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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늘에 속한 권위, 땅의 속한 권위

본문 / 막11:27-33

 

“27.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거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28. 이르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대답하라 그리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30.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내게 대답하라 31.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니 32. 그러면 사람으로부터라 할까 하였으나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하는지라 33. 이에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막11:27-33)

 

1. 권위

세상에는 많은 권위(다른 사람을 통솔하여 다스릴 힘)가 있습니다. 그 권위는 세상을 다스릴 힘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권위를 가진 자가 세상의 중심에 위치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세상에서 힘으로 인정받는 권위를 가지기를 원하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권위 없는 자신의 나약한 현실에 대하여 실망하며 낙심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 세상에 속한 그 어떤 권위도 멸망에 처한 죄인을 구원하지는 못합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에게는 사면권이라는 것이 있어서 교도소에 갇힌 죄인을 사면하여 끄집어 낼 권위가 있기는 하지만, 죄와 사망으로 말미암아 멸망에 갇힌 죄인을 사면하고 구원할 권위는 이 세상 그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높은 자리를 차지하녀 큰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또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재물을 소유한 자라 하리지라도 그러한 일은 불가한 것입니다.

  죄와 사망으로 말미암아 멸망에 처한 인간을 구원할 권위는 오직 하나님께만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신자는 그러한 하나님의 권위 아래서 멸망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신자는 세상의 권위가 아닌 하나님의 권위를 생각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신자가 이 세상에서는 아무런 권위도 없는 나약한 존재일지는 몰라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놀라운 하나님의 권위를 받은 자임을 잊지 말아야만 합니다.  또 천국은 그러한 하나님의 권위를 받은 사람만이 들어간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만 합니다. 그럴 때 신자의 신앙의 삶이 풍성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이러한 권위 이야기를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장로들이 예수님께 끄집어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쫓아내신 후 밖으로 나가셨다가 다시 성전에 가셔서 걸어 다니실 때 이들이 예수님께 와서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이 권위를 주었느냐”(막11:28)고 힐문하며, 예수님이 성전에서 하신 일에 대해서 강력하게 항의를 하는 것입니다. 즉 한마디로 예수님이 쫓아내신 장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소관은 자신들에게 있다는 뜻인 것입니다.

  그 당시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하게 여기는 곳입니다. 그러한 거룩한 성전에서 누구나 자기 마음대로 장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성전을 관리하는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장로 같은 사람들로부터 허락을 받아야만 장사가 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제물로 팔 짐승을 데리고 들어올 때도 그들에게 검열을 받았을 것이고 그리고 그 일에는 오고가는 뇌물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러한 장사꾼들을 성전에서 내어 쫓으신 것은 그 장사꾼들을 관리하던 그들의 이익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한 일이었고 또한 그들이 볼 때 예수님은 성전에 대해 간섭할 자격과 권위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라고 항의를 한 것입니다.

  결국 이들은 세상의 권위 차원에서 예수님의 일을 바라본 것이고, 세상의 권위라는 시각으로 예수님의 일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들의 눈에 예수님의 행동은 부당한 것이었고, 세상이 허용하지 않은 권위를 행한 월권으로 비쳐졌던 것입니다.

 

2. 우리의 실체

이들은 제사장과 서기관, 장로라는 직책만이 성전에서의 그러한 일을 다스릴 수 있는 권위가 있다고 여겼습니다. 이것은 마치 오늘날 교회에서 목사라는 직책이나 장로라는 직책을 권위라는 시각에서 이해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교회의 모든 일을 결정하고 다스릴 권위가 목사에게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예수님에게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에 대하여 따져 묻는 오늘 본문의 내용과 결코 다르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이 자신의 권위를 지키려고 했던 것처럼 오늘날의 목사가 목사라는 권위를 지키고자 하는 것이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사들은 하늘로부터 주어진 권위라는 것을 하나님이 목사에게 직분에 부여한 권위라는 시각으로 이해해 버립니다. 그리고 그 권위의 맛에 길들여지면서 교회를 마치 자신의 소유인 것처럼 생각해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신자에게는 다른 권위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섬김이라는 권위입니다. 세상의 권위는 섬김을 받는 것이지만, 하늘의 권위는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과 전혀 다른 세계인 하늘나라의 질서인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세계, 즉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신자의 모임인 교회에서는 섬김을 받는 세상의 권위가 아니라, 낮은 자리에서 형제를 섬기는 하늘의 권위가 나타나고 증거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이러한 권위를 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세계에서만 맛볼 수 있는 기쁨이고 천국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이러한 권위 문제로 항의하는 그들에게 “29.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대답하라 그리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30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내게 대답하라”(막11:29-30)고 말씀합니다.

  요한의 세례는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구원관을 허무는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율법 안에서 그 율법을 지키며 그 율법에 충실한 자로 살면 구원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한의 세례는 유대인들의 그러한 구원관을 허무는 것이고 또 누구든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참된 세례를 주시는 분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면 구원과 상관없는 자임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주어진 권위로 인한 것임을 믿는다면 그것은 곧 요한이 증거한 참된 세례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요한의 세례로 인해서 세상에 나타난 다른 권위입니다. 죄 있는 자를 죄 없다 선언하시고 생명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실 수 있는 하늘의 권위를 가진 분의 세계가 이 세상에 펼쳐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 인지 아니면 사람에게서 인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하늘로부터라면 그것은 곧 하늘의 권위가 역사하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음을 믿는 것이고, 사람에게서 라면 요한의 세례를 단지 사람이 행하는 의식으로만 본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께 힐문하던 그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막11:33)고 답을 합니다. 왜냐하면 요한의 세례를 하늘로부터라고 인정하게 되면 그것은 요한이 증거한 성령세례 주시는 예수님은 당연히 하늘의 권위를 받은 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되는 것이고 반대로 사람에게서 라고 하면 당시 요한을 선지자로 여겼던 군중들의 분노를 살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이것도 저것도 아닌 ‘모르겠다’는 답으로 자신들을 지키고자 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늘의 권위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제사장, 서기관, 장로라는 자신의 위치와 신분을 가지고 권위를 보존하고자 하는 방향으로만 나아갑니다. 무엇이 정당한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생각까지 하나님의 그 말씀 앞에서는 무너져야 함을 생각하고 또 다만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으로 드러나는 것만 생각하지를 않고 자기 생존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일 뿐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실체이며 본모습인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예수님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항의한 그들과 우리가 다르지 않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내 생각과 위치를 지키고 고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으로 거부하려고 하는 우리의 고집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는 것입니다.

 

3. 세상 권위와 하늘 권위

이러한 우리에게 예수님은 권위를 가진 분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쫓아내신 것처럼, 나의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면서 오직 나를 지키는 일에만 급급한 채 살아가는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하고, 세상을 향한 욕망을 다스리면서 오직 하늘에 속한 거룩한 생명으로 이끌어 가시는 권위를 가지고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예수님의 하늘의 권위 앞에 복종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결코 약한 권위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고집과 또 우리의 모든 완악함 하나하나를 점령하시면서 결국 예수님의 권위 앞에 무릎 꿇고 항복한 심령으로 나오게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예수님이야 말로 멸망에 처한 모든 자들에게 유일한 희망인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유일한 희망으로 믿고 의지하는 것이야 말로 하늘의 권위로 인한 것이고, 이것이 곧 세상의 그 어떤 복과도 견줄 수 없는 하늘의 참된 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늘의 속한 영원한 복에 대하여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자신을 진심으로 복된 자로 바라보는 사람이 곧 성령이 역사하는 신자인 것입니다.

  사실 목사라는 직분에 대하여 권위라는 것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장로라는 직분에 대한 권위라는 것도 당연히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고 알고 있는 목사와 장로의 권위는 하늘로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만들어 진 것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와 장로의 권위를 언급하는 것은 목사를 자신의 생계 수단으로 삼기 때문이고, 장로 또한 자기 이름을 위한 것으로 바라보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한 권위에는 복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사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저주 받는다’는 말도 사실 무시하면 됩니다. 그러한 말은 오직 자신의 직분과 위치를 지키려고 하는 전형적인 사단의 말일 뿐입니다. 그러한 말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의 권위 안에 이끌려 들어와 있는 주안에서의 신자의 복됨을 무시하는 말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죄인 된 우리를 멸망에서 구출할 권위는 오직 예수님께만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결국 세상의 그 어떤 권위도 참된 권위가 아니라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신자에게는 세상의 권위에 대해서는 하나님 보시기에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져야 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세상의 권위를 가진 자로 사는 것보다는 예수님의 권위 아래 생명을 누리는 것을 더 큰 은혜요 복으로 여기는 것이 성령이 함께 하는 신자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하늘의 권위는 우리를 생명으로 이끌어 갑니다. 이 하늘의 권위 앞에서 우리는 그 어떤 것도 권위로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만 주님의 권위 앞에 복종할 뿐입니다. 오늘도 그 권위 앞에서 무지하여 여전히 세상에서 힘이라고 여기는 세상 권위에 빠져 사는 우리의 실상을 보고 그런 우리를 온전히 하늘의 권위로 다스리고 통치하기만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자로 세워지기를 기도하는 예원가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이 세상에 속한 권위의 한계는 무엇으로 드러난다고 합니까?

2.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장로들이 예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힐문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3. 당시 그들의 항의가 오늘날의 교회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4. 세상에 속한 권위와 하늘에 속한 권위는 어떻게 다르다고 말합니까?

5. 요한의 세례가 당시 유대인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6. 요한의 세례에 대한 시각이 중요한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7. 그들이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8. 하늘에 속한 권위를 만나지 못한 자들의 특징은 무엇으로 나타난다고 합니까?

9. 하늘에 속한 권위를 가지고 찾아 오사 우리 가운데서 행하시는 일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10. 성령이 함께 하는 신자는 어떠한 자라고 말씀합니까?

11.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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