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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

본문 / 12: 1- 2

 

 

1. 하나님의 긍휼

우리는 지난주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 예배에 대하여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허락하신 한 주간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의 삶, 즉 영적 예배를 잘 드렸습니까? 지난 시간에 영적 예배란 특정한 장소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범사에 주의 은혜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드리면 우리는 나는 범사에 감사하며 살지 못했다. 그러니 영적인 예배를 드리지 못 하였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영적인 예배가 무엇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 주면 꼭 그렇게 살며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라는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면 좋아하시겠습니까?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란 첫째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고, 둘째로 부모에게 감사하는 것이고, 셋째로 자녀에게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는 식의 말씀을 드리면 아 그렇구나! 그렇게 하는 것이 범사에 감사하는 영적인 예배구나’, 하면서 그 내용을 지켜야 할 규칙처럼 여기며 삽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영적인 예배일까 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이미 이런 일들은 다 영적인 예배가 아니라는 것이 검증이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하나님께 특별히 선택받은 민족이다. 그러므로 율법을 받았다. 율법을 받았다는 것은 우리만이 지킬 수가 있다는 것이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다는 식으로 이스라엘은 살았습니다. 그러면 아마도 또 이런 생각이 드실 것입니다. ‘도대체 이것이 무엇이 잘못된 이야기입니까? 지키지 않아서 문제이지 잘 지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무엇이 잘못 된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스라엘은 제사를 드리고 율법을 지키면서 무엇이 빠져 버린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빠져버린 것입니다. 출애굽기 33장에 보면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33:18-19)고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율법을 받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주문하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이며 또 하나님의 영광인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린다고 하면서도 그 하나님의 이름에 담긴 긍휼이 빠져버린 제사는 하나님께서 원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세아 6장에 보면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6:4-6)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에브라임과 유다 즉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께 죽임을 당하고 심판을 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4절에서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인애로 구원되어 인애로 살아가야 하는데 그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이슬처럼 너무 쉽게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제사와 번제를 원하지 아니하시고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한다고 하십니다. 인애와 긍휼이라는 단어는 같습니다.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그대로 사용하신 말씀을 신약에서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9장에 보면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9:9-13)고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은 율법을 지키며, 죄를 짓지 아니할 뿐 아니라 죄인들과 어울리지도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 시대를 본받지 아니하고 구별된 백성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자기들이 죄라고 여기는 것만 골라서 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보고서 그들이 욕하기를 먹기를 탐하고 술을 즐기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금 자신의 몸으로 하나님 앞에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고 있는 중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인 예배를 드리고 있는 현장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계시는 그 자리인 것입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긍휼을 마음껏 발휘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제사를 원하지 않으시고 긍휼을 원하신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라고 하신 것입니다.

 

2.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그런데 이런 말씀을 들으면 우리는 그것은 다 아는 이야기이고 그리고 이제는 일단 믿었으니까 그 믿은 다음에는 어떻게 살라는 것입니까? 하는 질문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것은 다 죄이고, 하나님께서 다 하신다면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하라는 말씀입니까?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율법만이 아니라 바울서신에서도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는 말씀이 분명히 많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2)고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를 본받지 말아야하기에 이 시대의 사람들, 즉 바로 오늘 우리 모두가 어떤 사고방식으로 살고 있는지를 먼저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나 예수님 당시에나 아담의 범죄이후의 인간들이기에 그 사고방식이란 다 똑같은 것입니다. 그 사고방식이 바로 인간이 선을 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이 하는 일이란 몽땅 죄뿐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과연 선이란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선이란 오직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만이 선하신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일이 선하신 일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창조하실 때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보기에 좋은 것이 선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만이 유일한 선인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한탄하신 것입니다. 저주와 심판을 받아 마땅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그 생각하고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항상 악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가끔씩이라도 선한 것이 나온다면 그것을 가지고 선한 무엇을 만들어 볼 수 있겠지만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인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모든 시대에 인간의 실상인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3장에 보면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3:1-5)고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도 분명하게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2)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세대의 정신이 무엇입니까? 바로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또 자기를 사랑하기 위하여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악한 생각입니다. 피조물이 마땅히 창조주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데 하나님마저 자기 사랑의 도구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로마서 11장의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11:36)하시는 말씀과 정면으로 충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만물이 나를 위하여 존재하고 나에게로 목표를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뛰어난 영웅이 되어 만물조차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교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씀하는 진정한 선이란, 하나님께서 일하시며 또 성취하시는 것이 드러나는 것이지 인간이 생각으로 추정하여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인간이 생각한 선은 인간이 이루어야 하는 부담감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룬 것이 정말 선이냐 하는 의문과 질문만 남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으로 선한 삶이 세상에 보인 것뿐이지 그 예수님의 선한 삶이 우리 사람이 세운 선한 삶의 기준에 예수님이 맞았다는 것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의 시각과 기준으로는 예수님의 그러한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삶의 모습이 절대로 선한 삶으로 보이지 않았기에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삶을 사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입니다. 그 시대의 선한 기준에 맞지 않았지만 우리들은 예수님이야 말로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삶을 살았다고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죽으실 수밖에 없었는지를 아시겠습니까? 그 시대의 정신과 그 시대의 선이라고 하는 삶의 기준에 맞게 예수님이 호응하셨다면 예수님은 죽기는커녕 오히려 영웅이 되셨을 것입니다. 이방인들이나 죄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지만 구원받은 자기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여기는 그 사고방식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입니다. 마치 오늘날 예수님을 믿고서 거듭났으니 이제부터는 내가 책임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보겠다고 나서는 것은 이미 우리 앞에 유대인들이 다 시도해본 내용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변화를 받아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은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믿고 사는 것에 대하여 회개하는 것이 마음의 변화를 받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 나오면서 이 세상을 따라 산 것에 대하여 회개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세상에서 더 잘 살아 남으려고 예수님을 부르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자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크신 긍휼이 아니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고 이 세상이 추구하는 영광을 헛된 줄도 모르고 주님을 위하는 것 인양 평생 속고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3.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

마태복음 3장에 보면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3:13-17)고 하십니다.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에 오직 예수님에게만 성령이 임하시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17장에 보면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17:1-8)고 합니다. 예수님이 영광스럽게 변모하시고 모세와 엘리야도 함께 나타났을 때에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시면서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라보니 오직 예수님만 보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일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빌립보서 2장에 보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2:5-11)고 말씀합니다. 그 기뻐하시는 일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으로 오셨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은 이미 구약에서도 예언되어 있습니다. 시편 2편에서 기름부음 받은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고 하십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급하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기뻐하시는 일은 그 아들뿐인 것입니다. 그 아들을 사랑하고 그 아들에게 입 맞추고 그 아들에게 무릎을 꿇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며 그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회개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 아들에게 무릎 꿇고 사랑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 그 주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그분만이 우리의 모든 것이 된다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과 무릎 꿇음이 하나님을 얼마나 기쁘시게 하는지를 잘 분별하시어서 어떤 환경과 조건 가운데서도 오직 그분만을 바라며 살아가는 예원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우리가 가진 영적 예배에 대한 잘못된 생각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2.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명하신 그 많은 제사를 드리고도 심판을 당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3. 바리새인이 생각하는 예배와 예수님이 하신 예배는 어떻게 다른 것입니까?

4. 성경이 기록된 지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성경이 여전히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까 닭은 무엇입니까?

5. 성경이 말하는 선은 무엇이며, 왜 인간에게는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는 것입니까?

6. 믿는 우리가 본받지 말아야 할 이 세대의 정신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7.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8. 이 세대를 사는 우리에게 나타나야할 진정한 회개는 무엇입니까?

9.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영광 받으시는 것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10.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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