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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수님의 사도 그리고 사도의 사역과 임무

본문 / 1: 1- 4

 

 

1. 사도

오늘부터 디도서를 함께 나누겠습니다. 디도서는 디모데 전후서와 마찬가지로 목회서신으로 분류를 합니다. 그러나 목회서신이라고 하여서 어떻게 하면 목회에 성공하는가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믿음과 진리와 영생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의 목회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는 사회 구조나 제도들을 개혁하려는 세상적인 논의라기보다는 자기 백성을 직접 구원코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목회 성공을 위한 목회에 관한 수많은 방법론과 이론들이 있지만 그런 내용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목회자들이 생각하는 목회자 상이 있을 것이고, 성도들이 생각하는 목회자 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저것도 다 아닙니다. 바울사도의 관심사는 믿음과 진리의 지식과 영생에 대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1:1)라고 하여 바울사도는 자신을 하나님의 종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자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1:1)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바울의 고백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후로 나온 바울의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언제나 종과 사도로 소개하고 있고, 그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관심사는 자기의 목회계획이나 성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종으로서 또는 사도로서 주인이신 그분이 시키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여기서 사도에 대하여 잠시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도란 보내심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란 예수님과 함께 3년간 동행하고 부활을 목격한 자들 중에 한합니다. 그래서 열두 사도라고 하는데 이중에 한명은 가룟 유다 대신 맛디아가 들어갑니다. 그런데 바울 자신도 자신을 사도라 하고 다른 사도들 또한 그런 바울의 사도됨을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열두 사도란 구약의 12지파가 이스라엘백성이 된 것처럼, 이제 종말의 새로운 공동체도 열두 사도에 의하여 부르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왜 바울을 사도라고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울의 이방인에게 보냄을 받은 특별한 사역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입니다. 원래 사도의 직분은 엄격히 제한적입니다. 즉 예수님의 공생애에 참여하고 죽으심과 부활의 목격자만이 아니라 주님의 계시를 직접 받은 자이어야만 사도로서의 그 권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사에서도 보면 주님의 공생애와 죽음 그리고 부활을 목격한 자와 주님의 계시를 직접 받은 자는 사도라 하여 사도시대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 사도 요한이 죽은 후부터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하기까지의 시기를 속 사도시대라고 하는데, 이 시기에는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교회가 보다 구체적으로 형성된 시기요 발전된 시기로서 이 시기에 사도시대의 사도들의 뒤를 이어 복음전파와 기독교 신학을 정립한 분들을 속 사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 사도 이후에는 속사도 시대라고 말하며, 이들은 사도들과 자신들의 구별을 아주 분명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에 넓은 의미에서 보면 하나님의 종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는 말을 사용하더라도 초대교회의 사도와는 분명한 구별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의 완성에 대한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믿는 자가 모두 하나님의 종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계시를 말하는 자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기록된 계시인 성경을 증거 하는 자로서의 종이고 사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고 사도라고 하는 자들이 일어나서 자기들의 꿈과 계획과 목회비전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이라고 주장하는 일에 대하여 현혹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난리와 난리의 소문이 들리고, 민족과 민족이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고, 처처에 지진과 기근이 일어나는 상황만이 종말의 사인이 아니라 수많은 거짓 메시야가 나타나는 것도 종말의 사인입니다. 물론 이러한 일들은 범죄 이후에 계속되는 상황이기에 우리가 더욱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계시에 깨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2.

다시 오늘 본문 1절로 돌아가 보면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1:1-2 )고 합니다. 바울이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소개하면서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은 자기가 원하여 된 것이 아님을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한 자였기에 예수의 사도가 될 생각을 할 수가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앞으로 이방인에게 복음이 증거 되고, 이방인 중에서 믿는 자가 나오는 것은 바울사도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사도로 세움을 받은 것처럼 이방인 또한 그런 주의 은혜로 될 것임을 나타내기 위해 바울을 모델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1장에서 바울은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딤전1:15-17)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 중의 괴수인 자기가 긍휼을 입은 것은, 하나님이 자신에 대하여 오래 참으심으로 영생에 이르게 하신 것처럼 복음을 인하여 영생에 이르게 하는 자들의 본이 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의로움이나 열심이나 충성을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 나 같은 죄인도 이렇게 주님께서 구원하셨다는 것을 보이시기 위하여 자기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들의 자세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사람들에게 말하기 어려운 때가 언제입니까?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이나 잘되고 또 다른 사람들이 보아도 바르고 착하게 살고 있다고 인정하는 때입니까? 아니면 제대로 바르게 살지도 못하고 또 무슨 일이 잘 풀리지도 않고 어려움에 처하여 있는 때 입니까? 대부분은 후자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에게 주의 사역 좀 하라고 하면, 어찌 나 같은 것이 그 거룩한 사역을 할 수 있습니까?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이것은 자기의 의를 가지고 증거 하려고 하는 자세이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증거 하려는 자세가 아닌 것입니다. 내가 무언가 떳떳하고 제대로 되어 있어야 예수 믿는다는 말을 할 수 있고 또 주의 사역을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바울사도의 자세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너 그렇게 해가지고 어떻게 예수 믿는다고 할 수가 있니? 네가 무슨 주의 일을 한다고?’ 라고 할까봐서 예수 믿는다는 말도 또 예수 믿으라는 말도 못하고 더 나아가서는 주의 사역도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아마 오늘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서도 그렇게 생각하실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들은 세상에 속한 생각입니다. 물론 자신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보다 더 악착같이 살고, 인색하고, 욕심을 부리고 살면서 예수를 믿으라고 한다면 욕을 얻어먹어야 마땅하겠지만, 우리의 약함과 가난과 실패 때문에 전도가 되지 않고, 주의 사역을 못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그럴 때에 흔들림 없이 당당하게 하늘의 소망을 말할 수 있는 것이 믿는 자의 모습일 것입니다. 물론 나의 못남 때문에 주의 일들이 손해 보지 않도록 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해야 할 바른 자세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핑계가 돼서 못하겠다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는 바르지 못한 것임을 더욱 더 기억하셔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란 보내신 분이 시키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원리나 세상의 관점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나 또 세상이 이해하는 내용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가 오늘 본문에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을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이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3. 믿음과 지식과 영생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도 오늘 본문에 나오는 믿음과 진리 또는 지식과 영생에 대하여 말들을 합니다. 믿음을 인간관계 또는 가족 간에도, 사회에서도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자식이 부모를 믿어야 하고, 부모가 자식을 믿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회에서도 신용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얼마나 인간관계에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일이 많이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사회에서도 신용불량자가 수백만 명이라고 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사용하는 믿음이라는 단어와 지금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과는 어떻게 다른 것입니까? 또 진리와 지식 그리고 영생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씀하는 단어가 우리가 평소에 사용하는 단어라고 해서 자기가 알고 있는 대로 이해되어져서는 곤란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복이라고 할 때 성경에서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이 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복을 생각하고 주님께 복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까? 결코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계시의 말씀이고, 계시란 우리가 이해하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계시를 받은 자만이 알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씀하는 믿음이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다들 믿고 삽니다. 이웃을 믿든, 돈을 믿든, 자신을 믿든 믿고 삽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설명하면서 우리가 이 건물에 들어온 것은 이 건물이 무너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이 건물에 들어옵니다. 의자에 앉는 것도 의자가 부서지지 않는다고 믿어서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이 살지 못합니다. 그러니 믿음으로 살아야합니다 그러면 이해는 됩니다만 그러나 그것은 성경이 말씀하는 믿음은 아닙니다. 그런 믿음은 확률입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지 앉을 줄 알고 들어갔는데 무너졌습니다. 성수대교가 끊어지리라 생각하고 차를 타고 지나갔겠습니까? 지하철이나 비행기나 무엇이나 간에 믿고서 타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러한 믿음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믿음이라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택하신 자들의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주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며, 주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주님은 신실하셔서 자신의 말씀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것입니다. 천지는 없어질지라도 자신의 말씀은 반드시 다 성취시키시는 분이심을 성경이 증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내용 안에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지를 제대로 아는 것도 포함이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쓴 시편 51편에 보면 무엇이 은혜인지를 제대로 설명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시편 51편에 보면 다윗은 자신이 골리앗을 물리치고, 백성들의 인기를 얻고, 승승장구하고, 왕이 되는 것이 은혜가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죄악 덩어리인지를 제대로 아는 것이 은혜라고 고백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죄인임을 알기에 주님의 용서 외에는 달리 소망도 없고, 기쁨도 없다는 고백이 나오는 것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세상에 보이는 것들, 세상에 믿던 모든 것들이 끊어질 그날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 주님의 약속만을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는 것을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에게 주어진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받을 수도 없는 내용을 말하기에 싫어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해하고 받을 수 있는 내용들을 증거 하였다면 환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바울의 전도를 받고서 믿는 자가 나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4장에 보면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4:3-4)고 합니다. 이 세상의 신이 있어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임을 믿게 된다는 것입니까? 오직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이기에 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에서 말하는 믿음이 아니라 이러한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을 말하는 것은 세상의 지혜로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비밀이라고 하고, 은혜라고 하고,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믿음은 사람의 신념이나 불굴의 정신이 아닙니다. 무슨 불가능하고 어려운 일을 하면서 믿음으로 하자고 하면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은혜로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런 택하신 자들에 대한 믿음을 일깨워 주기 위하여 사도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로서의 두 번째 임무가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입니다. 세상에도 진리도 많고 지식도 많습니다. 모두가 자기들의 말과 이론이 진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도대체 무엇이 진리인지를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가 증거 하는 진리는 무엇입니까? 바로 경건함에 속한 진리에 대한 지식입니다.

골로새서 2장에 보면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2:1-3)고 합니다.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다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베드로후서 3장의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벧후3:18)라는 말씀처럼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바울은 사도로 보내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생의 소망을 위해서입니다. 영생은 요한복음 17장에 보면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17:3)라고 하시며 또 영생은 로마서 6장에 보면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6:23)고 합니다. 영생은 이처럼 영생을 선물로 허락하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으로서 항상 그분만을 소망하며 사는 것입니다. 결국 사도됨이란 믿음과 지식과 영생에 관하여 증거 하는 자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이 증거를 받고 믿음으로 영생에 이르게 되는 사람이 하나님의 택하신 사람입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의 구원이 목적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만 영광이 이제로부터 영원한 날까지 돌려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원가족 여러분!

이 말씀은 사도 바울에게만 주어진 사명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우리의 삶속에서 이 일을 위해 부름 받았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믿음이며 또 믿은 이후에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소망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아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나눔과 교제를 통해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오직 주께만 영광이 되어지는 삶이 되어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복습하기)

1. 사도 바울의 목회서신이나 또 종으로서의 관심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2. 도 시대와 속 사도시대는 어떻게 구분되며 또 오늘날 예수님의 사도로서 할 일은 무엇입니까?

3. 사도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4. 자기 의로 사역한다는 것과 주의 은혜로 사역한다는 것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5. 성경에서 말씀하는 믿음과 세상에서 말하는 믿음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6. 다윗이 고백한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이며, 우리가 은혜로 구원 받은 증거는 무엇입니까?

7. 하나님의 사도로서 바울이 전하는 진리는 무엇입니까?

8.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알고 믿게 된 신앙고백과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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