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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너희가 자다가 깰 때가 되었으니

본문 /  13:11-14

 

1. 때와 시기

사람들은 인생에서 때를 잘 만나야 한다고 합니다그리고 때가 왔을 때는 기회를 포착하여 확실하게 붙들어야 된다고 합니다그런데 그 때라는 것이 언제인지 잘 모르니까 사람들은 점쟁이를 찾고 무당을 찾아 물으려 하는 것입니다그런 반면에 그런 것들을 것을 미신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하고 자신의 경험을 동원합니다그리고 그런 분야에 전문가라고 여기는 이들에게 의뢰를 하기도 합니다예를 들면 펀드 매니저 같은 사람들입니다이런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경제흐름만이 아니라 온 세계의 경제흐름을 잘 알아야 하기 때문에 하루에 서너 시간만 자고서 온 세계의 경제흐름을 공부하여 예측하는 것입니다그래서 자기에게 투자를 하는 사람의 돈을 몇 배로 불려주기도 하는 것입니다이런 모습이 세상에서 말하는 시기와 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언제 어디에 투자를 해야지 제대로 이익을 볼 것인가 하는 시대를 읽고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가득하고 그런 이야기에 사람들은 많은 관심을 갖고 살아갑니다그러나 그런 이야기들이 성경에서는 다 어두움에 속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세상의 것들이 하늘의 것을 만들지 못하며 우리의 믿음을 세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도리어 우리의 시선을 하늘이 아닌 땅의 것이 마음 빼앗긴 채 살아가게 만드는 것입니다그러나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자에게 드러나는 증상은 하늘에 속한 것을 찾는다는 것입니다그렇기에 우리는 우리가 추구하며 찾는 것으로 우리의 마음과 시선이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가를 통해 우리 신앙을 점검할 수 있을 것입니다그런데 우리가 보는 성경에서도 시기와 때에 대하여 말씀을 합니다그러면 성경에서는 말씀하는 시기와 때는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까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어떤 시기와 때를 분별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누가복음 16장에 보면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16:8)고 말씀합니다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불의한 청지기 비유에 등장하는 내용입니다어느 부잣집에 청지기가 있었는데 일을 옳게 하지 않은 것입니다그래서 해고를 시키려는 것을 청지기가 눈치 채고서는 내가 이일을 그만두면 무엇을 해서 먹고살까 생각한 것입니다해고 후에 자신이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러울 것을 생각해서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불러 문서를 조작하기 시작한 것입니다그렇게 하면 나중에 자기가 주인에게서 해직당하면 그때 도움을 받은 자들이 좀 도와주겠지 하면서 한 것입니다이것이 잘한 일입니까잘못한 일입니까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잘못한 것인데 자기 살기 위해서 한 일로는 지혜로운 것입니다물론 이 말은 윤리 도덕적인 기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이 세상의 사람들이 세상을 사는 일에는 다 이렇게 지혜롭게 살아가는 것입니다힘 있고 권세 있을 때에 한 밑천 마련해 놓자는 것입니다이 세대의 아들들이 얼마나 지혜로운지 항상 자기의 장래를 준비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그런데 빛의 아들들이라고 하는 너희는 도대체 무엇을 준비하며 사는가 하는 말씀입니다그러면서 결론부분에서 하신 말씀이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16:13)고 합니다만약에 우리가 돈을 섬기고 있다면 우리는 지금 사망의 잠을 자고 있는 것입니다이렇게 되면 그러면 도대체 우리에게 어떻게 살라는 것입니까?, 하는 항의와 반발이 나올 것입니다누가복음 12장에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어떤 부자가 풍년이 들어 소출이 많아지므로 창고가 비좁아 지게 되었기에 창고를 다시 짓고 그 얻은 풍성한 소출을 많이 쌓아두었습니다이제 든든한 것입니다그리고는 자기 영혼에게 말하기를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하는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12:20)고 하십니다그러시면서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12:21)고 말씀하십니다그리고 이어서 하시는 말씀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12:22)고 하신 말씀입니다까마귀가 농사하지 않고 창고도 없지만 하나님께서 먹이고 기르신다고 하십니다들에 피는 백합화가 길쌈하지 않아도 모든 영광으로 입은 솔로몬의 옷보다 더 아름답다고 하십니다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를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그런 것은 세상의 사람들이나 구하는 것이요 너희 아버지는 이런 것이 있어야 할 줄을 아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그러므로 성도란 세상의 것을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그럼 이 말씀이 어느 특정인의 이야기인 것입니까아니면 모든 사람의 이야기인 것입니까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그렇다면 이 어리석은 부자가 무엇을 몰랐던 것입니까바로 자기 영혼(죽음)의 때를 몰랐던 것입니다자기의 영혼(죽음)이 자기의 손에 있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자기의 죽고 사는 문제가 자기 소유의 넉넉함에 달린 줄 알았던 것입니다이 한 비유의 말씀이 온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 담고 있는 것입니다사람이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 깰 때

이제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오늘 본문 11절을 보면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13:11)고 합니다여기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라고 합니다여기서 너희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미 이 시기를 안다고 하는 것입니다그리고 이 시기란 구원이 가까웠다는 것입니다구원이 가까웠기 때문에 자다가 깰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것입니다그렇다고 이것을 시간적으로 계산하는 것이 아닙니다역사의 끝에 예수님의 재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것이 역사의 끝이 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서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는 자는 이미 깨어있는 자인 것입니다이것을 모른 체 살아가는 사람은 나름대로는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자고 있는 사람에 불과한 것입니다그러므로 성도란 낮에 속한 사람입니다잠도 자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이 아니라 이 세상이 끝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이 세상의 시간과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결론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그리고 그런 자들을 성경은 신자라고 하는 것입니다지금의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갑니다미래를 예측하면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하여 죽을힘을 다하여 달려갑니다그러나 그 끝은 언제나 사망이라는 것입니다사망이란 단지 목숨이 끊어진다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과 끊어진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해 아래아담아래시간과 공간 안에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다 헛되고 헛되다는 것입니다이 끝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눈에 보이는 세계가 영원한 것인 양 보이는 것을 향하여 목숨을 걸고 달려가고 있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 보시기에 사망의 잠에 빠져있는 것입니다사람들은 처음부터 눈에 보이는 세계만을 위해 살아 왔기에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모두 자는 자에 불과했던 것입니다그런 자들 가운데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깰 때즉 눈에 보이는 세계가 실상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음을 말씀하심으로 깰 때가 이른 것입니다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처음 오셨을 때 세례요한이 외친 내용이 이런 사망의 잠을 자는 사람들을 향하여 깨우는 외침이었습니다“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3:2)는 이 외침이 바로 사망의 잠에 빠진 자들을 향해 깨우는 외침인 것입니다그가 말한 천국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그러나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한 것입니다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의 깊은 잠이란 그들의 오래된 전통과 관습에 굳어져 있는 율법지킴과 성전제도를 붙들고 있었던 것입니다또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든든해 한 것입니다그러나 세례요한은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 수 있다고 외쳤습니다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놓였다는 것입니다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면 찍혀서 불에 던져질 것이라고 외친 것입니다그 세례요한의 증거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예수님은 자신을 믿지 아니하는 그들을 향하여 너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 너희의 아비는 마귀라고 하셨습니다아브라함은 오히려 예수님의 때를 보고 기뻐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그 말은 결국 아브라함은 자는 자가 아니라 깨어있는 자라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그러므로 깨어 있는 자란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모든 율법의 저주를 다 받으시고 그 율법의 공의를 다 완성하신 것입니다예수님께서 이 땅에 처음 오신 그때부터 자다가 깰 때가 된 시기인 것입니다그러므로 자다가 깰 때란 앞으로 시간의 끝에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이니 그때에 정신을 차리고 맞이하자는 말씀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시간이 깨어있어야 할 시기라는 것입니다이미 완성품이 있는데 또다시 무엇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이것을 알지 못하기에 사람들은 자꾸만 엉뚱한 계획과 비전을 세우는 것입니다예수님의 완성을 믿는 사람은 주님이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는 사람이기에 발전이라는 것이 의미가 없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발전하는 재미에 살아갑니다개인이 발전하고교회가 발전하고국가와 역사가 발전한다고 봅니다그러한 발전에 대한 신념은 인간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경제문화도덕과학종교들의 발전을 통하여 더욱 나은 인간상을 그리고 있습니다그러나 그 발전이라는 것은 결국 인간이 스스로 자기를 치장하는 무화과 나뭇잎에 불과하며자기들의 이름을 내고자 한 바벨탑에 불과한 것입니다이런 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벌거벗고 죽으심으로 다 이루었다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3. 우리의 옷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 보면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13:12)고 합니다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습니다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이러한 사망의 잠에 빠져있는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깊은 밤중처럼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보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있다면 마귀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그래서 그런 믿는 자에게 어두움의 일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자고 하는 것입니다어두움의 일이란 육신의 정욕을 위하여 도모하는 모든 것들이 다 어둠의 일입니다반대로 빛의 갑옷이란 우리 주께서 십자가로 우리에게 주신바 된 은혜입니다그 은혜는 그 무엇으로도 뚫을 수 없기에 갑옷과 같은 것입니다그런 우리임에도 아직도 오직 우리 육신의 정욕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점검하셔야 만합니다그러면서 14절에 보면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13:14)라고 합니다여기 육신의 정욕을 위하여 도모한다는 것은 무언가 계획하고 성취하고자 하는 것들이 육신의 정욕을 위한 것들을 말합니다결국 그러한 것들은 방탕하고 술 취하는 것이며음란하고 호색한 것이며분쟁과 시기를 일삼는 것입니다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방탕하고 술 취하고 음란하고 호색한 것은 조금 덜 하고 살아갑니까아닙니다별로 다르지 않게 살아갑니다그러면 다투거나 시기하는 것은 어떻습니까아마 이것도 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이처럼 내 안에 이러한 것들로 충만한 것을 보고 느낀다면 누군가의 다른 방탕한 것을 보고 말할 처지가 못 되는 자들이 우리 자신인 것입니다믿는다고 하는 우리는 종교적인 업적들도 얼마든지 자기의 정욕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입니다하나님과 예수님을 부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자기의 정욕을 위한 것인지조차 모르고 사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속고 있는 것입니다마치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면서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인 것과 같은 일들이 다 자신의 정욕을 위하여 도모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성도란 자기가 만든 옷을 입는 사람이 아닙니다성도의 옷은 자기의 행위로 만들어내는 옷이 아닙니다자기의 행위로 만든 옷은 이사야서 64장에 보면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64:6)라고 합니다하나님 보시기에 더럽고 누더기 같은 옷에 불과합니다그런 옷을 입은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스가랴 3장에 보면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3:4)고 하십니다그러므로 성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사람들입니다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것은 우리의 온갖 죄와 더러움을 가려주시는 의의 세마포를 입는 사람이 성도요 그리스도의 신부인 것입니다그런 우리에게 요한계시록 16장에 보면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16:15)고 하십니다예수님께서 도적같이 오시는데 깨어서 자기 옷을 지켜서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이 옷이란 자기가 만든 옷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은 옷입니다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입니다우리는 오늘도 이 옷을 입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요한계시록 19장에 보면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는데 이들이 입은 옷이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이며 이것이 성도의 옳은 행실입니다요한계시록 22장에는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22:14)라고 합니다가난한 신부일수록 주는 옷을 감사히 여길 것입니다자기 의로 가득한 사람은 주는 옷보다 자기 치장의 옷을 입고 가려고 할 것입니다그러나 마태복음 22장의 혼인잔치의 비유에 보면 주는 옷을 입지 않으면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 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있는 자인지 또 깨어 있는 자인지 오늘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데 준비된 순결한 어린양의 신부로 살아가는 예원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우리의 관심사는 무엇이며 또 그것들이 어두움에 속했다고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2이 세대의 아들들이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하시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3. 어리석은 부자의 어리석음 무엇이라고 합니까?

4. 오늘 본문에서 잠을 잔다는 것 하는 것과 깬다는 것은 무엇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5.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부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너희 아비는 마귀라고 하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6. 오늘날 깨어 있는 자와 자는 자에게 드러나는 증상은 어떻게 다르다고 합니까?

7.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고 하시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8.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는 것과 방탕하고 술 취한 것은 어떻게 다른 것입니까?

9. 리가 스스로 만든 옷과 주님이 주신 옷은 무엇을 말하며 또 그 증상은 어떻게 다릅니까?

10.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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