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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본문 / 2: 1- 4

 

1. 흘러 떠 내려 감

우리가 지난 주에 살펴 본 히브리서 1장에 보면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1:14)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신자의 존귀함에 대해 가르쳐주는 내용입니다. 신자가 이토록 존귀할 수밖에 없는 것은 천사보다 뛰어나시고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후사로 부름 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염두에 두셔야 하는 것은 신자의 존귀함이란 신자를 높여주기 위한 말이라기보다는 이토록 존귀한 신자가 과연 존귀한 신자답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묻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만약 신자가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없고, 천국보다는 세상에 대한 소망과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신자에게 주어진 존귀함을 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2:1)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 그러므로라는 단어는 앞서 언급한 내용의 결론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앞에 1장의 내용을 다시 한번 요약해서 보겠습니다. 모든 날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아들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아들은 천지의 창조자시며, 만유의 후사이시며,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며, 그 본체의 형상이시며, 그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분입니다. 천사보다 뛰어나시며 지금도 살아계셔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며 친히 다스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놀라운 내용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믿을 수 없는 내용입니다. 오직 성령이 임한 자만이 믿을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을 흔드는 일들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1장에서 말한 내용의 결론이 오늘 본문인 21절이라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의 후사로 부름 받은 존귀한 신자가 믿음에 머물지 않고 흘러 떠내려가는 것에 대해 권면하는 내용인 것입니다.

여기 흘러 떠내려 간다라는 말을 많은 사람들이 멸망 받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꼭 그런 뜻 만은 아닙니다. 만약 이 말씀을 멸망을 받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우린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가 뭔가 잘못했을 때 그것으로 멸망을 받는 것은 아닌가라는 두려움과 조바심에서 헤어나지를 못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흘러 떠내려 간다는 것은 파선해서 침몰하는 것과는 의미가 다릅니다. 여전히 물 위에 떠 있는 상태이지만 다만 이리저리 바람 부는 대로 물 흐르는 대로 흘러 떠내려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뭔가 굳게 붙들려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구원 얻은 후사이면서도 말씀으로 굳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2. 믿음

그런데 왜 흘러 떠내려갈까 주의하라는 것입니까? 그것은 그 큰 구원의 영광됨을 훼손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부족하게 여기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꾸만 인간의 열심들을 추가시켜서 자기들의 이름도 함께 나타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주님께서 행하신 그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서 지금 무슨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가 하는 말씀입니다. 구원을 받았으면서도 왜 그런 것입니까?

사람들은 하나님의 그 큰 구원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이 세상을 정죄합니다. 십자가로 세상의 경계를 정하여 버리는 것입니다. 십자가 안과 밖은 전혀 다른 세상입니다. 세상이 십자가를 바라보면 십자가 안에는 다 죽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십자가 안에서 세상을 보면 세상이 다 죽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6장에 보면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6:14)고 합니다.

이런 십자가를 빨리 벗어나고 싶은 것이 바로 육체의 소욕인 것입니다. 세상에서 죽은 자로 남아 있기가 싫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신앙이 이런 모습인 경우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의 은혜로 우리가 구원받았음도 인정하고 그 믿음에는 내 의가 전혀 없다는 것도 받아들입니다.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반발하지 않고 당연하다는 믿음으로 살아가면서도 그런데 우리의 삶을 보면 여전히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같이 떠내려가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의 형편을 쉽게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음이 없는 것입니까? 믿음이 없으면서도 그냥 거짓으로 믿는다고 말하는 것뿐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다는 것은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이 흔들림이 없이 살아간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세상의 유혹에 흔들림이 없이 강건하게 살아가는 것이 믿음이라면 말 그대로 신자는 로봇과 같은 존재에 불과할 뿐입니다.

믿음은 오직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게 합니다. 믿음에 있기에 신자가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되고,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 사랑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신자에게 필요한 것은 날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들었고 알았다면 예수님을 안 것이 우리의 중심이 되어서 예수님에 대한 간절함으로 살아가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흘러 떠내려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 굳게 붙들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나를 붙들어 달라는 기도를 할 것입니다.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주님만 바라보며 살아가기를 원하는 그 마음은 인정합니다. 신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러한 마음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께 기도를 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나를 붙들어 달라고 기도한 그다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그냥 기도한 것으로 끝나버린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기도를 했다는 것에 스스로 만족해 하며 살아가는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만약에 우리가 예수님께 나를 붙들어 달라고 기도했으니 그 다음은 예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도하는 것은 나의 몫이고, 붙들어 주는 것은 주님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흘러 떠내려가는 자신의 모습에서 진심으로 주님께 붙들린 자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한다면 기도하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이겠습니까? 기도한 내게 진정한 간절함이 있다면 날마다 주님을 생각하면서 말씀의 인도함을 따라 살려고 힘을 쓰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주님께 붙들린 자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간과해 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3. 큰 구원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2:2)라고 말합니다.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라는 것은 구약 시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구약 시대에 하나님이 천사를 통하여 하신 말씀도 효력이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 말씀에 순종치 아니했을 때 그에 따른 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에 보면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3:19)합니다. 천사를 통하여 주어진 율법도 그 범죄함을 인하여 심판을 받게 되었는데 하물며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친히 말씀하신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3절에 보면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2:3)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볼 때 구약의 사람들처럼 우리도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심판을 피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들려질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심판에 대해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큰 구원이 얼마나 복된 것인가를 말씀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해야만 합니다.

구원을 등한시 여긴다는 것은 구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받은 구원에 대한 소홀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았다면 그는 이미 심판과 상관이 없는 자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늘 본문의 말씀은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심판을 받는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며, 사도들이 듣고 확증하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나눠주셔서 확증한 일이 하나님의 큰 구원입니다. 이 큰 구원을 등한히 한다면 그것이 어떻게 구원받은 백성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큰 구원은 사람이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하여 사람들이 자꾸만 못 마땅해 합니다. 그래도 사람이 체면이 있지 어떻게 늘 은혜만 받아야 되는가, 은혜를 갚을 줄도 알아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꾸만 사람들이 무언가를 보태거나 거들어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았으니 은혜를 갚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일방적인 은혜를 무한히 받아야 할 만큼 불쌍한 형편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선까지는 주님께서 일하시고 그다음 단계부터는 우리에게 일임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큰 구원은 우리가 손댈 수 없을 만큼 완벽합니다. 부족함이 없습니다. 어느 정도로 부족함이 없는가 하면, 로마서 5장에 보면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5:17)라고 합니다. 얼마나 완벽하신지 의와 생명이 왕 노릇한다고 합니다. 그 왕 노릇하심의 능력이 성도들에게 나타나 여러 가지 은사들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그 모든 은사들도 자기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성령의 나눠주심을 인하여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처럼 예수님 시대의 신자들이 복되다는 것은 구약의 사람들이 누리지 못한 것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오실 메시야를 바라보고 살았을 뿐입니다. 그들이 믿었던 것은 오실 메시야였던 것이지 오신 구원자가 아니었습니다.

이에 비해 오늘날의 신자들은 세상에 오신 구원자가 누구이며 또 어떤 분인가를 알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죽으심으로 얻게 된 구원의 복됨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지금의 신자들에게 있어 구원은 구약에 비해 큰 구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원을 등한히 여긴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가를 말하기 위해 오늘 본문과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신앙이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무관심하고 게으름으로 세상을 향해 흘러 떠내려가는 모습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크고 복된 구원을 등한히 여기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위대하고 존귀한 것인가를 보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을 말하고 은혜를 말한다고 해서 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진정한 간절함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원함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향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간절함으로 하나님을 찾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느냐는 것입니다. 그럴때만 우리가 받은 구원의 바른 가치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4. 아는 자의 삶

오늘 본문 4절에 보면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2:4)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구원에 대해 여러 표적과 기사로써 증거 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크고 확실한 구원의 증거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 확증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확증으로 인해서 우리의 연약함과 게으름과 신실치 못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으로 인해 구원에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큰가를 깨달으라는 것이 오늘 본문의 의미입니다.

이러한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소홀히 여기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바라보기보다는 세상만을 바라보기 때문에 흘러 떠내려가는 것으로 전락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자답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장에 보면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2:12)고 말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것은 구원의 복이 얼마나 크고 귀한가를 아는 마음으로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주의 놀랍고 아름다운 은혜로 구원받은 신자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대접하셨고 또 어떻게 사랑하셨는가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냥 흘러 떠내려가는 상태에 머물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큰 구원을 알았다면 절대로 신앙생활을 대강하려고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도 우리가 받은바 구원이 얼마나 큰가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시고 그냥 세상 풍조에 밀려 그냥 흘러 떠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위에, 말씀 위에, 언약 위에 굳게 서 있는 신앙으로 주님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예원가족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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