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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시온에 걸림돌을 두신 하나님

본문 / 9:30-33

 

 

1. 인간의 어리석음과 성경

요즈음 사업하는 분들이 많이 어렵다고들 합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하여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습니다. 고객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사전에 조사해서 최고의 서비스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식당을 하려면 음식의 질과 종업원의 서비스만이 아니라 분위기와 넓은 주차장까지 확보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는 어떨 것 같습니까? 예전에 인터넷 기사 중에 이런 기사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 5만여 교회가 있고, 사람들은 먹고살기 힘들어서 교회로 모이지 않으니 신도들을 모으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교회도 평범해서는 안 되고 뭔가 다른 교회보다 튀어야 산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웰빙교회, 레포츠교회 등의 이름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호응을 할 만한 교회의 이미지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사람들이 교회에 오는 일에 걸림돌이나 문턱을 없애자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기록된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9:33 )라고 하여 하나님께서 일부러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두신다고 하십니다. 너무나 이상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수많은 교회에서 말하고 있는 바대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예수 믿어 영생도 얻고 세상에서도 성공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하든지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호감을 가지고 나오도록 해야 한다는 말을 우리는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과연 성경도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지 함께 나눠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이 생명나무로 나아가는 길을 완전히 차단해 버리셨습니다. 범죄이후에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 먹지 못하도록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어 버렸고 또 생명나무로 가는 길도 천사들과 두루 도는 불 칼로 지키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인간도 스스로의 노력과 열심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얻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달음박질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만 생명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어떤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예정하신 자를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택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아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남겨진 자만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남겨두시지 않으셨다면 소돔과 고모라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남겨두신 이유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씨를 위하여 남겨진 백성들이 구약의 남겨진 자라면, 신약에서는 그 씨로 말미암아 남겨진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아 나온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자기의 자랑거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간에 남겨진 자들의 특징은 오직 그들을 부르신 주님의 긍휼과 자비만이 담겨져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치장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율법이나 다른 것들로 자신을 치장할 이유가 없이 주시는 긍휼을 입는 것이며, 주시는 의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두신 걸림돌

그렇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에 다하여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9:30-31)라고 말씀 하십니다. 의롭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살아가려면 의롭지 않고는 살아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의롭다 함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의롭다 함을 어떻게 받게 되었는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의 법인 율법을 가지고 달려간 이스라엘은 의에 이르지 못하고, 반대로 의를 따르지도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의의 법을 따라갔는데 얻지 못하였고 의를 따르지도 아니하였는데 얻었다는 것은 결국 의라는 것이 인간의 노력이나 열심 그리고 인간의 행위로는 얻어 낼 수가 없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의에 이를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인간의 행위에 나타난 공적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이 믿음조차 하나님의 선물입니다만 이스라엘은 이 은혜의 선물을 거부한 것입니다. 그 거부의 최종 모습이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을 유대인들이 거부한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의를 믿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9:32)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자기 행위에 의지한 것이 의에 이르지 못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행위의 반대말이 무엇이겠습니까? 행위의 반대말은 행위를 하지 않음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사람의 행위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행위와 대비시켜 나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행함으로 의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그 어떤 행위도 하지 않아야 의가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을 들으면 어떤 행위도 하지 아니하는 것이 무슨 의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믿음이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행하거나 행하지 않거나 간에 의라는 것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시는 분의 손에 달린 것임을 알게 하기 위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주어진 것은 인간 행위의 한계를 알게 하시고 죄 아래 가두어 버리는 것입니다. 죄 아래 가두어 버림으로 주의 긍휼만 바라보게 하는 초등교사의 역할을 하는데 오히려 율법 그 자체를 지킴으로 의에 이르고자 한 인간의 모습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행위를 의지함으로 나오게 되는 것은 결국 자기 의인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의를 세우기 위하여 사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율법 외에 따로 마련하신 하나님의 의를 배척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0장에 보면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10:3)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기록된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9:33)라는 말씀은 이사야 8장과 이사야서 28장의 말씀입니다. 먼저 이사야서 8장에 보면 그가 성소가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덫에 걸려 잡힐 것이니라”(8:14-15)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사야서 28장에도 보면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28:16)고 말씀하십니다. 이 두 곳의 말씀을 보시면, 여호와를 의지하여야 할 백성들이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헛된 것을 의지하고서는 스스로 안전하다고 여기는 자들에게 대하여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심판의 방법은 시온에 한 돌을 세우시는데 그 돌은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인데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라, 즉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한 돌을 믿어야 심판을 당하지 아니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돌이 어떤 돌입니까? 사람들이 볼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는 돌입니다. 건축자들이 쓸모없다고 버린 돌입니다. 그 돌을 믿느니 차라리 내 주먹을 믿겠다고 할 만큼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하는 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세우신 이 돌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 걸림돌이신 예수님

이런 건축자의 버린 돌에 대한 내용의 말씀이 누가복음 20장에 보면 구약의 시편 118편의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가운데 등장합니다. 그가 또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시니라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몹시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 이 종도 상하게 하고 내쫓은지라 포도원 주인이 이르되 어찌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혹 그는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20:9-19) 포도원을 잘 만들어놓고 농부들에게 세를 주었습니다. 때가 되어 세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보내자 농부들의 세를 주기는커녕 종들을 때리고 죽이고 돌로 친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에 더 많은 종들을 보냈는데도 역시 그러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자기 아들을 보냈습니다. 그러자 이 아들을 죽이면 그 포도원이 자기들 것이 될 줄 알고 이 아들마저 죽여 버린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이 포도원의 주인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악한 농부들을 진멸하고 제때에 실과를 바칠 사람들에게 다시 줄 것입니다. 그러자 이 비유의 말씀을 들었던 유대인들이 그렇게 되지 말기를 원한다고 한 것입니다. 그 진멸 받아 마땅한 자들이 자기들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만약 너희의 원하는 대로 그렇게 된다면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 어떻게 되겠느냐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자기들에게 하신 말씀인줄 알고 어떻게 하든지 예수를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보면 자기들의 죄를 지적받았으면 회개하여야 할 텐데 그들은 회개하기는커녕 예수를 죽이려고 여러 가지 책을 잡고자 질문들을 하는 것입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현장에서 간음한 여인을 모세 법에 의하면 돌로 쳐 죽여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들을 가지고 올무에 걸어 처형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예수님을 잡아서 처형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그렇게 구원자를 기다린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하나님께서 세우신 돌에 걸려 넘어진 것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보니 도저히 자기들이 소원을 이루어줄 구원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평소에 바라고 원한 메시아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병도 고치고, 기적도 행하니 자기들을 구원한 메시아인줄 알고 따라 나섰는데 갈수록 자기들의 원하는 것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상한 말만 하는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서 임금을 삼으려고 하니 피하여 가시면서 내가 줄 떡은 먹고 죽는 떡이 아니라 자신의 살이요 자신의 피라고 말씀하시자 많은 사람이 어렵다고 하면서 따라 다니지 아니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가고자 나서니 예수님께서 새와 여우도 처소와 굴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조차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 물로 세례를 주다가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보고서 예수님을 증거 한 세례 요한 조차 감옥에서 예수님의 행하시는 소식을 듣고서 당신이 오실 그 메시아가 맞는지 아니면 다른 메시아를 기다려야 하는지 자기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11:6)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듣는 예수님은 어떤 예수님이십니까? 십자가에서 저주받아 돌아가신 그 예수님입니까? 사람들이 모두 다 싫다고 합동으로 대적하여 배척한 그 예수 그리스도이십니까? 사도들에게 성령이 임하고 나서 증거한 내용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에 예수님께서는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돌아가신 것입니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최고의 고통과 최고의 부끄러움을 다 당하신 것입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아니하고 벌거벗겨져서 아무런 기적도 없이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들이 침 뱉고 저주하며 돌아선 십자가인 것입니다. 저가 남은 구원하면서 자기도 구원하지 못하고 죽어가는구나! 네가 메시아라면 네 자신이나 구원해보라고 조롱하였습니다. 그 멸시와 고통과 수치 속에서 힘없이 죽어갔습니다. 그러면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다 이루심은 인간들이 꿈꾸고 원하는 것을 이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과 계획대로의 이룸인 것입니다. 오늘날 믿는다고 하는 우리는 입만 벌리면 십자가를 이야기하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나 예수님을 이야기 하면서도 세상의 성공도 나오고 세상의 복도 나오는 십자가이며 예수님인 것입니다. 예수 믿고서 영생은 확보해 두었으니 세상의 성공과 복도 챙기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뭔가 봉사도 헌금도 열심히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걸림돌인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는 절규 속에서 나도 함께 버림받는다는 의식이 없이 십자가를 바라는 보는 자들에게는 그 십자가가 걸림돌이 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은 십자가의 주님 좌우편에서 같이 못 박혀 죽어가는 두 강도 중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한 사람은 걸림 돌이 되지만 다른 한 사람에게는 버림받은 그 돌을 믿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평생 강도짓하다 처형당하는 강도이니 얼마나 부끄러운 인생이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를 믿는 순간 그 강도는 전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고 영원한 낙원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자는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 죄인인지를 아는 사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 중 누구 하나 잘나거나 떳떳하지 않습니다. 그냥 죽어 마땅하고 부끄러움 가득한 나에게 주께서 먼저 오셔서 손을 내밀어 주신 것입니다. 내가 요청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니 내 모습이 그런지도 몰랐습니다. 그럼에도 어느 날 보니 우리가 하늘에 앉힌바 된 것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냥 감사하고 그냥 노래할 뿐인 것입니다. 이것의 우리의 모습임을 알아 매일 우리에게 주어진 삶 가운데 그렇게 지금도 우리를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주의 은혜만을 바라며 살아가는 예원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오늘날 사람들을 교회로 나오게 하기 위해 교회가 어떠해야 한다고 말을 합니까?

2. 성경에서 말씀하는 구원의 방법과 그렇게 구원 받은 자에게 나타나는 증상은 무엇입니까?

3. 율법을 가진 유대인은 의를 얻지 못하고 도리어 이방인이 의를 얻음은 무엇을 말한다고 합니까?

4. 인간의 행함에서 의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에 대한 오해와 그 바른 뜻은 무엇입니까?

5. 하나님이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세우시는 이유와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6. 님의 말씀 앞에 나타나야 하는 마땅한 반응은 무엇이며, 이스라엘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7. 수님의 다 이루심은 무엇이며 또 주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걸림돌이 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8. 예수님을 믿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어떠하다고 합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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