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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니의 뜻 앞에 무너지는 인간의 행위

본문 / 롬 9:14-18



1. 하나님의 일하심

오늘 우리가 모인 이곳을 우리는 교회라고 합니다그러면 교회란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곳인가 하는 질문을 늘 해야만 합니다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는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던 기존의 교회를 전통으로 붙들어 세움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진정으로 살아있는 교회인 그리스도의 몸을 버리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입니다마치 유대인들이 건물 성전을 붙들고 있다가 참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일과 같은 일이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그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고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과연 교회란 어떤 곳인가 하는 것입니다지난주에는 약속의 자녀가 모인 곳이 교회인데약속의 자녀란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약속에 의하여 없는데서 생긴 자녀들로서 이것이 진정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교회라고 하였습니다이렇게 나온 자녀들은 자기가 주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주인이며 메시아임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똑 같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서 나왔더라도 이스마엘은 약속의 자녀가 아니고 이삭이 약속의 자녀라는 것입니다여기서는 어머니가 다르다고 할까봐서 이삭의 자녀는 같은 배에서 나온 쌍둥이들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는 사랑하고 하나는 미워하는데 그것을 어떤 선과 악을 행하기 이전인 배속에 있을 때에 이미 정하여 버렸다고 하였습니다그래서 한 사람은 무조건 미워하고 한 사람은 무조건 사랑하는 것입니다.이 사실에 대하여 우리의 마음은 어떻습니까아멘입니까아니면 의문이나 항의가 일어납니까?물론 우리는 아멘이라고 답할 것입니다그러나 아멘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또한 우리 자신이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멘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그런데 만약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너는 지옥에 가야 마땅하기에 지옥으로 가라고 하면 그 와중에도 과연 아멘이 나오겠는가 하는 것입니다인간의 행위와 상관없이 어떻게 일방적으로 누구는 구원하고누구는 버리는 것인가 하는 일에 대하여 진심으로 아멘이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평생을 착하게 살았는데 단지 예수를 믿지 않았다는 사실로 지옥가고평생 강도짓을 하다가 사형을 당하는 순간에 예수 믿고서 천국 갔다는 이 사실이 우리들에게는 기쁜 소식으로 들려질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만약에 이러한 내용의 이야기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분노가 일어난다면 아직도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어떠한 죄인인지를 잘 모르는 것입니다그저 자기의 행위와 남의 행위를 비교할 뿐인 것입니다그러므로 이러한 내용의 이야기는 성령이 임하여 자신의 죄와 자신의 비참함을 알게 하기 까지는 인간으로서는 전혀 시인할 수 없는 내용의 이야기인 것입니다그래서 지금도 이런 이야기를 말하며 또 이런 내용들이 옳다고 여기며 믿는 자들을 세상은 미워하게 되어 있습니다갈라디아서 4장에 보면 지금 이런 내용의 말씀이 등장합니다“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기록된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노릇 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기록된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4:21-31)고 합니다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으로 따라 난 자를 그때나 지금이나 핍박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러므로 교회란 더 이상 인간의 행위가 정당화 되거나 찬송되는 자리가 아닌 모든 인간 행위의 끝이어야만 합니다온 세상은 인간의 가능성 속에서만 살아갑니다그래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적극적이고 긍정적 사고방식을 이야기 합니다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인간은 무언가 잘못 형성된 인간으로 보고 인간 세상에서 도태시켜 버리고자 하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이러한 정신의 흐름은 그 당시의 이스라엘도 또 오늘날의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예수님의 언행을 보시면 이 세상에 대하여 얼마나 비관적이며 비판적인지 모릅니다예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이 세상 자체를 몽땅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러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하나님의 나라는 아들의 나라입니다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의 공로로 만들어진 나라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뜻으로 세워질 수가 없는 나라인 것입니다그러나 교회 역사 속에서 인간들은 수많은 시도들을 해 왔습니다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이야기 한 때도 있었고신인협력설이 나온 적도 있었고인간의 가능성만 높아진 때도 있었습니다수많은 시도들이 있어왔고 지금도 그렇게 돌아가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결국은 해 아래 새것이 없는 것입니다그렇기에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것은 새롭다 할 만한 그 어떤 것도 전혀 없는 것입니다인간이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또 역사 속에서 수 없이 많은 일들과 시도들을 한다 할지라도 인간의 어떠한 아이디어와 능력과 상관없이 주님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이루어가고 계시는 것입니다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만 세우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인간의 뜻과 목적 그리고 소원의 성취를 위해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창세전에 계획하신 그 일의 완성과 성취를 위해 그리고 그 일이 그분 만으로만 이루어짐을 알게 하기 위해 일하시는 것입니다오늘 본문 앞에 11절의 말씀처럼 그 자식들이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신 다는 것입니다그리고 이러한 내용의 말씀이 진정으로 믿어지는 사람이라면 성령이 임한 사람입니다이런 사람은 인간 스스로에게서 나오는 그 어떤 선행으로는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입니다오직 부르시는 분이 세워주셔야만 구원에 이름을 아는 것입니다그리고 그런 자에게서는 더 이상의 인간의 행위가 거론될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

이제 오늘 본문을 보면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9:14-15)라고 말씀합니다하나님의 이러한 조치에 대하여 하나님께 무슨 불의가 있습니까누구는 구원하고 누구는 버리는 것이 공평하지 못한 처사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바울 사도는 그럴 수 없다고 합니다하나님께 어떻게 불의가 있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왜 그런가 하는 것을 모세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증거 하고 있는 것입니다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이 사도의 말씀의 근거가 출애굽기 33장에 보면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기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33:18-23)고 말씀합니다이 말씀의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엄청난 하나님의 기적과 능력을 맛보고서 출애굽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입니다열 가지 재앙을 보았고홍해 바다를 건너고구름기둥 불기둥의 인도를 받고 있으면서도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있는 40일 기간 중에 시내산 아래서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자기들을 구원하여 낸 신이라고 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이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멸하여 버리시겠다고 하십니다여기에 모세가 중보의 기도를 합니다그러자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겠다고 하십니다그러나 용서는 하겠지만 가나안 땅에는 함께 가지는 않겠다고 하시자 모세가 다시 하나님께 ‘그러시려거든 우리를 올려 보내지 마소서’라고 합니다이 간구도 하나님께서 들어주셔서 함께 가시겠다고 하시자 모세가 주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여기에 하나님의 영광여호와의 이름을 반포하는 내용이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겠다는 말씀입니다즉 은혜와 긍휼이라는 말씀이 주어지는 것은 진멸당하여 마땅한 상태에서 나온 말씀인 것입니다진멸당하지 아니한 이유가 주의 은혜와 긍휼이라는 것입니다진멸 당하여 마땅한 인간에게서 무슨 선한 것이 있어서 자기 행함으로 구원을 얻을 수가 있겠습니까오직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은혜를 베푸셔서 불쌍히 여겨주심만으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그런데 이러한 구원의 방식이 인간의 본성상 얼마나 거슬리는 말인지 모릅니다사람들이 열심히 사는 목적이 남들에게 업신여김 받거나 불쌍히 여김을 받지 않기 위하여 열심히 사는데 불쌍히 여김을 받아서 구원받는 것은 인간의 자존심이 허락치를 않는 것입니다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조차 불쌍히 여김을 받고 싶지 않고 당당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며인간의 자존심인 것입니다.

 

3. 하나님으로만

그래서 온갖 방법론이 다 동원되는 것입니다구원은 은혜로 받는 것이지만 상급은 행함으로 쌓는 것이라고 합니다그러나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 보면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고 말씀합니다바울사도는 자신이 그 어떤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 하였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그렇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만약 자기 행함으로 그러한 열매들이 나왔다면 나중에 하늘나라 가서 자기 공로를 주장할 것입니다그러나 은혜로 되었기에 자기 면류관을 벗어서 보좌 앞에 드릴 뿐인 것입니다(4:10-11절 참조). 그래서 오늘 본문 16절에도 보면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9:16)고 말씀하는 것입니다과연 인간의 행위가 무엇입니까무언가 원하는 바가 있으면 그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하여 달음박질해야 합니다목표를 설정해놓았다면 요행만 바라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 그 목표를 성취하여야만 합니다그리고 이것을 인간들은 성공이라고 합니다그러나 구원이란 인간이 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달음박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구원받고 싶지 아니한 인간이 어디에 있겠습니까?그러나 원해도 안 되고 울어도 안 되고 그 무슨 행위로도 구원에 이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이 자리가 바로 인간의 행위의 끝인 지점인 것입니다이 세상은 오늘도 인간의 행함으로 살아간다고 믿는 사람들이 거의 다입니다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자기 행함의 능력으로 살아간다고 믿고 있지 은혜로 살아간다고 여기지 않습니다그러므로 교회마저 인간의 행함만 가득하게 넘치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는 설 곳이 없어져 버리게 되었습니다바로 이런 세상이 강퍅한 세상인 것입니다.은혜를 모르고 사는 세상이 강퍅한 것입니다바로 그런 세상을 바울은 오늘 본문 17절에 보면“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9:17)라고 하여 바로의 강퍅함에 비추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애굽의 왕 바로가 강퍅하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시기 위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그래서 지금의 세상이 이렇게 강퍅한 것도 실상은 하나님의 은혜만을 드러내시기 위한 하나님의 조치이며 일하심인 것입니다그러나 그 강퍅함 가운데서도 모세는 긍휼의 그릇으로 택함을 입고바로는 강퍅의 그릇으로 택함을 입은 것입니다그러나 이 말씀도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세워지는 것이기에 모세도 강퍅의 그릇이 될 수도 있고바로도 긍휼의 그릇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이것보다 더한 인간 행위의 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일하심 앞에서 인간의 행위는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그래서 오늘 본문 18절에 보면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9:18)고 말씀하는 것입니다한마디로 하나님 마음대로인 것입니다그리고 그런 하나님이 하나님 마음대로 하는 일에 대하여 대어들고 싶은 인간의 본성이 죄인 것입니다하나님의 마음대로 하시는 일에 항의가 되는 것은 결국 그 항의하는 인간 자체가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다는 욕망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 앞에 누가 무릎을 꿇겠습니까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은 이 주님 앞에 또 이러한 주님의 일하심 앞에 지금 무릎을 꿇게 되는 것입니다오직 주의 긍휼이 그들로 주 앞에 엎드려지게 하는 것입니다그러나 강퍅한 자들은 끝까지 이 주님 앞에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내가 불쌍히 여김을 받고 구원받느니 차라리 지옥에 가겠다고 발악을 하는 인간들의 세상이 교회 밖의 이야기가 아니라 교회라고 모인 우리 안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시고자 하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완악하게 하시고자 하는 사람을 완악하게 하실 것입니다아무리 인간이 강퍅하고 완악하다 할지라도 긍휼히 여기는 자는 그 앞에 분명하게 아멘하며 살아갈 것입니다바로 여기에 저와 여러분이 있음을 알기에 오직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께만 존귀와 찬양과 감사를 돌려드릴 수 있는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우리가 교회가 어떤 곳인가에 대하여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야만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2세상이 성경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말씀을 받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3. 우리 주께서 이 세상 역사 가운데서 묵묵히 해 오신 일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4. 하나님의 구원을 위한 조치에 불의가 있을 수 없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5. 하나님의 구원 방법에 대하여 인간이 싫어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6. 인간이 생각하는 신앙의 삶과 바울이 말하는 신앙의 삶은 어떻게 다릅니까?

7. 인간 행위의 그 끝자리는 어디이며 또 그 까닭은 무엇입니까?

8. 인간의 죄의 본성은 무엇이며 또 인간이 그렇게 하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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