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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의 허락하신 권세에 담긴 뜻

본문 / 13: 1- 7

 

 

 

권세

우리는 지난주 로마서 12장에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공동체가 어떤 은사로 유지되는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함께 나눌 로마서 13장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권세에 대하여 어떻게 처신하여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세상의 권세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며 그 권세를 집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사역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누가 가장 좋아하겠습니까? 아마도 권세를 가진 자들이 좋아할 것입니다. 쿠데타를 하였던, 불법으로 권세를 잡았든지 간에 이런 성경의 말씀을 가지고 자신들의 권세를 더욱 공고히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자들에게 목사들이 가서 예배를 드리면서 이 본문을 가지고 그들의 쿠데타를 정당화 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쿠데타로 불법적인 정권을 잡은 그들은 자신들에게 틀렸다고 말하는 자들에 대하여는 정부 기관에서 사찰도 하고 또 핍박을 가 하였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그런 불법적인 정권도 하나님이 세운 것이라 여겨 복종하고 따라야 하는가 하는 생각과 의문이 드는 것입니다. 교회와 정치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런 내용들은 믿는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굉장하게 복잡한 논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보고 있는 이 로마서에서는 더 이상의 말씀을 우리에게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성경은 누구를 증거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였느냐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도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 되는 말씀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이지 어떤 세상의 권력에 대한 이야기로 보게 된다면 끝없는 논란에 빠져서 스스로의 올무에 걸리게 될 것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이방나라가 이스라엘을 지배하게 될 때 물리쳐야하는 나라가 있고 또 지배를 받아들여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벨론이 쳐들어 왔을 때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선포합니다. 이스라엘은 그렇게 선포하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매국노라고 여겨 버렸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은 바벨론에게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스라엘을 포로로 잡아간 나라가 모든 권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다니엘서에서 분명하게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서에 보면 열국의 나라들을 세우시고 폐하시는 권세가 하나님께 있음을 밝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나라들이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서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2장의 내용을 보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었는데 꿈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꿈을 알게 하고 또 그 꿈의 해석도 보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 꿈의 내용에 대하여 다니엘은 거대한 신상이 사람의 손에 의하지 아니하는 조그만 뜨인 돌에 의하여 산산조각이 나고 그 뜨인 돌이 태산을 이루게 되는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 신상은 각 나라의 왕들과 그 국가를 말하는데 느부갓네살이 그 신상의 금 머리이고 다음이 놋, , 철과 진흙이 섞인 발의 신상에 뜨인 돌이 날아와서 그 신상을 부수고 영원히 망하지 아니하는 나라가 세워진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었다고 해석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권세란 그 권세가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있는가를 알게 하시는 하나의 도구일 뿐인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도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권세에 대하여 순종하라는 것은 나라에 순종하고 세금 잘 내면 구원받는다는 말이 아니라 그러한 권세를 누가 주었는가를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사람을 다 하나님의 권세로 다스리시는데 바로 국가라는 도구를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의 권력만 보게 되는 사람은 불신자일 뿐입니다. 신자는 국가를 다스리는 분, 즉 우리 하나님의 권세를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2. 세상 권세와 하나님의 뜻

이제 오늘 본문을 보면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13:1-4)고 합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왔기에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르는 것이기에 심판을 자초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권세로 다스리는 것은 그들의 부당한 권력을 마음대로 사용하라는 것이 아니라 선한 일은 칭찬을 받고, 악한 일은 벌을 주게 하는 권세인 것입니다. 그 말은 결국 권세의 개념이 어떤 전제를 가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즉 권세는 선을 보장하고 악을 규제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권세가 이 전제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이러한 기능에서 이탈하여 권세가 행사될 때 그 권세는 권세의 수여자이신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벗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허락하신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대로가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이용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모든 것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주신 이의 뜻을 알지 못하고 내 뜻과 내 만족을 위해서만 이용하며 살아간다면 그것은 심판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의 권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런 세상의 관원들은 선한 일에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두려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신호를 어기지 않았다면 경찰이 있어도 겁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호를 위반하고 가다가 경찰을 보면 두려운 것입니다. 그들이 공연히 교통 범칙금 스티커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권세를 통하여 질서를 유지케 하고 또 하나님의 사역 또한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 바울도 이러한 로마법에 의한 질서 유지로 말미암아 도움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사도행전 23장 참조). 그래서 5절에 보면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13:5)고 합니다. 한마디로 그들의 지시를 받는 것은 벌을 받을까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양심을 위하여 하라는 것입니다. 법은 육신을 묶는 법이 됩니다. 그러나 양심은 법으로 묶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교통경찰의 눈만 피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양심을 보시는 주님 앞에서 하라는 것입니다. 교통경찰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을 어떻게 속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성도란 자기 몸으로 영적 예배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어디에 있든 또 무엇을 하든 예수님을 의식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13:6-7)고 말씀합니다. 세금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세금을 제대로 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일군이 되어 일한다고 합니다.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고, 조세나 국세를 받을 자에게 주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고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누가 그들에게 권세를 주었기 때문입니까? 하나님께서 권세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나오는 것을 보면 의아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하나님의 일꾼은 주로 목사를 보고서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교통순경이나, 검찰직원이나, 세무공무원이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세우신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교통순경만 잘하면 구원받습니까? 아닙니다. 회개하고 예수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권세를 가졌다고 대통령 잘하면 천국에 가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회개하고 예수 믿어야 합니다. 그들도 자신들이 권세를 가졌다고 교만할 것이 아니라 참된 권세 자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증거 하는 참된 권세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천지를 창조하시고 자기 뜻대로 세우시기도 하시고 폐하시기도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권세를 아들에게 위임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이 인자됨을 인하여 그렇게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자됨을 인하여 하나님께서 모든 심판과 생명을 살리는 권세를 예수님에게 다 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에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5:24-27)고 합니다.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의 권세가 예수님께 있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인자는 메시아로서의 속죄자, 곧 완전하신 인간으로 피 흘려 죽으신 분이시니 만큼 죄악을 심판하실 권리도 받으셨음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죄는 이렇게 속죄하여 주신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것이고 또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것 자체가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318절 참조). 그런 예수님이시기에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10:17-18)고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시는 것도 누가 죽게 해서가 아니라 예수님 스스로 목숨을 버리시고 또 얻을 권세도 있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또 요한복음 17장에도 보면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17:1-2)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 모든 권세, 즉 죽이고 살리고 심판하시는 권세가 다 있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골로새서 1장에 보면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1:13-20)고 합니다. 우리가 흑암의 권세에서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것은 왜 그렇게 하신 것입니까? 그 아들을 위하여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아니하는 모든 것들과 권세들이 다 그에게서 창조되었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기에 그가 만물의 으뜸이 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직 그의 피로 화목케 되는 것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예수님의 권세는 지상에서는 감추어져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택하신 자만 볼 수 있도록 고난과 십자가 속에 감추어두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는 세상의 권세조차 그 아들의 권세를 증거 하는 권세일 뿐인 것입니다. 성도란 세상의 권세이든 교회에서의 직분이든, 가정에서든, 회사에서든 누구의 권세를 믿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아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사는 것이 영적인 예배요 산제사인 것입니다.

 

 

3. 하늘 권세의 통치

그래서 골로새서 3장에 보면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3:18-4:1)라고 하십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으로 남편의 머리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남편에게 복종하는 유교사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남편의 권세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권세를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동시에 남편은 아내를 사랑함으로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는 것을 보이는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역시 주님의 권세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며 부모는 자식을 노엽게 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종은 주인에게 눈가림만 하지 말고 주님께 하듯이 하는 것입니다. 결국 종이 주인을 섬기는 것을 통하여 참된 권세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편과 아버지와 주인은 상전이 없습니까? 아닙니다. 상전들이 의와 공평을 행하라고 합니다. 너희에게도 하늘의 상전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남편과 아버지의 상전도 역시 하늘에 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1장에 보면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전11:3)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의 권세나 가정이나 직장이나 교회에서나 간에 하나님께서 모든 권세를 위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믿고 사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이 세상의 권세는 결국 이러한 하나님의 권세를 인식하며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일하심이며 뜻입니다. 우리가 어느 곳에 가든지 권세가 없는 곳이 없듯이 무소부재하신 우리 하나님의 임재는 우리가 있는 모든 곳에 있음을 알게 하시려 세상에 그런 권세 자들을 세운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직 하늘 권세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임을 알기에 무엇을 하든 또 어디에 있든 이런 하늘 권세의 통치와 다스림 안에 있음을 늘 인식하며 살아가는 예원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늘 본문에서 교회와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더 이상 말씀하지 아니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2. 하나님께서 나라를 세우고 또 권세를 주어 다스리게 하시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3.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 세상의 권세에 대한 전제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4. 오늘 본문에 양심을 따라 하라고 하는 뜻은 무슨 의미입니까?

5. 하나님은 세상의 권세를 허락하심으로 무엇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까?

6.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7. 자식과 종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합니까?

8. 남편과 아버지와 주인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합니까?

9. 세상에 부여하신 권세와 또 세우신 권세 자들을 통해 무엇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까?

10.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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