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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바울의 기도 요청과 그 응답

본문 / 15:30-33

 

 

1. 종교생활

오늘 본문에 보면 바울 사도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기도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 사도가 기도하는 내용을 보기 전에 우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기도란 어떤 것인지를 먼저 보기로 하겠습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하는 것이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기도가 아니라 오직 자기의 탐심을 위하여 기도하는 우상숭배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기도라는 것은 기독교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종교에는 기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를 불상을 세워 놓고도 하고 또는 어떤 효험을 있다고 여기는 것 앞에서 기도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혹 우리가 믿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한다는 것이 그런 세상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무슨 능력이 있을 같고 또는 효험이 있을 것 같아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하면 그것이 과연 성경에서 말씀하는 기도이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단지 그 대상만 바뀌어졌을 뿐 기도의 목적과 기도의 내용이 같은 것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구약에서 말씀하는 바알을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내용의 종교생활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산마다 골마다 기도원이라는 곳이 많이 있습니다. 이제는 도심지까지 기도원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을 지경입니다. 그러나 부처에게 기도하든 또는 어떤 자연물에 기도하든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든 그 기도의 내용들이 자기의 소원성취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라면 이미 그 사람은 어디에서 기도를 하고 있든 그냥 우상 숭배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다니는 사람은 우상에게 절하거나 빌지 않으니 우상숭배자가 아니라고 하겠지만 그러나 골로새서 3장에 보면 탐심이 우상숭배”(3:5)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배당에서 하나님을 부른다고 해서 우상숭배자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하는 내용이 자신의 마음의 정욕을 따라 탐심으로 기도하고 있다면 그것이 우상숭배라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의 특징은 인간의 정성을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 정성이란 목욕재계하고 지성으로 비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옛날이야기입니다. 지금은 다 돈으로 통하는 세상이기에 그 금액의 많고 적음으로 정성의 많고 적음을 따지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이사야 66장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 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나 또한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라 하시니라”(66:1-4)고 말씀합니다. 인간이 정성을 바치는데 있어 신을 위한 집을 지어드리는 것보다 더한 정성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또는 소나 양을 바치는 것도 대단한 정성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것을 원치 아니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떠는 자를 돌보신다고 하십니다. 이러한 성경의 말씀을 모르고 자기 소원성취를 위하여 기도를 하러 나온 사람들은 자기가 정성을 바칠 테니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자기의 원하는바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기 정성을 바친데 대하여 항의를 합니다. 이렇게 정성을 바쳐도 기도를 들어주지 아니하니 다른 곳으로 옮겨버린다고 신에게 협박하거나 철야 농성을 하거나 금식투쟁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어리석음이며 또 이것이 우리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잘 하고 있는 종교생활인 것입니다.

 

 

2. 기도의 태도와 동기 그리고 내용

이제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바울 사도가 기도를 요청하는 자세와 동기와 내용을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먼저 기도를 요청하는 태도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사도입니다. 유대인들은 인정을 하지 않더라도 이방인에게는 바울은 사도의 권위가 있는 사람입니다. 성령이 충만하고 주의 계시를 직접 받는 사도인데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도 사람들에게 기도를 받으러 간다고들 합니다. 그들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특별한 능력이 있어 다른 이들을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이 자기를 위하여 기도하여 달라고 한다면 아마도 사람들은 그를 능력 없는 자로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사도는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기도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나 로마교회 성도나 똑같이 주의 은혜를 입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기도해주는 높은 자와 기도를 받는 낮은 자가 없는 것입니다. 모두가 동일하게 주님의 은혜가 있어야 하는 자들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목사가 기도하면 효험이 더 있는 것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것을 종교성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여 달라고 하는 것은 전혀 자기의 소원을 이루기 위함이 아닙니다. 주님의 복음이 증거 되는 일에 자신이 방해가 되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어떤 처지에 놓이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증거 되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이 일에 로마교회도 동참하여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15:30)라고 합니다. 바울사도가 기도를 요청하는 동기도 자기의 뜻이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는다.’고 합니다. 자기 소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소원을 성령의 사랑과 역사로 말미암아 이런 기도를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의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합니다. 그렇다고 이것은 합심하여 기도하면 하나님이 더 잘 들어준다고 해서 무조건 합심하면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마음이 하나 되는 기도의 동기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내 뜻대로가 아닌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는 마음의 기도인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를 하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은혜아래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31절부터 기도의 내용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나로 유대에서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 건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하여 내가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을 만하게 하고 나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15:31-32)고 말씀합니다.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에게서 구원을 받도록 또 아시아의 성도들이 연보한 것을 예루살렘 성도들이 받음직 하도록 그리고 로마로 평안히 가도록 기도를 요청합니다. 먼저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이란 예수님을 이단의 괴수로 보고 그러한 예수님을 믿는 자들조차 배척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유대인들은 바울사도가 이방인 지역에 전도하러 가는 곳까지 따라다니면서 방해하고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런 자들이 지금 바울이 올라가는 예루살렘에 가면 더욱 많은 것입니다. 그런 바울에게 성령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기 전에 이미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려 주셨습니다. 사도행전 20장에 보면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0:22-24)고 합니다. 또한 사도행전 21장에도 보면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21:10-14)고 말씀합니다. 바울 사도는 성령의 지시로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당하고 이방인에게 넘겨질 것을 압니다. 그러나 심령에 매임을 받아서 가는 것입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자 말리던 사람들도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면서 그칩니다. 그래서 기도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에 가서 죽든지 살든지 주의 복음이 증거 되고 주의 뜻이 이루어지는 일에 기도를 요청함으로 주님의 뜻에 함께 참여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 이방인들을 짐승 취급하는 유대인들이 과연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구제 헌금한 것을 그냥 쉽게 받을까 하는 것입니다. 주안에서는 사랑이지만 자존심 강한 유대인들이 그걸 쉽게 용납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위해 그리고 로마로 가는 것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편안히 쉬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란 자기의 소원이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자기가 사용되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바울도 사람인지라 두렵고 떨리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도하지 아니한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자신의 육신의 가시를 제거하여 달라고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주의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아까워하지 아니하고 전도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대하지 아니하시고 만물의 찌기처럼 천대받는 모습으로 복음을 증거 하게 하시는 것입니까? 고린도후서 1장에 보면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고후1:8-11)고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복음 전도자들을 살 소망까지 끊어질 고생을 시키십니다. 그렇게 하시는 뜻은 전도하는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함이란 철저하게 주님의 소관임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사람 자신의 힘이나 능력으로 이루어진 일이 결코 아님을 알도록 죽을 고생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우리를 건지시고 앞으로도 건지실 것을 하나님을 의지하여 바라는 것입니다. 이 일에 기도로 도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대로 사용되어지기를 간구하는 것이지 자기의 성공이나 영광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응답

그러면 이제 이러한 바울 사도의 기도의 요청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함께 보고자 합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간 바울사도가 믿는 형제들에게는 기꺼이 받아들여집니다. 이방인들에 나타난 하나님의 일을 보고하자 예루살렘의 성도들이 듣고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러나 유대의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그 반발이 대단하여 얼마나 핍박받는 모릅니다. 바울이 이방인을 성전에 데리고 들어갔다고 하면서 데모가 일어나고, 로마의 천부장이 출동하여 바울을 체포한 것입니다. 심지어 유대인 40여명은 바울을 죽이기 전까지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는 자들이 나옵니다. 이런 상태에서 바울사도가 로마의 시민권이 있으므로 가이사에게 상소하여 로마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송사 중에도 바울사도는 무엇을 합니까? 복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로마로 가게 되는데 얼마나 안전하게 가게 되는가 하면 로마군대의 호송을 받는 죄수의 신분으로 가게 됩니다. 이것이 그 당시 가장 안전하게 로마로 가게 되는 길입니다. 결국 바울사도는 로마에 가서 연금 상태로 있으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로마 교인들에게 기도 요청한 것이 그대로 응답이 된 것입니다. 성도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기도한 내용을 이루어내시는 분이 따로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이루어낼 수 있는 것 같으면 기도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연약한지를 아는 사람이기에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 주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사람은 늘 불안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사람은 늘 평안할 뿐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바울사도는 축복을 합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15:32)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자신의 성공과 자신의 야망을 위한 기도가 아닌 오직 주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삽니다. 자신이 어떠한 일도 이룰 수 없는 능력 없는 자라는 것을 아는 자는 기도합니다. 오직 삶의 주관이시며 참견과 간섭으로 인도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만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러한 자의 기도를 항상 듣고 응답하십니다. 오늘도 주안에서의 나의 실체를 깨닫고 주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우리의 모습 가운데서 오직 그리스도만 존귀케 되어지는 아름다운 우리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세상 사람들이 기도하는 까닭과 그 기도가 우상숭배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인간들이 하는 기도의 특징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는 어떻게 다릅니까?

3. 하나님의 원하시는 기도를 모르고 기도하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은 무엇입니까?

4. 바울 사도의 기도 부탁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기도에 대한 우리의 착각은 무엇입니까?

5. 우리가 생각하는 합심 기도와 성경에서 말씀하는 합심 기도는 어떻게 다른 것입니까?

6. 바울이 로마 교회에 요청한 기도 제목 세 가지와 그 내용은 무엇입니까?

7. 하나님은 왜 복음 전도자들을 천대 받는 모습으로 하여 전하게 하시는 것이라고 합니까?

8. 예루살렘에 올라간 바울에게 기도의 응답이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9. 오늘 말씀에서 기도란 무엇이라고 합니까?

10.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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