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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본문 / 2:10-13

 

“10.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13.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2:10-13)

 

1.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독생자를 희생하시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하신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단순히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천국이라는 좋은 곳에 집어넣어서 영원토록 편히 살게 하시기 위한 것일까요? 만약 구원의 의미를 이런 정도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자신밖에 보지 못하는 이기적인 발상일 뿐입니다.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그 뜻의 성취를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알 때 구원받은 신자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 즉 신자의 사명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10절에 보면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2:10)고 말씀합니다.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라는 말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는 분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의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만물은 스스로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존재하게 하신 분이 있으며 그분이 곧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내용은 너무 뻔한 내용일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신자라면 만물을 존재하게 하신 분이 있다는 사실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교회학교 어린아이까지 다 아는 내용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에 대해 추호도 의심하지 않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내용이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만물을 존재케 하시고 만물의 근원이 하나님이시라면 그 안에 우리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나를 존재케 하시고, 나의 근원 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 만물만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까지 그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스스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존재하게 하신 분이 있고, 우리는 지금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내용이 왜 중요한 것입니까? 그것은 이제 우리의 관심과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마땅한가의 문제가 대두되기 때문입니다.

 

2. 계획과 성취

다시 오늘 본문 10절을 보면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2:10)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우리를 단순히 세상에 존재케 하시고, 세상을 살아가게 하신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많은 아들을 영광으로 이끌어 가시는 일을 온전케 하시기 위해 구원의 주를 고난받게 하신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죽음을 맛보게 하셨다는 내용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맛보아야 했던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영광으로 이끄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아들들 때문입니다. 바로 저를 비롯한 우리 모두로 인해서 창조주이신 예수님이 죽음을 맛보시고 고난을 받으셔야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세상에 존재한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끌림 받은 것까지 우리의 노력과 힘은 그 어디에도 개입되어 있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일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을 두고 사는 신자라면 하나님에게서 세상의 복을 바라보기보다는 참으로 감당할 수 없는 놀라우신 은혜에 대해 감사하고 높이는 것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본분이며 사명인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세상의 것으로 누리는 혜택과 유익이 크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니 서로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차원이 다른 은총을 혜택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세상의 것 때문에 나약해질 이유가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11절을 보면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2:11)라고 말씀합니다. 거룩하게 하신 그리스도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에서 났습니다. , 근원이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사실 예수님 편에서 볼 때 우리 같은 존재를 형제라 일컫기에는 부끄러움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처럼 우리는 내세울 것이 있을만한 존재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세상에서 손가락질받을 만한 죄를 지은 아들이 있다고 할 때 과연 그 아들을 세상에 내세우면서 이 아이가 바로 내 아들이다라고 말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형제들 가운데 그러한 사람이 있다고 할 때 그를 내 형제다라고 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같은 존재가 예수님의 형제로 여겨진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영광이지만 예수님에게는 부끄러움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함께 한 분 하나님에게서 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로 났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이처럼 우리를 하나님께로 난 거룩한 자가 되게 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고난의 길로 가게 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계획하심으로 되어진 일이고, 그리고 그 계획대로의 성취 또한 하나님 홀로 이루신 것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다만 그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덧입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안에서 무엇 하나 내 세울 것이 없는 존재들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베푸신 감당할 수 없는 사랑과 은혜와 자비하심에 대하여 감사하고 찬송할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이것을 위해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에 보면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1:3-6)고 합니다.

하나님이 창세 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택하심을 따라 때가 차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라 그렇게 하신 까닭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세 전의 계획이고 또 이 계획대로 하나님 홀로 이루신 것입니다.

또한 에베소서 2장에도 보면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2:3-7)고 합니다.

여기서도 본질상 진로의 자녀로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하늘에 앉히셨는데 그 까닭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담은 자로 존재케 하여 그 은혜를 나타내는 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분명 예수님의 형제다운 존재가 되지 못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 한 것이 무엇입니까? 오히려 악한 우리로 인해서 예수님이 죽음을 맛보셔야 했고 또 고난의 길을 가셔야만 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 것에 대해 더욱 부끄러워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으로 서로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몸의 관계로 만나는 것이고, 참된 교제가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형제의 관계 안에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교회된 우리 역시 서로 형제라는 관계에 있습니다. 이 관계는 우리가 원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 안에서 맺어진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형제의 관계에서 다만 하나님의 은혜만을 바라봐야만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또 무엇 때문에 형제로 일컬어지게 되었는가를 생각하면서 형제를 바라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베풀어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자비하심만을 보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서로에게서 그 사람의 외적인 조건이나 됨됨이를 보려고 하지 말고 그에게 베풀어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자비하심만을 보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온전한 형제의 관계에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하시듯 우리 또한 형제를 대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예수님을 아는 신자의 바른 행함인 것입니다.

 

3. 주의 이름으로

오늘 본문 12절부터 보면 “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13.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2:12-13)라고 말합니다. 주의 이름을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교회 중에서 찬송하라고 하며 또 그를 의지하리라고 합니다.

주의 이름 아래서 만나고 함께 하는 것이 형제입니다. 그래서 형제는 단순히 교회에서 만나서 함께 예배드리고 식사하고 친분을 가지는 육신적 관계가 아니라 영적인 관계입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기 위해 고난의 길을 가신 주님의 이름 아래 모이는 영적인 관계인 것입니다.

주의 이름 아래 있다는 것은 내 이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높이고자 하는 신자에게 자신의 이름이 관심거리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처럼 주의 이름 아래 모이는 형제의 관계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높이고 내세우고자 하는 것은 결코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서로 만나서 무엇을 하십니까? 혹여 세상 것으로 자신을 자랑하고 내세우고자 하는 마음은 없습니까? 그것은 형제로 다가가는 모습이 아니며 또 그것은 주의 이름 아래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우리는 저 사람이 내 형제인가?’를 살피기보다는 내가 저 사람에게 형제로 다가가는가?’를 살펴야만 하는 것입니다. 형제를 보고 판단하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을 살피시고 판단하기를 힘쓰라는 것입니다.

교회란 자기의 완전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주의 완전함을 이야기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자기 이름으로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주의 이름을 인하여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의 이름의 능력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교회란 주의 이름으로 모인 곳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두세 사람이라도 주의 이름으로 모인 곳이 완전한 교회입니다. 두세 사람의 완전함이 아니라 그의 고난으로 온전케 하신 주의 이름이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모인 자들은 대대에 주의 일을 증거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신 일의 결과물로서의 교회이기에, 교회 안에서 주의 이름이 선포되고 그 이름이 찬송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교회를 만들려고 하지 말고 믿음이 무엇이고,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깊이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지금도 예수님이 우리에게 일하시며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고 계심을 잊지 마십시오. 따라서 신자는 바람직한 일을 해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자신의 신자 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지금도 살아 역사하심을 증거하는 도구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여러 가지 일을 통해서 교회 됨을 보여주겠다는 것은 사단이 장치해 놓은 함정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이러한 함정에 빠져서 교회의 잘못됨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예수님이 아니라 자기 교회를 위해서만 존재하려고 합니다. 교회가 구제도 할 수 있고, 선교 헌금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예수님의 은혜일뿐입니다. 즉 그런 일을 통해서 교회의 어떤 이익이 되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면 그것이 곧 믿음과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든 예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자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5장에 보면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9-10)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들은 교회 됨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기에 그리고 그 은혜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고 있기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증상인 것입니다. 그런 자들은 그 일로 말미암은 자랑이 없습니다. 오직 그렇게 하게 하신 주께 향한 감사만 가득할 뿐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며 신앙인 것입니다.

교회는 주의 이름으로 모이고, 주를 찬송하면 그것으로 이미 온전한 교회입니다. 여기에 교회가 무엇을 열심히 하는가?’를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모이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찬송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찬송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모이는 이들이 곧 알곡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피로써 거룩함을 입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거룩함을 입지 않았다면 우리의 결과는 오직 멸망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 예수님의 피는 우리 인생의 전부일 수밖에 없습니다.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 주님의 은혜를 깊이 묵상하시면서 날마다 주님의 형제로서 주의 이름을 높이는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아름답고 놀라운 사명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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