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방문자 수

방문자수

전체 : 4,210,471
오늘 : 170
어제 : 287

페이지뷰

전체 : 78,736,373
오늘 : 806
어제 : 1,64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제목 / 돌이킨 자가 돌이키게 하리라

본문 / 5:19-20

 

 

1. 정체성

오늘 본문은 야고보서의 마지막 이야기로 형제 가운데 미혹되어 진리에서 떠난 자를 돌아서게 하면, 돌아서게 한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라고 결론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나 자신은 이미 진리에 서 있다고 여기면서 진리에서 떠난 다른 자를 돌이키라는 말씀이 아니라 오늘 본문에 돌이켜야 할 자라고 말씀하는 자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이 글을 읽고 있는 내 자신이라는 입장에서 봐야만 함을 기억하며 야고보서의 마지막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시편 1편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늘 자신은 시편 1편에서 말씀하는 의인의 편에서만 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니 시편 1편을 보아도 자기는 항상 복 있는 사람이기에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시냇가의 심은 나무처럼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고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이 형통할 것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항상 시편 1편의 묵상하면서도 복 있는 사람이 자신일거라고 여기며 묵상해 왔습니다. 그래서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는 것에 대해 그냥 대충 넘겨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줄로 착각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가 과연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며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본성을 거스르는 말씀인데 과연 누가 즐거워하겠습니까? 얼마나 듣기 싫었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 선지자들을 돌로 치며 죽여 버릴 정도였겠습니까? 그리고 더 나아가 친히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린 것이 누구입니까? 세상이며 바로 우리들인 것입니다. 그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증거 하는 자들 역시 미워하고 배척하는 것이 바로 이 세상인 것입니다. 그런 우리들이 과연 주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고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편 1편에서 말씀하는 악인이 받을 벌을 그대로 받아야 하는 죄인들임을 잊지 말아야만 합니다. 바람에 나는 겨와 같으며 심판을 견디지 못하는 악인이 바로 우리 자신들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우리가 그런 심판을 받지 않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공로라고 말씀하여 주시는 것이 바로 성경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말씀도 나는 의인으로서 진리에서 떠난 너희들을 바르게 돌이키게 하겠다고 하기 전에 먼저 내가 돌아서야 할 존재라는 것을 명심하며 살펴보아야만 할 것입니다. 그 내용을 야고보서 전체에서 다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야고보서는 한 통의 편지이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한꺼번에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많은 시간을 들여서 야고보서를 살펴보아야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이 글을 받고 있는 우리의 삶이 진리의 삶으로 풍성하다면 이런 편지를 한번만 읽어보고서도 아멘 하면서 넘어가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글을 받고 있는 우리는 뼈 속 깊이까지 죄의 본성이 뿌리내리고 있기에 듣고 또 듣고, 보고 또 보아야만 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야고보서 그러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한 말씀만 기억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면서 그 행함이라는 것도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몇 가지로 국한하여 자기는 행함이 있다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까지도 강조하는 몇 가지만 잘하면 행함이 있다고 여깁니다. 주일성수와 십일조 그리고 전도와 봉사를 잘하면 행함이 좋은 성도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고보서 2장의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2:10)라는 말씀처럼,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율법에서의 명령, 즉 무엇을 하라 또는 하지 말라는 것이 613가지가 된다는데 그 중에 한 가지만 어겨도 모두 어긴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몇 가지를 행한다고 하여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지키는 충성을 하였다고 하여도 종이 마땅히 할 일을 한 것뿐이지 그것이 자랑이 되거나 상을 받을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몇 가지도 제대로 못하면서 자기는 진리에 서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는 너희의 믿음이 도대체 무어냐고 다시 묻는 것입니다. 결국 돌아서야 할 자들이 바로 우리 자신임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먼저 우리가 진리에 바로 설 때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돌이키게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해야 할 일이 우리 자신이 얼마나 진리에서 멀리 떠나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2. 우리의 실상

그런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야고보서의 전체 내용을 확인하며 복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장에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1:2)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말씀처럼 우리가 만나는 여러 가지 시험 가운데서 과연 온전히 기쁘게 여기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고, 그 인내를 온전히 이룸으로 구비하여 온전케 하시는 것임을 믿고 기쁘게 여기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런 시련 중에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느냐는 것입니다. 또 기도하면서 두 마음을 품지 않고 기도하느냐는 것입니다. 기도는 결국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온통 원망과 불평을 하며 남 핑계를 대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는 거의 다 후자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돌아서야 하는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자신이 돌아서야 할 자인 것입니다. 또한 19절에 보면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1:19)고 하는데, 우리는 듣기를 속히 하고 말하기를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얼마나 속히 하고 있습니까?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는데 과연 우리는 성내지 않고 살아가느냐는 것입니다. 성 내는 것도 거룩한 분노가 아니라 순전히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성내고 있지는 않느냐는 것입니다. 세상이 자기 마음대로 안 된다고 아니 세상은커녕 함께 사는 가족조차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내 자신은 조절이 잘되고 있습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내 자신도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성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돌아서야 할 자는 역시 우리 자신이 되는 것입니다. 22절에도 보면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1:22)고 합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도를 듣습니다. 그러나 듣고 있다고 해서 의가 아닙니다. 과연 우리가 들은 그 십자가의 도로 살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좋다고 말은 합니다. 그러나 복음으로 자기 편한 것만 챙기면서 복음이 좋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자기를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이 스스로 속이고 있는 자리에서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또한 26절 이하에도 보면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1:26-27)고 하는데, 우리는 과연 자기 혀를 재갈 먹이고 있습니까? 자기가 경건하다고 하면서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면 그런 경건은 헛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혀가 우리 마음대로 되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혀란 야고보서 3장에서 작은 지체로서 온 인생을 불사르는 지옥의 불이라고 합니다. 쉬지 않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혀를 능히 길들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마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를 탓하기 전에 자기 혀부터 길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경건이란 말로만이 아니라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2장에 보면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2:14-16)라고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믿음이라고 말하면서 말로만 하는 것의 헛됨을 여러 가지 예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헐벗고 배고픈 자에게 따뜻하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고 말만 하고 옷을 주지 않고 음식을 주지 않으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말씀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역시 우리 자신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이 아니하는 것이 참된 경건인데 과연 오늘날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이 세속에 물들지 않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오히려 세속에 물드는 것을 더 열심히 사모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물들지 않고 떠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더 세상에 물들고 싶어서 기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무엇을 추구하며, 목소리 외쳐 부르짖는지 돌아보면 잘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부자가 부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가 되고 싶다는 것은 이미 세속에 물들어 버린 것입니다. 부자가 되면 자기가 원하는 것들을 하고 싶기에 부자가 부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2장에서도 보면,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고 하며, 부자와 가난한 자를 차별대우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과연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고 있습니까?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것이 죄라고 합니다. 자신이 되고 싶은 부자 앞에선 주눅이 들어 겸손한 척 대우해 주지만, 자신보다 못한 가난한 자 앞에서는 목을 뻣뻣이 세워 다 할 수 없는 교만함으로 대합니다. 내가 어떤 상태에서 주의 은혜를 입었는가를 잊어 버렸기에 그렇게 사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돌이켜야 할 우리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야고보서 3장에서도 보면 세상 지혜와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대비하고 있습니다.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는 것은 위로부터 온 지혜가 아니라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것이라 했습니다. 그럼 우리의 싸움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성내고 다투며 시기하며 얻고자 하는 것이 과연 어디에서 온 것들인가 하는 것입니다. 땅의 것입니까? 아니면 하늘의 것입니까? 위로부터 온 지혜는 성결, 화평, 관용, 양순,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함, 편벽과 거짓이 없음,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는 것인데 우리가 과연 이런 것을 사모한 적이 있기나 한 것입니까? 없다면 우리는 돌이켜야 할 자들입니다. 41절부터 10절까지는 우리가 하늘의 것을 사모하기는커녕 세상의 것을 사모하고자 달려가고 있음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인데도 우리는 세상과 벗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날마다의 삶이 하나님과 원수 되고자 애를 쓰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살면서도 우리는 하나님과 벗되고자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며 살았습니까? 아니면 간음하는 여자처럼 세상의 것들을 사모하며 살았습니까? 하나님과 원수 되고자 살아가는 것을 책망하면 회개하고 돌아서야 할 텐데 오히려 거역하는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돌아서야 할 자들입니다. 마귀를 대적하고 돌아서서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멀리하고 마귀를 가까이 하고 있지는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미혹하여 진리에서 떠나 있는 자들이며, 회개하고 돌아서야 할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손을 깨끗이 하고 두 마음을 품은 것을 회개하여 성결케 하고 슬퍼하며 애통하여 울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웃음을 애통으로, 세상에서의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꾸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11절과 12절에서는 형제를 비방하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는 재판관도 입법자도 아니라 했습니다. 그런 우리가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고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내 기준으로 이웃과 형제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회개하고 돌아서야 할 것입니다. 이 모든 말씀이 전부 나에게 하시는 말씀인 것이지 남보고 하는 이야기가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4장의 마지막 절까지는 인생이 안개임을 알라고 합니다. 안개인 주제에 자기 인생의 계획을 스스로 세워서 부자가 되어 보자고 하는 어리석음을 책망합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이것도 저것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자신이 계획을 세우고 이루면서 허탄한 자랑을 하는 것이 다 악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야고보서의 마지막 장인 5장에서는 부자에 대한 엄중한 경고가 등장합니다. 부자에 대하여 울고 통곡하라고 합니다. 우리는 부자가 되면 축복인줄 알았는데 부자에 대하여 무섭게 심판을 선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이 먹었다고 합니다. 살육의 날에 살지게 하였다고 합니다. 지금이 심판의 때이니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서야 할 것입니다. 심판자이신 주님이 바로 문밖에 서 계십니다. 그리고 함부로 맹세하지 말고, 고난당하면 기도하고, 즐거우면 찬송할 것입니다. 병든 형제를 위하여 죄를 고하며 기도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어야 하며, 이런 모습이 아니라면 우리는 한시라도 빨리 돌아서야 하는 것입니다.

 

 

 

3. 나 먼저 그리고 형제에게

그리고 오늘 본문이 결론의 말씀입니다. 위에서 함께 살펴 본 것처럼 우리 자신이 먼저 이 말씀을 듣고 돌아서야만 할 존재들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돌아 선 후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형제를 나와 같이 돌아서게 하면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어주실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2장에도 보면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22:32)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먼저 이 말씀으로 돌이킨 후에 형제를 굳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 형제를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어주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죄가 가리움을 받는 것입니다. 그 허물이 사함을 얻고 그 죄가 가리움을 받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입은 자가 진리에서 떠난 형제를 돌이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돌아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돌아섬이 있는 자는 또 다른 형제를 돌아서게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오늘도 우리 주님은 허다한 죄를 덮어주시는 주님에게로 돌아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우리가 제일 먼저 주 앞에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돌아 선 내가 진리 위에 굳게 서서 형제에게 권면해야 할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 하나님이 우리를 돌이켜 주시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만 좋으면 다 되는 게 아니고, 나만 돌이켜 지면 그만이 아닙니다. 우리를 그렇게 돌이켜 세우신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면 우리가 돌이킨 다음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바르게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돌이켜 세우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마음을 바르게 알아 우리의 삶이 매일 형제를 돌이켜 세우게 위해 사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날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성경을 대할 때 바르게 보지 못하게 하는 우리의 착각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2. 우리들이 가지는 행함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성경적 바른 이해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3. 야고보서 전체에 흐르고 있는 돌아서야 할 자에 대한 내용 무엇이며, 누구의 이야기입니까?

4. 행함이 없는 믿음은 무엇이며, 참 믿음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납니까?

5. 부자와 가난한 자를 차별하여 대하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6. 형제를 진리 가운데로 돌아서게 할 수 있는 자는 누구라고 합니까?

7. 우리를 돌아서게 하신 분이 누구시며, 그 분의 마음을 안다면 다음에 할 일은 무엇입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알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73 1월 19일 / 사도행전4. (행1:9-11)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증인의 삶 116 관리자 2014.02.26 5706
172 1월 12일 / 사도행전3. (행1:6-8) 증인들이 전해야 할 증거의 내용 121 관리자 2014.02.26 3632
171 12월 29일 / 사도행전1. (행1:1-5)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134 관리자 2013.12.29 2418
170 12월 22일 / 디도서8. (딛2:15-3:8) 은혜로 사는 자가 가져야 할 두 가지 인식 185 관리자 2013.12.22 3683
169 12월 15일 2부 / 디도서7. (딛2:15 - 3:8) 은혜로 사는 자가 가져야 할 두 가지 인식 82 관리자 2013.12.15 2034
168 12월 8일 2부 / 은혜로 우리를 양육하시는 하나님 161 관리자 2013.12.08 4653
167 12월 1일 / 디도서5. (딛2:6-10)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880 관리자 2013.12.01 9164
166 11월 24일 / 디도서4. (딛2:1-5) 하나님의 말씀을 위하여 그렇게 하라 781 관리자 2013.11.23 6061
165 11월 17일 추수감사주일 / 소금이 맛을 잃으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19 관리자 2013.11.23 1720
164 11월 10일 / 디도서3. (딛1:5-16) 하나님의 청지기로서의 삶 104 관리자 2013.11.10 4313
163 10월 27일 1부 / 디도서1.(딛1:1-4) 예수님의 사도 그리고 그의 사역과 임무 278 관리자 2013.10.27 8809
» 10월 20일 2부 / 야고보서24. (약5:19-20) 돌이킨 자가 돌이키게 하리라 3 관리자 2013.10.20 1577
161 10월 13일 / 야고보서23. (약5:13-18) 고난 중의 기도와 즐거움 중의 찬송 15 관리자 2013.10.13 2225
160 10월 6일 / 야고보서22. 내 형제들아 맹세하지 말라 2 관리자 2013.10.06 1319
159 9월 29일 / 야고보서21.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283 관리자 2013.10.06 10359
158 9월 1일 2부 / 야고보서17.(약4:5-10) 시기하시기까지 사모하시는 하나님 1263 관리자 2013.09.01 16050
157 3월 24일 2부 /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38 관리자 2013.04.10 2106
156 3월 10일 1부 / 그림자를 놓고 실체를 붙드는 신앙 79 관리자 2013.04.10 3940
155 3월 3일 2부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 관리자 2013.04.10 1351
154 2월 24일 1부 / 하나님의 비밀 안에 있는 모든 보화 12 관리자 2013.04.10 1488
Board Pagination Prev 1 ...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 37 Next
/ 37

총괄 관리자 : 예원교회 방송실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