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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이 위하시는 자를 누가 감히

본문 / 8:31-34

 

 

 

1. 연약한 증상

하나님이 허락하신 지난 한 주간을 살면서 우리의 연약함이 어떠한지를 발견하셨습니까? 우리가 자신의 연약함을 모른다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른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말씀에서 우리가 믿는다고 하면서도 얼마나 연약한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흔히 사람들이 기도라고 하면 자기의 바라고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하여 신에게 정성을 바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는 기도란 자기의 뜻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를 과연 우리가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기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우리 안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계시다고 하였습니다. 성령의 기도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데 이러한 선을 이룬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는 것이 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선인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선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은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하시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가 맏아들로서 희생함으로 다른 믿는 자들을 하나님의 양자로 편입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뜻대로 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미리 정하신 자들을 부르시고, 부르신 자들을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자들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모두가 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으로 하나님 자신의 언약을 따라 정하신대로 이루어 놓으신 일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뜻대로 되는 것입니다. 인간들 자신의 노력이나 애씀으로 구원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구원에 대해 무엇을 선택할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말씀을 드리면 두 가지 반응이 나올 수 있습니다. 감사가 나오든지 아니면 분노가 나오든지 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자란, 성령의 임재로 인하여 자신의 죄인 됨과 부족함과 연약함을 아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자기의 행위와 상관없이 부르시는 이의 뜻을 따라 된다는 것에 대하여 무한 감사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노하는 자들은 자신의 자유의지를 믿고 가능성을 믿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분노하기를 어떻게 사람이 아무것도 한 것도 없이 의롭다 함을 받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로마서 1장에서부터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인간이 어느 정도로 가능성이 없는지를 충분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죄와 사망이 왕 노릇하고 있는 상태에서 무슨 수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날 수가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주님 홀로 일하심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디도서 3장에 보면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3:4-7)고 말씀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의로운 행위로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에게서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의가 나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그의 긍휼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이 말씀에 아멘이 되십니까? 이것이 믿어지신다면 오늘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볼 때에 의롭고 영화롭게 보여 지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닐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 자신을 보면 아무리 보아도 자신이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양심의 고발을 받습니다. 네가 그런 모습으로 성도냐?’고 소리를 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주눅이 들어서 자신 있게 말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속으로는 내가 이래 가지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느니 차라라 믿지 아니한다고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죄인을 의롭다고 하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홀로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행위와 모습과 상관없이 그 아들의 피로 인하여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보혈의 공로로 인하여 단번에 거룩함을 입었고, 단번에 이루신 것을 영원하도록 확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에도 끊임없이 대적과 고발과 정죄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그러한 대적과 고발과 정죄를 할 수 없는 이유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2. 누가 대적하리요

오늘 본문 31절에 보면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8:31)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라고 하는 이 일은 그 앞에서 말씀하신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미리 아신 자들을 그들의 행위와 상관없이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의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불가항력적으로 임한 은혜이기에 이 은혜를 받은 사람은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 은혜를 받지 못한 자들은 대적할 수가 있습니다. 그들의 배후는 악한 영이기 때문에 마귀가 대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가 대적을 하여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라는 말씀이 마귀를 대적할 능력의 말씀인 것입니다. 천지만물이 다 주님의 뜻대로 창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뜻대로 유지되고 또 주님의 뜻대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감히 대적할 수가 있겠습니까? 어느 누구도 시비를 걸 수가 없습니다. 혹 우리가 부당하게 보인다고 할지라도 감히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부당한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결정과 일하심은 모든 것이 다 선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반론과 반박에도 대답할 필요가 없고, 고발과 정죄에도 무너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시고자 자기 아들을 희생시키신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3장에 보면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3:26)고 말씀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그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이시기에 오늘 본문 31절에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8:31)고 말씀합니다. 아들을 주신 것입니다. 이보다 더한 선물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자기 아들을 내어 주신 이가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아서 주시지 않는 것이 있을 뿐이지 아들을 주시기까지 하신 분이 그 일로 인하여 의롭다 함을 입은 성도로 하여금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국 우리의 최고의 상급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상이 무엇이었습니까? 창세기 15장에 보면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15:1)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안에 있으면 그것이 영생이요 상급이요 면류관이며 그 아들의 기업을 함께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상급이요 방패이기에 누구도 대적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누가 고발하리요

다시 오늘 본문 33절을 보면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8:33)라고 말씀합니다. 누가 능히 택하신 자들을 고발 할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고발은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택하신 자들을 누가 고발을 하겠습니까? 바로 율법이 우리를 고발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5장에 보면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할까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발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가 바라는 자 모세니라”(5:45)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만이 아니라 마귀도 우리를 고발할 것입니다. 마귀의 고발은 참소입니다. 헐뜯어 고발을 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욥기서 1장에 보면 마귀가 욥을 하나님 앞에 헐뜯어 고발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12장에도 보면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12:10)라고 하여 마귀가 어떠한 존재인가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신 자에게는 그 고발이 효력이 없는 것입니다. 고발자체가 요건이 성립이 되지 아니하므로 기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고발을 하는데 이미 죄인을 의롭다 하신 최고의 선언이 하나님으로부터 되었는데 고발을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소식입니까? 예전에 어느 나라에선가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 들통 났으니 빨리 몸을 피하라고 문자를 보내자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자리를 박차고 피하였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모든 불의가 다 죄입니다. 그리고 그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고발을 받아 마땅한 자들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인하여 고발자체가 성립이 되지를 아니하는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꾸만 고발하는 자를 어떻게 처리하시겠습니까? 다시 요한계시록 12장에 보면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12:7-12)고 말씀합니다. 밤낮 참소하던 마귀가 하늘에서 쫓겨난 것입니다. 지상에서 그 마지막 때가 다 된 줄 알고 활동을 하지만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더 이상 마귀의 참소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성도란 죄에 대하여 죽은 자이기에 더 이상 참소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몸의 구속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마귀의 고발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양심을 흔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의심하게 만들고 믿지 못하게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이미도 우리가 받은 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자기 아들의 피로 값을 주고 사신 주의 백성들을 누가 감히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을 뿐 아니라 혹 고발이 들어와도 기각이 될 뿐인 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입니다.

 

 

 

4. 누가 정죄하리요

우리는 앞에서 마귀가 오늘날도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함을 입은 우리를 고발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마귀는 어떤 방법으로 고발하겠습니까? 마귀는 하나님을 향하여 참소하다가 이제 하늘에서 쫓겨나버린 상태입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승리하시고 부활승천 하셔서 하늘보좌에 앉으신 것입니다. 그러니 하늘에서는 더 이상 참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마귀가 땅으로 쫓겨 와서는 우리의 양심에 정죄하는 마음을 주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를 받고 사는데도 계속하여 정죄감에 사로잡혀 살도록 마귀가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귀의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전히 결박이 될 것입니다. 영원히 무저갱에 던져지면 더 이상 성도에 대한 참소나 대적이나 정죄를 할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성도로서 이러한 마귀의 정죄를 물리칠 수 있는 근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미 우리가 앞에서 나누었던 로마서 8장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8:1)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고린도후서 5장에 보면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5:21)는 말씀에 근거합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예수님에게 정죄를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죄인인 우리가 받아야 할 정죄를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셨기에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죄가 더 이상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형편입니다. 이것은 변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우리의 느낌과 행위와는 상관없이 이미도 우리 안에 하나님이 이루신 내용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34절에 보면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8:34)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죽으실 뿐 아니라 우리를 의롭다 하기 위하여 다시 살아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지금도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대제사장으로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완벽하게 자기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감히 누가 능히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을 고발할 수 있겠으며 또 자기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셨는데 누가 정죄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우리가 이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참된 복이면 기쁨이며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우리는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어려운 일들을 봅니다. 그러나 어렵고 힘든 삶의 구체적인 현장 속에서도 대적이 없고, 고발이 없고, 정죄가 없는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우리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우리이기에 우리가 서 있는 모든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허락하신 이 놀라운 하늘의 영광을 맛보며 누리며 그래서 감사와 찬양을 넘치는 삶이 되는 예원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우리가 생각하는 기도와 성경이 말씀하는 기도는 어떻게 다른 것입니까?

2.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인간에게서 나오는 두 가지 반응과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3. 악한 마귀의 정죄와 고발과 정죄는 무엇이며 또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4. 율법과 마귀의 고발에도 그 고발이 효력이 없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5. 마귀가 우리를 고발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6. 마귀의 대적과 고발 그리고 정죄에 대하여 믿는 우리가 그것을 물리칠 수 있는 근거는 무 엇입니까?

7. 성도가 누릴 수 있는 참된 복과 기쁨과 위로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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