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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하나님께 맡기는 신앙의 삶

본문 /  12:14-21

 

1. 세상의 미움 받는 자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미움을 받고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15:18-19)고 말씀 하십니다우리는 흔히 예수님을 잘 믿으면 세상에서 인정받고 세상에서 성공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오히려 예수님은 세상에서 미움을 받는다고 하시는 것입니다그 이유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히려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택하심을 받았기 때문에 미움을 받는다는 것입니다그리고 그러한 미움을 받는 것은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그러면 세상은 왜 예수님을 미워하였습니까예수님이 이 세상을 악하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어느 정도로 악하다고 하셨습니까로마서 3장에 보면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3:9-18)고 하십니다이것이 세상의 실상인 것입니다이런 악한 세상에서 어느 누가 자기의 착함이나 의로움으로 나는 바르게 산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그러나 세상은 속이고 있습니다인간이 선에 대하여 무능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입니다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에 선을 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그러나 예수님께서도 인간의 그런 가능성을 인정하셨다면 미움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그리고 십자가를 지실 이유도 없었을 것입니다그러므로 이 악한 세상에서 우리를 일방적으로 선택하셔서 의롭다고 하신 것에 대하여 이 세상은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이런 믿음을 선물로 받은 사람에 대하여 마귀가 가만히 두지 않고 계속하여 핍박을 가할 것입니다그렇게 예수님도 또 그 예수님의 택함 받은 주의 백성들도 당연히 이러한 세상의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자기가 잘못해놓고서 예수님 때문에 핍박받는다는 말을 하지 말아야할 것입니다그러면 자기가 잘못해서 핍박을 받는 것인지 정말 믿음으로 핍박을 받는 것인지 어떻게 알게 되는 것이겠습니까?

 

2. 우리가 할 수 없는 말씀

오늘 본문에 보면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12:14)고 하십니다믿음으로 인하여 핍박이 일어나는 것이라면 자기를 핍박하는 자에 대하여 저주하지 아니하고 축복을 하게 됩니다그러나 자기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오는 미움이나 핍박은 상대방을 대하여 축복하지 못하고 저주하려고 합니다만약에 누군가가 나에게 잘못하였다고 말한다고 생각하여 보십시오그런데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은근히 잘못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것은 믿음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예를 들면 이런 이야기입니다한 집의 주인이 월세를 많이 받을 욕심에 잘 살고 있던 사람에게 하루라도 속히 집을 비워달라고 합니다사정사정을 해도 주인이 불가하다고 해서 겨우 집을 얻어 이사를 했습니다그런데 그렇게 이사한지 몇 달이 지난 다음에 먼저 살던 집에 가 보았는데 여전히 살던 집이 나가지 않고 몇 개월째 빈 집으로 남아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어떤 마음이 들겠느냐는 것입니다주인이 월세 많이 받을 욕심에 사정을 해도 나가라고 해 쫓겨나듯 나왔는데 그 집이 빨리 나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마음이 생기겠습니까아니면 쌤통이다 하면서 고소해 하시겠습니까물론 이제는 집이 좀 나가야 할 텐데하는 마음은 들기도 하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우리의 마음은 후자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이 한절의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이 얼마나 믿음 없는 사람인지가 그대로 다 들통이 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주의 이 말씀은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그리고 은혜를 더하여 주소서!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는 내용입니다기도를 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기도는 자기부인입니다만약 자기의 의지적인 결단으로 한다면 그것은 은사가 아닌 것입니다내가 목사이니까 이 정도의 기도 시간은 가져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한다면 그것은 은혜와 은사를 주신 분을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완성과 자기성취를 보이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의 한 분이었던 스데반 집사가 자기를 향하여 돌을 던지는 자들은 향하여 죽어가면서 어떻게 축복하였습니까“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7:60) 하고 죽었습니다이 스데반 집사를 성경은 기록하기를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였다성령이 충만하였다’고 합니다스데반 집사의 그러한 기도는 은혜와 성령이 충만하여 나온 것입니다이럴 때에 자기를 향하여 돌을 던지는 자를 향하여 저주하지 아니하고 축복할 수 있는 기도가 나오는 것입니다스데반 집사는 무엇을 잘못하여 돌에 맞아 죽는 것이 아닙니다물론 오늘날도 당시 스데반 집사의 설교처럼 교회 가운데 서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예배당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아니하신다는 설교를 하였다면 역시 쫓겨날 일입니다만 정말 믿음으로 인하여 오는 핍박에 대하여 저주하지 아니하고 축복하는 것이 바로 이런 모습인 것입니다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이 한절의 말씀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자기 정당성에 대하여 입을 닫고 회개하고 은혜를 더하여 달라고 기도할 것뿐이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또 오늘 본문 15절에 보면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12:15)고 합니다그런데 이 말씀이 우리의 생활 속에서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까그렇다면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그것이 하나님께 드릴 영적인 예배입니다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사람들입니다여기서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우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몸에 한 지체된 자들을 말합니다우리 가운데 누가 울 일이 있으면 측은지심이 나오기도 합니다그러나 즐거운 일에 정말 시기질투가 나지 않습니까교회 안에서 시기질투가 난다는 것은 이미 마음을 높은데 둔 증거입니다이것이 죄인데도 그것을 죄로 알지도 못하고 서로 경쟁하도록 합니다그래서 누가 빨리 더 많은 축복을 받고 성공하고 높아지는 가를 경쟁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래서 빨리 성공하는 비결을 가르쳐준다고 합니다그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이 원초적인 죄의 본능인데도 그것을 죄로 말하지 아니하는 것은 교회가 이미 세상과 하나가 되었다는 증거일 뿐입니다그러나 정말 우리가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부름을 받았다면 함께 울고 함께 즐거워할 것입니다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자기 몸을 세우고 있는 증거인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2장에 보면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고전12:26)고 말씀합니다이런 일들은 한 몸이라야 일어나는 현상입니다우리는 그리스도를 머리로한 주안에서의 한 몸임을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그리고 이것이 우리에게서 마땅히 나타나고 표현되어야할 반응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그것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말입니다또 오늘 본문 16절에 보면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12:16)고 하는데 과연 이 말씀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이 높아지기 위해서 열심을 다하고 있는데 낮아지고자 하는 사람이 과연 있기는 한 것입니까높아짐과  뛰어남 그리고 성공이라고 하는 이런 이야기들이 환영받는 세상에서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라고 하십니다왜 그런 것입니까예수 그리스도는 그런 곳에서 만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 세상을 보면 세상 사람들이 환영하고 좋아하는 것들은 다 죽음의 모습인 것입니다그런 것은 마귀가 예수님께 주고자 유혹했던 내용입니다그렇기에 오늘날의 교회가 자꾸 세상의 높은데 마음을 두고세상의 힘을 가지고자 하는 것은 교회가 아니라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있는 것입니다또한 오늘 본문 17절부터 보면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12:17-18)고 합니다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것은상대방이 나에게 악으로 대하여 올 때도 악으로 갚지 말라는 것입니다오히려 선한 일을 도모하고 모든 사람으로 화목하라고 하십니다눈에는 눈이에는 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모세가 그렇게 말하였을지라도 그것은 인간의 악함으로 지나친 보복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5:44)고 하십니다모세의 법을 다시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그리고 그 말씀을 성령을 보내셔서 친히 이루시는 분도 역시 예수님입니다그러므로 스데반은 예수님을 증거한 것이지 자신이 원수 사랑까지 한 능력을 보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3. 오직 주님으로만

그래서 오늘 본문 19절부터 보면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12:19-20)고 하십니다원수를 갚지 말고 오히려 원수가 주리면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고 합니다그것이 오히려 원수를 부끄럽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그러므로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우리가 친히 원수를 갚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것이기에 원수를 갚으려고 나서는 것입니다이런 행위는 나는 너보다 낫다는 자기의 의가 발동한 것입니다그리고 이런 모습은 이미 재판장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이런 모습은 내가 하나님의 원수였는데 조건 없이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믿지 않거나 잊어버린 사람인 것입니다마태복음 18장에 보면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18:21)라고 베드로가 예수님께 질문을 하였습니다이것만 해도 상당한 용서입니다베드로는 자신이 그만큼 용서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18:22)고 대답 하십니다이 말씀은 베드로 자신이 예수님께로부터 한량없는 용서를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자기가 일곱 번을 일흔 번이라도 용서받아야하는 사람이라면 남을 일곱 번 용서한 것은 말할 것도 못되는 상황입니다그러면서 천국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일만 달란트 빚진 사람이 갚을 것이 없어서 감옥에 갇혔는데 임금이 불쌍히 여겨서 탕감하여 주었습니다탕감 받고 기분 좋게 집으로 가다가 자기에게 일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나서는 멱살을 잡고 빚을 갚으라고 합니다다 갚겠다고 하는데도 감옥에 가두어 버린 것입니다하루 품삯이 한 데나리온입니다그런데 한 달란트는 얼마인가 하면 육천 데나리온입니다그러므로 일만 달란트는 개인이 갚을 수가 없는 액수입니다그런데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자가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옥에 가두었을 때에 임금이 어떻게 하였겠습니까“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18:32-34)고 하십니다그리고는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18:35)고 말씀하십니다이것이 천국의 비유입니다베드로가 무슨 말을 하였겠습니까또 우리는 과연 이런 예수님의 비유 말씀 앞에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하는 자가 그래서 그 받은 은혜와 용서가 엄청난 자가 과연 그런 자신에게 잘못한 자에 대하여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 것이겠는가 하는 것입니다이 주의 말씀이 오늘 주 앞에선 우리는 실상인 것입니다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서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 하나라도 있습니까혹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은사로 되지 아니하고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해낸 것이라면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결국 그것은 자기의 의를 드러낼 뿐입니다성도란 자기완성의 사람이 아닙니다자기는 죽고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 되는 사람입니다이것이 자기 부인인 것입니다그러므로 성도란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그래서 오늘 본문 마지막에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12:21)고 하십니다이 말씀은 17절에서부터 계속 진행되어 온 내용의 요약이며 결론입니다여기 악에게 진다는 것은 원수의 악한 행위로 번민하거나 원수에 대해 악으로 갚으려고 악한 행위를 계획하는 것입니다즉 원수의 악한 행위로 인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상태를 떠난 것을 의미합니다그렇게 우리가 선한 상태를 떠나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무엇을 이루어 내려고 합니다주 안에게 거하면 절로 열매를 맺는 삶을 포기하고 우리 스스로가 무슨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여기며 노력하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그러나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악인 것입니다하나님만이 선하신 분입니다그러므로 하나님이 행하신 일만이 선한 것입니다하나님께서 하신 선한 일을 믿고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오늘 본문 앞에서부터 말씀하는 겸손과 봉사 그리고 모든 사람들과 화목하며 또 원수에게도 친절을 베푸는 생활은 현재의 삶에서 승리하는 생활을 말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이 승리는 인간의 노력과 열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는 믿음과 우리를 인도하는 성령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그래서 오직 내가 아닌 그리스도만 존귀케 되어지게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일하심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그 선하신 일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율법의 저주를 대신 받으시고모든 의무도 다 이루신 것입니다우리는 예수님의 그 다루심의 결과와 열매를 먹고 누리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주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신앙입니다무언가 부족한 것처럼 맡기지 못하고 자기가 나서야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악입니다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며 사는 자는 짐이 가볍습니다오늘 주 앞에 나아가 쉽고 가볍게 짐을 지는 법을 주께 배우시기를 바랍니다그리하여 사시는 동안 내 힘과 노력의 결실이 아닌 오직 주의 통치와 다스림으로 말미암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결실이 충만한 예원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이 세상이 미워하는 이유와 그 까닭은 무엇입니까?

2믿음으로 말미암은 것과 우리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핍박은 어떻게 다른 것입니까?

3. 은혜와 은사로 하는 것과 자기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은 어떻게 다르게 나타난다고 합니까?

4.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5.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며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과 화목하라고 하신 말씀의 의     미는 무엇입니까?

6. 리가 원수를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친히 원수를 갚으려 하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7.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하시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8. 오늘 말씀에서 성도란 어떤 사람이라고 말씀합니까?

9.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10.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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