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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

본문 / 15:22-29

 

 

 

1.

2017년도 벌써 몇 달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연초가 되면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받았습니다. 문자 메시지로도 받고 또 전화로도 인사를 받습니다. 우리도 이미 서로에게 그런 축복의 인사를 나누긴 했지만 다시 한 번 인사드립니다. 예원 모든 가족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런 인사가 우리들만 하는 것이 아닌 듯합니다. 오늘 본문 29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15:29)고 하여 바울 사도가 로마의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 세상이나 세상으로부터 좇아오는 것이 아니라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예정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신령한 복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가 된 자는 다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하늘에 속한 그 신령한 복이 얼마나 엄청나고 대단한 지를 평생을 통하여 알아가고 확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거대한 선물의 통속에 빠졌는데 그 안에 모든 것들이 다 은혜로 주어지는 복임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일이 나타난 일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일을 성령의 역사로 바울사도가 도구가 되어서 증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세상의 복을 이야기하지만 교회에서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들이 증거 되고 또 그것을 참된 복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 복에 대하여 에베소서 1장에 보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1:3-6)고 말씀합니다. 여기 보면 그 복의 내용이 너무 많아서 조금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이란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는데 우리의 뜻대로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하신 것입니다. 그 뜻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거저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 은혜가 얼마나 큰지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참된 복인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이러한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증거 하면서 나타난 하나님의 일을 오늘 본문에서는 성도의 교제를 통하여 나타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교제란 바울사도가 로마교회의 성도들을 만나보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편지로 복음의 교제를 한다고 하여도 얼굴을 마주보고 그 은혜를 함께 나누는 것과 같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로마의 성도들을 만나보기를 간절히 원한 것입니다.

 

2. 신령한 복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15:22-24)고 말씀합니다. 바울사도가 로마교회에 가려고 하였는데 여러 번 막혔다고 합니다. 이것은 자기의 뜻대로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받아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가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제는 자기가 있는 지역에 복음을 다 전하여 일할 곳이 없게 되었고 이제는 서바나, 즉 스페인으로 갈 때에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가려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자기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25절부터 보면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리라”(15:25-28)고 합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하여 연보를 한 것이 있는데 그것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고서 로마교회로 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교회를 방문하려고 하는 것은, 서바나로 가기 전에 로마 교회를 들러 그곳에서 교제를 통해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즉 서바나로 보내주기를 바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로마는 이방인 세계의 중심이기에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은 그곳에서 그 당시의 땅 끝이라는 스페인으로 가고자 한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인간관계에서 돈 이야기가 나오면 갑자기 껄끄러운 이야기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마저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것이 성도의 교제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두 가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의 교회에서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를 위하여 연보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연보를 예루살렘 교회가 어떻게 받을지가 염려가 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교회는 주로 예수님을 영접한 유대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율법의 규례와 전통이 강하여 이방인을 짐승과 같이 여기고 있는데 그런 예루살렘 교회에 그들이 짐승처럼 여기는 이방인지역의 교회에서 연보한 것을 과연 기쁨으로 받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바울사도는 이방인의 사도로서 이러한 문제까지 복음 안에서 교제가 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복음이 유대의 경계를 넘어서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는 사도행전에서 이미 보았습니다. 사도들이 직접 복음을 듣고서 믿게 되는 사람들을 직접 목격하게 하고서야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이 주어진다는 것을 인정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의 교회를 위하여 연보한 것은 동일한 은혜를 받았다는 입장에서 한 것입니다. 그들도 극심한 가난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힘에 지나칠 정도로 기쁨과 감사함으로 참여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과연 무엇을 받았기에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겠습니까?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여기는지 알고 있지만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았기에 기쁨으로 참여하게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연보가 예루살렘 교회에서 역시 감사함으로 받아진다면 그것이 바로 성도의 교통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방인 교회에서 연보한 것을 예루살렘 교회가 받음직 하게 되도록 기도를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31절에 보면 나로 유대에서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 건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하여 내가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을 만하게 하고”(15:31)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기도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 교회에는 기근으로 인해 심히 어려움 중에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방인 교회에서 기근으로 인해 어려움 중에 있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연보를 한 것을 당당하게 들고 가서 보란 듯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연보가 받음직 하게 되어서 그리스도의 복의 풍성함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동일하게 은혜로 주어지는 것임을 드러내고자 조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울 사도는 이 일을 예루살렘에서 확정한 후에 로마교회를 방문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로마교회는 이방인 세계의 중심입니다. 그곳에서 그 당시에 땅 끝으로 여긴 스페인으로 복음을 전하러 가는 일에 로마교회가 도움을 주기를 원한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바울 사도는 오히려 예루살렘 교회에 연보를 전달하려는 조심성보다 훨씬 솔직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복음 안에서의 교제를 인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관심사가 어디에 있는가를 보게 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풍성한 복이 증거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런 사소한 것들이 무슨 은혜인가 하고 싶으신 분이 혹 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간다고 바울사도가 말하고 있는데 그 충만한 복이 이방인 교회에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연보하고 그것을 기쁨으로 감당하였으며 예루살렘 교회는 그것을 역시 합당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충만한 복의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에베소서 2장에 보면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2:13-18)고 말씀합니다.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상관없이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으신 것이라고 합니다. 십자가로 한 몸을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엄청난 하나님의 일을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한 몸을 이루어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는 이것보다 더 큰 복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습관대로 충만한 복이라고 해서 무언가 다른 기대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일이 성령의 역사로 성도에게 주어지는 것이 영원한 복인 것입니다. 그러한 복은 세상이 알 수도 없고 또 줄 수도 없고 빼앗아 갈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을 받은 사람이라면 그 어떤 환경과 여건 속에서도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이미도 복은 자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나는 작년에 성공하지 못하였으니 올해는 꼭 성공해야지 하면서 소원을 빌려고 동해안 해맞이하러 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송구영신예배하면서 봉투에 소원 적어서 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미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다 받았기에 그 복이 무엇인지를 살아가면서 더욱 많이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을 들으시면 그렇지만 그것만이 복인가 다른 것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가지신 분이 아직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3.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

시편 33편에 보면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아름답게 연주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가 행하시는 일은 다 진실하시도다 그는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그가 바닷물을 모아 무더기 같이 쌓으시며 깊은 물을 곳간에 두시도다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상의 모든 거민들은 그를 경외할지어다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여호와께서 나라들의 계획을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하게 하시도다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심이여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살피시는도다 그는 그들 모두의 마음을 지으시며 그들이 하는 일을 굽어살피시는 이로다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 구원하는 데에 군마는 헛되며 군대가 많다 하여도 능히 구하지 못하는도다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자 곧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그들이 굶주릴 때에 그들을 살리시는도다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우리 마음이 그를 즐거워함이여 우리가 그의 성호를 의지하였기 때문이로다 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바라는 대로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소서”(33:1-22)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천지를 입 기운으로 지으신 것입니다. 바닷물을 무더기 같이 쌓으시는 분이십니다. 천지를 지으신 분께서 자기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나라들의 계획을 폐하시고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하게 하십니다. 이 세상의 나라들이 무슨 사상을 가지고 무슨 계획을 세우겠습니까? 바로 부국강병(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군대를 강하게 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말의 힘과 용사의 힘으로 구원 얻은 왕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 세상의 나라들을 다 폐하여 버리시고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만을 영원히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나라들은 오늘도 부지런히 자기들의 사상으로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모두가 모래위에 짓는 집입니다. 아무리 기초를 튼튼히 하여도 이 땅 자체가 물위에 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경주에 지진이 일어날 때 까지는 지진과는 관계가 없는 나라인지 알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땅은 마치 커다란 널판 같은 것들이 물에 떠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 물에 떠 있는 판들이 서로 충돌이 일어나는 것이 지진인 것입니다. 그 지진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아무리 튼튼하게 지었다고 할지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곳에서의 성공만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한 번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곳임을 알려 주는데도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받은 사람은 흔들리는 땅위에 영원한 계획을 세우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신 그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을 간절히 사모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의 힘과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세계에 대하여 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곳에서는 성공한 사람들에게 찬사와 영광이 따르고 실패한 자는 나가 있어야 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불면증과 스트레스만 쌓여지는 곳이 바로 이 세상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그 나라를 받았다는 것이 복입니다. 이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나라이기에 어떤 인간의 자랑이나 공로가 끼어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기와 질투와 경쟁이 있을 수가 없는 곳입니다. 의와 희락과 평강의 나라입니다. 은혜와 용서와 사랑이 가득한 나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풍성한 축복을 더 많이 맛보아 가기를 소원합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우리가 받은 복을 볼 수 있는 눈과 새길 수 있는 심령 그리고 누릴 수 있는 삶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자는 범사에 감사와 찬양이 넘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그 복을 맛보아 누리기를 원하시는 우리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가 예원가족들 가운데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바울이 로마 교회가 가지고갈 충만한 복과 또 그 복을 받은 자들의 일은 무엇입니까?

2. 하나님께서 이미도 허락하신 복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나누어 보면 어떤 내용입니까?

3.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첫 번째 이야기는 무엇이며 그것이 왜 문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까?

4. 바울 사도가 예루살렘 교회에 대하여 기도 요청을 한 내용과 그 까닭은 무엇입니까?

5. 오늘 본문에 바울의 관심사는 무엇이며 또 왜 그것이 은혜와 복이 되는 것입니까?

6. 바울이 말하는 복과 은혜를 받은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증상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7. 오늘 말씀에서 세상과 하늘나라에 속한 자들이 어떻게 다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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