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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인자가 온 것은

본문 / 10:41-45

 

“41.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1-45)

 

1. 제자의 길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던 사람들입니다. 당시 제자들이 버렸던 것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결단하기 힘든 것들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하던 일을 버리고 또 아버지까지 버려두고 전혀 알지 못한 주를 따라서 간다는 것은 누가 봐도 멋진 헌신이고 결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런 제자들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고 있는 예수님을 위한 헌신의 열심과 충성일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서 나타나는 모습들은 그러한 기대를 무너뜨립니다. 제자들이 누가 크냐는 문제로 논쟁을 한 것이나, 지난주에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좌편과 우편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청탁을 하는 내용들은 도무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르는 제자다운 모습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에게서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가시는 예루살렘의 길이 고난과 함께 죽어야 하는 길임을 예수님이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서만 관심을 두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제자들이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른 것은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알고 또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이 어떤 길임을 알고 따른 것은 결코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자신들의 모든 미래를 걸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게서 범상치 않은 무엇인가를 보고 그래서 자신들의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를만한 가치가 있는 분임을 알고 따라 갔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에게서 기대한 것은 세상에서의 영광이고 또 세상에서의 자기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것뿐이었다는 것이 서로 자신의 공로로 누가 크냐하며 경쟁하는 것에서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제자들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신 후에 비로소 예수님의 십자가의 모든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무엇임을 알게 되고, 성령에 이끌려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에도 순종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제자도입니다. 제자에게는 자신의 길이 없고 주님이 가신 길이 곧 내가 가야 하는 길임을 성경에 등장하는 제자들로 말미암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빙자하여 자신이 원하는 유익과 이득을 얻고자 하는 것은 결코 주님의 제자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은 십자가를 전혀 알지 못함으로써 자신의 자리만 굳건히 하려고 했던 오늘 본문의 제자들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주에 함께 나누었던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고 싶어 한 것 또한 섬김을 받는 자리에 앉고 싶어 하는 인간적인 욕망입니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섬기는 자리보다는 섬김을 받는 자리를 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도 보면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신자라면 당연히 구하는 것도 섬김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도리어 섬기는 자리가 되어야만 합니다. 즉 높아짐을 위해서가 아니라 낮아짐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제자들처럼 세상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보다는 노력을 해야만 합니다. 기도한다고 해서 세상에서 실력자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하는 사람이 실력을 키울 수가 있는 것이고 그럼으로 세상에서도 섬김을 받는 자리에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낮아지기 위해 산다는 것은 높아지고 섬김을 받기를 원하는 그러한 인간의 본성과는 전혀 반대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내 스스로가 낮아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낮아짐을 위해서는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권능이 아니면 어떤 사람도 낮아지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고 또 낮아진 자리에서 섬기면서 감사하고 기뻐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구한 예수님의 좌우편의 자리는 바로 그런 자리인 것입니다. 높아지고 섬김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낮아지고 섬기는 자리인 것입니다.

 

2. 신자의 길

그런데 이것을 알지 못하고 오늘 본문에 보면 야고보와 요한의 요청을 들은 다른 제자들이 모두 화를 내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을 보면 다른 제자들 또한 야고보와 요한처럼 예수님의 좌편과 우편의 자리를 섬김을 받는 자리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도 섬김을 받을만한 공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야고보와 요한의 요청에 대하여 화를 내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러한 수준의 제자들이 모인 교회라면 그 교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도 만나면 서로 자기 공로를 내어 놓기 바쁠 것이고 또 그렇게 자기 자랑만 하면서 섬김을 받으려고 애를 쓰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지옥인 것입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는 그 따름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기도를 해도 예수님만 따르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과연 예수님만 따르게 해 달라고 하는 그 기도의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혹 그렇게 함으로 사람들에게서 예수님을 잘 믿는 믿음의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어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15:18-19)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대로 예수님께 택함을 받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세상에서 미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에서 미움을 받는 인생이 아니라 오히려 영광과 인정을 받는 인생을 위해 예수님을 찾는 경우가 허다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과연 성경에서 말씀하는 믿음일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을 우리가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고 또 성경을 대하면서 듣고 보아서 기억하고 있는 말씀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신자에게 주어진 길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는 거부하려고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서 미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광을 받음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과연 하나님이 살려주셔야 할 이유가 있다고 여기시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에 대해서 가만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매일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지난밤에 아무 일 없이 잠들었으니까 또 몸이 건강하니까 오늘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는 것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런 우리를 살려줘 봐야 우리가 하는 것이라고는 하나님 보시기에 죄짓는 것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말에 반발을 하려고 하겠지만 인간은 죄짓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습니다. 어느 한순간 우리 자신이 죄와 상관없이 살아가는 때가 있다고 여겨지십니까? 사람은 한순간도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인생을 살지 못해서 원통해하고 분노하는 것으로 넘칠 뿐이지, 하나님이 살게 하신 인생에 대해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이러한 우리가 과연 살 가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겠지만 진심으로 인간은 살아 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방송을 통해서 보여 지고 있는 이 세상의 실체를 느낍니다. 그러한 세상의 실체를 보면서 우리가 잘 아는 연쇄 살인마들과 같은 자들이 과연 살아있어야 할 이유가 있다고 여겨지십니까? 우리는 아마도 세상에 살 가치가 있는 사람은 세상을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즉 쓸모가 있는 사람이 살 가치가 있다고 여길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쓸모가 있는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려주셔야 할 이유가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하루의 삶에서 살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살려주시는 은혜를 보게 된다면 그 사람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인생은 남아있지 않고 하나님이 살게 하시는 인생만 있을 뿐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제자들처럼 섬김을 받기 위한 자리싸움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주님이 가신 그 길만을 생각할 뿐입니다. 이것이 진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신자인 것입니다.

 

3. 신자의 착각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자리 문제로 싸우는 제자들에게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10:42)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멸망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세상의 집권자들이 섬김을 받기위해 권세를 탐하는 현실을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너희는 멸망의 자리에 있는 그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 말씀이 이어지는 43절부터 있는 “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3-45)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내어 주는 섬김을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좌우편이 섬김을 받기 위한 자리로 보인다면 그것이 곧 예수님의 십자가를 알지 못한 것이며 또 그들이 걸어야 하는 제자의 길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물론 섬김을 말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섬기게 해달라고 기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섬김을 이용하여 자신의 훌륭한 인격과 박수 받을 만한 도덕성을 나타내려고 할 뿐입니다. 교인들에게 친절하게 잘 대해주고 또 사람들 앞에서 겸손한 척하면서 자기 믿음과 신자 됨을 보이려고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물론 타인을 보면서 그러한 계산과 구별을 하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드리는 것은 우리 자신을 보자는 뜻입니다. 남들이 그런가 안 그런가를 살피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섬김을 빙자하여 섬김을 받고자 하는 욕망이 얼마든지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항상 인식하며 점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지난주 말씀인 40절을 보면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10:40)고 말합니다. 즉 예수님의 좌우편의 자리에 앉은 자는 하나님에 의해서 예비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놓으신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불려 나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피에 대한 이야기를 지겨워합니다. 마치 나이가 들면 한 이야기를 또 하고 한 이야기를 또 하게 되어 그런 이야기를 듣는 자들은 똑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듣게 되어 더 이상은 듣기 싫어하고 지겨워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피에 대한 이야기는 수없이 들어서 이제는 듣는 것이 지겹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관심을 다른데 두게 됩니다. 십자가의 피 보다는 좀 더 재미있는 것이 없는지 찾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자신이 예수님을 섬기고 충성해 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부름 받은 신자는 자신이 가야 하는 길이 죽는 길임을 아는 자들입니다. 섬김은 바로 자신이 죽은 그 자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여주기 위해 인자가 오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우리는 그 자리로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내 열심으로 섬기는 자들은 그 섬김이 자기 자랑이 되어 내 의가 되는 것이지만, 주님이 섬기는 자들은 그렇게 살 수 있음에 감사하고 또 그렇게 사는 것이 오직 주의 은혜라는 것을 노래할 뿐입니다. 오늘도 주로 말미암아 내 꿈을 이루려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오직 주의 꿈이 내 꿈이 되고 또 주의 계획이 내 기쁨이 되어 주님이 내신 길을 따라 감사와 찬양의 노래를 부르며 살아가는 예원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제자들의 누가 크냐는 논쟁으로 말미암아 드러난 제자들의 모습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2.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제자도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3. 우리가 기도해야할 내용은 무엇이며 또 왜 그런 기도를 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4. 야고보와 요한의 요청에 대하여 화를 내는 제자들을 통해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5. 오늘날 우리들이 예수님을 따른다는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6.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구원 받을 만한 자인가를 논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7. 진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신자의 삶은 어떠하다고 말씀합니까?

8. 주의 십자가와 제자의 길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좌우편의 자리가 어떻게 보인다고 합니까?

9.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인간적인 섬김에 있어 경계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10. 믿는 우리가 신앙의 길을 걸으며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11.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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