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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한 몸을 예비하심

본문 / 10: 5- 9

 

1. 신앙 자세와 시각

신자가 자신이 보는 성경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심으로 믿는다면 성경에서 말씀 되어지는 것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만 합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도 그리고 나는 하나님을 전지전능하신 창조주로 믿는다고 고백은 하면서도 정작 그분께서 말씀하신 현장인 성경에 대해서 자신의 뜻과 욕망과 이익을 따라 제멋대로 가감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믿음이 없는 모습이며 결국 그가 하나님에 대해 고백하는 모든 것은 단지 입술에 고백에 그치는 것일 뿐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즉 자기 스스로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인정하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나의 신앙을 인정한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에 있음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의 점검은 오직 성경으로 말미암아 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참된 신앙, 즉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믿음으로 말미암아 어떤 현상과 어떤 모습이 보이는가를 살피면서 자기 자신을 분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분별함에 있어서 보게 되는 것이 자신의 굳은 의지 아니면 자기 행위입니다. 신앙으로 여기는 행위가 있고, 신앙으로 여기는 내용에 대해 굳게 지키고자 하는 굳은 의지가 있다고 여길 때 그것으로 나는 신앙 있음이라는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신자는 주일을 지켜야 한다. 그것이 신앙이 있는 것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이 옳다고 여기는 사람은 그러한 생각과 굳은 의지를 가지고 있는 자신을 신앙이 있는 것으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연히 그의 눈에는 주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신앙이 없는 것으로 분별 되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주일을 지키는 것을 신앙의 기준으로 말씀하지를 않습니다. 결국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기준된 것이 아니라 교회를 다니면서 습득하게 된 지식과 전통에 자신도 모르게 세뇌 되어짐으로 오직 그것만을 신앙으로 여기는 것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모든 사람이 옳고 그름에 대한 자기만의 분별과 굳은 의지를 가지고 살아간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저 자신도 성경을 보고 이해할 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어떤 틀에 맞추어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많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옳다라는 전제를 가지고 성경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말씀으로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가?’에 충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의 생각의 틀림을 지적한다면 무작정 배척만 할 것이 아니라, 그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두고 성경을 다시 살피는 자세가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이것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고자 하는 신자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나 역시 아니다고 할 수 있어야 하고, 성경이 옳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나 역시 옳다고 말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설사 내가 수십 년 동안 옳다고 믿어왔고 또 그렇게 실천해 온 사항이라 할지라도 성경이 아니라고 말씀한다면 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바로 신앙인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성경보다는 수십 년 믿어온 자신의 지식을 신뢰하고 의지해 버리는 것을 보면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신앙에 대한 답답함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2.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늘 본문 5절부터 보면 “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6.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10:5-7)고 말씀합니다.

여기 보면 하나님께서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신다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대개 사람들의 머리에 박혀 있는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 아닐 것입니다. 제사와 예물을 한없이 원하고 번제와 속죄제를 열심히 드리는 것을 기뻐하는 그런 하나님으로 박혀 있다고 봐도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오늘날의 교회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 중에 빠지지 않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예배이고 헌금입니다. 교회에서 신자들에게 하나님은 신자가 경건하고 거룩히 예배드리는 것을 기뻐하시고, 정성으로 바치는 헌금을 원한다는 가르침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그렇게 가르치는 자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제사와 예물을 원하는 하나님이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말씀 되어지는 하나님과는 상반된다고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쪽을 버려야하는 것입니까?

인간의 종교성에 의해 만들어진 하나님은 분명 제사와 예물을 원합니다. 인간이 신에게 보일 수 있는 정성의 행위는 제사와 예물 그리고 기원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조건 열심히 바치고 열심히 나오면 되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에서 말씀 되어지는 하나님은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않으시고 번제와 속죄제도 기뻐하지 않는 하나님임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참 하나님은 바로 이런 분입니다.

그런데 혹시 오늘 본문에 언급 되어진 제사와 예물 그리고 번제와 속죄제에 대한 부분을 구약에만 해당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성도님은 없으시겠지요? 다시 말해 신약에는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것이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생뚱맞은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은 지금식으로 하면 하나님은 예배와 헌금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말과도 같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이 말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시겠습니까?

그러나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오늘 본문에 원하지 아니하시고라는 말을 제사를 행하지 말고 예물을 가져오지 말라는 뜻이 아님을 아셔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이스라엘을 책망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말을 했지만, 때문에 제사를 행하지 말고, 예물도 바치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어떤 의도로 하신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은 내가 드리는 제사를 기뻐하시고 내가 바치는 예물을 원하시는 분이라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혹 이러한 말들이 교회의 중심을 흔드는 말로 들려질 수 있겠지만 그러나 분명하게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드렸듯이 그 말이 예배를 드리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예배라는 행위 자체를 의로운 것으로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배라는 행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앞서 말한 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다른데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예배라는 행위가 아니라, 예배를 위해 모이는 우리의 속마음인 것입니다. 과연 우리의 속에 무엇을 두고 모이느냐는 것입니다. 제사의 의미는 제사라는 의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제사하면서 자신의 죄를 생각하고 제물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죄가 용서됨을 아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제사의 목적은 의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보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하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예배의 중심과 의미도 동일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예배하는 우리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희생의 은혜를 마음에 두고 자신의 죄인 됨을 알면서 형제를 만나는 그것이 바로 예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의 행위에 변화를 주어서 예배를 좀 더 거룩하게 만들어 보겠다는 발상은 하나님의 기쁨이 무엇인가를 염두에 두지 않는 무지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본문 말씀은 시편 40편에서 인용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시편 40편을 보면 “1.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3.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4. 여호와를 의지하고 교만한 자와 거짓에 치우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5.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40:1-5)라고 말씀합니다.

이 시편 40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여기서 자신을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려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수렁이 무엇이겠습니까? 자신은 율법도 잘 지키고 제사도 잘 지내는 줄 알았고 그래서 자신이 의인인 줄로만 알았기에 자신은 죄인인 줄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은 시편 51, 즉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 지은 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다윗은 간음과 살인을 하였지만 자기 죄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인 된 인간의 실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보내 비유로 죄를 지적하니 그런 놈은 죽여야 마땅하다고 큰 소리 친 것이 다윗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고 나단 선지자가 지적을 하자 다윗이 처절하게 회개합니다. 자신이 죄악 중에 잉태되었기에 죄를 먹고 마시며 살았다는 고백입니다. 여기서 다윗의 위대함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다윗이 은혜를 받은 자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의 지적에 대하여 나단 선지자를 죽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죄를 지적하는 자에 대하여 좋은 감정으로 대하기가 얼마나 불가능한지 우리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자기 죄를 회개하는 것이 바로 은혜를 입은 자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은혜를 입은 자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51편에 보면 “16.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51:16-17)라고 고백하며 노래하는 것입니다.

상한 심령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물론 다른 여러 가지 해석을 할 수 있겠지만 저는 이것을 죄로 인해 애통해하는 마음으로 이해합니다. 즉 하나님은 죄로 인해 애통해하는 그 마음을 원하시고 그것을 제사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배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이러한 마음을 외면하지 말아야할 것입니다.

다시 시편 406절부터 보면 “6.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7.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40:6-7)라고 합니다.

구약에서 제사와 예물 그리고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한다는 말씀은 참으로 놀라운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성령의 감동을받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가 무엇인가 하니 제사나 예물이나 번제나 속죄제가 아닌 한 인물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루마리 책에 기록한 대로 내가 왔나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내가라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보면 하나님은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않으시고 한 몸을 예비하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는 이 말씀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사람이 행하는 제사는 의가 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평생토록 제사를 드린다고 해도 그 제사로 구원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이 예비하신 한 몸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한 몸,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든 소망을 두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3. 폐하심과 세우심

오늘 본문 8절부터 보면 “8.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10:8-9)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첫 것은 제사와 예물을 뜻합니다. 그리고 둘째 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이것을 보면 폐하여 진 것은 무엇이고, 굳게 세워진 것은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또 다시 율법을 기웃거리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율법에 충실한 자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비하신 한 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성 어린 예배와 헌금이 그리스도를 세우는 것이라고 여기기도 하지만 그 속셈은 그리스도보다는 자신을 굳게 세우기를 원할 뿐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헌금을 하면서 원하는 것이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것에 있는 것입니다.

배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헌금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문제는 우리의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의 행위를 근거 삼아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하는 속셈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것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는 제사로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얼마나 스스로 거룩함에 이르기가 불가능한지를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알 때만이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는 말씀이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직도 자신의 잘남과 자랑을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위해 한 몸을 예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한 몸에 관심을 두고 기뻐할 수 있는 자들은 바로 자신의 죄의 깊이를 알고, 그 모든 죄가 용서받은 것으로 기뻐하는 자들일 것입니다. 죄사함의 기쁨과 축복이 세상에서 돈 벌고 성공하는 것보다 더 크고 즐겁고 복되다는 것을 아는 하나님의 백성들일 것입니다.

러므로 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만 거룩함을 얻게 하셨는지를 평생 알아가면서 주님께 감사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라며,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한 몸으로 인해 베풀어진 은혜의 기쁨과 복을 마음껏 누리고 감사와 찬양의 삶을 살아가는 신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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