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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 나라와 어린 아이

본문 / 10:13-16


“13.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16.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10:13-16)

 

 

1. 세상과 하나님 나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나름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원칙을 정해 놓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착하게 살면 천국을 갈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이지 이 세상의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씀 드리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법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나라가 간섭해서 자기들 마음에 들게끔 정할 수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입니다. 만약에 대한민국이 10살 이상의 사람은 대한민국에 들어올 수 없다는 법을 세웠다면 그 법에 의해서 10살 이상 된 사람은 대한민국에 들어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주변의 나라에서 그것은 엉터리고 상식에 맞지 이야기라고 하면서 당장 그 법을 고쳐라고 소리친다고 해도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의 원칙과 법으로 존재할 뿐입니다. 물론 소리를 치고 항의는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렇다고 주변 나라들이 대한민국의 법을 자기들 마음대로 고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천국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에는 천국만의 원칙이 있는 것입니다. 그 천국의 원칙이 우리들의 상식과 생각에 맞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천국이 우리가 이해할 수 있고 또 세상의 상식에 맞는 원칙으로 수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천국은 과연 어떤 원칙을 가진 나라인가를 아는 것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천국에 대한 세상의 상식은 앞에서도 말씀 드릴 것처럼 착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착한 것과는 상관없이 누구든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가 아니면 천국에 들어올 수 없다는 천국의 원칙이 선포되면 많은 반발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선으로 여기는 착한 것도 천국에서 인정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세상이 이해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세상의 이해를 받으시려고 일하시지 않습니다. 세상이 이해를 하든 또는 하지 못하든 상관없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으로만 일하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만큼 세상의 원칙과 상식은 하나님 나라의 원칙과 상식과는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 나라를 받드는 자

오늘 본문 15절을 보면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10:15)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것이 천국의 원칙입니다.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아니하는 자는 들어가지 못하고,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드는 자만이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어른이 된 사람이 어떻게 어린아이가 될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신체적인 문제 때문만이 아닙니다. 어른들은 그 마음이 이미 세상의 것으로 가득 채워져 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어린아이의 상태로 되돌아간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어른과 어린아이는 여러 가지로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어린아이는 자신을 지킬 힘이 없어서 누군가를 의지해야 하는 존재인 반면에 어른은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는 힘이 없다는 것이 전혀 부끄러움이 아닐 뿐만이 아니라 또 자신에게 힘이 있다 없다는 것을 의식도 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어른은 세상의 힘을 향한 욕망에 끊임없이 매어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그러한 힘이 없을 때 그것을 부끄러워하게 되고 또 낙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아가면서 흔히 만나는 동창들의 모임이나 친척들과의 모임에서도 사회적으로 힘이 있는 사람은 당당한 반면에 반대로 힘이 없는 사람은 주눅이 들고 부끄러워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그러한 힘의 차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이것이 나에게 힘이 되느냐 또는 힘이 되지 않느냐?’라는 기준으로 가치를 따지는 방식에서 벗어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무엇이든지 자신에게 힘이 되고 또는 쓸모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하는 것을 기준으로 따집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힘이 되지 않는 것은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버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어른들의 습성에 의해서 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이 선물로 허락하신 믿음이 복음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 조차 천대를 받고 무시를 받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교회에서나 또 믿음과 신앙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끼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말하는 믿음은 대부분이 믿는 자를 세상에서 힘 있는 존재로 만들어 주는 복을 제공하는 용도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믿으면 복 받고 성공하고 병도 낫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이야기들이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쓸모 있고 바람직한 믿음이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반면에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믿음은 오직 우리 주 예수님이 가신 좁은 문을 들어가 좁은 길을 가게하고, 세상에서 미움을 받게 하고, 핍박을 받게 한다고 말한다면 누가 그 믿음을 가치 있고 귀한 것으로 여기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런 믿음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세상에 보기에는 그는 정말 정신 이상자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믿음을 생각하는 오늘날 사람들의 상식에 되어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참된 믿음은 배척을 받고 있으며, 인간이 만들어 낸 거짓 믿음이 참 믿음으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참된 믿음이 아니기 때문에 천국과는 상관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가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선물로 허락하신 참 믿음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해서 내가 세상에서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세상에서 힘 있는 자가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믿음은 그저 우리를 천국에 있게 하는 능력일 뿐입니다. 우리가 어릴 적 가지고 놀았던 딱지나 구슬 같은 것이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아주 귀한 보물입니다. 하지만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아이들의 딱지나 구슬은 아무짝에 쓸모없는 쓰레기 일 뿐입니다. 이것이 어른들과 아이들의 전혀 다른 세계이며 사고방식인 것입니다. 오직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 어른들이기 때문에 어른들의 눈에 딱지나 구슬이 아이들처럼 귀하게 보일 리가 없는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만약에 노아가 세상 사람들을 의식했다면 방주 만드는 것을 중지했을 것입니다. 방주를 만드는 일은 누가 봐도 어리석은 것이고 놀림 받기에 충분하고 쓸모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를 기억하고 있던 노아에게 있어서는 방주를 만드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비웃든 조롱을 하든 무시하든 상관없이 자신의 삶에서 방주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노아에게 있어 방주가 없는 삶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에서 헤어날 수 없는 운명으로 끝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우리의 인생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십니까? 이 세상을 우리가 보기에 살기 좋은 곳으로 여기며 바라보느냐 아니면 이 세상의 심판을 언약하신 하나님의 말씀 위에서 세상을 바라보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위에서 이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간다면 우리 인생에서 가장 귀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인생은 세상의 심판과 함께 멸망으로 끝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세상에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를 이용하여 세상에서 높임 받고자 하는 것도 더 더욱 아닙니다. 다만 예수님이 생명이라는 그 사실 하나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포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세상이 믿음을 알아주지 않아도 개의치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세상이 그런 나를 조롱하고 미워한다고 해도 끝까지 예수님만을 고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린아이처럼 천국을 받드는 삶인 것입니다.

 

3. 악한 생각

오늘 본문 13절을 보면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10:13)이라고 말합니다. 어린 아이의 부모들이 예수님이 자신들의 아이를 만져주기를 바라고 데려왔다고 하는데 아마 병든 아이를 데려 와서 예수님이 만져주셔서 낫게 해주시기를 바랐거나 아니면 예수님이 만져서 축복해 주기를 바란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어린 아이를 데려온 것을 꾸짖은 것입니다. 제자들은 아마도 예수님이 아이들에게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14절부터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꾸짖으시면서 “14.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10:14-15)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의 모습을 보고 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를 데려온 부모를 꾸짖는 제자들의 악함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신 제자들의 악함은 제자들이 어린 아이들을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제자들의 사고방식에 의해서 천국이 무시 받고, 믿음이 멸시를 받는다는 것을 아셨기에 어린아이처럼 받들지 않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의 시각은 자신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어린 아이들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는 틀린 말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님 보시기에는 악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믿음이라는 것도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는 우리에게 별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천히 여기며 자신들이 원하는 믿음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악일뿐인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주님의 시각이라면 그런 주님을 머리로한 교회라면 주님과 같은 내용으로 그런 제자들의 모습과 거짓 된 믿음에 대하여 악이라고 선포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것을 세상에서 쓸모 있는 것으로 말하고, 헌금하고 성경 읽고 기도하는 그 모든 것도 이 세상에서 큰 유익으로 보답되어지는 행동으로 가르칩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도 천국도 예수님도 세상에서는 아무 짝에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무시를 받고 조롱을 받아야 하는 것이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쓸모 있는 것으로 가르침으로써 사람들을 끌어 모으려고 하는 그것이야 말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천대 받고 있는 실상인 것입니다.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믿노라고 하면서도 거기에 나를 힘 있는 자로 만들어 주는 예수를 첨가하는 것입니다. 즉 십자가만으로는 안 된다는 악한 심보인 것입니다. 이 심보에 의해서 지금까지 예수님은 천대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을 신앙한다고 하는 교회로부터 말입니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귀한 딱지나 구슬을 어른들이 알아주느냐 하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이 좋아하기 때문에 보물로 여기는 것입니다. 신자에게는 이러한 어린아이 같은 심성이 있어야만 합니다. 세상이 알아주는 것과 상관없이 다만 생명이라는 문제 하나로 예수님이 좋고 천국이 좋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심성은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도 신자도 세상에서 쓸모 있는 존재로 남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세상에서 쓸모 있는 존재로 남고 부각되고자 하는 것 때문에 세상이 가치 있게 여기는 일에 매진하게 되고, 그것을 교회의 일로 오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이것이 오늘날의 우리의 형편이라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교회는 세상이 가진 시각이 잘못된 것임을 드러내는 도구로 존재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는 하늘의 것을 붙들고 그것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해야만 합니다. 바로 이것이 어린아이처럼 천국을 받드는 것이며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신앙의 삶인 것입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오늘 말씀에서는 천국의 원칙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까?

2. 천국의 원칙이 선포 되어질 때 드러나는 세상의 반발은 무엇이며 또 그 반발에 대한 하나 님의 일하심은 어떻게 나타난다고 합니까?

3. 오늘 본문에 선포된 천국의 원칙과 그것이 불가능한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4. 오늘 말씀은 어른과 어린아이의 구분을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5. 오늘날 세상에서 인정하는 믿음과 성경이 말씀하는 믿음은 어떻게 다르다고 합니까?

6. 거짓 믿음이 참 믿음으로 인정받는 이런 세상에서 신자가 알아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7. 어린아이처럼 천국을 받드는 삶은 어떠한 삶이라고 합니까?

8. 제자들의 어린 아이들을 데려온 부모들을 꾸짖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9. 어린 아이들을 데려온 부모들을 꾸짖는 제자들에게 노를 발하는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믿음의 세계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10. 주를 믿는 신자들이 가져야만 하는 어린 아이의 심성은 어떤 것이라고 합니까?

11.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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