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0일 / 마가복음 22. (막4:1-9) 농부의 일하심과 그 결과

by 관리자 posted Sep 2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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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농부의 일하심과 그 결과

본문 / 4: 1- 9

    

 

“1.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 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 2.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 3.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9.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4:1-9)

  

  

1. 농부의 일

우리는 지난 시간의 말씀을 통하여 유대인들에게는 아브라함 자손이라는 혈통이 그들이 생각하는 구원의 중요한 근거였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어머니이고 형제이고 자매라는 말씀을 하심으로 혈통이 구원의 근거가 될 수 없음을 증거 하심을 보았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예수님의 가족이라면 누가 예수님의 가족이냐 하는 것의 여부는 하나님의 뜻이 떨어져 봐야 알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질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상태를 예수님은 길가 밭, 돌밭, 가시떨기 밭으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결국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져도 싹이 나고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좋은 땅은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가 뭐라고 해도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갑니다. 세상을 벗어나서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기보다는 오직 눈에 보이는 것에 자신의 뜻을 두고 살아갑니다. 이러한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진다면 결국 사탄에게 빼앗기게 되고, 세상의 염려와 어려운 일들로 인해 낙심함으로써 말씀을 포기하게 되고, 세상의 여러 유혹과 욕심으로 인해 예수님이 아닌 세상에 마음을 두고 세상을 좇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길가 밭, 돌밭, 가시떨기 밭의 상태를 모두 합쳐 놓은 것이 우리들의 마음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길가 밭의 마음과 돌밭의 마음이 따로 있고 그리고 가시떨기 밭의 마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여건과 형편에 따라 때로는 길가 밭의 모습을 보이고, 때로는 돌밭, 때로는 가시떨기 밭의 상태를 보이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지막에 좋은 밭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인간에게는 좋은 밭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 좋은 밭은 어떻게 발생하는 것입니까? 분명한 것은 밭은 자기 스스로 변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길가 밭과 돌밭과 가시떨기 밭이 스스로 좋은 밭으로 만들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열매 맺지 못하는 밭을 개간하는 것은 오로지 농부의 몫입니다. 그러나 농부가 열매 맺지 못하는 나쁜 밭을 향해서 너희는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땅이 되도록 하라고 말한다고 해서 나쁜 밭이 좋은 밭이 되지는 않는 것입니다. 나쁜 밭은 스스로 좋은 땅으로 자신을 고칠 힘도 자질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좋은 밭은 오직 농부의 열심으로만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2. 농부의 바람

예수님이 인간의 마음 상태를 이렇게 밭으로 비유하신 것도 바로 이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나쁜 땅이 스스로의 힘으로 좋은 땅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이 이 비유의 의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말씀을 인용해서 신자에게 좋은 땅이 되도록 하라고 말하는 것은 나쁜 땅을 보고 좋은 땅이 되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나쁜 땅을 좋은 땅으로 바꾸는 것은 오로지 농부의 몫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릴 때 나쁜 밭에 그대로 뿌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뿌려봐야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면 나쁜 땅을 좋은 땅으로 개간을 해서 씨를 뿌리고 열매 맺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하시는 일은 나쁜 땅의 상태인 우리를 좋은 땅으로 고치시고 회복하시는 것입니다. 씨가 떨어져도 열매를 맺을 수 없는 나쁜 땅을 결실할 수 있는 좋은 땅으로 고치신 후에 씨를 뿌리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열매가 예수님의 가족이라는 증거물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열매가 많으냐 적으냐는 것도 사실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의 교회들이 오해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인데 그것은 많은 열매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 어디를 가도 이러한 말을 쉽게 들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열매를 맺는 것이 우리의 소관이고 할 일이라면 우리는 당연히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하고 또 많은 열매를 맺으려고 엄청나게 노력과 열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열매를 맺는다는 것 자체가 우리들의 소관이 아니고 우리의 열심의 결과도 아닙니다. 열매란 예수님이 우리를 좋은 땅으로 고치셨을 때 자연히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매는 내가 좋은 땅이라는 증거물로 나타나는 것이고 그것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지 많은 열매로 인해 기뻐하시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가 주의해야 하는 것은 열매가 적으냐 많으냐가 아니라 열매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열매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인가를 살펴야만 하는 것입니다. 열매가 많아야 한다고만 생각하게 되면 결국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힘을 쓰고 열심을 내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열매는 인간의 눈으로 확인되는 결과물로만 인식을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에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서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고 또 눈으로 확인되는 신앙의 활동이 없을 때는 항상 불안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그렇게 함으로 자신의 신앙을 의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경험을 많이 해 보셨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남들처럼 열심히 행하는 행함이 없고 가만히 있으면 뭔가 불안해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놀고 있고 게으른 것처럼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이래 가지고도 과연 하나님을 믿는 신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좋은 밭의 신자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다만 신자의 행함이라는 열심에 대해 오해함으로써 신자 안에서 행하시는 성령의 일하심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3. 믿음의 일하심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 보면 “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3.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살전5:12-15)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신자의 삶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자인 우리가 성경이 말씀하는 신자의 삶에 대해 얼마나 마음을 두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바울 사도는 말씀으로 다스리고 권하는 사람들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라고 하며 그리고 서로 화목하라고 말합니다. 또 게으른 자를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항상 선을 따르라고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빛의 아들들에게서 나타나야 할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사도가 말한 빛의 아들의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있습니다. 이러한 삶을 실천할 수 있느냐는 것을 따지기 전에 그렇게 살고 싶은 열망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사도가 말하는 이 같은 삶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살고 싶은 삶은 이미 따로 계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고 싶은 삶, 우리가 계획하고 살고자 하는 삶은 공통적으로 내 자신에게 득이 되고 기쁨이 되고 행복이 되는 삶을 계획하고 원할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읽은 말씀처럼 바울 사도가 말하는 대로 살면 우리에게 기쁨이 주어지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닐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말한 대로 산다고 해도, 그 같은 삶이 우리에게 원하는 행복한 삶을 보장해주지 못합니다. 이것을 알기에 우리는 이러한 말씀에 시큰둥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내게 보상이 되어 돌아오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신자로 하여금 이러한 삶을 살아가도록 강권하고 역사합니다.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내게 득이 되는 것만을 추구하며 살도록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실체를 보게 하고 오직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알게 하여 말씀 안에서 자신의 모든 욕망이 내려진 채 예수 그리스도로 함께 교제할 수 있는 관계가 되게 하십니다. 믿음은 예수님이 오심을 기다리는 신자로써 진심으로 말씀을 듣고 깨달으며 돈보다도 말씀이 필요한 세상임을 알고 있는가를 우리에게 묻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자들에게 주님께 받은 그 은혜를 내어 놓은 삶을 살도록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고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교회의 일을 많이 하는 그런 것을 믿음의 열심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신자가 자신의 교만을 깨달으며, 자신의 교만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음을 알고 회개하며,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가 신자를 낮은 자로 만들어 갈 때 그 낮아짐이 형제의 관계에서 화목으로 드러나고 모든 삶에서 항상 주님의 의만을 바라보고 높이며 살아가는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믿음의 열심인 것입니다. 또한 이어지는 데살로니가전서 516절부터 보면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처럼 예수 안에 있는 신자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이것 역시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즉 좋은 땅에서만 맺어지는 열매라는 것입니다. 신자가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은 모든 길을 주께 맡겼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게 하시는 그 길이 자신에게는 가장 복된 길임을 믿고 갈 때 그 길에서 어떤 형편에서든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열심이고 좋은 땅의 신자에게서 맺어지는 열매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열매는 양으로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믿음으로 인해 기쁨이 있는지, 모든 길을 주께 맡기고 살아가는지, 모든 일에서 감사하는지를 물을 뿐인 것입니다.

 

4. 인간의 열매와 성령의 열매

다시 말하지만 예수님은 인간이 자신의 열심을 동원해서 맺은 결과물을 열매로 말씀하지 않습니다. 총동원전도주일이라는 것을 해서 100, 1000명의 새로운 교인을 만들었다고 해도 그것을 열매로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열심이 만든 결과물일 뿐입니다. 물론 그 속에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택한 백성을 불러내시고 천국 백성으로 만드시는 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자기 백성을 찾으시고 불러내시는 일에 총동원전도주일이라는 인간의 욕망을 이용하시는 것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열매는 인간의 열심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일하심의 결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마음을 좋은 밭으로 만드시고, 그 밭에 말씀을 뿌려서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열매는 사탄에게 말씀을 빼앗기지 않고, 환난이나 핍박을 견디고,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욕심을 이김으로 맺어지는 열매인 것입니다. 이러한 열매가 인간의 노력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곧 성령을 모독하는 것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귀함을 알고 그 말씀에 마음을 두고 귀를 기울이고자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좋은 땅이라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을 고치심으로써 진심으로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셨기에 가능한 열매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어려움과 핍박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고 예수님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보인다면 그 또한 좋은 땅이라는 증거입니다. 이 모든 일이 주님으로 인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자신에게서 열매가 보이더라도 그 열매로 자신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일하신 결과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일하시고 역사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높이고 자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신자에게는 주님이 일하신다는 것만큼 든든한 것도 없습니다. 주님은 어떤 경우에도 실패하지 않으시고 모든 일을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가 좋은 땅이 아니지만 주님이라면 우리를 좋은 땅으로 만드셔서 말씀의 열매가 있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주님만 믿고 의지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우리에게서 세상보다 천국에 소망을 두는 믿음의 열매를 보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안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말미암은 아름다운 열매가 예원가족들 모든 삶에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길가 밭, 돌밭, 가시떨기 밭은 무엇을 말씀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2. 원래 인간의 자질은 무엇이며 그럼에도 좋은 밭이 될 수 있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3. 예수님이 오늘의 비유를 말씀하시는 이유와 이 비유에 대한 우리의 오해는 무엇입니까?

4.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5. 인간들이 생각하는 열매는 무엇이며 또 그러므로 말미암아 드러나는 현상은 무엇입니까?

6. 바울 사도를 통하여 권하는 신자의 삶과 그러한 삶에 관심이 없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7. 그런 우리에게 믿음이 하는 일은 무엇이며 또 진정한 믿음의 열심은 무엇입니까?

8. 우리가 생각하는 열매와 성경이 정의하는 열매는 어떻게 다릅니까?

9. 오늘 말씀을 통해 성령을 모독하는 것과 좋은 땅이라는 증거는 어떻게 나타납니까?

10.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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