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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종말의 때의 현실과 믿음의 능력

본문 / 13: 9-13

 

“9.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 10.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11.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12.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13.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13:9-13)

 

1. 믿음의 삶

성경에서 종말에 대해 가장 잘 표현 되어진 사건이 노아의 방주 이야기입니다. 창세기 6장에 보면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6:5-7)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고전10:31)서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인간이 타락 후에 하나님이 영광이 아닌 오직 자신을 위해서만 사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만 사는 인간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악하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악하다는 것은 앞에 있는 1절부터 보면 “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6:1-2)고 하여 인간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을 때로 사는 족속이 아닌 오직 자기들이 좋을 대로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여 물로써 심판을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8절에 보면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6:8)고 말씀합니다. 노아가 은혜를 입었다는 것은 노아가 그 당시의 다른 이들과 남달랐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똑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 노아가 그러나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노아는 그렇게 하나님께 은혜를 입어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는 것도 우리가 믿음이 좋거나 또는 남들보다 훨씬 더 윤리 도덕적으로 착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노아와 같이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은혜를 입은 노아가 세상이 물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 구원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방주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노아의 방주는 세상에서 활용하기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고기를 잡는 배로도, 화물선으로도 활용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방주에는 닻도 없고 노도 없습니다. 즉 움직일 수 없고 다만 물위에 떠 있는 용도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노아의 방주는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 쓸모도 없는 배를 만드느라고 고생하는 노아가 정신이상자이거나 바보로 보였을 수 있습니다. 노아는 세상의 그러한 시각을 한 몸에 안고 견디면서 방주를 만든 것입니다. 이처럼 노아로 하여금 세상의 그 어떤 반응에도 불구하고 방주를 만들게 한 것은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6:13)는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자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사는 그래서 그 말씀을 믿기에 노아로 하여금 많은 비웃음 속에서도 꿋꿋하게 구원의 방주를 만드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 앞에 십자가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믿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앞에 세우신 십자가는 이 세상에서는 활용할 가치가 없습니다.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쓸모 있는 십자가로 자기 좋을 대로 개조를 합니다. 마치 공장에서 출고된 차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것저것 개조를 해서 좀 더 성능이 좋고 자기 마음에 드는 구조로 만드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 앞에 세운 십자가도 그렇게 개조를 해서 사람들에게 환영받을 만한 십자가로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노아가 하나님이 지시한 대로 방주를 만든 것처럼 하나님이 세운 십자가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내 욕망이 개입되지 않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이 확증된 것으로 충분한 십자가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이 믿음이 종말의 때에 우리를 살리는 구원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아무리 인간들 보기에 그럴듯하게 보인다고 해도 구원의 능력이 없다는 그것은 무용지물일 뿐입니다. 즉 짠맛을 잃어버린 소금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현실은 이처럼 짠맛을 잃어버린 소금을 진짜 소금인양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종말의 때가 되면 무엇이 참된 믿음인가가 선명하게 증거될 것입니다. 신자는 그때를 바라보고 기다리면서 어떤 경우에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진정한 믿음에 붙들린 삶인 것입니다.

 

2. 복음과 다른 복음

오늘 본문 13절에 보면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13:13)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싫어한다는 뜻입니다. 예수가 싫기 때문에 예수를 말하고 예수를 전하는 자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참으로 이상한 반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미워하는 것입니까? 이 말씀을 보면 많은 사람이 아닌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미워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과연 예수님이 밉지 않은 것입니까?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미워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인간이 기대하는 그 어떤 것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신을 찾는 이유는 찾는 신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다니고 열심히 믿으면 내가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고, 혹시 있을 수 있는 재앙으로부터도 보호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인간들의 그러한 모든 기대를 무너뜨리고 오히려 손에 쥐고 있는 것까지 모두 버리고 따르라고 하십니다. 또한 천국을 들어가는 믿음의 기준으로 삼는 인간의 행함까지 용납하지 않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처럼 인간이 붙들고 있는 것을 하나하나 뽑고 파괴하고 파멸하며 무너뜨리고 잘라내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인간은 듣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인간이 거부하지 않고 누구의 입맛에도 다 맞는 다른 복음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만 예수를 미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입니다. 교회도 예수님을 미워합니다. 아니 교회가 어떻게 예수님을 미워하겠는가?’라는 의문이 들겠지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 이방인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잘 알고 믿는다고 자부하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오히려 이방인이었던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 없음을 알고 풀어주려고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끝까지 예수를 죽일 것을 주장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미워하고 죽인 것은,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 뿐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않았고 믿지도 않았고 그 안에 거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서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해 예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그 말씀 안에만 있었다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자신들이야 말로 구원 받을만한 백성이라는 자부심에 머물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이러한 자부심을 사정없이 악한 것으로 규정해 버리십니다. 만약 우리들이 유대인의 입장이라면 예수님의 말씀에 어떤 반응을 보였겠습니까? 당연히 그런 말씀을 하는 예수님을 미워하였을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자신들의 믿음과 의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죄인으로 규정하는 말씀을 듣고도 싫어함이 없고 미움이 없다면 그는 사람이 아니라 천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믿음은 모든 사람들이 인정할 만한 것으로 삼아 사람들에게 선을 실천할 것을 중심 교훈으로 삼습니다. 믿음은 신자로 하여금 선을 실천하게 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따라서 선을 실천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에게 복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말이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이 과연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킬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말이기 때문이 오히려 그것을 참된 복음으로 인정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실천과 행함을 동원하여 선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망에 찬물을 끼얹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세상을 향해 외치신 첫 말씀이 바로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3. 믿음의 능력

예수님의 회개하라는 말씀은 세상을 죄의 땅, 즉 어둠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처럼 세상에 속한 그 누구도 회개 없이는 천국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이 말씀 앞에서는 율법을 지켰다는 것도 또 선을 행했다는 것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의 죄를 깨닫고 예수님이 죄인 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십자가의 행하심을 의지하는 것만이 믿음으로 용납될 뿐인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구원에 집착한 인간은 회개하라는 말씀에서 자신의 죄를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회개하면 천국 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무엇일지 헤아리기 보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말로 개조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인간은 그 본성상 예수님의 말씀을 싫어하고 미워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복음이 세상으로부터 이런 대접을 받는데도 과연 복음을 복음 그대로 전해야만 하는 것입니까? 물론입니다. 그 이유는 세상에 종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종말이 없다면 그리고 심판이 없다면 그리고 천국에 들어갈 다른 방법이 있는 것이라면 참된 복음만을 생각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진짜 어리석은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노아가 세상에서는 활용할 수 없고 쓸모없는 방주를 만드는데, 만약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면 노아는 가장 어리석은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심판이라는 하나님의 계획안에서는 노아가 가장 지혜로운 자입니다. 이것을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답답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이 알아주지 않고 오히려 미워한다고 해도 세상은 종말이라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이 바로 신자인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복음을 싫어하고 또 예수를 전하는 자를 미워한다고 해도 세상은 종말이라는 하나님의 계획에서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종말의 때에 신자를 건지는 능력은 오직 예수님의 의로움 뿐입니다. 때문에 지혜가 있는 신자는 어떤 경우에도 믿음을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의 내용을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싫어하는 믿음을 사람들의 기분에 맞는 믿음으로 개조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개조된 순간 구원의 능력이 사라진 다른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우리 자신을 위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해서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세상으로 보냄을 받으면서 어떤 현실에서도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고 주가 되시는 예수님의 은혜와 피를 증거하라고 믿음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에서 그 믿음에 붙들려 버티고 견디라고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이 자기를 부인하고 주를 따르는 것이고, 이 순종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믿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믿음은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고 미움을 받을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이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아야 하는 것은, 믿음 없이는 아무도 생명에 들어갈 수 없음을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사실이 세상이 예수를 싫어하고 복음을 거부함으로써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신자가 할 일은 오직 참된 믿음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무엇이 진정한 구원의 능력이었는가가 증거되기를 소망하면서 인내하며 기다리고 살아가는 주안에서 아름답고 복된 신자로 살아가는 예원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성경에서 인간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다고 하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2. 노아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3. 노아가 세상으로부터 비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 까닭과 그럼에도 노아가 견디며 방주 를 완성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4. 오늘날 교회 가운데 있는 거짓된 믿음과 진정한 믿음은 어떻게 다르다고 합니까?

5.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미워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6. 오늘날도 하나님을 믿는 교회도 예수님을 미워할 수 있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7. 오늘날의 다른 복음은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있다고 말씀합니까?

8. 회개하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의 의도와 그것을 듣는 인간의 생각은 어떻게 다릅니까?

9. 노아의 방주가 세상적으로는 어리석지만 주안에서는 지혜롭다고 하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10.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까닭과 그 믿음의 능력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11.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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