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방문자 수

방문자수

전체 : 4,212,454
오늘 : 250
어제 : 238

페이지뷰

전체 : 78,748,433
오늘 : 1,652
어제 : 1,564
조회 수 14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제목 /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이 땅에서도

본문 / 6:10

 

 

 

1. 자기 뜻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

우리가 지난주에 함께 나누었던 나라가 임하시오며라는 기도에는 신자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나라가 임하기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자신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고백이 되기도 하며 또 다스리심이 소망이 되기도 함을 의미함이라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천국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무엇이 아닙니다. 또한 우리의 눈에 보이는 세상의 그 어느 것도 하나님 나라의 구성 품이 될 수는 없습니다. 신자는 이러한 점을 기억하면서 나라가 임하옵시며라는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삶을 세상의 것으로 꾸며주기 위해 인도하시는 분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인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시기 위해 우리를 다스리고 계심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에게는 범사가 하나님의 은혜이고 따라서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신자의 본분임을 알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소원하는 신자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뜻은 항상 포기되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이렇듯 신자는 자기의 뜻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곧 자신의 뜻이 되어 사는 존재이기 때문에 오늘 본문과 같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6:10)하는 기도가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는 세상의 기도와는 전혀 다른 기도인 것입니다. 세상의 기도는 땅에서 자기의 뜻과 자신의 계획이 성취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자기를 위한 기도가 인간들이 하는 기도의 전부인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가 아무리 열성을 다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한다고 하여도 그 부름과 기도가 자신의 뜻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이방인의 기도일 수밖에 없음을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이 점을 분명하고 명확하게 알아 점검하며 기도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세상만을 바라보고 사는 이방인의 기도와 세상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며 살아가는 새 사람의 기도가 어떻게 다른 지부터 먼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에서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 기도하고, 자신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복종되어지기를 소원하는 이 기도야 말로 성령이 함께 하지 않은 사람에게서는 나올 수가 없는 기도임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에베소서 1장에 보면 바울 사도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1:1)이라고 말합니다. 이 외에도 바울 서신 곳곳에서 바울 사도는 자신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사도되었음을 언급하는 내용이 여러 곳에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사도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자신을 사도로 세웠으니까 자신을 무시하지 말라는 뜻으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그런 자신을 대접하라는 것도 아니고, 사도의 권위를 알아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 사도되었으니 이제부터 자신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뜻 아래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이러한 고백은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분명한 뜻을 가지고 일하심을 믿는 자의 고백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하나님의 창세 전의 계획, 즉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바울 사도와 같이 나의 나 된 것이 나의 열심과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그 뜻으로 말미암아 된 것을 안다면 또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그 뜻을 가지고 오늘도 하나님의 열심으로 일하심을 믿는 신자라면 그렇게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은 물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관심을 두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안다면 우리에게 허락하신 삶을 이해하는 것이 조금은 쉬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2.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그런데 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대부분 우리가 생각하는 신앙에서의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 내가 이것을 할까요? 아니면 저것을 할까요?’라는 식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묻는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결국 자기 마음이 기우는 쪽으로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는 기도 응답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이것은 도리어 미신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미 하늘에서 이루어졌고, 이제는 그 뜻을 이 땅에서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열심으로 일하고 계심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느냐의 문제는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과는 전혀 상관이 없음을 알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늘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늘의 뜻을 가지고 세상에 오신 분이 곧 예수님이란 것을 알고 있고 또한 믿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자기의 뜻이 없었고 오직 아버지의 뜻만 있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고 그 또한 믿습니다. 그 뜻이 예수님을 고난으로 밀어 붙인다고 해도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곧 예수님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6장에 보면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을 앞에 두고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26:39)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 보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실 때에 다 이루었다”(19:3)고 말씀하시고 영혼이 돌아가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예수님이 자신의 임무를 마쳤다는 의미로서의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완벽하게 이루어 졌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성소를 통해 자기 백성과 함께 하셨지만 이제는 아들을 보내셔서 아들로 말미암아 자기 백성과 함께 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그 피로써 자기 백성의 모든 죄를 덮으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일에 있어서 인간은 아무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독생자를 죽이는 악을 드러내었을 뿐이고 그 누구도 예수님의 십자가에 함께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은 오직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만 이루어진 일이며, 이것을 두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장차 있을 십자가의 죽으심까지 내다보시고 기도를 가르쳐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랑하는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구원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말을 이상하게 듣는 분들이 많은데 그것은 믿음을 자기 구원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구원이라면 애당초 사단이 인간을 유혹할 때 막았어야 합니다. 아니 그 전에 사단이 있는 이곳이 아니라 하늘에 하나님의 자녀를 지으셨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마귀로부터의 유혹도 없을 것이고 또 독생자이신 예수님이 굳이 세상에 보내서 고난의 길을 가게 하실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혹 그럴 기회를 놓치셨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를 구원하여 자녀 삼으셨다면 이제 자녀된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이 계신 천국으로 그냥 데려 가시든가 아니면 우리 안의 죄의 본성이라도 제거해 주시면 좀 더 쉬운 길을 갈수도 잇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니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런데 굳이 십자가를 세우시고 십자가의 피의 은혜를 믿는 자만 구원하시겠다는 것은 우리의 구원보다는 더 중요한 다른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의 나라를 세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의 죽으심을 통해서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죄의 권세를 멸하시고 택한 자기 백성을 하나님의 생명에 영원히 함께 하는 나라를 세우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이 나라는 세상의 나라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세상의 사고방식으로는 함께 할 수가 없는 은혜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7장에 보면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7:9-12)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나라는 오직 우리가 아닌 하나님의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려 드리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 아들을 보내셔서 세상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길을 가게 하시고 그러한 아들을 믿는 자를 자기 백성으로 간주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그 뜻은 하나님과 예수님 사이에서 이미 완벽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남은 것은 하늘에서 이루어진 그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3.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다시 말하지만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는 것은 하늘에서 주어진 뜻 앞에 별개의 나의 뜻은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땅에 살아봐서 아시겠지만 자기의 뜻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소원과 자기의 뜻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다만 현실적인 상황이 자기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흘러가기 때문에 때로 낙심하고 원망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이 나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 다른 분의 뜻이 내가 몸담고 살아가는 이 세상을 주관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하늘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뜻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 세상은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가고 있고 그 가운데 우리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져 가고 있는 세상에서 그 뜻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신자가 하늘의 뜻을 알수록 자기의 뜻은 무너져야 하고 포기되어야 할 뜻에 지나지 않음을 실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뜻은 온통 세상을 향해 있고, 그 끝은 세상에서 자신을 굳게 세우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뜻은 자기 백성을 이 세상이 아니라 하늘의 생명의 나라에 굳게 세우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무너질 것에 뜻을 두고 살아가지만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것에 뜻을 두시고 우리를 간섭하심을 알기에 자신의 뜻은 무너지고 하나님의 뜻에 동행하고자 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가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이루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어떤 방향으로 인도하실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비록 실패로 다가온다고 해도 그것을 실패로 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실패는 나로 하여금 세상이 아니라 하늘을 소망하게 하고, 자신이 무너진 그 자리에서 영원한 것은 하늘에 있음을 깨닫게 하시는 은혜의 일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에 임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막고 훼방하는 것이 바로 내 뜻입니다. 나를 세우고 싶어 하는 나의 뜻은 고난과 죽으심의 길을 가신 예수님과 동행하며 오직 예수님을 높이는 길을 가라고 하신 하나님의 뜻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은 외면한 채 그것이 죄라는 것을 모른 채 자기의 뜻을 위해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아니 그것이 죄라는 것을 이야기 해 줘도 부인해 버리고 맙니다. 어떤 경우에도 자기의 뜻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인간의 완고함에 장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피조물이면서 자신이 창조주의 뜻 아래 있음을 외면한 채 오직 자신이 더 나아지는 길을 택하여 살아가는 세상의 악함이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것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이 자기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동행하면서 그 뜻을 세상에 나타내는 길을 가겠다고 한다면 그가 바로 기적의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2장에 보면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12:50)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신 예수님처럼 자기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에 복종되기를 원하는 그가 바로 예수님의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자기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뜻을 위한 봉사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의 길을 가시면서 아버지의 뜻에 대한 봉사자의 길을 가신 예수님처럼 신자 또한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하나님의 뜻을 위한 봉사자의 길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에게 자기의 뜻은 항상 부인되어야 할 대상일 뿐인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서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고 말씀하신 것처럼,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의 은혜 안에서 세상의 형편과 상관없이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써 예수님의 은혜가 이처럼 크다는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뜻이 자신에게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것이 신자로서 마땅한 기도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하늘에서의 뜻이 이루어짐으로 신자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복에 참여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이 복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것이 전부인줄 알고 살아갑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신자는 이 세상의 그 어떤 재물보다 더 귀하고 큰 보물이 하늘에 있음을 증거 하는 길을 가는 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나를 생명에 있게 하신 예수님의 그 크신 은혜를 증거하고 높이는 자의 길을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뜻이 예원가족 모두에게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성령님이 함께 하는 기도와 그렇지 않은 기도는 어떻게 다르다고 합니까?

2.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다고 하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3.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지 못할 때 가지는 잘못된 신앙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4.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5.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6. 주의 십자가가 나의 구원을 위함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위험성이 있으며, 그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창세 전의 계획과 그 목적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7. 세상이 나의 뜻과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음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까?

8. 이 세상에서의 실패가 하나님의 은혜로 다가 올 수 있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9.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10.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75 2022 7월 17일 / (롬1:17)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관리자 2022.07.17 286
574 2023 7월 16일 / 요한복음 10. (요 2:1-12) 가나 혼인잔치의 표적 관리자 2023.07.16 9
573 2023 7월 16일 / 요한계시록 20 (계 6:1-2) 첫째 인 관리자 2023.07.16 8
» 7월 16일 / (마6:10)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이 땅에서도 관리자 2017.07.15 140
571 7월 15일 2부 / 은혜의 연보로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23 관리자 2012.07.15 1674
570 7월 15일 / 마가복음 11. (막 2:1-5) 그들의 믿음과 죄사함 관리자 2018.07.14 93
569 7월 14일 / 마가복음 60. (막 10:35-40) 야고보와 요한의 요청 관리자 2019.07.13 115
568 7월 13일 / 사도행전27. (행7:1-16) 아브라함과 할례 그리고 두 아들 10 관리자 2014.07.13 999
567 7월 12일 / 사도행전76. (행25:13-22) 성도들의 삶의 우선순위 관리자 2015.07.11 488
566 7월 12일 / 갈라디아서 12. (갈 3:23-29) 믿음이 오기 전과 믿음이 온 후 관리자 2020.07.12 211
565 7월 11일 / 히브리서 36. (히 10:1-4) 좋은 일의 그림자 관리자 2021.07.10 92
564 7월 10일 2부 / 영광의 자리에 초대를 위한 하나님의 일하심 관리자 2010.07.11 1405
563 7월 10일 2부 /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를 위하여 2 관리자 2011.07.09 1806
562 7월 10일 / 로마서 44. (롬8:15-17) 하나님의 자녀 됨을 증언하는 양자의 영 관리자 2016.07.16 311
561 2022 7월 10일 / (고전 13:1-3)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닙니다. 관리자 2022.07.10 300
560 7월 23일 / (마 6:11)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자들 관리자 2017.07.22 120
559 6월 9일 / 마가복음 55. (막 10:13-16) 하나님 나라와 어린 아이 관리자 2019.06.07 89
558 6월 8일 / 사도행전22. (행5:12-16) 사도들을 통하여 나타난 표적과 기사 8 관리자 2014.06.08 1248
557 6월 7일 / 사도행전71. (행22:2-21) 바울이 말하는 진정한 신앙의 체험 관리자 2015.06.06 577
556 6월 7일 / 갈라디아서 7. (갈 2:17-21) 믿음 안에서 사는 것 관리자 2020.06.07 210
Board Pagination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 37 Next
/ 37

총괄 관리자 : 예원교회 방송실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