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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진리로 말미암은 자유와 그 자유의 증상

본문 / 14:13-18

 

 

 

1. 자유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자유를 좋아합니다. 수업시간에도, 소풍가서도 가장 즐거운 시간이 자유시간입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사용함에 있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내가 기분 좋다고 한 밤중에 아파트에서 큰 소리로 노래 부르고, 발을 쿵쿵거리며 춤을 춘다면 나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자유를 말할 때는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한 법들이 동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법이 동원되어 강제되는 자유가 아니라 사랑으로 다스려지는 자유입니다. 다시 말해 법에 접촉이 되어서 어떤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자유는 법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일어나는 은사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우리는 세상에서 자유 하다고 하는 그런 개념을 신앙 안에도 그대로 가지고 와서는 자유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이 자유인 양 여긴다면 그것은 자유를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계시하고 있는 자유는 어떤 자유인 것입니까? 우리가 잘 아는 자유에 관한 성경의 말씀은 어떤 말씀들이 있습니까? 아마도 그 대표적인 구절이 요한복음 8장의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8:32)는 말씀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 말씀을 많이 사용하면서 자신의 자유의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8장에서 자유라고 하는 이 말씀은 이미 모든 사람들이 죄의 종이라는 전제하에서 말씀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요한복음 8장의 배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이 자유를 말씀하시자 유대인들은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8:33)고 질문을 합니다. 한마디로 자기들은 자유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8:34)고 말씀하십니다. 죄를 짓지 아니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다 죄의 종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8:35)고 말씀하십니다. 이 자유는 사람들이 성취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 아들이 자유롭게 하여야만 얻을 수 있는 자유이며 그리고 이 자유만이 참된 자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자유란 죄와 사망에서 의와 생명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로마서 6장에도 보면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6:20-23)고 말씀합니다. 죄의 종은 무슨 짓을 해도 그 죄에서 해방될 수 없기에 그 결국이 사망인 것입니다. 이런 죄의 종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영원한 생명인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자유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5:1)고 합니다. 죄에서 자유란 죄를 정하는 법에서의 자유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율법의 저주를 대신 담당하심으로 자기 백성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합니다. 그 종의 멍에를 갈라디아서에서는 할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로마서의 말씀에서는 무엇을 먹고, 먹지 아니하는 문제와 날짜의 지킴에 대한 문제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또다시 법(할례, 음식규례, 날짜 지킴 등등의 법)으로 돌아가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은 다시 종의 멍에를 메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도의 자유란 철저하게 주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입은 자는 자신이 법 지킴으로 구원에 이르지 아니한 것처럼 다른 형제에 대하여서도 법으로 시비 걸지 말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강한 믿음(무엇이나 먹을 수 있다는)으로, 무엇을 가려서 먹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연약한 자라도 주님께서 받으신 자라면 네가 무엇인데 감히 판단하는가, 하는 말씀입니다. 자신의 자유를 가지고도 남을 업신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도리어 그 자유를 가지고 종노릇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5:13-15)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말씀을 또 어떻게 적용을 합니까?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어떠하더라고 이야기 하게 되면, 옆에 있던 사람은 항상 너는 남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도 못 들었느냐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도 하나의 판단이 되어버리고 법으로 세우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그것을 갈라디아서 516절부터 보면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5:22-23)고 합니다. 육체의 일과 성령의 일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시면 내가 육체의 일인지 또는 성령 안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일인지가 분별이 되는 것입니다.

 

2. 참 자유

이제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14:13-14)고 합니다. 그런즉 우리가 비판하지 말자고 합니다. 이미 그 모든 일들에 대하여 판단하실 분으로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비판하지 말고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말라고 합니다. 나는 믿음이 강해서 아무 음식이나 먹을 수 있습니다.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먹을 수 있다고 합시다. 그것은 자유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바울 사도는 음식자체가 속되거나 속되지 아니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유대 율법에 의하면 바울의 이런 생각은 이단의 소리가 됩니다만 성령으로 진리를 알고 믿게 하신 결과 속되게 여기는 사람에게만 속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은 자유 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바울은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14:15)고 합니다.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은 자유와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형제를 업신여기고 판단한다면 사랑으로 하지 아니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고린도전서 8장에서 우상의 제물 문제로 이미 다루었습니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고전8:1-3)고 합니다. 우상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지식이 있기에 자유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러한 지식은 교만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나의 자유와 나의 지식으로 형제를 실족케 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식물로 형제가 실족할 일이 있다면 자신은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은사로 나타나는 자유의 참된 모습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6절에도 보면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14:16)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 다시 말해 하나님이 주신 구원이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은혜의 선물인 믿음으로 받는다는 이 선한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비방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게 되면 율법과 종교성에서 자유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헌금 안 해도 된다더라, 전도 안 해도 된다더라, 기도 안 해도 된다더라고 하는, 카더라라고 하는 방송을 말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율법을 어떻게 완성하셨으며, 어떻게 율법의 저주를 대신 받으신 것인지. 그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는 말씀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뭐라 카더라 방송만 하게 되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비방의 대상일 뿐인 것입니다. 우리의 그런 지식으로 말미암아 덕을 세우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도리어 하나님께서 주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허락하신바 된 복음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아주 쉽게 예를 들어 성전이란 주의 영이 임한 성도의 몸이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당 건물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다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가 강단에 예쁜 꽃꽂이를 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뭐 할라고 여기다가 무슨 꽃꽂이를 하고 있냐고 하면서 차라리 그 돈으로 구제나 선교를 해야지 한하면 그 사람은 사랑으로 행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유란 사랑의 제어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제어를 받지 않고 자유를 자기의 지식을 따라 사용하게 되면 덕을 세우지 못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이제부터 말조심해야지! 이제는 사랑으로 해야지!’ 한다고 해서 되는 것입니까? 안 됩니다. 그러면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니 그냥 나 하나만 구원받으면 된다는 식으로 살아가시겠습니까? 교회에서 봉사하다보면 부딪히고 문제도 생기고 상처도 받고 하니 그런 것으로 구원 얻는 것도 아니라고 했으니 난 그저 자유 함으로 살아가겠노라고 하면서 사시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 또한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유를 가지고 자기 육체를 위하여 사는 것이지 사랑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어쩌란 말입니까? 한마디로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를 알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를 알면 우리가 얼마나 엉터리인지가 드러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로 살지 못함을 알면 회개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나라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법으로 이룬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문자는 죽이는 것입니다. 의문에 속한 법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살리는 것은 영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곳인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 나라

그래서 오늘 본문 17절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14:17)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나라가 아닙니다. 무엇을 먹어야 들어가고, 무엇을 먹으면 들어가지 못하는 그런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들 수도 없고 이루어 낼 수도 없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성령 안에서입니다. 의란 우리의 행위에 의하여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여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자는 평강과 희락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영이 임한 곳에서 자유가 있습니다. 이 자유는 자기 육체의 기회를 따라 사용하는 자유가 아니라 형제를 위하여 기꺼이 종이 되는 자유인 것입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알게 되는 것처럼 모두가 힘든 일을 꺼려합니다. 교회에서 조차 청소나 식사 당번 같은 힘 드는 것을 피하고 싶어 합니다. 물론 하고 안 하고는 자유입니다. 무엇을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의와 희락과 평강이 누려지는가의 문제인 것입니다. 무엇을 먹고 아니 먹고, 무엇을 하고 아니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무엇을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도 범사에 불평과 원망이 나온다거나, 무슨 보답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면 자신의 죄와 비참함이 어떤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자들 그리고 그 나라의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자들에게는 바로 이런 증상들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주의 사도들이 복음을 증거 하였을 때에 자신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룬다고 하나님의 법을 지킨다는 사람들에게서 두 가지 반응이 일어남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들이 만든 자기들의 나라, 즉 율법을 지켜서 되는 나라를 계속 고수하기 위하여 사도들을 핍박하였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하나는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2:37)하는 회개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때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2:38)라고 베드로 사도가 선포한 것입니다. 그러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입니다. 법은 행위를 다스립니다. 그러나 법대로 살았더라도 그 마음은 온갖 악한 것이 가득하다는 것이 예수님의 진단이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마음을 다스리는 소식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나라는 자유케 함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고린도후서 3장에 보면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3:17)고 합니다. 그러나 그 자유는 자신의 육체의 기회로 삼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종노릇하게 하는 자유인 것입니다. 이것이 의와 평강과 희락이 나타나는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서도 칭찬을 받게 됩니다. 우리 안에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의와 평강과 기쁨으로 나타나는 일을 맛보기를 소원합니다. 그 맛을 본 사람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더욱 사모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이런 주안에서의 통치와 다스림으로 말미암아 살아가시는 동안 우리 주님의 참견과 간섭 가운데 의와 평강과 기쁨을 온전히 누리기시를 바랍니다. 그래서 범사와 감사와 찬양이 넘치는 아름다운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내 마음대로의 자유를 다스리는 세상 적인 방법과 성경 적인 내용은 어떻게 다릅니까?

2.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자유와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자유는 어떻게 다릅니까?

3. 신 자유를 버리고 다시 종의 멍에를 메는 것은 무엇이며 또 그 증상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4. 자유에 대한 잘못된 모습과 성령의 은사로 나타난 자유의 참된 모습은 어떻게 다릅니까?

5. 리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참된 지식을 가지고도 범하기 쉬운 어리석은 잘못은 무엇입니까?

6.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라고 하십니까?

7.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자들은 어떤 증상이 드러난다고 합니까?

8. 주의 영이 임함으로 말미암아 얻게 된 자유는 어떠한 자유라고 합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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