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모형과 그림자
본문 / 히 8: 1- 5
1. 영원한 제사장의 일
우리가 함께 나누고 있는 히브리서의 저자는 레위 계통의 제사장보다 더 우월하신 영원한 제사장으로 오신 그리스도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리고 이제 히브리서 8장부터 10장 까지에서는 영원한 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우월하신 사역에 대하여 설명을 하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율법으로 세워진 레위 계통의 제사장의 사역에 비하여, 영원한 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사역이 우리에게 가져온 혜택에 대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히8:1)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을 보면 히브리서 저자가 중요하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레위 계통의 한시적 제사장이 아닌 멜기세덱 계통의 영원한 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참으로 중요한 것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말씀을 대하고 있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들에게도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영원한 제사장이신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계신다는 것이 중요한 의미로 자리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면 예수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제사장이니 또는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시니 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신자들은 이러한 내용들에 대하여는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신자들이 원하는 것은 이러한 내용들 말고 우리가 살면서 만나게 되는 문제나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는 것에만 관심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제사장으로 오신 것, 지금은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 우리를 위해 간구하신다는 것, 이 모두는 지금 우리들과 연관된 그리스도의 일하심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의 일하심으로 인해 지금 신자로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차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누구시고, 어떤 일을 하셨으며 또 우리는 그분 앞에서 어떤 존재인가를 아는 것은 신자에게는 아주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말하는 것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제사장직을 완성하셨고 따라서 그 직이 소멸된 것이 아니라 하늘 보좌에서도 여전히 우리의 제사장으로 일하고 계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일하심이 바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표자가 되셔서 하나님께 간구하시고, 우리는 그러한 예수님의 간구하심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이 하늘로 가신 뒤에도 신자는 여전히 제사장 되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신자된 우리는 이점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을 마치 신자가 제대로 신앙생활을 잘하는가 그렇지 못하는가를 보시는 분으로만 착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착각으로 인해 우리는 결국 신앙생활은 내가 힘을 내서 하는 것이고 또 예수님은 나의 그런 잘함에 대해 칭찬하시고 그 대가로 복을 주시는 일을 하고 계시는 것으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영원한 제사장의 의미가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스도가 영원한 제사장이시라는 것은 단순한 명칭이 아니라 실제적이며 사실적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2. 저자의 의도
이것을 히브리서 저자는 오늘 본문 2절에 보면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히8:2)고 말함으로써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 ‘섬기는 이시라’고 하는 말은 사역하는 자란 뜻입니다. 즉 예수님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서 여전히 성소와 참 장막에서 일하시는 분으로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 장막은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함으로써 사람이 세운 땅의 장막은 이미 그 역할이 끝났음을 암시하고 있기도 합니다. 따라서 신자에게 있어야 하는 것은 하늘의 성소에서 여전히 제사장으로 일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살아가고 있음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즉 땅에 있는 우리들의 종교적 행위가 우리의 믿음을 지키고 유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세운 장막이 아닌 하늘의 참 장막에서 섬기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유지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중보자로서 영원한 제사장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3절부터 보면 “3.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그러므로 그도 무엇인가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 4.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라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따라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히8:3-4)는 말을 합니다. 이 구절에서도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은 땅에 세워진 성막에서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히브리서 저자는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땅에 세워진 성막에서 제사장으로 일하시는 분이 아님을 우리는 다 알고 있는데 왜 굳이 이런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분으로서 예수님이 영원한 제사장으로 일하셨다는 내용들이 사람들에게 사실적으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보다는 보이는 성전에서 보이는 제사 제도에 더 믿음을 두고자 하는 유혹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을 보이지 않는 하늘의 성소에서 대제사장으로 일하고 계심을 언급함으로써 눈에 보이는 성전에서의 제사 행위에 유혹되지 말 것을 가르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5절에 보면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히8:1-5)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땅에 있는 것은 실제가 아니라 하늘의 것을 암시하고 보여주는 모형이며 그림자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실제가 나타났다면 모형과 그림자는 가려지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시하셔서 지으라 하신 성막은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모형이며 그림자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앞에서 사람들이 지은 유대인들의 성전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모형이 아닌 실제가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실제이신 예수님을 제거함으로써 자신들이 섬기는 땅에 있는 모형을 지키고자 한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인 우리들의 어리석음인 것입니다.
3. 불신앙
그래서 구약의 모든 것은 예수님을 보여주기 위한 모형이며 그림자일 뿐입니다. 골로새서 2장에 보면“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2:16-17)고 합니다.
여기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 연결하는 것은 바로 앞에서 말한 십자가로 승리하였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십자가로 이미 승리한 것을 믿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골로새 교회에 거짓 선생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승리라고 하는 복음을 듣고 믿었는데, 그 십자가만이 승리가 아니라 다른 것도 더 추가하여야 더 고급한 신자가 되고, 더 충만한 영적인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고 말하는 자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만약에 이들이 십자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단번에 알아채겠지만 분명히 이들도 십자가를 말하면서도 교묘하게 그것으로 부족하다고 하는 식이기에 그들의 말과 주장에 일리가 있어 보이는 것입니다.
이런 거짓선생들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가지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어야 할지 마셔야 할지 아니면 먹고 마시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금령들은 다 율법에 속한 것입니다. 또한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도 다 율법에 속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바로 실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기 위한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확실하게 실체라고 여기며 붙들 수 있는 것을 그림자라고 말하고, 내가 확실하게 붙들 수 없는 믿음의 영역을 실체라고 하는 것입니다. 실체가 오기 전까지는 그림자의 안내를 받게 되는 것이지만, 실체가 오면 이제 더이상 그림자를 붙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림자란 붙든다고 해서 붙들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여기서 말하는 그림자란 너무나 잘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것들이기에 전혀 그림자로 여겨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하면 내가 어떤 음식을 먹고, 아니 먹고 하는 것을 율법을 따라 지키는 것은 자기가 분명히 잡을 수 있는 것이기에 실체로 여기는 것입니다. 또 절기를 지키고, 초하루를 지키고,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얼마든지 실체라고 여기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모든 것들이 다 그림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고를 디모데전서 4장에 보면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딤전4:1-5)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서 떠나게 하는 자들이 귀신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양심에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특징은 바로 그림자를 실체라고 여기고 붙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들이 바로 골로새서에 말한 날과 초하루와 절기와 안식일과 먹고 마시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바로 믿음을 떠나,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며 또 양심에 화인을 맞아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구약의 제사도 안식일도 다 예수님을 보여주기 위한 모형으로 세워진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모형과 그림자를 붙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나 그것은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불신앙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막연히 바라보는 것보다는 지금 눈에 보이고, 실제로 몸에 와 닿는 모형과 그림자가 더 확실하다고 여기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 본 영원한 제사장이나, 하늘 보좌, 예수님의 간구하심 등은 비록 말은 그렇게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것보다는 내가 직접 실천하는 십일조를 바라보는 것이 더 확실하고, 예배당에서 예배드리고, 주일을 지키는 내 자신이 더 확실하다는 생각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를 보지 않는 비신앙적 모습에 불과할 뿐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우리들에게 생생한 실제적인 사건으로 남아야만 합니다. 영원한 제사장으로서 하늘 성소에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신다는 믿음이 있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 이 믿음을 구하십시오. 우리의 눈에 보이는 종교적 행위에 의지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분을 믿으며 그분의 행하신 일만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살기를 소원하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으로도 신자에게는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분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 모형과 그림자에 머물고자 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대체하고자 하는 것이야말로 예수님의 피 흘리신 사건을 무너뜨리는 것임을 깊이 생각하시어서 보이지 않지만 지금도 우릴 위해 섬기시는 주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