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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늘로 올려 지신 예수님

본문 / 16:19-20

 

 

“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16:19-20)

 

 

1. 하나님의 구원 방식

오늘 본문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계속 계시지 않고 하늘로 가십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면 예수님을 죽인 자들에게는 두려움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인데, 그렇다면 세상에 계속 남아 계시면서 제자들과 함께 복음을 전파하시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죽인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것으로 세상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게 되고, 무엇보다 죄를 회개하면서 예수님을 주로 믿게 된다면 예수님이 세상에 계속 남아 계시는 것도 나쁠 것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하여 마태복음 28장에 보면 “11. 여자들이 갈 때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 12.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13.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28:11-13)고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죽인 장로들과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이 부활해서 시체가 무덤에 없다는 말을 무덤을 지키는 군병들에게 듣자 그들에게 돈을 주고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도둑질 해갔다고 하라고 지시하는 것입니다. 즉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실을 감추기에 급급했던 것입니다.

때문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있다고 해서 제자들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고, 세상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또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을 죽임으로써 자신들의 죄를 감추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늘로 가심은 하나님의 구원 방식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만약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세상에 남아 계시고 제자들은 그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인해 십자가 사건이 자신들에게 어떤 의미의 사건인가를 깨닫게 되고 그렇게 해서 제자들이 구원 받는 것이라면 예수님은 부활하신 분으로 세상에 계속 존재하셔야만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구원은 부활하신 예수님에게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는가?’ 결정되는 방식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 본 것처럼 제자들은 예수님이 함께 하셨을 때에도 제자들은 믿음의 길을 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늘로 가시고 안 계신 상태라면 그런 제자들은 믿음과는 더욱 멀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제자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가는 자로 뒤바뀝니다. 이것이 곧 예수님이 하늘로 가신 후에 오신 성령이 제자들을 이끌어 간 결과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행하시는 구원의 방식인 것입니다.

 

2. 신자의 관심

그런데 예수님이 가신 하늘이라는 곳은 과연 어떤 곳이겠습니까? 우리는 하늘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늘에 관심을 둘 수는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늘은 예수님이 가신 것이 전부가 아니라 장차 신자가 거할 본향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11장에 보면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도 구경하더라”(11:12)고 말합니다. 이 말씀대로 신자는 하늘로 올라가서 그 곳에서 영원히 살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 세상 말고 신자가 영원히 거할 다른 세상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가 바라는 것과는 다른 의도를 가지고 일하십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성공하여 잘 사는 것을 원합니다. 천국을 말하면서도 우리 속에는 세상을 향한 기대가 항상 충만한 것입니다. 복음을 말하고 십자가를 말하면서도 그 세상을 향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고 버리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이러한 모습은 참으로 이율배반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우리의 생각과 다르게 다른 세상을 준비해 놓고 계십니다. 그곳이 바로 예수님이 가신 하늘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하늘로 올리우고자 하시는 계획과 뜻을 가지고 일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대해서는 눈을 감은 채 자신들이 만든 계획과 뜻을 내세우면서 그대로 이뤄달라는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신자가 하늘로 가는 것은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가 되면 반드시 되어질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 앞에 준비되어 있는 하나님 안에서의 참된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 살면서 하늘에 대해 관심이 없다면 그것은 신자 됨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올라가신 하늘은 장소적인 의미의 나라가 아닙니다. 하늘 공간 어딘가에 예수님이 가신 하늘나라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늘이라는 것은 우리가 바라보는 파란 하늘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별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곳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성경에서의 하늘은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나라라는 의미에서 하늘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늘나라는 우리가 지금까지 살았던 땅의 나라와는 완전히 다른 나라라는 것입니다. 땅의 나라는 오직 죄와 사망이 왕 노릇하는 인과율의 나라이지만, 하늘나라는 오직 의가 다스리고 통치하는 은혜의 나라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는 빌립보서 3장에 보면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3:18-21)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원래 하나님과 원수 된 자입니다. 그래서 오직 19절 말씀처럼 자신을 위해서만 사는, 즉 하늘이 아닌 땅의 일만 생각하며 사는 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합니다. 여전히 땅의 일만 생각하며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시민권이 하늘에 있기에 하나님이 의와 진리와 은혜와 사랑으로 다스리는 자인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에 대한 표현을 에베소서 2장에 보면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2:1-7)고 합니다.

우리는 원래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서 그냥 그렇게 하나님의 진노로 끝나는 것이 마땅한 자입니다. 그런 우리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은혜로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늘에 앉히셨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하고는 완전히 다른 은혜로 다스리고 통치하는 나라에 속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인 우리가 받은 구원입니다.

우리가 지금도 여전히 진노의 자녀처럼 살기도 하고, 땅의 것만을 추구하며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땅에 속한 자였을 때는 그렇게 살다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고 망하는 자로서 끝나는 것이 전부인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늘 시민권을 가지고 하늘에 앉은 자로서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를 받고 누리며 사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와 사랑의 통치와 다스림은 우리가 어떻게 살든 우리를 결국 하나님의 창세전의 계획과 목적대로 만들어 가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야곱을 이스라엘로, 시몬을 베드로로, 부인하고 저주하고 도망하는 제자들을 주의 일군으로 만들어 가듯이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늘에 속하여 받고 누리는 복인 것입니다. 그래서 7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은 하늘에 가시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왕으로 좌정하시는 것이며 또 그 나라의 왕으로 그 나라의 백성인 우리를 은혜와 사랑으로 통치하고 다스리기 위하여 하늘로 가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그 나라 백성들을 이끄시는가를 보여 주시는 구원방식인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드린 대로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서 오직 땅에 것만 구하며 살았던 자들이기에 땅에 것들에 대하여는 많은 관심도 있고 또 많이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속한 하늘이 어떤 곳인가에 대해선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이 그곳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가 하늘나라에 관심을 두게 되는 것은 예수님을 얼마나 마음에 두고 사는가를 드러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마음을 두지 않고 있고, 십자가의 은혜에도 관심이 없다면 그리고 그 예수님에 대해 또 은혜에 대해 말씀하고 알려주시는 말씀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자연히 예수님이 계신 하늘나라에도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관심이 없다는 것은 하늘이 아닌 오직 보이는 세상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 마음에 살아계시고 십자가의 은혜를 안다면 자연히 예수님이 계신 하늘나라에 마음이 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간혹 사람들은 하늘나라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하늘나라를 구체적으로 보고 확인을 하게 되면 자연히 하늘나라에 마음을 두게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여줘서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인식이고 자기 확신일 뿐입니다.

자신이 보고 확인을 해서 믿는 것이라면 굳이 믿음을 선물로 주실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도 오실 이유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보여주면 되기 때문입니다. 천국도 보여주고 지옥도 보여줌으로써 예수를 믿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준다면 누구라도 예수를 믿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자신을 위한 믿음이기 때문에 참된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3. 신자의 삶

사도행전 1장에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1:8)고 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예수님의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처럼 성령이 임하지 않고는 증인이 되지 못합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성령이 임하지 않아도 예수를 믿으라는 말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보면 증인이란 단지 예수를 믿으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증인은 자신이 본 것을 증거하는 사람입니다. 즉 자신이 본 것을 보여주는 사람이 증인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의 증인은 눈으로 본 것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보지 못하는 것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보게 된 그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성령이 임하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그 피를 보게 됩니다. 그 피가 죄인에게 왜 생명인가를 확실하게 보게 됩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증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예수님이 그 마음에 함께 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에 보면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3:1-3)고 말합니다.

신자는 땅에서는 죽은 자입니다. 하지만 하늘에서는 산자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생명은 이미 예수님이 계신 하늘에 속한 영원한 생명으로 붙들려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늘에서 우리를 붙들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것이 중요한 것이지 하늘이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생겼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늘을 바라보는 신자는 위엣 것에 모든 소망을 두게 됩니다. 땅의 것은 헛된 것이고 영원한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하늘에 마음을 두고 하늘을 바라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는 세상의 문제에 매이지 않게 되고,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가 있다고 해도 흔들림이 없이 하늘을 바라보는 신자로 살게 됩니다. 이것이 산자답게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4장에 보면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4:12-13)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배고픔과 풍부라고 하는 땅의 문제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배고픔과 풍부와 상관없이 바울은 항상 하늘을 소망하는 자로 살았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 예수님이 곧 기쁨의 근원이었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서 바울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배고픔도 궁핍도 고난도 심지어는 배부름과 풍요로움도 예수님을 향한 바울의 마음을 훼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았던 사도 바울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예수님은 하늘에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에베소서 2장에 보면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2:5-6)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미 하늘에 앉힌바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은혜의 통치를 온전히 누리지는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그 통치를 온전히 누린바 된 삶이 되는 예수님과 함께 하는 하늘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에게는 소망과 기쁨으로 다가올 수 있기 바랍니다.

그러나 지금 이미도 앉힌바 된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일하시는 까닭은 이어지는 7절부터 보면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2:7-10)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아직도 이 땅에 거하는 이유이며 까닭입니다.

오늘도 은혜로 주어진 날들 속에서 내가 무엇을 위하여 부름 받았는가를 잘 분별하시어서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그 은혜를 자랑하고 그 은혜 안에서 행하며 감사하는 자로 살게 하기 위하여 부르셨음을 기억하사 항상 범사가 은혜에 대한 감사와 찬양이 넘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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