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영원한 제사장이신 예수님
본문 / 히 7:16-25
1. 영원토록 주안에서
사람은 영원토록 예수님으로부터 독립된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죄 아래 있을 때에는 구원받기 위해 예수님이 필요했다가 구원받은 이후에는 더 이상 예수님이 필요치 않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예수님이 오시고 자기 백성을 영원한 나라에 들여보낸 후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천국에 들어간 그때부터는 예수님이 필요 없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신자에게 예수님은 영원한 구세주이심을 알아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은 우리를 천국이란 어떤 장소에 집어 넣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이것이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라면 신자가 천국에 들어간 이후에는 예수님의 일은 모두 종결되었다고 봐야만 합니다. 즉 더 이상 예수님이 필요치 않게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이라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이라는 것이 천국에 들어갔다고 해서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토록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 신자이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영원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1절에도 보면 예수님을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제사장 직분은 인간의 죄와 연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스스로 제물이 되시므로 우리의 죄를 덮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인된 신자는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만 죄로 인한 심판을 받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심판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제사장의 직분이 영원하다는 것은 신자가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거하는 것은 영원한 나라에서도 계속되어질 관계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으로 우리를 위해 할 일을 다 하신 것으로 여기면 곤란합니다.
오늘 본문 25절에 보면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7:25)는 말을 합니다. 이 구절이 의미하는 내용은 예수님으로부터 떨어질 수 없는 신자의 위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벗어나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믿으면 그것으로 다 되었다고 착각을 합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그 믿음으로 예수님을 위해 살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늘나라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나 항상 살피시는 분으로 여기기 십상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우리를 살펴서 잘하면 상을 주고, 못하면 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런 경우라면 믿음은 신자를 그리스도 안이라고 하는 관계에 붙들어 놓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로부터 독립된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때문에 이러한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신자는 영원토록 예수님으로부터 독립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구원이라고 하는 의미 자체가 예수님의 지체가 되었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지체란 예수님의 몸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예수님의 몸으로 있다가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영원한 나라에 있게 되었을 때는 각기 예수님으로부터 독립된 존재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 25절의 말씀을 보면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 역시 예수님의 간구하심으로 말미암아 온전히 구원에 거하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것은 우리의 기도가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의 정성 어린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 하신다’는 것은 결국 예수님으로부터 독립된 존재로 자신의 힘과 의로써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2. 영원한 제사장
그런데 이처럼 예수님을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말할 때 한 가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차피 예수님으로만 되고, 인간으로서는 안되는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레위 계통의 제사장을 세우셨느냐는 것입니다. 아예 처음부터 레위 계통의 제사장을 세우시지 말고, 멜기세덱 계통의 제사장을 세우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레위 계통 제사장의 역할은 무엇인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레위 제사장을 세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영원한 제사장이 세워질 수밖에 없는 당위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레위 계통의 제사장으로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영원한 제사장이 오셔야 할 수밖에 근거를 제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 23절에 보면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히7:23)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누구나 다 죽습니다. 그래서 그 뒤를 이은 제사장이 계속 일어나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제사장이라 할지라도 자신도 죽는 판국에 누굴 살릴 수 있겠습니까? 때문에 인간으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릅니다. 오늘 본문 24절에 보면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히7:24)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것처럼 예수님은 영원히 계시는 분입니다. 영원하다는 것은 죽음과 상관이 없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뒤를 이은 제사장이 따로 필요치 않은 것입니다. 죽음과 상관없는 그분이야말로 우리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실 유일한 분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내용들을 기억하고 오늘 본문 25절의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7:25)는 내용을 다시 보면 오직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만으로도 구원은 완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인간의 온전함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영원토록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부터의 독립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은 영원한 제사장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전함에 거하게 되는 신자의 위치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이러한 내용이 거부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법을 지켜야 한다’고 하는 주장입니다. 구원을 받았으니 법을 지켜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이것은 결국 법을 지키는 인간의 행위를 근거로 하여 구원을 확립하고자 하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즉 이미 그리스도로 확립된 구원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위에서 구원의 근거를 찾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으로 시작하여 육으로 끝나는 것이고, 십자가로 시작하여 자기 자신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예수를 말하나 결국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6절에 보면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히7:16)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않으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는 신자 역시 계명의 법을 따라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계명의 법에 순종하므로 되는 것이 아니고 생명의 능력으로 인해 되는 것이기에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능력을 믿는 것이 신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본문 19절의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히7:19 상)고 하는 말씀처럼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할 수 없음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뭔가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잘 지키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믿음이 있는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즉 믿음의 여부를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살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위를 근거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자신이 지키지 못한다고 생각되면 스스로를 믿음이 없는 것으로 규정하고 낙심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할 수 없음을 말하면서 영원한 제사장이시며 우리의 생명의 능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3. 오직 예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행위로 가득한 종교적 틀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보다는 지금껏 거의 전통적으로 내려온 어떤 틀에 매어 있는 것을 많이 발견하고는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지금껏 입고 있던 종교적 틀은 다 벗어 버렸으면 좋겠는데 그 틀을 쉽게 벗어 버리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우리는 기독교라는 종교 안에서 행해온 모든 틀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잊어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부활절, 감사절, 성탄절, 송구영신예배, 신년예배 등등 이러한 틀들을 다 벗어버리고 잊어버렸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새까맣게 잊고 있다가 ‘오늘이 감사절입니다’하면 ‘아 오늘이 감사절인가? 몰랐네’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많은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신을 생각하기보다는, 기독교라는 종교 안에서는 자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 모습이 많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떠한 틀을 가지면 안 된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틀 안에 갇혀서 틀에 맞춰 살아가는 것에서 신앙의 재미를 맛보고자 하는 것에 대한 염려를 하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인간으로서는 안 되는 일을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심으로 말미암아 이루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행한다고 해도 그것으로 온전케 될 수 없으며 다만 영원한 제사장이신 예수님의 희생과 피 흘리심만이 나를 영원한 생명에 있게 한 능력임을 믿는 것입니다.
신자는 하나님과 법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관계에 있습니다. 이것을 두고 사랑의 관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베푸신 사랑으로 우리가 부름을 입은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의 관계를 거부하고 스스로 법적인 관계를 만들어 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고 필요 없는 것으로 간주해 버리는 어리석음임을 아셔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제사장이십니다. 이 말은 결국 우리는 영원토록 예수님 덕분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미도 주안에서 확정된 신자의 모습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 21절에 보면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히7:21)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맹세로 말미암아 제사장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사장직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얼마나 든든한 약속인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자신을 볼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맹세로 되어진 영원한 제사장이신 예수님만을 바라보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전혀 부족함이 없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신자인 우리의 모든 것이며 또 전부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영원한 제사장이신 예수님만이 신자된 우리의 마음을 모두 다 통치하고 다스리시기만을 소망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