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방문자 수

방문자수

전체 : 4,216,161
오늘 : 182
어제 : 387

페이지뷰

전체 : 78,762,618
오늘 : 600
어제 : 994
조회 수 16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제목 /  백부장의 믿음과 우리의 믿음

본문 /  눅 7: 1-10

 

1. 백부장의 믿음

오늘 본문은 가버나움에 거주하는 백부장에 대한 이야기로서 백부장이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자 예수님께 유대인 장로와 친구들을 보내어 종을 구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오늘 본문에서 중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9절에 있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7:9)는 백부장을 향한 예수님의 칭찬의 말씀입니다복음서에도 보면 예수님께 믿음에 대하여 칭찬을 들은 사람이 등장합니다누가복음 8장에도 보면 열두 해를 혈루증을 앓은 여인이 예수님의 뒤로 와서 옷에 손을 대자 혈루증이 즉시 그친 일이 있는데예수님은 이 여인을 향해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8:48)는 말씀으로 혈루증 여인의 믿음을 인정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그리고 마태복음 15장에도 보면 자신의 딸이 흉악한 귀신 들려 고침 받기 원하는 가나안 여인이 자신을 개 취급하시는 예수님을 향해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15:27)라고 말하는데예수님은 이 여인을 향해서도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15:28)고 말씀하심으로 이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인정하셨습니다이처럼 성경에는 믿음을 인정받고 칭찬 듣는 사람들이 있지만 오늘 본문의 백부장처럼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했다’라는 말을 들은 사람은 없습니다그 정도로 백부장의 믿음은 뛰어 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런데 예수님께 이렇게 믿음을 인정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에 보면 뛰어난 믿음이라고 여길만한 백부장의 행동은 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백부장이 한 일은 유대인 장로들과 친구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종의 병을 고쳐 달라고 요청하게 한 것과 또한 예수님이 백부장의 집에 가까이 오셨을 때 벗들을 보내어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7:6-8)라고 한 말 뿐입니다그런데 예수님이 이 말을 전해 들으시고 놀랍게 여기시며 따르는 무리들에게 그 같은 칭찬을 하신 것입니다이것을 보면 백부장의 믿음은 유대인 장로들과 벗을 보내어 예수님께 전한 말에서 드러남을 알 수 있습니다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백부장이 사람을 보내어 사랑하는 종을 고쳐 달라고 요청을 했고 또 그 요청을 받으신 예수님이 자신의 집 가까이 오셨다는 전갈을 받았다면 당연히 백부장 자신이 친히 나가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 우리가 아는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런데 백부장은 사람을 보내어 말만 전하게 합니다그 이유는 백부장이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들어오시는 것도자기가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존귀한 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그렇다면 예수님에 대한 백부장의 믿음은 자신을 예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존재로 여겼다는 것입니다자신의 실체를 바라 보고 있었다는 것이며 또 실제로 예수님께 나아가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참 믿음과 거짓 믿음

백부장은 요즘 군대로 하면 중대장에 해당되는 직책으로 가버나움 지역의 치안을 책임지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이 점을 생각하면 백부장은 당시 가버나움에서는 큰 권력을 가진 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그런 그가 종을 위해서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고쳐주기를 요청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사랑하는 종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백부장은 종에 대해 특별한 마음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모든 종을 사랑했는지 아니면 그 종 하나만 특별히 사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백부장과 같은 사람이 종을 사랑했다는 것은 당시 사회에서는 일반적인 모습은 아닌 것입니다당시에 종은 재산으로 취급되었기에 종이 죽는 것은 단지 재산상에 약간의 손실이 발생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그런데 백부장이 종을 사랑했고 병든 종을 고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은 백부장이 종을 대하는 시각 자체가 달랐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백부장에게는 주인과 종이라는 차별이 없었습니다오늘 본문 5절에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7:5)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이 백부장은 이방인인 자신과 유대인이라는 관계에서의 차별도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종이든 유대인이든 백부장의 입장에서는 모두가 자신의 권력 아래 있는 사람들입니다따라서 얼마든지 그들을 자신을 위한 도구와 수단으로 여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그러나 백부장은 종과 유대인을 사랑하는 것에서 사람을 자신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사람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이것은 아주 간단하고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에게는 힘든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왜냐하면 우리는 사람을 경쟁의 대상으로 바라보면서 항상 타인보다 더 높은 위치에 존재하려고 하고 또 그것으로 너와 나를 차별하는 습성에 매어 있기 때문입니다우리는 바리새인들이 그와 같은 시각으로 사람을 대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바리새인들은 세리와 창녀와 같은 사람들을 아주 악한 죄인으로 규정하며 저주 받을 자로 여겼지만 자신들은 의인으로 여겼습니다이방인 또한 그들이 죄인으로 여기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대했습니다이들에게 있어 하나님은 자신들과 죄인을 차별하여 대하시는 분이었고유대인과 이방인 또한 차별하시고장차 이방인을 멸하시고 유대인을 구원할 메시야를 보내실 분이었습니다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역시 특별히 차별하여 사랑할만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그들 또한 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었을 뿐입니다하나님은 바리새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유대인과 이방인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물론 바리새인식으로 의인과 죄인을 구별하여 차별하지도 않으십니다즉 인간의 행위를 따라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하나님의 구속의 일에는 사람과 사람의 차별이 없습니다있다면 이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의 구별이 있을 뿐입니다그러므로 믿음의 세계에서는 사람과 사람의 차별이 나타날 수 없으며예수님은 이 같은 믿음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백부장이라는 사람을 사용하신 것입니다예수님은 오늘 본문의 백부장을 내세워서 유대인과 이방인에 대한 차별이 없는 하나님의 구원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그래서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다’라는 말씀을 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다시 말해서 백부장의 믿음이 이스라엘 사람보다 더 뛰어나다고 칭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백부장의 믿음을 인정하고 칭찬하심으로 드러내시는 것입니다이스라엘의 믿음이라는 것은 결국 스스로 자부하는 아브라함의 혈통과 그렇지 않은 자를 나누는 것이며 또 율법을 지켜 행하는 자와 그렇지 못하는 자를 나누는 것이기에 그러한 믿음은 하나님 보시기에 믿음이 아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만난 자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이 비록 백부장의 믿음에 대해 말씀하시지만 백부장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고 장차 있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까지 다 알고 믿었다는 뜻은 아닙니다백부장이 비록 종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예수님을 초청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병 고침에 대한 예수님의 능력의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백부장의 믿음에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백부장을 통해서 드러나는 믿음의 내용에 초점을 두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그리고 그 중심에는 차별의 문제가 있음을 기억해야만 합니다오늘 본문 앞에 있는 누가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은 들보와 티에 대해 말씀을 하셨고 또 열매와 나무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들보와 티에 대한 말씀의 내용은 결국 차별은 자기 눈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함으로 나타나는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즉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바르게 알지 못할 때 남의 티가 보이고 그것을 정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그렇기에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주안에서 바르게 알게 되면 결코 남의 티를 보고 정죄할 수 없으며 또 그런 티는 보이지도 않게 되는 것입니다그리고 그처럼 자기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하고 차별하고 정죄하는 것이 못된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는 못된 나무인 것입니다따라서 자기 눈의 들보를 볼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좋은 나무에 속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그러면 오늘 본문의 백부장의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7:7)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십시오백부장은 자신을 감히 주께 나아갈 수도 없는 존재로 여깁니다즉 자신은 낮추고 주를 높이고 있는 것입니다이것은 백부장이라는 자신의 지위를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백부장이 자신의 지위와 힘을 생각하지 않았기에 차별이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교양과 도덕이 되고 맙니다즉 백부장의 인격이 칭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그리고 그것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또한 백부장이 자신의 지위를 생각하지 않았다고 해도 예수님을 자신이 감히 나아갈 수 없는 분으로 여기기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그렇다면 백부장이 예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출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그것은 예수님에게서 자신이 감히 함께 할 수 없는 절대적인 능력을 보았고 또 경험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누가복음 5장에서 예수님이 베드로를 부르실 때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배가 잠길 정도로 고기를 잡은 일로 인해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5:8)라고 고백하게 됩니다예수님이 자신이 함께할 수 없는 거룩한 분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또 구약 성경 이사야서에도 보면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경험한 이사야 선지자가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한 일도 있습니다이것을 보면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부인하며 낮추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이것은 누가 시켜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자신의 죄를 보게 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증상인 것입니다자기 눈에 있는 들보를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게 되고 자신을 낮추게 되는 것입니다이것이 진심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인 것입니다그런 점에서 우리도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구원자라는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다시 말해서 우리의 믿음이 백부장의 믿음과 그 본질이 같다고 할 수 있는지 아니면 유대인들의 믿음과 같은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다고는 해도 예수님의 거룩함과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경험하지 못한 채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아예 예수님의 거룩함이나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경험하는 문제에는 관심도 없을지도 모릅니다경험에 대한 것도 단지 신비한 기적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전부일 수도 있습니다그러면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우리는 베드로나 이사야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없습니다하지만 말씀을 통해서 얼마든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경험할 수는 있습니다하나님의 말씀은 히브리서 4장에 보면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4:12-13)라고 말씀합니다그러므로 이런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 앞에 드러나는 우리의 결과는 자기 부인으로 나타나게 됩니다예수님께 감히 나아갈 수 없는 불의한 자기 존재에 대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이러한 사람에게서 과연 바리새인들과 같은 차별이 나올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자기 부인이 없는 것이 바로 자기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한 것입니다이런 점에서 백부장은 자기 부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고예수님은 이것을 믿음으로 말씀하심으로써 자신에게 집중한 채 살아가는 유대인의 믿음을 하나님 보시기에는 믿음이 아닌 것으로 드러내신 것입니다백부장이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원한 것은 오직 말씀뿐이었습니다‘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라고 말한 것처럼 말씀만 해 주시면 된다는 것입니다백부장은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과 그 권위에 절대적인 신뢰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말씀만으로 충분하다는 백부장을 보면 우리는 ‘우리 중에서라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그 정도로 우리는 예수님께 말씀 외에 원하는 다른 것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입니다예수님을 알고 나를 알게 되면 나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의 많은 것들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이 나를 살리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말씀이 생명이고 빛이기 때문입니다이러한 말씀의 세계 안에서는 오직 은혜로 인한 감사가 있을 뿐 유대인들처럼의 형통과 행위로 말미암은 차별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오늘도 주의 말씀 앞에 우리를 세워 보시기 바랍니다오늘 본문을 통해 무엇을 말씀하여 주시려는지 잘 분별하시기 바랍니다우리가 믿음이라고 여기는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진정한 믿음인가를 점검하시고 확인하시기 바랍니다말씀으로는 위로가 안 되고주의 말씀이 아닌 다른 것을 찾고 있다면 우리는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자들인 것입니다그렇기에 오늘 본문의 백부장을 보며 예수님이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7:9)라고 하시는 것입니다오늘도 예원가족들의 믿음이 오늘 본문의 백부장처럼 예수님께 인정받는 믿음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예수님께 인정과 칭찬을 받은 백부장의 믿음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2오늘 본문의 백부장이 ‘종을 사랑했다’는 말이 일반적이지 않은 까닭은 무엇입니까?

3. 종을 사랑한다고 하는 백부장의 모습에서 알 수 있는 그의 삶은 어떤 모습입니까?

4. 오늘 본문의 백부장과는 달리 우리와 바리새인의 시각은 어떠하다고 합니까?

5. 예수님께서 백부장을 들어 우리에게 말씀하시려고 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6. 들보와 티 그리고 나무와 열매에 대한 상관 관계는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7. 하나님을 만난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8. 늘날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경험하며 그것이 가능한 까닭과 그 결과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9. 백부장이 주께 구한 것은 무엇이며 또 그것을 오늘날 우리에게 말씀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10.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77 10월 7일 2부 / 주의 능력이 우리의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145 관리자 2012.10.07 1893
676 10월 8일 / 믿음 7. (눅17:11-19) 돌아온 사마리아 나병환자 관리자 2017.10.08 225
675 2023 10월 8일 / 요한계시록 32. (계 8:6-13) 천사가 나팔을 불매 관리자 2023.10.08 8
674 2023 10월 8일 / 요한복음 18. (요 4:9-10)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관리자 2023.10.08 12
673 2022 10월 9일 (히 11: 39-40) 믿음의 온전함 관리자 2022.10.09 285
672 10월 9일 / 로마서 56.(롬9:27-29) 이스라엘의 남은 자만 구원 받으리니 관리자 2016.10.08 321
671 10월 9일 2부 /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3 관리자 2011.10.09 1846
670 11월 10일 / 디도서3. (딛1:5-16) 하나님의 청지기로서의 삶 104 관리자 2013.11.10 4313
669 11월 10일 / 마가복음 77. (막13:24-27) 주를 기다리며 사는 재림 신앙 관리자 2019.11.10 95
668 11월 11일 / 마가복음 28. (막 5:9-20) 돼지 떼에 들어간 군대 귀신 관리자 2018.11.10 160
667 11월 12일 / 로마서 61. (롬10:16-21) 우리가 전하는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관리자 2016.11.12 357
» 11월 12일 / 믿음 12. (눅7:1-10) 백부장의 믿음과 우리의 믿음 관리자 2017.11.11 169
665 2023 11월 12일 / 요한계시록 37. (계 10:1-11) 손에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 관리자 2023.11.12 10
664 2023 11월 12일 / 요한복음 22. (요 4:39-42) 우리가 친히 듣고 앎이라 관리자 2023.11.12 12
663 2022 11월 13일 / (마 6:14-15) 용서 관리자 2022.11.14 235
662 11월 13일 2부 /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다시 알게 하노니 관리자 2011.11.13 1607
661 11월 13일 2부 /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다시 알게 하노니 관리자 2011.11.13 1360
660 11월 14일 / 히브리서 54. (히 11:22) 믿음으로 요셉은 관리자 2021.11.14 151
659 11월 14일 2부 / 우리를 변화시키는 십자가의 능력 관리자 2010.11.12 1376
658 11월 15일 / 추수감사주일 (레 23:33-36) 교회의 추수감사절과 성경의 수장절 관리자 2015.11.14 91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7 Next
/ 37

총괄 관리자 : 예원교회 방송실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