바라본다면 무엇이 복이고, 무엇이 배설물인가를 분별하고 또 그 복을 알았다면 어떠한 삶을 살게 되어야 하는가도 분명해 질 것입니다. 이러한 주안에서 바른 분별을 따라 예원가족들의 모든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존귀하고 아름다운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사도 바울이 자신의 약함만을 자랑하는 까닭은 무엇 때문입니까?

2. 늘 소망에 대한 우리의 연약함은 무엇이며, 그런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조치는 무엇입니까?

3. 성령님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오늘도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4.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5.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6. 부르심을 받아 합력하여 선을 이룬 자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은 무엇입니까?

7. 하나님의 뜻대로 탄생부터 완성까지 오직 하나님이 다 성취하시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8. 주 안에서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합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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