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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복음에서 복음으로 사는 이들

본문 / 16:21-27

 

 

1. 신비한 복음의 능력

2015823일에 로마서 첫 설교를 하면서 그 제목을 복음으로 살아나 복음을 위하여 사는 이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사도가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고 말하면서 로마서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보게 되는 로마서의 마지막 부분도 역시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16:25)이라고 합니다. 복음으로 시작하여 복음으로 마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제목도 복음에서 복음으로 사는 이들이라고 잡아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16:26)라고 하여 신비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신비란 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성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신기하고 묘한 것을 신비라고 합니다. 그렇게 신비하게 주어진 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시인 것입니다. 그 신비의 계시가 영세 전부터 감추어져 있었는데 이제는 나타내신바 되었다고 합니다. 그 나타내어진 신비의 계시가 무엇입니까?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것이 그 복음의 내용인 것입니다. 그러면 구약시대에는 이 복음의 계시가 감추어진 채로 주어졌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만천하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드러났으니 다 믿게 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복음이 복음답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복음을 증거 하는 데도 다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도 나오고 믿지 아니하는 자도 나오더라는 것이 바울사도의 증거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된 것은 이미 선지자들로 예언된 말씀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여전히 신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특별한 어떤 사람들에게만 전수하는 비법이 있어서 그들에게만 알려 지고 전하여 진다면 비밀(secret)이라고 하겠지만 이 복음은 인간의 죄를 드러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다 알게 하고 또 드러냄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그 복음을 받고 반면에 어떤 이들은 복음을 받지 못하는 것이기에 신비(mystery)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28장에 보면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28:23-28)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복음을 얼마나 잘 증거 하였겠습니까?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한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 자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자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성령께서 이사야 선지자로 예언한 말씀의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나가서 전한 내용이 백성들의 눈을 감기고 귀를 막게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스스로 깨닫고 돌아올까 봐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스스로 깨닫고 돌아오면 그것이 자기 자랑이 되고 남들 보다 우월하다는 근거가 되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에서 복음을 증거 하면서 계속하여 드러나는 것은 믿기로 작정된 자만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설교를 하거나 전도를 한다는 것은 복음이라는 정보를 전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설득하고 믿게 하여서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창세전에 예정된 자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 복음을 듣고서 자신이 전적인 죄인이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가 아니면 전혀 구원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 믿어지는 사람이라면 있다면 그것이 복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2. 복음 가운데 있는 의

로마서를 통하여 인간의 죄가 무엇인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죄란 하나님 앞에서 의가 없는 것이 죄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진노만이 남은 것입니다. 노아홍수의 심판은 인간의 죄악의 관영함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의가 없음으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의인 10명이 없어서 소돔과 고모라도 유황불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이 심판을 받는 이유 또한 결국은 하나님 보시기에 의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에 성령이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16:8)고 하십니다. 성령이 오셔서 하시는 일은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한 세상의 잘못된 생각을 책망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책망하시는 기준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서 죄와 의와 심판이 세상에 증거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9절에 보면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16:9)라고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을 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까? 세상은 선인이든 악인이든 구분하지 않고 해를 비취고 비를 내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세상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면서도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들의 힘과 노력과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단순히 교회를 다니지 않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대신 죽으신 은혜로 살았음을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않음을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감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다면 죄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착한 일을 하며 산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음을 모른다면 죄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이것을 책망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시고 죄 가운데 있던 나를 책망하시고 애통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10절에도 보면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16:10)라고 합니다. 세상은 의를 인간의 착한 행동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의를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가셔서 다시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것으로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왜 의가 되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가신다는 것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즉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틀리고 자기들이 옳다고 해서 예수님을 죽였는데 하나님이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으로 하나님 앞에서는 오직 예수님만이 옳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반대로는 하나님 보시기에 옳으신 예수님을 거부한 세상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의가 없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의로운 자가 가는 나라인데 우리에게는 의가 없습니다. 예수님만 의롭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자만이 의로 여김 받고 천국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이 있는 자는 자신의 행위를 의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자랑하지 않습니다. 대신 예수님의 행함만을 자랑하고 의지할 뿐입니다. 이것이 의가 무엇인가를 바르게 깨달은 신자인 것입니다. 그리고 11절에 보면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16:11)고 합니다. 예수님의 세상 임금 마귀의 권세에 의해 죽으셨습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심판한 것 같지만 하나님이 예수님을 살리심으로써 세상이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세상에게 남은 것은 심판 밖에 없습니다. 심판은 오직 예수님이 기준이 되어 받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에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셔서 예수님을 기준으로 하여 세상 속에 자기 백성을 책망하십니다. 죄가 무엇이며 의가 무엇이고 심판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만을 중심으로 살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만 보아도 이 세상에는 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의가 되신 분이 아버지께로 가버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의가 없기에 심판을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자기에게 의가 없음을 알기에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런 말씀이 우리들에게 어떻게 들리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고 뭐고 간에 내 몸 아픈 것이나 좋아지고, 내 사업이나 잘 되었으면 좋겠고 또 교회나 부흥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주의 성령이 임함으로 오직 자신의 죄와 비참함이 어떤지를 알게 된 사람은 복음만으로 기뻐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복음에 무엇이 있기 때문입니까? 로마서 1장에 보면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1:16-17)고 말씀합니다. 세상은 의가 없어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 하는데 그 의가 복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이 복음을 받고서는 자기가 지금까지 귀하다고 여긴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긴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이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구원 얻는 자들에게만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 얻지 못하는 자들에게 복음이란 미련한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배척하게 됩니다. 복음의 내용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내용인데 과연 누가 상식 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힌 자를 좋아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세상의 영광이 주어진다면 고생하더라도 고생 끝에 낙이라고 따라가 볼만하겠지만 세상의 영광을 배설물로 여기는 자리가 십자가인데 누가 따라가겠습니까? 그러므로 지금도 복음은 가려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4장에 보면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4:3-6)고 말씀합니다. 복음이 가려져 있는 자가 있고 가려지지 않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 결정권이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신이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도록 막고 있지만 그러나 구원 얻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어둠에서 빛을 창조하시던 그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비추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주되심을 믿고 전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1장에 보면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1:26-27)고 말씀합니다. 복음은 비밀입니다. 그런데 이제 성도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 복음의 비밀이란 성도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이시며 영광의 소망입니다. 이 복음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아직은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오직 성도들만이 이것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실 때에도 알아들을 사람과 알아듣지 못할 사람을 구별하기 위하여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복음의 비밀이 완전히 드러나게 될 때가 올 것입니다.

 

3. 우리를 붙드는 손

요한계시록 10장에 보면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10:7)고 합니다. 하나님의 비밀인 복음이 언제 그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바로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1장에 보면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11:15-18)고 합니다. 밧모섬에 유배 되어 있는 요한에게 하늘의 음성이 들리기를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고난과 환난 속에서 이 말씀을 듣게 된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면 이 세상이 주의 나라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요한에게 확실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요한이 지금은 비록 고난 속에 있다고 해도 장차 세상 나라가 주의 나라가 된다는 것에 확실성을 두고 있다면 현재의 고난을 고난으로 여기지 않게 될 것입니다. 결국 주님이 오시면 자신의 고난은 사라지고 주와 함께 왕 노릇 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지금의 고난에 인내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확실한 것은 무엇입니까? 돈 있는 사람이 대우받고 권세 있는 자가 큰소리치며 살아가는 이 세상은 결코 확실하지 않습니다. 확실한 것은 세상이 장차 주의 나라가 된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 확실함이 우리의 마음에 있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겪든 능히 이기게 될 것입니다. 확실한 것을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들이 믿어지며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까? 비록 몸이 아프고, 경제가 어렵고, 무언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그 주신 은혜를 인하여 감사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질 수 없음을 알게 하고 보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주를 견고하게 붙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견고하게 붙드시는 것입니다. 그 견고하게 붙드심이 바로 복음이며 하나님의 언약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자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시고 다 찾아내시고 영생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으로 우리를 붙드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마지막 부분을 함께 합독함으로 로마서 강해를 마칠까 합니다.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16:26-27)

 

(말씀 복습하기)

1. 복음의 내용은 무엇이며, 그 복음을 신비라고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2. 하나님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일은 무엇이며 또 왜 그 일을 하시는 것입니까?

3. 복음을 전파하는 우리가 하는 전도를 뭐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까?

4. 성령이 책망하시는 죄는 무엇이며 또 그 내용은 무엇입니까?

5. 성령이 책망하시는 의는 무엇이며 또 그 내용은 무엇입니까?

6. 성령이 책망하시는 심판은 무엇이며 또 그 내용은 무엇입니까?

7. 성도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8. 하나님의 복음이 가려진 자와 가려지지 않은 자가 있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9.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합니까?

10.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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