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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다윗의 용사들과 하나님의 일하심

본문 / 삼하23: 8-12

 

 

 

“8. 다윗의 용사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다그몬 사람 요셉밧세벳이라고도 하고 에센 사람 아디노라고도 하는 자는 군지휘관의 두목이라 그가 단번에 팔백 명을 쳐죽였더라 9. 그 다음은 아호아 사람 도대의 아들 엘르아살이니 다윗과 함께 한 세 용사 중의 한 사람이라 블레셋 사람들이 싸우려고 거기에 모이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물러간지라 세 용사가 싸움을 돋우고 10. 그가 나가서 손이 피곤하여 그의 손이 칼에 붙기까지 블레셋 사람을 치니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크게 이기게 하셨으므로 백성들은 돌아와 그의 뒤를 따라가며 노략할 뿐이었더라 11. 그 다음은 하랄 사람 아게의 아들 삼마라 블레셋 사람들이 사기가 올라 거기 녹두나무가 가득한 한쪽 밭에 모이매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되 12. 그는 그 밭 가운데 서서 막아 블레셋 사람들을 친지라 여호와께서 큰 구원을 이루시니라”(삼하23:8-12)

 

1. 취미생활과 신앙

사람들은 교회를 세상일을 잠시 잊어버리고 마음에 안위를 찾기 위해서 오는 곳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어떤 목사님은 교회는 세상일에 지치고 힘든 사람들이 잠시라도 마음의 쉼을 얻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도록 해줘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교회가 교회를 찾는 사람들에게 해줘야 하는 최상의 서비스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교회는 하나님을 신앙하는 곳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를 찾기 위한 여가활동의 일환으로 전락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교회는 세상일을 잊어버리고 마음에 안위를 찾기 위해 찾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과 한통속이 되어서 세상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실체를 속 깊이 파악하기 위해 찾는 곳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찾아 나왔어도 십자가의 보혈을 보지 못하고 돌아간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를 찾은 것이 아니라 단지 여가활동으로서의 한 장소를 찾은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야만 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교회는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 실체를 똑똑히 파헤쳐주는 곳이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 자신이 천국 근처도 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볼 수 있게 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이 인간의 공로나 의로움과 전혀 상관이 없이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부어진 은혜임을 부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만이 교회에서 목사를 바라보려고 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보려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목사가 어떤 사람이냐에 관심이 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가 선포되고 또 그 십자가의 피가 사람들을 영접하는 교회인가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관심을 그리스도의 피에 둔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상 자체가 그리스도의 피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관심두지 않는 일에 관심을 둔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배고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혀 힘도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자라고 하는 우리 또한 세상이 관심을 두는 일에 관심을 두면서 세상이 살아가듯 그렇게 세상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와서 그러한 잘못된 우리의 모습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채 돌아간다면 우리는 세상과 함께 어울려 살다가 세상이 멸망할 때 함께 망하는 길을 가는 것에 불과할 뿐인 것입니다. 잠시 세상일을 잊어버리고 마음의 안위를 누리고자 하는 것은 마약을 찾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공산주의의 창시자인 마르크스가 종교를 아편이라고 말한 것도 종교가 현실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하고 더 나은 삶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마음의 위안을 얻게 해주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신자에게 중요한 것은 세상의 실체를 아는 것입니다. 세상이 사단에게 지배를 받으면서 하나님과 대립되어 있는 가운데 존재하고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세상 속에서 구별되지 못하고 세상의 일부가 되어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고 있는 자신에게서 무엇이 하나님과 대립하는 것인가를 볼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럴 때 자신에게서 풍기는 더러운 악취를 맡을 수가 있는 것이고, 악취 나는 모습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 그리스도의 피가 자신의 더러운 모든 것을 덮으며 자신을 영접하고 계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2019년 한 해를 시작하면서 이런 주의 은혜가 예배하는 우리 모두 가운데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2. 살아계신 하나님과 우리의 믿음

오늘 본문 8절에 보면 다윗의 용사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라”(삼하23:8)는 말로 시작하면서 다윗의 옆에 있었던 세 용사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사무엘하 23장은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삼하23:1)이라는 구절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제 인생을 마치려는 시점에서 왜 다윗의 용사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것일까요? 다윗에게는 이러한 용사들이 있어서 그 용사들의 도움으로 다윗이 많은 이방인과 전투를 하면서 승리를 얻었고 이스라엘을 강한 나라로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도 다윗의 용사들이 전투에 나가서 수많은 이방인들을 무찌르고 승리한 전공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분명 다윗이 이러한 용사들의 도움을 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더군다나 다윗의 용사들은 다윗이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마시고 싶다고 할 때 목숨을 걸고 적이 점령하고 있는 베들레헴까지 가서 물을 떠오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는 용사들이 다윗에 대해 어떤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다윗에게 있어서 용사들은 든든한 힘이 되었을 만한 사람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0절에 보면 그가 나가서 손이 피곤하여 그의 손이 칼에 붙기까지 블레셋 사람을 치니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크게 이기게 하셨으므로 백성들은 돌아와 그의 뒤를 따라가며 노략할 뿐이었더라”(삼하23:10)고 합니다. 이 내용을 보면 다윗의 승리는 용사들 때문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크게 이기게 하셨다는 말씀을 통해 여호와로 인한 승리임을 말씀합니다. 리고 11절부터 보면 “11. 그 다음은 하랄 사람 아게의 아들 삼마라 블레셋 사람들이 사기가 올라 거기 녹두나무가 가득한 한쪽 밭에 모이매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되 12. 그는 그 밭 가운데 서서 막아 블레셋 사람들을 친지라 여호와께서 큰 구원을 이루시니라”(삼하23:11-12)고 합니다. 이 내용을 봐도 구원은 다윗의 용사들로 인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로 인한 것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결국 다윗의 모든 승리는 다윗과 함께 하고, 다윗을 돕고, 다윗에게 충성했던 용사들로 인한 것이지만, 정작 용사들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셨다는 것입니다. 즉 용사들로 인한 승리가 아니라 바로 여호와로 인한 승리더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왜 다윗이 인생을 마치는 시점에서 언급을 하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인생의 마지막에 서서 자신이 승리한 날들을 돌아보니 용사들이 자신의 곁에 있어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승리였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삶에 마지막에 인생의 실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의 승리에는 용사가 있었지만 용사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사로 인한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한 승리라는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인생이었고 오늘 우리의 인생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바라보고 의지할 존재는 과연 누구이겠습니까? 용사이겠습니까? 아니면 용사의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까? 당연히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어떠합니까? 오늘 우리가 2019년을 시작하는 첫 주일 예배에서 우리가 다 아는 문제를 두고 깊이 생각해야하는 것은,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신다거나, 우리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안다고 하고 또 믿는다고 하지만 과연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시고 배후에서 일하신다는 이 믿음이 우리의 삶에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껏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살아계신다’, ‘하나님이 우리의 배후에서 일하신다’,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신다는 말에 대해서 수없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러한 주의 말씀에 동조하거나 옳다고 인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의 배후에서 일하시고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우리의 삶에서 만나고 느끼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승리하게 하심을 두고 감사하며 살아가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만나고 느끼지 못하는 하나님은 다만 추상적인 하나님에 불과할 뿐입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살아계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느냐는 것은 삶을 통해서 증거 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우리가 살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의 생활에 살아계신다면 우리에게 벌어지는 일들, 우리에게 주어진 형편과 환경들은 하나님에 의해 되어진 것들입니다. 이것을 믿는다면 과연 그 믿음은 삶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겠는가를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셨다는 것을 믿으며 살아가십니까? 만약 그러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라면 내가 이렇게 하면 손해가 될까?’ 아니면 이익이 될까?’라는 계산을 하지 않게 됩니다. 다만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것인가?’만을 헤아릴 뿐입니다. 이 일이 나에게 손해로 돌아오든 아니면 이익으로 돌아오든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을 우리의 삶에서 실제 몸으로 체험하며 살아가느냐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

다윗에게는 용사들이 있었고 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전쟁에서 다윗을 위해 나가 싸운 자들은 다윗의 용사들입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바라보고 의지하겠습니까? 보이는 것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우리의 어리석은 시각은 항상 용사들만을 바라보게 합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셨다고 하지만 실제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용사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우리의 기도는 나에게도 다윗과 같이 나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용사를 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 같고 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도 전혀 부인하지 않는 것 같지만 실상 우리의 삶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의지하지도 하고, 살아계심도 부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악취로 가득 차 있는데도 불구하고 냄새가 드러나는 것을 싫어한 채 교회를 찾는다면 과연 교회에서 무엇을 보고 또 무엇을 얻고 무엇을 만나겠다는 것입니까? 교회에 나와서 한 시간 예배에 참석하고 설교를 들었다고 해서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냄새나는 나의 실체를 들여다보면서, 그러한 우리를 받아주시고 영접하시는 그리스도를 만나야만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나를 교회로 인도하시는 이유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모여야 하는 이유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의 모임의 중요성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바쁘다는 것이 핑계거리로 등장할 수 없다는 것도 자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자기 인생에 도움이 되고 힘이 되는 것을 얻고자 합니다. 다윗의 용사와 같은 것이 내게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존재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제아무리 힘이 될 만한 것을 소유했다 할지라도 승리는 여호와로 말미암는 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믿음이 없기에 삶이 힘든 것이고, 힘든 것을 어떻게 주체하지 못해서 하나님을 찾아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또 힘이 될 만한 것들을 달라고, 평안을 달라고 외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믿음 없는 것은 생각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우리가 지난 2018년 한 해를 살아온 것이 우리가 소유한 것 때문이었다고 여기십니까? 실상 우리가 소유한 것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모든 것은 여호와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의 삶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 모두가 엉뚱한 것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세상이 원하고 추구하는 승리만을 꿈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소유하는 것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냄새나는 우리의 실체를 드러내심으로써 우리의 모든 악하고 더러운 것을 용서하시고 깨끗이 씻어주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시고 만나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피가 나를 영접하는 것을 보게 하십니다. 그것이 신자에게는 진정한 승리이고 성공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나로 하여금 세상의 그 무엇인가를 소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알고 만나게 하는 것이라고 바라보고 믿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에서 간섭하시고 일하시는 하나님을 분명 느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세상에서 담대한 자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살리는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기 위해 오늘도 또 2019년 한 해도 열심히 일하실 분이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일하심은 2019년 한 해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전 생애에 걸쳐 변함없이 계속되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용사가 힘이 아니라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이 힘이라는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시기 위해 일하시는 그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열심에 감사를 하며 살아갈 수 있는 2019년 한 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람들이 생각하는 교회는 어떤 곳이며, 그런 생각이 신앙적으로 위험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2. 신앙적으로 교회는 어떤 곳이어야 하며 또 그래야만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3. 교회가 존재 목적대로 바로 설 때 그 교회에 속한 자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은 무엇입니까?

4. 다윗의 용사들의 이름을 인간적인 시각으로 볼 때는 어떤 해석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까?

5. 다윗의 인생의 마지막 시점에서 오늘 본문과 같은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6.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에 대한 추상적인 말 뿐인 고백과 믿음의 삶의 고백 가운데 드러 나는 증상은 어떻게 다르다고 합니까?

7. 추상적인 말 뿐인 고백을 하는 자들은 다윗의 용사를 보면서 무엇을 구하며 산다고 합니까?

8.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만났다면 그에게는 어떤 증상으로 드러난다고 합니까?

9. 우리가 하나님이 살아 계심에도 불구하고 만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10.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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