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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믿음이 오기 전과 믿음이 온 이후

본문 /  갈 3:23-25 

 

1. 믿음에 대한 오해

믿음이 있다는 것과 믿음이 없는 것의 차이에 대해 우리는 여러 가지로 다양하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믿음에 대해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은 하나 있습니다그것은 바로 믿음이 있고 없고의 차이를 인간의 행함에서 찾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오늘날은 교회에서는 대부분 행함을 강조합니다야고보서에도 보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2:17)고 말씀하기에 신자들에게 있어 행함은 믿음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그런 신앙의 현실로 말미암아 신자들이 행함에 매일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그런데 과연 야고보서의 이 말씀의 의미가 그런 뜻인지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오늘날의 교회는 윤리와 도덕 그리고 종교적인 실천을 행함으로 말합니다그리고 이러한 행함이 있어야 참된 믿음이라고 합니다그러나 야보고서의 말씀은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와는 전혀 다른 뜻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바로 앞에 있는 14절부터 보면 14.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2:14-16)라고 합니다즉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 형제자매에게 쓸 것을 주지 않으면서 마치 그들을 걱정하는 듯한 말만 하는 것은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그렇다면 살아있는 믿음은 헐벗고 굶주린 사람에게 쓸 것을 주는 것입니까그런데 야고보는 이어지는 말씀에 보면 행함에 대해 또 다른 예를 들고 있습니다. 20절부터 보면 20.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2:20-21)라고 말합니다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아들까지도 제물로 바칠 수 있어야 행함이 있는 산 믿음이라는 것입니다또한 24절에서는 자기 목숨을 걸고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도와준 라합의 예를 들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합니다이처럼 야고보는 세 가지의 행함즉 독자인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과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이스라엘의 정탐군을 돕는 라합 그리고 헐벗고 굶주린 형제자매에게 쓸 것을 주는 것에 대한 것에 대해 말합니다야고보가 언급한 이 세 가지 행함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이 죽은 믿음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결의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야고보서 2장의 서두를 보면 가난한 자와 부자를 차별하여 대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면서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는 것을 죄를 범하는 것으로 말합니다그리고 13절에서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2:13)는 말을 합니다야고보가 사람을 차별하는 것에 대해 언급한 후에 긍휼을 말하는 것은 사람의 차별이 곧 긍휼과 연관된 것임을 의미합니다그리고 긍휼에 대해 말한 뒤에 세 가지 행함을 이야기한 것 역시 세 가지의 행함이 긍휼과 연관되어 있음을 짐작케 합니다외적인 조건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단지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는 문제로 접근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그렇게 되면 성경은 윤리와 도덕의 문제로 전락되기 때문입니다외적인 조건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긍휼이 없는 것입니다이것이 복음의 시각입니다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외적인 조건으로 대하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겨주신 긍휼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이러한 하나님의 긍휼이 있는 신자라면 외적인 것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그래서 믿음의 행함은 예수님의 긍휼로 형제를 대하는 것입니다그리고 이것은 자신의 죄인 됨을 알지 못하고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결국 긍휼이 없는 그 어떤 행함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행함이 아니며 또 믿음이 아닌 죽은 믿음일 뿐이라는 것이 야고보의 말입니다헐벗고 굶주린 형제자매에 대해서도 인간적 동정이 아니라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자신의 몸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긍휼로 대해야만 합니다이처럼 긍휼은 자기의 것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어 놓게 합니다그래서 헐벗은 자에게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쓸 것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이것은 동정이 아니라 긍휼인 것입니다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행위로 인해 드러난 것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경외였습니다이삭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순종하게 된 것입니다하나님은 이삭 대신에 수양을 준비하셨고이를 통해 하나님은 죽어야 할 우리 대신 제물을 준비하셨음을 보여주십니다그 제물이 바로 예수님이시고 따라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사건에서 드러난 것은 하나님의 긍휼인 것입니다이처럼 신자가 경외하고 존귀히 여겨 할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긍휼의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 순종하는 것이 행함이 있는 산 믿음인 것입니다라합이 정탐꾼을 도와준 것도 인간적 도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계셨고 그 하나님이 여리고를 무너뜨릴 것을 믿은 믿음의 행동입니다그 라합의 믿음이 여호수아 2장에 12.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13.그리고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 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2:12-13)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것입니다이처럼 야고보가 말한 세 가지 행함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긍휼이 있습니다이것을 생각해 보면 야고보가 말한 행함은 긍휼을 의미하며 따라서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은 하나님의 긍휼이 없는 믿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의 긍휼을 아는 것입니다그래서 신자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긍휼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신자의 심령에 하나님의 긍휼이 있다면 그로부터는 긍휼의 모습이 증거될 것입니다그래서 야고보서의 말씀으로 행함만을 강조하는 것은 죽은 믿음을 가지라는 것과 같은 불신앙인 것입니다.

 

2. 초등선생의 역할

오늘 본문에 보면 사도 바울은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3:23)는 말을 합니다믿음이 오기 전이란 믿음이 없을 때를 의미합니다따라서 바울의 말은 믿음이 없을 때는 율법에 매이고율법에 갇혔다는 뜻인 것입니다그리고 율법은 결국 인간의 행함과 연결된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아는 내용입니다그런데 ‘신자의 믿음은 행함으로 드러난다’고 말한다면 이 말은 오늘 본문의 사도 바울과의 말과는 다른 말이 됩니다믿음을 행함으로 증명하려고 하고행함이 없으면 믿음이 없는 것처럼 여기면서 ‘나는 행함에 매이지도 또 갇히지도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이미 행함에서 자유롭지 못하기에 행함을 기준으로 믿음을 판단하려고 하는 것이고행함이 없을 때는 자기 믿음에 대한 불안감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그런데 그러한 생각들이 바울 사도가 말한 믿음이 없을 때 율법에 매인 사람들의 생각이라는 것을 기억하셔야만 할 것입니다그리고 오늘 본문 25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3:25)고 말합니다초등교사란 율법을 의미합니다따라서 이 구절은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다는 뜻이 됩니다믿음이 우리를 율법으로부터다른 말로 하면 행함으로부터 자유하게 한다는 뜻입니다그런데 왜 율법을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초등교사로 표현을 하는 것입니까그것은 율법의 기능 때문입니다초등교사는 어린아이를 돌보고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고대 그리스에서는 어린아이의 가정교사로 초등학문을 가르치며 의복과 식사 그리고 행동을 돌보아주고 학교에도 데리고 다니는 종이 있었다고 합니다이들은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스승이며 후견자의 역할을 했고 아이는 그가 비록 종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초등교사즉 스승이기에 순종해야 했습니다그러나 아이가 성인이 되면 초등교사는 아이에 대해 더 이상 스승이나 후견자로서의 어떤 권한도 갖지 못하고 아이는 초등교사에게 순종해야 하는 자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었던 것입니다바울은 이러한 초등교사의 관습을 이용해서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설명하고자 했던 것입니다그러면 율법을 이러한 초등교사로 비유한 이유는 무엇일까요앞에서 말한 대로 초등교사는 어른에게는 필요하지 않습니다어린아이즉 다른 말로 하면 믿음이 오기 전의 어리석은 사람을 가르치기 위해 율법을 초등교사로 등장시켰다는 것입니다믿음이 오기 전의 어리석은 사람은 이제 갓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초신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선행으로 믿음이 증거되고 또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은 선행으로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곧 믿음이 오기 전의 어리석음인 것입니다율법은 이러한 인간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가르쳐주기 위한 초등교사의 역할로 주어진 것입니다.

 

3. 의롭다 하심

그런데 오늘 24절을 보면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3:24)는 말을 합니다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초등교사이긴 하지만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초등교사로 인해서가 아니라 믿음에 의해서라는 것입니다즉 신자가 의롭다함을 받는 일에 있어 초등교사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다만 믿음뿐이라는 것입니다율법의 기능은 우리를 죄 아래 가두는 것이며그 율법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임이 확연히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이처럼 율법은 신자가 실천하고 행해야 할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초등교사로서 인간의 무지와 의롭지 못함과 구원받지 못함을 지적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그런데 이처럼 죄에 갇힌 우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행하심이 복음의 내용으로 다가온 것입니다십자가에 흘리신 그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고 의롭게 하셨다는 복음의 내용이야 말로 죄에 갇힌 우리들이 의롭게 되는 것은 선행이나 율법 준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선포하는 것이 됩니다이처럼 신자가 의롭게 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의로우신 예수님을 믿는 것 밖에 없습니다그래서 믿음이 온 후로는 율법에 매이지 않고 다만 그리스도의 의의 행하심을 믿는 자로 살아갈 뿐인 것입니다그래서 믿음이 온 후의 신자는 인간의 행함에서 벗어나서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행하심만을 바라보는 자로 바뀌게 됩니다이것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신자에게 나타나는 변화입니다그래서 믿음은 신자로 하여금 ‘실천을 해야 믿음이 있다는 증거다’는 쪽으로 나아가게 하지 않습니다어떤 실천을 하고 주변의 사람들이 칭찬하는 선을 행했다고 해도 믿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의 의만을 바라보게 합니다그래서 믿음은 신자가 어떤 실천이 있든 상관없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게 하는 것이고죄인 된 자리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의롭다 하신 예수님의 의의 행하심만 의지하게 하는 것입니다이것이 행함에 매이지 않는 신자입니다즉 행하지 않는 것이 믿음이라는 뜻이 아니라자신의 어떤 행함에도 매이지 않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우리가 무엇을 행하고 실천을 한다고 해도 예수님의 행하심 앞에 우리의 행함은 행함이라고 할 수 없고 따라서 의라고도 말할 수 없음을 알아야만 합니다그리고 우리의 선한 행함 뒤에 감추어져 있는 우리의 악함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그래서 우리의 죄인 됨을 확고히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벗어나서는 절대로 의에 해당될 수 없음을 아는 이것이 성령이 역사하는 것이고믿음이 온 후에 신자 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이것을 보면 행함을 강조하는 교회의 가르침은 성경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바울 사도의 말을 근거로 결론을 내린다면 우리의 행함은 결코 믿음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우리가 어떤 행함을 보인다고 해도 그것을 믿음의 기준으로 내세워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만약 행함으로 자신의 믿음을 보여주고자 한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고율법에 매인 자고믿음이 오기 전의 믿음이 없는 사람일 뿐입니다이러한 말에 대해 뭔가 인정은 되면서도 한 가지 허전함을 느끼실 것입니다그것은 바로 믿음이 온 후의 삶의 이야기에 대한 내용입니다행함으로 구원받고자 함도 아니고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자 함도 아니고 다만 믿음이 있음으로 인해 나타나야 할 삶이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맞습니다능력의 믿음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면 믿음으로 인해 반드시 나타나야 하는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만약 삶에 나타나는 것이 없다면 그 믿음은 야고보서의 말대로 죽은 믿음이 분명합니다그런데 문제는 믿음으로 인해 나타나는 삶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대개 믿음의 삶은 윤리적 의미에서의 선행이며 또는 종교적 활동으로도 생각할 것입니다만약 이것이 믿음으로 인해 나타나야 할 삶이라면성경은 사도들의 사역에서 그러한 삶을 소개할 것입니다믿음은 신자로 하여금 예수님의 길을 가도록 했고오늘날 신자는 사도가 간 그 길에 동일하게 서 있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믿음의 삶이 선행이라면 사도들에게서도 선행은 있기 마련이고그렇다면 그러한 선행을 소개하며 신자도 그러한 삶으로 나아갈 것을 촉구해야 할 것입니다하지만 성경은 사도들을 예수님에게 미쳐서 복음만 전했던 사람으로 이야기하고 있을 뿐임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선행처럼 눈에 드러나는 특별한 실천이 믿음으로 나타나야 하는 삶이라면 우리는 날마다 선행을 하기 위해 힘을 써야 합니다가난한 사람과 고아원이나 복지관을 찾아가 봉사해야 합니다그럴 마음이 없으면서 ‘믿음의 삶’을 말한다는 것은 너무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흔히 가정주부의 일상은 특별하다고 할 만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그냥 하루 종일 집안일하고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면서 하루가 지나갑니다그러면 그러한 가정주부에게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믿음의 삶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우리의 생각처럼 믿음의 삶을 어떤 특별한 선행으로 생각한다면 평범하게 살아가는 가정주부에게는 믿음의 삶이 없는 것입니다이것이 과연 타당한 말이라고 여겨지십니까믿음의 삶은 그냥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한 바울의 고백처럼 영원히 저주에 갇혀야 할 자신이 예수님의 의의 행하심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여김 받게 된 것만으로도 자신은 넉넉한 자임을 깨닫고 주어진 삶에 감사하고 주를 바라보며 그냥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이러한 믿음의 삶은 세상의 어떤 일에서도 흔들림이 없이 항상 그 마음이 주를 향하게 됩니다다만 주의 은혜가 감사할 따름이라고 고백하며 살아가는 그것이 바로 믿음이 온 후에 나타나는 신자의 변화이며 믿음의 삶인 것입니다오늘도 이런 은혜로 말미암은 변화가 예원 모든 가족들 가운데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우리가 믿음에 대해 크게 오해하는 것은 무엇이며그 내용은 무엇입니까?

2야고보 사도가 말한 믿음의 예를 든 세 가지는 무엇이며 또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3. 야고보 사도가 말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4.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어떤 자들이었다고 말씀합니?

5. 믿음이 온 이후로 우리는 어떤 자들이 되었다고 말씀합니까?

6.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었다는 것과 율법과는 어떤 관계가 있다고 합니까?

7. 성령으로 말미암아 신자에게 나타난 변화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8. 믿음이 온 후의 신자의 모습은 어떠하다고 말씀합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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