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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구하는 그것을 얻은 자와 얻지 못한 자

본문 / 11: 7-12

 

 

1. 인간의 항의

사람은 살아있는 한 무언가를 구하면서 살게 됩니다. 생존의 기본이 되는 의식주를 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의식주가 해결되면 또 다른 것을 구하면서 살게 됩니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살 수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문화 활동도 해야 하고 또 다른 여러 가지 욕구들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이러한 욕구들은 사람이 무덤에 들어가기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이러한 욕구를 채우기 위하여 사람들은 평생을 살아가는데 이런 과정에서 서로 서로 자기들이 찾고자 하는 것에 대한 우월성을 주장하고 비교하며 경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자기가 추구하는 것은 고상하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하고 반면에 다른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속물적이고, 저차원적인 것이라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한 사람을 평가할 때에 과연 그 사람이 무엇을 추구하며 살았는가를 가지고도 평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그 좋아하는 것을 구하게 되면 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것을 찾아 소유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도 아주 인기 있는 말씀이 마태복음 7장의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7:7-11)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까지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시각에서 받으려고 하는 자들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시각으로만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여기 악한 아비도 자기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는가, 하시는 말씀을 가지고도 자기가 구하는 것을 여기 좋은 것에 대입시켜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여기에 모인 우리가 구하고 찾는 그 좋은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말씀하는 우리가 찾고 구하는 그 좋은 것이란 누가복음 11장에 보면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11:13)고 하여 바로 성령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녀인 우리에게 좋은 것이라고 주시는 것이 바로 성령인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성령이 자녀인 우리에게 임하게 되면 우리에게서는 자기의 의가 없음을 알게 됩니다. 자기의 죄와 비참함을 알게 되기에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7절 말씀에 보시면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11:7)고 하여 이스라엘이 무엇을 구하고자 하였는데 구하고자 한 그것을 이스라엘이 얻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구하고자 한 사람들이 얻은 것이 아니라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구한다고 다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택하심을 입어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하는 것은 적어도 우리처럼 구하면 주실 것이요 찾으면 찾을 것이고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는 말씀을 우리 생각처럼 이해하여 땅에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이 하늘의 속한 신령한 것이라는 말씀이며 그리고 그런 이스라엘이 얻고자 하여 하나님께 구한 것이 바로 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구하고자 한 것, 즉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구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않다고 하여 우리가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함은 이해가 되는데 어떻게 하늘에 속한 의를 구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그 구하는 의에 이르지 못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욕심과 정욕을 위하여 세상의 것들을 구하면 안 되지만 착하고 바르게 살아서 의롭게 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옳게 살다간 사람들을 우리는 의인 또는 의사라고 합니다. 그래서 교과서에도 이런 의사들의 이야기가 실리기도 하고 또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배워왔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그렇게 의에 이르고자 이스라엘은 열심히 하나님을 찾아 구하고, 율법을 지켜 행하였는데 왜 그렇게 구하고자 한 의에 이르지를 못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착하고 바르게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 힘을 주고 격려하여 의에 이르도록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그렇게 의를 찾아 노력한 사람들이 의에 이르지 못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항의하고 싶지는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2. 은혜가 은혜 되게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오늘 본문에 보면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기록된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11:7-8)고 합니다. 구하고자 한 자들은 얻지 못하였는데 그러나 얻은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입니다. 이들 외에는 우둔하여졌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에 이르는 길은 어떤 인간도 스스로 노력한 자기의 행위로 의에 이를 수가 없다는 것을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행위로 의롭게 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보고 듣고 깨달아서 돌아오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조치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29장의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그가 선지자들과 너희의 지도자인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29:10)라는 말씀과 신명기 29장의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29:4)는 말씀을 자유롭게 인용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부어 주사 너희 눈을 감겨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스스로 깨달아 돌아오지 못하게 하신다는 이사야 6장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6:9-10)고 하여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주신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스스로 진리를 찾아 나서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진리를 찾아 나서는 자기의 의도는 선하고 옳은 것이라고 간주하는 것입니다.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을 구하는 자들을 속물이라고 하면서 자기는 그러한 물욕적인 사람이 아니라 괜찮은 사람이라는 우월감과 자기만은 하나님을 위하여 바르게 산다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옳음을 나타내는 자기 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대표적인 사람이 지난주에 보았던 엘리야였던 것입니다. 자기만이 하나님을 위한 열심이 특심이고 다른 사람들은 다 바알에게 절하였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절하지 아니한 자 7천명을 남겨 두셨다고 하심으로 엘리야의 입을 닫아 버리게 만드신 것입니다. 모든 교만이 다 꺾어지고, 엘리야 자신의 열심도 꺾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열심이 특심이었던 것도 자기의 열심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남겨진 자 일뿐임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주 본문인 5절부터 보면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11:5-6)고 하십니다. 은혜가 은혜 되기 위하여 사람의 행위는 빠져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만 남기시는 것이 원칙인데 사람의 행위가 가미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에 보면 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11:9-10)고 말씀하면서 다시 시편 69편의 그들의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그들의 평안이 덫이 되게 하소서 그들의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하시며 그들의 허리가 항상 떨리게 하소서”(69:22-23)라는 말씀을 인용합니다. 이 시편 69편에는 메시아의 고난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런 중에 주님께 구원을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사람의 구원은 메시아의 대신 고난당하심으로 일어나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의 일이란 결국 대신 고난당하는 메시아에 대하여 눈이 감겨지고 귀가 막혀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구하고자 한 그것을 찾아 나섰지만 그들이 구하고 찾아 나서는 것마저 하나님 앞에 정죄를 당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인간이 진리를 향한 열정을 가진다고 해서 그것이 선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진리를 향한 열정과 그 열심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고 믿는 일에 있어서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비록 거룩하고 바른 것을 찾고자 한다 할지라도 그 자리에는 오직 주님의 일방적인 선택으로 남겨진 자들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9장에 보면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9:30-33)고 합니다.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의에 이르지 못하고,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에 이르게 된 것은 믿음에 의지하지 아니하고 행위에 의지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행위가 어떤 행위까지 정죄 받게 된 것입니까? 의를 따라갔다는 것조차 정죄당한 것입니다. 그 의를 따라간 열심이 오히려 믿어야 할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고 자기 의가 세워지는 것이었습니다. 의를 구하고자 따라간 그 열심의 종착점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자리였습니다. 이렇게 되면 이제 더 이상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완전한 절망뿐인 것입니다. 인간이 최고의 선을 추구하여 달려갔다는 그 자리가 하나님의 의를 배척하는 현장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이루고자 한 의를 찾아 나선 정점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믿는 바가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들은 진리를 찾아 나서지도 않는데 그래도 나는 진리를 찾아서 이렇게 애를 쓰고 있으니 그런 나는 다른 사람보다는 의롭지 않느냐고 할 사람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다른 교회들은 다 세상과 시대의 흐름을 따라 그렇게 흘러가더라도, 나는 또 우리 교회는 그렇지 않고 진리를 따라 간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그런 것으로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으로 뭔가 자부심을 갖는 것 자체가 이미 자의 의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오직 택하심을 따라 은혜로 남겨진 자들뿐인 것입니다.

 

3. 은혜의 구원

그러면 이스라엘은 완전히 버려진 것입니까? 그렇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1절부터 보면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11:11-12)라고 합니다. 저희의 넘어짐이 오히려 이방인에게 구원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넘어진 것은 자기들의 행위에 의지하여 넘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행위도 없는 이방인들이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을 통하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실패를 통하여 무엇을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의에 이르는 것은 어떤 인간의 행위로 되지 아니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한 그 자리가 도리어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를 죽이는 자리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실패의 자리에 모든 인간을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방인이 은혜로 의에 이르게 된 것을 통하여 이스라엘로 하여금 또다시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의와 또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이스라엘이든 이방인이든 자유롭게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오직 자기 의를 쌓기 위하여 열심이 달려간 이스라엘은 자기 의를 구하고 찾으려고 하는 것만큼 하나님의 의에는 복종하지 아니한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실패를 통하여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간에 오직 은혜로 남겨진 자들만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간주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중에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돌아올 때에는 무엇으로 돌아오겠습니까? 이제는 그들도 자기 의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자기들이 구하고자 좇아간 의가 아니라 하늘에서 은혜로 주어진 의가 그들에게 찾아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구별이 없는 것입니다. 오직 의롭게 하시는 주님으로 세워진 것이기에 더 이상 자기들이 무엇을 구하여 받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은혜로 주셔서 받게 되었다는 고백이 나올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실패가 하나님의 일의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의 부요함을 드러나는 도구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그것을 알고 믿는다면 오늘 우리의 부족과 연약으로 인하여 좌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자신의 부족과 연약을 인하여 왜 나는 이럴까하면서 자기를 탓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도리어 그럴수록 나는 이러니 하나님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구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알지도 못한 그래서 찾아 구하지도 아니한 의가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실체와 또 우리가 받은 은혜의 내용을 바르게 알아 그 은혜가 은혜 되게끔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로 말미암은 거룩한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구절이 따로 존재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2. 나님이 자녀들에게 주시는 보시기에 좋은 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받은 증상은 무엇입니까?

3. 스라엘이 하나님께 구하여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며 또 그것을 어떻게 얻으려 하였습니까?

4. 하나님께 하나님의 의를 택하신 자에게만 주시고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하신 일은 무엇이 며 또 그렇게 일하시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5. 늘날 우리에게 있는 자기 의가 어떻게 드러나며, 하나님은 그것을 어떻게 하신다고 합니까?

6. 하나님의 은혜가 오직 은혜 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7. 오늘 말씀은 우리의 어느 부분까지도 하나님 앞에 정죄 당하게 하십니까?

8.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실패를 통하여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9.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 가운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과 그 고백은 무엇입니까?

10.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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